- 머 리 말
- 제 1 장 생명책에 기록한 자들뿐이다.
- 제 2 장 사도시대 교회나 마지막 교회는 같은 복음
- 제 3 장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온전치 못한 것은 폐하리라
- 제 4 장 (黑崎註解) 구로삭기 주해
- 제 5 장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
- 제 6 장 하늘에 새 예루살렘이 유형인가 무형인가 ?
- 제 7 장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우리 어머니다
- 제 8 장 하늘에 새 예루살렘은 실물이다
- 제 9 장 이기는 자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기록된다
- 제 10 장 은혜의 천국과 영원한 천국
- 제 11 장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데 대해서
- 제 12 장 요한계시록 20장, 천년왕국에 대하여
- 제 13 장 이 땅은 천년 동안 황무지가 되어 안식함
- 제 14 장 천년왕국에 대한 연대해석
- 제 15 장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예루살렘 연구
- 제 16 장 자기 혼자만 신부라고 한다
- 제 17 장 하늘 황후에게 전제 드림으로 저주받음
- 제 18 장 성경상 교회는 무엇인가?
- 제 19 장 여자의 주장은 마귀의 유혹
- 제 20 장 여자들의 수건 문제
- 제 21 장 예복과 세마포와 머리 수건 문제
- 제 22 장 (黑崎註解) 구로삭기 주해서를 상고하여 봅시다
이 소책자를 발행하게 된 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말썽꾸러기, 즉 성경을 곡해하고 광신적 행동을 하는 자들을 막기 위함이요, 또는 엄수인의 발행한 책들의 오류를 해명하는 것과 변함 없는 우리 하나님의 교회 진리를 대강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교회는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세워진 교회이므로 우리 하나님의 교회는 흠을 잡으려고 해도 아무런 흠을 잡을 수가 없는 교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수인 같은 여자들이 일어나서 방자한 생각으로 큰 일을 저질렀으니 어떻게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들의 입으로, 또 책으로 참람된 말을 하고 『요한계시록』을 자기들의 멋대로 해석하여 방자한 말을 했으니 그 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들은 계속 고집하고 나가게 될 것이며 사단에게 사로 잡혀 점점, 더 엉뚱한 생각을 갖게 되어 사단이 끄는대로 끌려가 결국은 멸망으로 들어가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그 멸망의 소굴에서 나오기란 하늘에 별따기보다 어려울 것입니다. 그들이 교만과 자존심을 완전히 다 버리고 회개하고 자복한다면? 혹시나 돌아올 수 있을런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전국에 계시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여러분들의 큰 교육이 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방자한 자들의 미혹에 걸리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셔야 되겠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는 불씨의 원인은 교회 비난과 지도자들의 험담으로 시작되는 것이니, 교회 비난과 지도자들의 험담은 내 마음속에 사단의 초대장이 됩니다. 사단이 내 마음속에 들어오면 제아무리 날고 뛴다 하더라도 사단의 그물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혹시나, 형제 중에 교회 비난, 지도자들의 험담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완강하게 물리쳐야 내가 사는 길입니다. 이제부터 엄수인이 기록한 책자들의 오류를 하나, 하나 찾아 연구해 보기로 합시다
저자 안 상 홍
예수님은 하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것을 크게 기뻐해야 된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눅10:17-20절】「칠십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우리는 가장 크게 기뻐할 것은 우리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된 것 외에는 어떠한 이적이든 어떠한 재물이나 권세든지 내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된 것 외에는 그 이상 더 기뻐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 권세나 재물은 이 세상 사람들도 다 갖는 것이요 이적기사는 거짓 선지자들도 많이 행하고 있는 것이지만, 내 이름이 하늘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권위를 받은 교회에서 침례를 받은 후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입니다. 기록된 바
【마16:19절】「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인데 그러나 베드로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 베드로 이하 모든 사도들에게도 그 권위를 주셨다. 기록된 바
【마18:18절】「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하셨는데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을찌라도 잘못되었을 때에는 제명된다는 뜻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마18:15-18절】「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하셨으니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하신 뜻은 교회에서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면 하늘에서도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기록된다는 말씀이다. 이런 사람에 대하여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시69:27-28절】「저희 죄악에 죄악을 더 정하사 주의 의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소서.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하였다.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 하더라도 도말되거나 흐려지는 수가 있다. 진리에서 떨어지거나 거짓에 미혹되어 이기지 못했을 때에 그의 이름이 도말되거나 흐려지는 수가 있다.
【계3:5절】「이기는 자는 이와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하셨고 또 교회 일 부지런히 하고 전도 잘 하는 분들은
【빌4:3절】「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이 생명책에 있느니라」하였다.
그리고 수건 벗고 교만을 부리며 다니는 자들에게는 그들의 이름이 지워져 있고 생명책에서 도말되어 있다.
【사4:3-4절】「시온에 남아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생명책에)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정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사3:22-26절 참고) 하였다.
마지막 심판 때에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구원받는다고 하였다.
【단12:1절】「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생명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하셨다. 기록된 바
【계20:14-15절】「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는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하였다.
엄수인 파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고 이사야4장 3-4절의 기록과 같이 예루살렘에 남아있어 생명책에 녹명된 이름을 지워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생각하여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교회서 매면 (생명책에도 기록하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하늘 생명책에도 기록될 것이요) 교회서 풀면(제명하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늘에서도 제명될 것이다) 하신 것이다. 엄수인의 말을 듣고 떨어져 나간 사람들은 다 제명됨으로 하늘 생명책에도 제명되고 말 것이다.
엄수인은 말하기를 사도시대 교회와 오늘날 마지막 교회가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확실히 모르는 사람이라고 덧붙여 말하고 있는데 엄수인은 사도 바울의 약력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말을 한다. 바울의 부르심은 다음과 같다.
【행9:1-15】「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하였습니다.
바울의 전 이름은 사울이었습니다. 그는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가서 삼년동안 수도를 하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갈1:13-17절 참고)
그리고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전한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갈1:11-12절】「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하였고 또는
【고전2:10절】「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하였고 또는
【고전11:23절】「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하였고 또는
【고전14:37절】「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하였고 또는
【고후12:1절】「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또는
【엡3:2-4절】「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하였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결심하신 분이다.
【고전1:17절】「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또는
【고전2:1-5】「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철두철미하게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바울은 불법자에 대해 예언하기를
【살후2:3절, 7-8절】「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또는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하였다.
바울은 불법자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면서 그 불법자를 악한자라고 예언하신 분이 (살후 2장 9-12절) 안식일을 무시하고 이날이나 저날이나 하고 아무날이나 좋다고 할 분이 아니다. 그러면 로마서 14장 5-6절에 기록된 말씀은 천주교 역사책 교부들의 신앙책 125-126페이지에 부활절 문제로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이 되어있다
그 논쟁의 내용은 예수님의 부활절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3일만이냐 아니면 돌아가신 후 첫 일요일이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절을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나머지 각 교회 생각대로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유월절 후 3일에 지내내려 오다가 325년 니케아공회에서 통합하되 유월절 후 첫 일요일에 부활절 지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고전3:10-15절】「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찌니라 ......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하였다고 해서 모든 교회가 다 구원받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위에 말씀은 초대교회 진리가 암흑세기에 짓밟힌 이후 약 1260년의 긴 세월이 지난 후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천주교회 오류를 지적하고 개혁의 정신으로 종교개혁은 하였으나 진리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불가운데서 구원받는 것 같이 죽었다가 다시 부활로 구원받게 되는 것을 두고 예언한 것이다.
그리고 엄수인 자신은 온전한 사람인 것 같이 온전한 것이 왔으니 그전에 것은 폐하리라 하는데 다시 성경절을 찾아 살펴보기로 하자.
【고전13:8~10】「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한 이 말씀의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하는 때가 어느 때인지 잘 생각하셔야 한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가 아무리 잘안다 하더라도 하늘 나라에 간다면 지금 우리가 안다 하는 것이 수천만분지 일도 모르고 있는 것이다.「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하는 때는 이 세상이 끝난후에 일이다.
지금은 사도 바울이 부활하지 아니하고 하늘 예루살렘에 의인의 영들과 함께 있지만 (히12:22~24절 참조)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성도들과 함께 부활할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바울자신)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부활했을 때에는) 주께서 나를 (바울자신) 아신 것 같이 내가 (바울이) 온전히 알리라」하고 솔직하게 예언했다. 기록된 바
【고전13:12】「우리가 이제는 거울로(구리거울이나 돌거울)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계22:4절)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한 사도바울 자신도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고 있지만 하늘에 가서는 완전하게 알 수 있다는 예언을 한 것이다. 이런 성경문맥 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무엇을 안다고 하겠습니까? 그 때문에 사도 바울이 예언하기를
【고전14:34~37, 딤전2:11~14】「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하였고, 사도 베드로는 예언하기를
【벧후3:15~16】「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하였다.
엄수인이 해석한 것이 다 그러한 해석이니 본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를 따르는 추종자들의 영혼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 9:16절 참고)
사도 바울이 부분적으로 안다는 문제에 대해 일본사람 구로삭기씨의 주해를 찾아보기로 하자.
【8절 :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해설〕 이 일구(一句) 뒤에 올 설명의 제목으로 볼 수 있다.
사랑의 영원성과 완전을 고조하고 다른 모든 은사가 일시적인데 비하여 사랑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있다.
【8절 :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해설〕 사랑이 영구적인데 반하여 예언, 방언, 지식과 같이 현재 고린도교회에 있어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모두 일시적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고린도의 교회는 이 일시적인 것을 존중하고 영원한 사랑을 무시하고 있다.
【9절 :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절 :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해설〕 완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하실 때에 비로소 오는 것이고 그때까지는 우리의 지식도 예언도 다 부분적인데 불과하다. 한 부분으로서는 바르다고 할찌라도 결코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 한 불완전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다 폐하고 예언은 실현되고 지식은 완전한 하나님의 지식에 화(化)하고 말 것이다.(부활 때를 말한다.)
【11절 :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해설〕『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것은 언어, 신앙, 지식의 세가지 은사에 해당하고 있다. 어린 아이 시대는 이 삼자가 다 불완전하였으나 성인이 된 후에는 이 모든 것을 버리고 있다. 즉 어른이 되어서와 어릴 때와는 전혀 딴 사람과 같은 감이 난다. 재림까지의 우리들과 재림 후의 우리들과는 그러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재림시에는 불완전한 것은 이를 내버리어 그 뒷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마치 어른이 되어 어린이의 일을 버리는 것과 같다.
【12절 :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해설〕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에 대하여 계시를 받아 이를 예언하지만 그 경륜은 마치 수수께끼와 같이 희미하게 보여 당시의 금속제 거울을 보는 것과 같고 또 우리가 하나님이나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도 (바울은 우리들이라 하지 않고 자기 개인적 경험으로 나타냄) 이제는 부분적이고 불완전하지만 주의 재림시 우리는 부활하여 완전히 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일본 구로삭기는 해석했다.
하루 속히 그 거짓에 미혹되지 마시고 진리 안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고전8:2절】「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하였는데 엄수인이 처음에는 자기를 구원만 받게 해달라고 애걸하던 그가 교회에서 환영을 받게 되니 마음이 변하여 자기 혼자만 신부다 하고 주장하더니, 신부는 하늘 예루살렘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이제는 자기가 하늘 예루살렘인데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더니, 이제는 또 하나님이 보내주신 보혜사라고 까지 교만해졌다.
자기가 보혜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요한복음 15장 26절에 기록한 말씀에 보혜사가 와서 예수를 증거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엄수인 자기가 예수를 증거했으니 자기가 보혜사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침례 요한도 보혜사요, 가다라 지방에 귀신들린 두 사람도 보혜사요, 베드로, 마르다, 도마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으니 (요1:31~36절, 11:24~27절, 8:28~29절 참고) 이분들도 다 보혜사가 되겠는가?
보혜사는 성령이고 성령은 또한 예수님이시다. 이 문제는 다음 문제에 설명하기로 한다.
엄수인의 말에 의하면 예수님의 복음은 부인하지 않는 모양인데 예수님의 복음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사도 바울 편지서도 부인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편지 전부가 복음이라고 했을뿐더러 사도 바울 자신이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하였다.
【롬15:16절】「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하사」하였으니 이 이상 더 명백한 기록이 어디 있을까? 사도 바울이 복음에 대한 기록들을 찾아보기로 하자. 사도 바울이 기록한 편지서 14권 중 디도서 한권 빼놓고 13권에는 다 복음의 중요성을 기록하였다.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도 되셨지만 복음을 위하여 옥에도 여러번 갇히기도 했다.
【딤후2:9절】「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빌레몬1장 13절 참조) 하였고
【딤전1:11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하였고
【딤후1:10-11절】「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하였다. 이외에도
【엡1:13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하였고
【엡3:7절】「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하였으며 또는
【골1:23절】「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고전1:17절】「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또는
【살전2:2절-4절】「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또는
【살후1:7-9절】「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또는
【롬1:14-16절】「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하였다.
이렇게 복음을 위하여 옥에 갇히고 자기 일생동안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을 온전치 못하다고 하는 그런 여자를 하나님이 어찌 용서해 주시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있게 맹세하였습니다.
【행20:24절】「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하였다.
이 외에도 복음에 대한 증언이 수십절이 되지만 지면상 약하기로 한다.
【사66:1절】「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하셨다고 하면서 하늘에 무슨 집이 있으며 새 예루살렘이 어디 있을까보냐?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사야66장 1절의 말씀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행7:48-50절】「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 이 모든 것이 다 내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하셨다.
스데반 집사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이사야66장 1절의 기록을 가지고 증거하게 된 것은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이 지상의 예루살렘에 계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하늘 새 예루살렘에 계신다는 것을 분명하게 증거하신 말씀이다. 기록된 바
【사65:17-19절 공동번역 참고】「보아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 사라져 생각나지도 아니하리라. 내가 창조하는 것을 영원히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나는 나의 즐거움 예루살렘을 새로 세우고 "나의 기쁨" 예루살렘 시민을 새로 나게 하리라 예루살렘은 나의 기쁨이요 그 시민은 나의 즐거움이라. 예루살렘 안에서 다시는 울음소리가 나지 않겠고 부르짖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리라」하였다.
위의 예언한 말씀이 요한계시록 21장 1-4절의 말씀과 연결된 말씀이 분명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는 안계시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새 예루살렘에는 계시고 우리도 세상이 끝나면 그 곳에 갑니다.
【계21:1-2절】「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엄수인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이 자기라고 정신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자기들의 주장하는 성경절에
【갈4:22-26절】「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 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데니 저가 그 여자들로 더불어 종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한 이 말씀을 가지고 엄수인은 하늘에서 내려온 어머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엄수인은 생각하기를 하갈이 실지로 지상의 예루살렘이 되고 사라가 실지로 하늘 예루살렘이 된줄로 생각한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4장 22-26절을 쓰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가정의 역사가 예언이 되는 것을 해명해 주신 것 뿐이다.
【갈4:24절】「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하였으니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대한 예언으로써 하갈은 시내산에서 받은 모세 율법과 지상의 예루살렘으로 말미암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이고 사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가의 다락방에서 세우신 새 언약과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말하는 것인 바 곧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엄수인은 자기가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인데 자기가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갈라디아서 4장 22-24절의 예언대로 사라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인데 그 예루살렘이 엄수인이 되었다면 엄수인은 자기 아들하고 결혼한 셈이 된다. 왜냐하면 사라의 아들이 이삭이요 이삭은 또한 그리스도라고 하였기 때문이다.(갈 3장 16절)
엄수인은 그리스도의 어머니도 되고 그리스도의 신부(아내)도 된 셈이다.
엄수인은 나를 눈먼 이삭이라 하면서 위에 있는 예루살렘 즉 사라라고 하니 결국 이삭, 아들하고 살겠다고 하니 이런 해괴 망측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엄수인은 이러한 엉뚱한 망상으로 거짓 선지자가 되어 자기 세력을 잡고자 하였으니 그 죄를 어떻게 할 것이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의 죄는 어떻게 할 것인지 생각들 해 보시기 바랍니다.(사9장 16절)
하늘 새 예루살렘성이 14만 4천 성도가 포함되어 있지만 실지 건물인 새예루살렘성이 분명히 있는 것이다. 만일 하늘에 실물인 새예루살렘이 없다면 14만 4천 성도들이 하늘에 가서 어디서 어떻게 살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요14:1-3절】「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공동번역에는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이렇게 말하겠느냐"하였다. 분명하게 있다는 말씀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있을곳)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하셨으니 이 얼마나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까?
『만일 거기에 있을 곳이 없다면 내가 너희에게 이렇게 말하겠느냐 (공동번역, 요14:2절』)하신 말씀을 보아서도 하늘에 실물인 새 예루살렘이 있다는 것은 도무지 부인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하늘의 새 예루살렘에 대하여 광대함과 천만천사와 하늘에 장자 총회와 온전케된 의인들의 영들과 하나님의 보좌와 어린 양의 보좌 등등의 어마어마한 광경을 보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공동번역 히12:22-24절】「그러나 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거기에는 수많은 천사들이 있고, 잔치가 벌어져 있고 또 하늘에 등록된 장자들의 교회가 있고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완전히 올바른 사람들의 영혼이 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계약의 중재자이신 예수가 계시고 아벨의 피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습니다」하였다.
앞서 기록한 말씀은 분명한 사실을 편지로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자기 피를 가지고 단번에 들어가셨다고 하였다.
【히9:11-12절】「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하였다.
유대나라에 세워진 지상의 성전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고 사람의 손으로 만져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늘의 성소는 이세상의 속된 인간의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부정한 손으로는 만져볼 수도 없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에 있다, 없다 상상조차도 못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21장 1-4절의 기록한 새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한 이 장막도 사람이 아닌 신령적 건물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교회에서 주장하는바 성도들이 교회요 14만 4천 성도가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였는가? 그 이유는 모든 교회가 생각하기를 건물이 교회요 새 예루살렘이라고 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좀더 확실하게 알리기 위하여 성도가 모이면 그곳이 교회요 14만 4천이 들어갈 곳이 새 예루살렘이라고 분명하게 증거한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새 예루살렘성은 14만 4천 성도가 생기기전에 예수님께서 지어 놓으신 것이다. 기록된 바
【히8:1-2】「이제 한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주께서 베푸신 이 장막은 지상사업 마치고 천년이 지낸 후에 하늘에서 내려올 것을 보이신 것이다.
【계3:12절】「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엄수인이가 자기가 하늘 새 예루살렘인데 자기 이름도 구원받는 사람들의 이마에 찍혀져야 된다는 생각 밑에서 하는 말인데 『이기는 자』라는 말이 요한계시록 2장 3장 안에 일곱군데나 기록되어 있다. (계2:7절, 11절, 17절, 26절, 3장 5절, 12절, 21절) 일곱 교회마다 이기는 자들에게 내려주는 상들이 다르다.
그리고 일곱 교회는 사도교회 시대부터 라오디게아 교회, 즉 안식일 교회까지 일곱 교회 시대로 나누어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1. 에베소 교회는 사도시대 교회〔기원 31-106년〕
2. 서머나 교회는 다신교 로마의 핍박〔기원 106-313년〕
3. 버가모 교회는 세속화하던 시대〔기원 313-538년〕
4. 두아디라 교회는 법왕권시대 〔기원 538-1798년〕
5. 사데 교회는 종교개혁시대〔기원 1798-1834년〕
6. 빌라델비아 교회는 재림운동기간〔기원 1834-1844년〕
7. 라오디게아 교회는 은혜의 왕국에 들어갈 준비시대〔기원 1844-1964년〕까지이다.
새 예루살렘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한다는 교회시대는 빌라델비아 교회시대의 역사의 예언이다. 새 예루살렘성 이름이 성도들마다 다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계21:14절】「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양의 12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하였다.
그와 같이 계시록 3장 12절의 이기는 자의 위에 새예루살렘의 이름이 기록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산 성도 14만 4천 성도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 외에는 없다.
없는 것을 있다고 하거나 있는 것을 없다고 해도 안된다. 있는 것은 있다고 분명하게 말해야 되고 없는 것은 분명하게 없다고 해야 죄를 받지 아니한다. 기록한 말씀에
【계22:18-19절】「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하시었는 바 요한계시록 14장 1절에는 14만 4천 성도들 이마에는 새 예루살렘 이름이 없는데 있다고 덧붙이면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더한 사람이 된다. 쓸데없는 소리 하다가 무서운 칠재앙 받지 말고 순종해야 될 것이다. 기록한 말씀에
【계14:1절】「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하였고 새예루살렘성 이름은 없다. 기록이 없는 것을 억지로 넣으면 모든 재앙을 다 받는다고 하였다.
성경의 기록대로만 보고 믿을 뿐이다. 더 붙이거나 제하여 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아셔야 한다.
【마3:2절】「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4:17절】「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위에 말한 천국은 은혜의 천국을 말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교인들이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에 대하여 물어볼 때에
【눅17:20-24절】「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뭇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하시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하신 것은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 지상에서 (하늘나라에 갈 준비하는) 은혜의 천국을 말하는 것이다. 기록한 바
【고전3:16절】「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하였고 또는 기록하기를
【눅11:20절】「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하셨으니 이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은혜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은혜의 천국안에 있었던 사람들이 다 죽었다. 죽는 것이 천국인가? 엄수인 말대로 지금 하늘 새예루살렘이 지상으로 내려왔다, 지금 우리 교회가 천국이다, 하는데 우리 교회도 벌써 죽은 사람이 많이 있었고 또 죽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죽는 곳은 영원한 천국이 아니다. 기록한 바
【엡2:5-8절】「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골1:13-14절】「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하였고 또는
【히12:22-24절】「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에 예루살렘과」
【계14:1-5절】「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사천이 섰는데」
【사32:20절】「우리의 절기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눅22:7-20절】「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하신 이 모두가 다 은혜의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을 두고 기록된 말씀이다.
이 은혜의 천국에는 다 죽음을 당하게 되는 곳이고 14만 4천 성도들도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변형을 받아 화신을 해야되고 죽은 자들도 부활을 해야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이다
【고전15:50-53절】「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라」하였으며 또는
【살전4:15-18절】「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니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부활하고) 그 후에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하였으며, 또는
【계20:4-6절】「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행12장 1-2)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부활해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하셨으니
위에 기록한 고전15:50-53절과 살전4:15-17절을 연결해서 연구한다면 모두가 다 마지막 때에 영원한 부활이 있어야 되겠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계21:1-2절】「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하였으며 이사야 선지자는
【사65:17-18절】「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나의 창조되는 것을 인하여 기뻐하며 즐거워할찌니라」하였으며 사도 베드로는 기록하기를
【벧후3:12-13】「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하였으니 위에 기록한 모든 성경들이 다 이 세상이 끝나고 영원한 천국을 맞이하는 때를 가리켜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했고 영원한 천국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엄수인은 지금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되었고 하늘에 새 예루살렘이 지금 이 땅에 내려와서 살고 있다 하니 참으로 정신 이상된 사람이 아니고야 어떻게 그 말을 믿고 따라가겠습니까? 잘 생각들 해 보십시오.
지상 복음사업 6천년을 마치고 천년왕국으로 들어갈 무렵에 먼저 용을 잡아 천년 동안 무저갱에 던져 잠그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천년이라는 기간은 구약에 예언으로 된 것인데 (출23:10-11절, 레25:2-5절)위에 성경절들을 자세히 살펴보시면 땅은 6년 동안 갈아 심어먹고 7년째 된 해는 안식년이 되어 있다. 그 예언의 성취가 바로 천년왕국 기간이 되어 이 땅이 천년 동안 황무지가 되고 사단은 황무지가 된 이 땅에서 일천년 동안 갇히게 된다.
무저갱이란 말은 이 땅이 황무지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계20:1-3절, 레26:33-35절 참고) 계20장 4절에는 지상사업 6천년이 끝나는 동시에 죽은 자들의 부활과 살아남은 자들이 변형을 받고 보좌들에 앉아서 악인들의 죄를 심판하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할 것입니다. 이제 성경 본문을 한절 한절 읽어가며 해석해 보겠다.
【계20:1-3절】「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하였고 우리는 6천년이 끝나는 즉시 죽은 자들의 부활과 우리 살아남은 자들이 변형이 된다.
【계20:4절】「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이분들은 살아남은 성도들이 변형을 입고 보좌에 앉아서 죽은 악인들을 심판하게 된다. 즉 죽지 않고 살아서 변형을 입은 14만 4천 성도들이다.
【계20:4절 하단】「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부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계20:5절】「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계20:7절-10절】「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해설] 지구의 종말인 6천년이 차면 지구는 불바다가 되어 아라비아 사막과 같이 되어 무저갱이 되고 만다. 그 때가 되기 직전에 우리 14만 4천 성도들은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된다.
【마22:30절】「부활 때에는 ...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하신 말씀과 같이 천사가 된다. 그리고 2,000년 동안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몸이 먼저 부활받아 곧이어 변화된 우리 14만 4천 성도들과 함께 공중에서 주를 영접받고 주님께서 예비하신 곳으로 가게 된다.(요14장 1-3절 참고)
산 자의 변화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고전15:51-53절】「보라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하였고 또
【살전4:15-17절】「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14만 4천 성도)도 저희와 함께 구름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하셨다.
모세 율법에는 안식년이 있는데 6년 동안은 파종하여 갈아먹고 7년되는 해는 1년을 쉬게 하는 법이 있다. 기록된 바
【레25:2-5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간 후에 그 땅으로 여호와 앞에 안식하게 하라 너는 6년 동안 그 밭에 파종하며 6년 동안 그 포도원을 다스려 그 열매를 거둘 것이나 제 7년에는 땅으로 쉬어 안식하게 할찌니 여호와께 대한 안식이라 너는 그 밭에 파종하거나 포도원을 다스리지 말며 너의 곡물의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고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나무의 맺은 열매를 거두지 말라 이는 땅의 안식년임이니라』하시었다.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히10:1절】「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하였으니 안식년도 장차 될 일의 그림자가 된 것은 틀림없다. 그런고로 아담으로부터 마지막 때까지 6천년이 지나면 안식 천년이 되어 천년 동안 황무지가 되어 이 땅이 쉬게 된다. 그리고 6천년 끝날이 아니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범죄하게 되면 아무리 당신의 백성이라도 다른 나라에 붙여 침략을 당하고 이 백성으로 포로가 됨으로 그 땅이 황무지가 되어 그 땅이 안식을 누린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기록된 바
【레26:32-35절】「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거기 거하는 너희 대적들이 그것을 인하여 놀랄 것이며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타국에 포로생활 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 너희가 그 땅에 거한 동안 너희 안식시에 쉼을 얻지 못하던 땅이 그 황무할 동안에는 쉬리라」하시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위에 말씀과 동일한 말씀으로 예언하였다.
【렘25:11-13절】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하였는데 왜 70년을 말하였을까?
역사를 살펴보면 왕권정치로 시작되는 주전 1095년경 사울왕이 시작되어 1차 포로가 시작되는 605년경 유다왕 여호야김왕 때까지 490년간이 된다. 490년 동안에 안식년이 70번이나 빠진 그 년수를 다 이스라엘 땅은 안식을 누리게 하고 백성들은 그 죄가로 죄인의 생활(포로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대하36장 1-33절 참고)
【대하36:20-22절】「무릇 칼에서 벗어난 자를 저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 이르니라 이에 토지가 황무하여 안식년을 누림같이 안식하여 70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하였다.
이와 같이 이 지구가 아담 이후 6천년이 지나면 지구에 안식 천년이 있도록 예언이 되어 있다. 지구는 황무지(무저갱)가 되고 사단, 마귀는 무저갱에 천년 동안 잠그고 성도들은 주님 예비하신 곳에 가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심판하며 왕노릇 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0장 1-6절에 천년 동안 사단은 무저갱에 갇히고 성도들은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고 악인들은 천년동안 지옥에 감금되었다가 천년후에 사단 마귀와 같이 부활받고 사단의 꾀임에 유혹을 받고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향하여 공격하다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에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와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는 유황 못에 던지우니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게 된다.
옛날 아브라함 당시부터 예언의 성취가 정한 때와 정한 년, 월, 일이 어김없이 다 성취되었다. 실례를 들어보자면
【시139:16절】「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욥14:5절】「그 날을 정하셨고 그 달 수도 주께 있으므로 그 제한을 정하여 넘어가지 못하게 하셨사온즉 그에게서 눈을 돌이켜 그로 쉬게 하사 품꾼 같이 그 날을 마치게 하옵소서」하였다.
성경상 정한 예언의 날들은 일점일획이라도 차질이 없다. 정한 때나 정한 날이 성취된다. 기록된 바
【창7:4절】「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한 그 예언대로
【창7:10절】「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그 예언대로 성취되었고
【창15:13-14절】「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400년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아오리라」하신 예언대로 400년 후에
【출12:40-42절】「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430년이라 430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땅에서 나왔은즉」하였다. 400년 후에 나오리라 한 그대로 예언이 성취되었다.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의 70년에 대한 예언을 보면
【렘25:11-13절】「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하였고
【단9:1-2절】「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라」또는
【대하36:21절】「칠십년을 지내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응하였더라」
【단7:25절】「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단8:14절】「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천 삼백 주야 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계12:6절】「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계13:5절】「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하였다.
성경에는 이렇게 많은 날들에 대한 예언들이 있는데 일천년의 예언이 3년 동안에 예언 성취되었다고 한다면 어떻게 예언을 믿으며 또 어떻게 그런 터무니 없는 해석으로 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엄수인 발행책[시온과 예루살렘] 13페이지에 『예수께서 30세에 침례를 받으시고 복음 전하신 때가 천년왕국이다』하였으며 또 엄수인 발행한 책 [하나님의 왕국 문제] 51페이지에도 같은 뜻으로 기록되어 있으니 그러한 식으로 예언이 되어 있다면 그 예언을 누가 믿을 수 있으며 그러한 예언을 누가 정확하다고 하겠는가?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벧후1:20장-21절】「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하였다.
해석자가 기록할 때에 감동되었던 그 성령이 감동되어야 그 예언을 정확하게 해석할 수가 있다.
엄수인의 해석은 자기 주장에 맞추어 해석하기 때문에 그런 터무니 없는 해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터무니 없는 해석을 하게 된 것도 요한계시록21장 2-3절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한 그 성경절을 엄수인 자신이라고 하자니 계시록 20장 1-6절을 1900년전 예수 초림때의 예언으로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요한에게 계시를 보여줄 때 분명히 이 예언은 후에 될 예언이라고 말씀하셨다.
【계4:1절】「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하신 것은 지나간 것을 보이신다는 말씀이 아니라 앞에 될 일을 보이신다는 말씀이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을 때는 주후 95년경이고 예수 초림때는 주후 30년경이다.
예수 초림때에서 약 65년후에 계시보는 요한에게 65년전일을 후에 될일이라고 말씀하실 이유가 없다. 혹은 요한계시록 중에는 창세기로부터 지나간 역사를 기록한 점이 더러 있으나 그 지나간 역사를 기록하게 된 것은 영적으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분명하게 알리시기 위한 교훈으로 보이신 것이지 지나간 일을 이 후에 될 일이라고 기록하시지는 않으신다. 실례를 들어 말하자면
【계2:14절, 20절】「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또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하였는 바 이러한 과거 역사가 두아디라 교회나 버가모 교회 시대에 이러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지나간 역사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20장은 그러한 실례를 들어 교훈하신 것이 아니고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이 후에 이루어질 것을 그대로 보이신 것이다.
이 지구는 6천년이 차면 황무지가 되고 사단, 용은 이 지구 황무지(무저갱)에 1천년 동안 가두어 잠그고 잠자는 성도들은(죽은 자는) 천사와 같이 부활하고 산 성도들은 천사와 같이 변형을 입고 주께서 예비하신 그곳으로 가서 천년 동안 악인의 심판을 하며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 할 것입니다.
【계21:2-3절】「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하시었으며 또 기록하기를
【계21:9-10절】「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하셨고 또 기록하기를
【계19:7-8절】「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공동번역- 하나님의 허락으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하셨는데 사도 바울은 위에 말씀과 똑같은 말씀으로
【고후11:2-3절】「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하셨으니 어린양의 아내는 복음을 받아드린 14만 4천 성도들이다. 그리고 성도들 뿐만 아니고 실지로 주께서 베푸신 장막(새예루살렘)이 있다고 하였다.
【히8:1-2절】「이제 한 말에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하였고 사도 요한은
【계21:3-4절】「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하셨다.
그러므로 주께서 베푸신 장막(새 예루살렘)은 그 범위와 크기가 우리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것이다.
【계21:16절】「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측량하니 일만이천"스타디온"(로마의 수인데 한 스타디온은 8분의 1마일 즉 185미터이다. 일만이천 스타디온을 계산하면 360,000㎢ 우리나라 남북 전체면적보다 약간 큰 것이다.)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하였다.
이 새 예루살렘에 대한 약도를 대강 그려 보겠습니다.
계시록의 예루살렘과 우리나라와의 면적 비교(책자참조)
일천년 후에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이 세상에 내려온다.(책자참조)
자칭 자기 혼자만 신부라고 하는 엄수인의 주장 이것이 사실인지 그의 주장하는 성경절을 읽어보자. 이 문제가 틀리면 그가 주장하는 모든 말은 다 잘못된 줄 알아야 하겠다. 엄수인의 말하는 성경절은 <계22:17절>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하였는바 이 신부가 엄수인 자신이라고 말하고 또 <계21:3절>『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한 그 음성도 엄수인 자신이라고 하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보좌(옥좌)는 하나님만이 좌정해 계시는 곳이고 그의 우편에는 어린 양이 계시는 곳이다.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는 것은 하나님이나 어린 양 밖에는 아무 다른 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방자하게도 엄수인이 자기가 큰 음성을 냈다고 하는 것은 보통 정신병자가 아닙니다.
엄수인 발행한 책.......22-23p에 이런 방자한 말을 썼다.
그러면 엄수인이 한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심각히 연구해야 되겠다. 만일 그가 주장하는 문제가 사실이 아니라면 대역적의 행위이니만큼 그는 물론이고 그를 따르고 미혹된 자도 중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사9:16절 참고)
그러면 문제의 신부에 대하여 성경절을 찾아보기로 하자.
기록된 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계22:17절) 여기 신부는 (계21:9-10절)의 신부와 같은 신부인 것만은 사실이다.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하였으니 어린양의 아내는 성도들이다.
(계19장 7-8절)을 보면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공동번역에는 『그 분의 신부는 몸단장을 끝냈고 하나님의 허락으로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입게 되었다 이 고운 모시옷은 성도들의 올바른 행위이다.』하였다.
그런고로 그 신부는(계21:9-10절)의 예언과 같이 하늘에 새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고 새 예루살렘은 곧 144,000 성도들을 말하는 것이다.
144,000 성도들은 다 신부요, 신부는 새 예루살렘성이다.
새 예루살렘성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장막이라고 하는데(계21:3절 참고) 이 장막은 1900년전에 주께서 베푸신 것이다. (히 8:1-2절 참고)
이 장막(새 예루살렘성 계21:3절, 9-10절 참고)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때는 이 세상이 끝나고 1000년이 지나서 되는 일이다. 기록된바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장 1절) 하였다.
(계20:1-15절)을 계속해서 자세히 보시면 세상이 끝나고 1천년 후에 되는 예언이다.
그런데 엄수인은 (계21:1-10절)의 예언을 오늘날 자기가 큰 음성으로 하는 것으로 자기 발행책 22-23P에 방자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런 참람한 행위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계 20장 21장 22장)은 천년왕국 후 되는 일이니 이점 특별히 주의하셔야 하겠습니다. (계21:1절) 『새 하늘과 새 땅』은 (벧후3:6-13절)까지 읽어보시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온다.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에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하였다.
그런고로 (계21:1절) 새 하늘과 새 땅은 전세계가 불타 버리고 1000년 왕국이 지난 후에 되는 일이다.
엄수인은 자기 혼자서 하늘 새 예루살렘성이 지상으로 내려왔다고 하면서 자기를 섬겨야 더 큰 복 받는다고 함으로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고 있다.
【렘7:18절】「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하셨다.
엄수인 자기 혼자만이 신부요 또 하늘 새 예루살렘성이니 함으로 하늘 황후가 되는 것이며 멜기세덱에게 드려야할 십일조를 자기가 받아 먹으면서 내가 하나님보다 높으다 하는 식으로 자기를 높이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참람되고 외람된 행동일 것인가?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래 참으실 것인가? 기록된바
【렘7:18-20절】「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나를 격노케 함이냐 어찌 자기 얼굴에 수욕을 자취함이 아니냐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나의 진노와 분한을 이곳에 붓되 사람과 짐승과 들 나무와 땅의 소산에 부으리니 불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하셨다.
이 예언은 천주교회가 마리아 섬기는 예언이라고 하겠으나 엄수인에 대해서는 더 명백한 증거가 되어있다.
그런데 복음사업을 하늘 성전 건축이라고 함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신 동시에 성도들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각 지체라고 하였다.
【골1:18절】「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엡4:15-16절】「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12:27절】「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니 각 부분이라」그런고로 교회라 함은 지상의 건물만 가리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을 가리킴이니 우리가 다 하늘성전 건축 재료들이다.
【계3:12절】「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엡2:20-22절】「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고전3:16-17절】「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고후6:16절】「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그런고로 각 시대의 복음사업으로 말미암는 하늘 성전 건축은 지상에서 성도들의 수가 차므로 하늘 성전이 완성되는 것이다.
지상의 건물 교회는 아무리 훌륭하게 건설 되었을찌라도 종말에 가서는 다 불에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 성전으로 표상된 성도들은 신랑이 최후 통치자로 오시는 때 거룩한 신부가 되어 신랑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고후11:2절】「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런고로 교회를 아내로 표상하는 동시에 성도들은 그의 아내로 표상하였다. 그러므로 마지막 144,000명은 하늘 새 예루살렘 성전 건축 재료들이다. 그 수가 차면 하늘 새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되는 것이다. 기록하기를
【엡2:20-22절】「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하였다.
산성도 144,000명이 다 구성될 시에는 하늘 새 예루살렘 성전이 준공되는 것이다. 그 때에 하늘 새 예루살렘성 안에 144,000 성도들과 하늘에 천만천사들과 하늘에 기록한 장자 총회와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함께 모두 그 안에서 영원토록 살게 될 것이다.
【계22:3-5절】「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하셨다. (히12장 22-24절 참조)
■ 자기 마음에 생각대로 예언함
엄수인이 주장하는 성경절은 그 시대가 맞지 않는 성경절을 주장하고 있다.
엄수인이 기록한 책 [하나님의 왕국문제]책 51p에는 (계시록 20장 1-3절) 용을 잡아 일천년 동안 무저갱에 가둔다는 시대는 예수 초림때라고 주장하고 또 (계시록 21장 1-3절),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시대가 오늘날 자기시대 즉 엄수인 자기가 새 예루살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너무나 터무니 없는 주장들을 하고 있으니 기가막힐 지경이다. 전세계에서 성경학자들이나 주석가들이 그런 해석을 하는 사람은 아직은 한 사람도 없다. 이제 다시 대강 연구하자면 다음과 같다.
【계19:1-21절】까지는 인류의 최후 종말에 관한 예언이고
【계20:1-15절】까지는 예수 재림 후 1000년 왕국시대 동안에 이루어지는 예언이고
【계21:1-27절】까지는 왕국 1000년이 지나가고 하늘 새 예루살렘 도성이 지구로 내려와서 성전 구조를 살펴보는 예언이고
【계22:1-5절】까지는 영원한 천국과 세세토록 왕노릇하는 예언이고
【계22:6-21절】까지는 영원한 하늘나라가 위에 기록한 말씀대로 영원한 세계가 이렇게 아름다움을 미리 보여주니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지금 와서 생명수도 마시고 이 모든 예언의 말씀에서 더하지도 말고 덜 하지도 말고 그대로 행하다가 이 거룩한 새 예루살렘에 들어 오라고 미리 예언해 두신 것이다.1900년전부터 전도하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받아가지고 전하게 하신 것이다.
【계21:1-10절】의 일은 1000년 왕국 후의 일이다. 현재는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 있는 것이다. 기록된바
【갈4:26절】「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히12:22절】공동번역「여러분이 와 있는 곳은 시온산이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하늘의 예루살렘입니다」
【히8:1-2절】「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하였다.
【계21:3절】「하나님의 장막이(성도)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하신 이 장막은 1000년 통치 후 하늘에서 내려온다. 이 문제를 완전히 깨닫기 전에는 해결이 안 된다. 심각히 연구하여서 영원한 생명을 잃지 않도록 확고하게 연구해야 하겠다.
참 진리교회 안에는 항상 사단의 활동이 끊어질 사이가 없다. 사도 바울은 장차 마귀가 여자들을 이용하여 교회 안에서 어지럽게 한다는 예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딤전2:11-14절】「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그 이유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하였다.
이 디모데전서 2장 11-14절의 예언은 아담과 하와에 대한 말이 나온 것을 보아 이 예언이 틀림없이 오늘날 우리 교회를 두고 예언한 것이 분명하다.
엄수인의 말이 자기가 하와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니 이 예언은 엄수인(여자)가 떠들고 자기는 신부다 하늘에서 내려온 새예루살렘이다 하고 주장할 것을 내다보고『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치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하였으니
창세기 아담과 하와에 대해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하와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한 것을 보아 틀림없이 엄수인에 대한 예언이라 엄수인(여자)가 주장한다면 마귀의 꾀임에 교회는 망하고 말것이라는 예언이 되겠다.
다시 말하자면 언제든지 여자가 교회 안에서 주장하면 마귀의 꾀임에 빠진다는 말씀이다. 고린도 교회에서도 여자들이 수건 문제로 떠들었던 일이 있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여자들에게 잠잠하라고 주의를 주었던 일이 있다. 기록된바
【고전14:34-37절】「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서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여자가 수건 쓰는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 라는 말씀이다.)
위에 기록한 모든 말씀을 보면 오늘날에 될 예언으로써 광안리 엄수인 같은 여자들이 일어나 수건 문제로 떠들 것을 내다보고 미리 예언하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에 기록한 여자들의 주장을 못하게 한 것이 오늘날 우리 하나님의 교회에서 예언이 성취되고 있습니다.1900년전에 고린도 교회 여자들에게 붙었던 마귀가 오늘날 마지막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엄수인 같은 여자들에게 붙어 떠들줄은 아무도 몰랐던 것입니다.
옛날에나 오늘날에나 여자들이 주장하는 것은 마귀의 미혹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이점을 먼저 기억하고 여자들이 나와서 천사의 방언을 할찌라도 그 말을 인정해서는 안됩니다. 옛날에 고린도 교회 여자들이 극성을 부려 보통 때는 항상 쓰고 다니다가도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는 수건을 벗어놓고 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경고의 기별을 주었던 것입니다.
【고전11:3-15절】「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찌니라.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창2장 21-23절 참고)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창2:18절 참고)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위에 둘찌니라.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마땅치 않다)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 (헬라 원어에는 긴 머리는 가리우기 위하여 "너울"을 대신 주었다라고 한다.)」
아무리 성경에 무식한 자라도 고전11장 5-13절까지 연결해서 본다면 억지를 쓰는 일이 아니면 쓰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고전11:16절】「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찌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공동번역에는 『이에 대해서 딴 소리를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그런 풍습은 (여자들의 주장은)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도 없습니다』하였는데 그런 풍습 즉 여자들의 주장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고전14:34절, 딤전2:11-14절 참고)
고린도 여자들이 극성을 부리며 남녀동등권이다 라고 떠드는 바람에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엄격하게 지시하였다. 기록된 바
【고전14:33-37절】「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 모든 성도의 교회에서 함과 같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찌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즉 수건 쓰는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는 뜻이다.)
그리고 공동번역에 첫 허두에 기록하기를
【 고전1장 1절 공동번역 】「여자가 머리를 가리워야 하는 이유」라고 하였다.
그리고 고후3:13-16절의 교훈인데 기록된 바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고후3:13-16절)
위의 말씀은 모세가 십계명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 40일동안 하나님과 같이 있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모세에게 반사되어 백성들이 모세의 얼굴에 광채로 인하여 쳐다볼 수 없어서 수건으로 모세의 얼굴을 가리우고 대화를 하였다. (출34:28-35절 참조)
그러나 대화가 끝나면 모세는 다시 수건을 벗고 하나님에게로 갔다가 백성을 만날 때에는 수건을 다시 쓰고 백성들과 대화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전례가 되어 예수 초림 때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여자들의 수건이 아니고 남자들이 모세의 글을 읽거나 예배를 드릴 때에 쓰는 수건이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1장 4절에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하였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1장 3-15절까지는 여자들의 수건문제요. 고린도후서 3장 13-16절의 수건은 남자들의 얼굴의 가리우는 수건이다. 여자수건, 남자수건만 구별할 줄 알면 된다. 그리고 진리의 근원은 예수님이시다.
예수님 당시에는 틀림 없이 여자들이 수건을 쓰고 있었다.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로부터 수건 쓰고 모든 여자들이 다 수건을 썼다. 그 당시 여자들이 수건 썼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것인가? 엄수인은 그 당시에 여자들이 수건 쓰는 것은 그 당시의 풍습이라고 하는데 사도 바울은 풍습이라고 하지 않고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고전11:5절)하였다.
기도나 예언을 할 때 쓰라는 말과 그 지방 풍습으로 쓴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엄수인 수건문제 책 7P에 4복음서에는 여자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말이 없다고 하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여자들이 이미 수건을 다 쓰고 있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수건을 쓰라고 하실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예수님이 수건을 벗으라고 한 말씀도 없다. 만일 죄가 되는 수건이라면 예수님은 분명히 수건은 벗으라고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또 엄수인 발행책 수건문제 15P에 이 세상 사람들이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할 때 신랑이 신부의 머리 수건을 벗긴다고 주장한다. 그것 또한 거짓말이다. 신랑이 수건을 벗기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 가리웠던 앞면만 들어 신부 머리위에 얹는다. 알지 못하는 거짓말로써 어린 양들을 속이지 말라!
결혼 예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 세상 처녀들이 머리에 항상 쓰고 있었던 것도 아니요, 다만 결혼 예식할 때 하나님을 대표하는 주례사 앞에서 면사포를 쓰고 있다가 예식이 끝나고 밖에 나올 때에는 벗는 것이다.
엄수인 책에 기록한 모든 것이 거의 다 거짓말이다.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시간상 약하기로 한다.
그러나 여자의 머리는 남자의 영광이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히1:14절 참고)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 하였다.
여자들의 수건 문제는 결혼 예식장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주례사 앞에서 수건을 쓰듯이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나온 신부들 같이 머리에 면사포를 쓰듯이 써야 한다.
아직은 혼인 잔치가 끝나지 않았다. 여자들에게는 수건을 쓰는 것이 거룩한 예복이 된다. 예복을 입지 않으면 쫓겨난다(마22:8-13절 참고)고 하였다.
여자들의 머리에 쓰는 수건과 남자들의 얼굴에 가리워진 수건(면박)과 구분해야 되겠다.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고후3:15-16절 참고) 남자들의 얼굴 가린 수건을 말한다.
반대하는 엄수인은 구약 에스겔 13장 17-21절의 글을 가지고 반대설명을 하였다. 만일 에스겔 13장의 수건문제가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에 해당된 문제라면 신약 성경에도 어느 한 구석에라도 그와 같은 예언이 있어야 한다. 만일 구약에 기록한 성경절이 다 신약의 교훈이라면 구약에서는 안식일에 불도 때지 말라 하였고 또 『머리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끝을 손상치 말며』(출35:3절, 레19:27절 참고) 또는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출31:15절 참고) 하였다.
이외에도 신약과 반대되는 말이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되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3:15~16절 참고) 하였다.
『다른 성경과 같이』한 그 다른 성경은 구약성경을 말한다.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엄연히 구별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구약(舊約)이라는 말은 옛 언약이라는 말이고, 신약(新約)이라는 말은 새 언약이라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저 첫 언약이 (구약이) 무흠하였더면 (흠이 없었더라면) 둘째 것(새 언약 즉 신약)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찌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또는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구약)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라』(히8:7~8절, 13절 참고) 하였다.
구약은 신약이 완성됨으로 무용지물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구약에 수건 쓰라고 한 예언이 있다 해도 신약에 수건 쓰라고 한 말이 없으면 우리는 수건 쓸 필요가 없고, 구약에 수건 쓰면 죽는다고 할찌라도 신약에 수건 써야 한다면 수건 쓰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구약에 안식일에 불도 때지 말라한 그대로 안식일에 불을 안때야 할 것이며 안식일 범하면 죽인다고 하였으니(출31:15절, 35:3절 참고) 오늘날에도 안식일 범하는 사람은 다 죽어야 하지 않겠는가?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 없다면 우리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을 자세히 연구한다면 바알신들을 섬기는 천주교회에 대한 예언이다. 에스겔 13장을 연구하자면 먼저 에스겔 8장을 연구하여야 정확한 해석이 나온다. 기록한 바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그것을 보았느냐 너는 또 이보다 더 큰 가증한 일을 보리라 하시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여호와의 전 문 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게 경배하더라』 (겔8:15~16절) 하였는데 이 예언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것이 (일요일) 태양신 숭배자들을 두고 예언한 것이며 따라서 에스겔 13장 17~21절의 예언이 연결되어 있다. 즉 천주교회를 두고 예언하신 말씀이다.
【사3:22-26절】「예복과 겉옷과 목도리와 손 주머니와 손 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 그 때에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하였는바 왜 이런 저주가 내려졌느냐 하면 그들이 교만하여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사3:16-17절】「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되 시온의 딸들이 교만하여 늘인 목, 정을 통하는 눈으로 다니며 아기죽거려 행하며」(공동번역에는 시온의 딸들은 잘난체 목을 빼고 추파를 던지며 돌아다니고 발목으로 잘랑잘랑 소리나 내며 이리저리 꼬리치고 돌아다닌다 하였다.)
그래서 『예복과 세마포옷과 머리수건』을 제하신다는 말씀이다. 기록된바
【호2:11-13절】「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한 말씀과 같은 것이다.
절기나 안식일이 나빠서 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이 우상과 바알신을 섬기고 있기 때문에 거룩한 절기나 안식을 그들에게 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절기나 안식일을 도로 빼앗는다는 말이다. 기록된바
【고전10:21절】「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하였다.
위의 말씀이 바로 우상 숭배하는 자나 교만한 자들에게 거룩한 절기나 안식일이나 수건이나 예복이나 세마포 같은 것을 그들에게 줄 수 없어서 폐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예복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을 제하시고 나니 그 때부터 썩은 냄새가 향을 대신하고 노끈이 띠를 대신하고 대머리가 숱한 머리털을 대신하고 굵은 베옷이 화려한 옷을 대신하고 자자한 흔적이 고운 얼굴을 대신할 것이며 너희 장정은 칼에 너희 용사는 전란에 망할 것이며, 그 성문은 슬퍼하며 곡할 것이요 시온은 황무하여 땅에 앉으리라 하셨다.
다시 말하자면 저주 받았기 때문에 예복과 세마포 옷과 수건을 폐하시게 되고 폐하신 후에는 저주 받아 썩은 냄새도 나고 망하게 되었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다시 회개하고 한 남자인 그리스도에게 와서 자복하고 용서를 빌면 용서받는다는 예언이 있다. 기록한바
【사4:1-4절】「그 날에 일곱 여자가 한 남자(예수님)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 떡을 먹으며 우리옷을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우리로 수치를 면케 하라 하리라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그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그 중에서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하셨다.
만일 그 수건이 필요 없어서 벗긴 것이면 예복과 세마포도 필요없는 것이 안되겠는가? 그러나 예복이 없이는 혼인 잔치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마22:11-13절】「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쌔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더라」하셨고 또 기록하기를
【계19:7-8절】「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하셨다.
수건은 혼인 예식이 끝나기까지는 써야 거룩한 신부들이 되는 것이다.
만일 이사야 3장 22-26절의 기록된 수건이 죄가 되거나 에스겔13장 17-21절의 기록된 수건이 죄가 된다면 그 후에 5백년이나 7백년이 지난 후에 오신 예수님부터가 죄를 조작하신 분이 될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는 여자들이 수건 썼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천주교회 역사는 거짓말 안한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천주교회에서는 수건이 예수님의 어머님때로부터 계속 수건 써 내려왔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구로삭기 주해는 일본사람의 주해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제 고린도전서 11장 3-16절의 해석을 살펴보기로 하자.
[본문]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전11:3절)
[주해] 이제 말하려고 하는 소중한 진리를 모르는 일은 지식에 부요한 고린도 신자로서 바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삼면으로(三面) 그 진리를 설명하려 하는 것으로서 첫째는 영계(靈界)의 질서를 가지고 이를 증명했고(고전11:3-6절) 둘째는 남녀 창조의 의의(意義)를 가지고 이를 증명했으며(고전11:7-12절) 셋째는 자연의 감각에 호소하여 이를 설명하고 있다.(고전11:13-16절)
즉 지상생활(地上)에는 질서가 있어서 혼인에 의하여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하여 받았으며 신앙에 의하여 남자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이어졌고 그리스도와 하나님 사이에는 부자(父子)의 관계가 성립되어 있어서 하나님을 머리로 하여 이에 순종하는 것으로서 지상(地上)생활의 제상(諸相)은 각 천상(天上)생활의 축사(縮寫)이다. 이 천상(天上) 관계를 지상(地上)에 실현하는 것이 신자의 의무이다.
단(但) 믿음으로서 그리스도에게 이어진 천적(天的) 관계에 있어서는 남녀의 구별 없이 꼭 같이 직접으로 하나님께 연결되어 짐은 물론이다.
◎ 사해(辭解) 『머리』라는 문자(文字)는 삼자간(三者間)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동시에 상하(上下)의 불평등의 지위의 차별을 보이고 있다.
[본문]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를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고전 11:4절)
[주해] 집회에 있어서의 기도 또는 예언을 할 때에 만일 남자가 머리에 너울을 써 그 머리를 덮으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복종 또는 순종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써 자기의 머리 및 이로서 표현되어 참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일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곳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무엇을 쓰지 않는 것이 바른 태도이다. - 고린도의 남자 신자가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한 사실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음 절의 여자의 경우를 가르치기 위하여 먼저 남자의 례(例)를 가정하여 설명한 것이다.
◎ 사해(辭解) 『무엇을 쓰고』당시 헬라인은 남자는 쓰지 않고 여자는 쓰는 것이 통례(通例)였다.
유대인은 기도할 때에는 무엇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헬라인에게 있어서 바울은 그 습관을 존중하여 그 습관 중에서 천적(天的) 의미를 읽어낸 것이다.
[본문]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고전11:5절)
[주해] 남자와는 반대로 여자는 남자에 대한 복종을 나타내기 위하여 머리에 무엇을 쓰는 것이 정당하다. 만일 쓴 것을 벗는다면 복종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기독교도의 부인 중에는 바울의 소위 "자주자나 종이나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다 주 안에서 하나"(갈3:28절)되는 진리를 지상관계에도 적용하여 여자이면서도 남자와 동일한 태도를 가지고 혹은 기도하고 혹은 예언하는 자가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태도를 경계한 것이다.
◎ 주의<注意> 나중(고전14:34-35절)에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할 것을 명한 것과의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처럼 뵈지만 본 절의 경우는 기도 및 예언으로서 자기가 받은 바 감상(感狀)이고 (고전14:34-35절) 남자 위에서 이를 가르치는 태도를 취하는 경우일 것이다.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본문] 『만일 여자가 머리에 쓰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여자에게 부끄러움이 되거든 쓸지니라』(고전11:6절)
[주해] 여자가 머리 없는 것은 부끄러워할 일로 되어 있었다. 즉 당시 노예(奴隸)인 여자는 머리를 깎고 있었다. 또 유대에서는 간음죄를 범한 여자는 삭발(削髮)의 형을 받았다.(민5:18-22절) 여기서 삭발을 부끄러워할 것으로 말한 것은 그것이 자연히 여자의 미관(美觀)을 죽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수치스런 일이 연상(聯想)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바울은 이 부인의 자연스런 감정 또는 습관을 이유로 하여 이에 반(反)하는 행위(行爲)를 가지고 부끄러워 할 것으로 하고 머리에 무엇을 쓰지 않고 기도나 또는 예언하는 자는 마치 삭발(削髮)과 같이 수치스러운 행위(行爲)인 것을 나타내어 만일 이를 바라지 않거든 무엇을 써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본문]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고전11:7절)
[주해] 바울은 더 나아가서 남녀가 창조되어진 사실에 의하여 그 쓸것 문제를 결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즉 남자는 창1장 27절에 의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으므로 하나님을 대신하여 지상을 지배(支配)할 권(權)을 가졌으며 또 이런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영광인 것이다. 고(故)로 무엇을 씀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고 복종의 형태를 갖추어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권리를 가리워서는 안된다. 그러나 여자는 그 상(像)은 남자와 다르지만 그 아름다운 복종으로서 남자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그 까닭은
[본문]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고전11:8-9절)
[주해] 창2장 18-24절의 기사와 같이 여자는 남자의 도웁는 자가 되기 위하여 남자의 갈빗대 중에서 창조되어진 것으로서 종속적 지위(從屬的 地位)를 취하는 것이 그 본래(本來)의 신분(身分)이며 남녀동권(男女同權)인 것은 아니다. 고(故)로 여자는 복종에 의하여 남자의 영광이 될 것이다.
[본문] 『이러므로 여자는 천사들을 인하여 권세 아래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찌니라』(고전11장 10절)
[주해] 여자는 복종에 의하여 남자의 영광이 되는 것으로서 하늘의 천사들도 집회에 참가하여 그 형편 (形便)을 목격(目擊)하고 있는 까닭에(눅15:7절, 10절, 엡3:10절, 딤전5:21절)복종의 표, 즉 권세의 표를 받을 필요가 있다.
[본문]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 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니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고전11:11-12절)
[주해] 남녀의 관계는 이상과 같이 권력과 복종의 관계에 있으나 그리스도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이자동일(二者同一)인 것으로서 피차에 서로 도우면서 그리스도께 연결되어야 한다. 이 사이에 상하(上下)의 차별은 없다. 마치 인류의 창조에 있어서 아담에게서 하와가 취하여졌고 그 후의 생식은 여자에게서 남자가 취하여진 것 처럼 쌍방이 다 하나님에 의하여 창조되어진 것으로서 그 사이에는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 생리상(生理上)의 사실을 포족(捕足)하여 교묘하게 남녀의 영적 평등을 나타내고 있다.
[본문]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고전11:13절)
[주해] 바울은 이상의 논의외(論議外)에 『스스로 판단하라』고 인간의 직관(人間의 直觀)에 호소하여 이 문제를 생각하고 있다.
여기에 기도하는 경우를 들어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장 엄숙한 경우에 무엇을 쓰지 않는 불근신(不謹愼)한 태도를 하는 것이 상관 없는가 생각해 보라는 질문을 밝히고 있다.
[본문] 『만일 남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욕되는 것을 본성이 너희에게 가르치지 아니 하느냐 만일 여자가 긴 머리가 있으면 자기에게 영광이 되나니 긴 머리는 쓰는 것을 대신하여 주신 연고니라』(고전11:14-15절)
[주해] 우리의 자연스런 직감에 의해도 남자가 긴 머리를 가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반대로 여자에게는 긴 머리가 있는 것이 영광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남녀간의 자연스런 차별을 느끼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여자의 머리는 쓰는 것 즉 너울(원어, 原語)을 주신 것으로 보아도 쓰는 것이 필요한 것임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습관이 중국의 변발을 제외하고는 거의 어떤 인종(人種)에 있어서도 공통한 것은 바울의 말을 잘 뒷받침해 주는 것이다.
[본문]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찌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고전11:16절)
[주해] 바울은 여기까지 논해 놓고 마치 의문을 즐기는 헬라인의 반대론을 얘기한 것 처럼 아무튼지 그 논의의 번거로움에 견딜 수 없는 것처럼 이 말을 하고 있다.
가령 논의가 어떻든지 여자가 쓴 것 없이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은 우리(바울 및 그 동지 同志) 사이에서나 일반 여러 교회에서나 존재(存在) 할 수 없다고 잘라서 말하였다.
저자 안 상홍
1983년 10월20일 초판발행
2005년 04월08일 재판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