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 증 문
- 서문
- 이 책을 반대한「굳센터」의 해명
- 제1장 예언의 말씀을 주의하라
- 제2장 광야의 외치는 소리
- 제3장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印)
- 제4장 여인의 남은 자손
- 제5장 십계명과 의문
- 제6장 새 언약의 제도
- 제7장 날짜 규정
- 제8장 성경의 예언은 때를 기다림
- 제9장 「라오디게아」교회의 기별
- 제10장 지나간 역사는 장래일의 그림자
- 제11장 삼차의 칠개 절기
- 제12장 절기와 십자가
- 제13장 생명과(生命果)와 십계명
- 제14장 모세와 예수님
- 제15장 지상 성전 건축한 번수
- 제16장 성력과 율법
- 제17장 일곱 우뢰의 개봉(開封)
- 제18장 유월절 성만찬
- 제19장 무교절 금식기도
- 제20장 초실절과 부활절
- 제21장 오순절 기도와 부흥회
- 제22장 취각절 기도
- 제23장 대속죄일 기도
- 제24장 장막절 전도대회
- 제25장 늦은 비 성령
- 제26장 용서함을 받을 수 없는 죄
저자는 본시부터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인으로써, 교회의 가르치는 모든 교훈을 엄하게 받아 왔으며, 예수 재림이 신속히 되리라는 기별을 진심으로 믿어왔습니다. 참으로 나에게는 예수 재림하실 날을 기다리는 것이 큰 소망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 재림하실 날이 임박하다고 크게 부르짖던 시절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목사는 강단에서 맹세까지 해가며 말하기를「이 앞으로 주님의 재림이 10년이 넘어가면 차라리 돌매를 목에다 매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나을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서기 1956년 2월 3일 낮 사경회 부산시 동래구 재송동 교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예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진리로 보여 주시고, 새로운 진리는 서기 1964년부터 시작될 것을 그 날이 당하기 전에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이 진리를 깨달은지는 서기 1953년부터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진리가 전개될 시기는 서기 1964년으로 부터 시작될 것을 예언으로 발하게 되었으므로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기 1964년 안으로 예수 재림하시겠다는 성경 해석과 서기 1964년부터 새로운 진리가 전파되리라고 한 성경 해석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옛날 윌리엄 밀러 예수재림운동 당시에도 다니엘 8장 14절에 2300주야 해석을 서기 1844년으로 해석하고 그때에 예수 재림하시리라고 믿고 전도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날이 되기전에 하젠포스나 윌리엄포이 같은 사람들에게 묵시로 보이시기를 이 앞으로 새로운 진리가 두 계단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신속히 재림하시리라는 사상이 골수에 깊이 박혀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친히 보여주신 묵시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전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다시 약하고 보잘것 없었던 화잇부인을 택하여 당신의 사업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지금 전하는 이 진리도 처음 보내시고자 하실 때의 광경을 제가 보았습니다. 세상은 캄캄한 흑암 중이었습니다. 그때 하늘로부터 한 줄기의 빛이 세상을 내려다 비치는데 그 빛을 땅 사방으로 비추어도 그 빛을 받을 사람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보잘 것 없는 제게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후 나는 성령에 감동되어 사도들이 행하던 초대 교회에서 행하던 진리가 회복되어야 된다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나의 생각은 의심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은 다 되어가고 있는데 어떻게 이 진리가 온 세상에 전파되어 모든 민족에게 전하여질 수 있을까 하고 의심이 날때「만군의 여호와 능치 못하실 일이 있겠느냐」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시며 성령은 나를 성경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었습니다. 그때부터 성경은 나에게 광명한 빛과 같이 사도들이 행한 모든 진리를 그대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진리를 누가 감히 거절하며 누가 감히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 여호와 말씀하시매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리요.(암3:7~8) 독자 여러분께 간절히 부탁드리는 바는 이 책을 심각히 연구하시게 되면 제가 깨달은 것을 여러분이 알게 되실 것입니다.
주소:부산시 동래구 우일동 808번지
간증자 : 안 상 홍
이 책은 모세 율법에 기록된 삼차의 칠개 절기를 깊이 연구함으로 모든 절기의 본제물 되신 그리스도를 확실히 알게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직무가 무엇임을 확실하게 알게되며 또는 창세기로부터 내려오므로 기록한 모든 선지자의 글속에서 신약의 복음시대에 나타날 사건들을 누구든지 다 알게하는 예언 해석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나간 역사가 신약시대에 나타날 예언임을 밝히 보여 주고 있는 책입니다. 혹 여러분께서 구약성경 가운데 장래 있을 예언에 대하여 안다 할지라도 부분적으로만 발견하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 전체가 다 장래일의 그림자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구약성경 속에서 장차 될 사건을 미리 알아보는 것이 곧 진리인 것입니다. 이 진리를 찾는 것은 마치 광산속에 묻혀있는 금줄과 같습니다. 광부가 금줄을 바로 찾지 못하면 광산 전체를 다 뒤집어 놓는다 할찌라도 오히려 금은 하나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성경을 수만번 통독하였을찌라도 진리를 발견치 못하였으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 책은 광산속에 묻혀있는 금줄을 찾아주는 복된 기별입니다.
그리고 모세 율법에 기록된 삼차의 칠개 절기의 제도가 우리들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 지성소에서 행하시는 것과 그의 직무를 마치시고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루어질 오묘한 진리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책을 연구하시게 되면 구약성경 전체가 다 장래일의 거울이 된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 거울을 들여다 보게 됨으로 장차 나타날 사건들을 눈으로 보는 것같이 믿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자기 아는 것만으로 만족한 생각을 가지지 마시고 이 책을자세히 살펴보시기 원합니다.
교만과 고집은 죄가 되나니 자기 아는 지식이 자기의 눈을 멀게하여 사망의 웅덩이에 빠져 들어가기 쉽습니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새로 배우고자 하시는 심정으로 마음의 문을 여시고 간절한 마음으로 깊이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은 성경 구절마다 많이 증거하였으므로 독자 여러분은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성경 구절들을 한 절도 남김없이 일일이 다 짝을 찾아 자세히 살펴 연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책에 기록한 말씀 중에「예언의 신」을 참고로 몇 말씀 넣어 기록하였사오니「예언의 신」을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참고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 보시게 되면 의심할 만한 문제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각히 연구하시고 끝까지 살펴보시면 먼저 의심나는 문제가 한 가지씩 한 가지씩 깨달아질 것이며 여러번 읽을수록 진리는 명확해질 것입니다.
주소:부산시 동래구 우일동 808번지
저자 : 안 상 홍
먼저 이 책을 반대해 놓은「굳센터」란 책에 거짓말 해놓은 몇 가지를 간단히 해명해 보겠습니다. 이 진리를 반대하는 안식일교회 신학대학에서 발행한「굳센터」책 1~3페에지에 말라기 3장과 4장에 대한 해석을 비난하였는데 침례 요한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말라기 3장 1절의 말씀을 증거하시었다.(눅7:27) 그러나 말라기 4장의 말씀을 들어 내어서 증거하신 기록은 없다. 혹시 말라기 4장의 예언이 일부 침례 요한에게 성취되었다 하더라도 말라기 4장은 예수재림 때를 가리킨 것이 분명하다.
기록한 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니」또는「교만한 자와 행악하는 자는 다 초개같을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저희를 살라 그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되」(말4:1~5)하시었다.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실 때는 예수 재림하실 때이다. 그리고「굳센터」책 3페이지에는 엘리야의 사명은 한 사람이 아니고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 엘리야의 사명을 성취시킬 것이라고 하는데, 성경은 한 사람을 가리켜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라 하시었지 여럿을 가리켜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사도 바울은 해석하기를 복수로 된 것은 여럿을 가리킨 것이요, 단수는 하나를 가리킨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기록한 바 「여러사람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갈3:16) 바울은 구약 예언서 해석법을 바로 알려주고 있다. 가짜 엘리야는 여럿이 나올런지 모르나 여호와께서 명백히 예언하신바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라고 하신 것은 복수가 아니요 단수로 되어 있으며 이사야 41장 2절에도「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의로 불러 그 발 앞에 이르게하신 자가 누구냐」하신 말씀도 한 사람이라고 명백히 말씀하시었다. 가령 산 성도 14만 4천 성도들이 다 엘리야의 사명이라 할찌라도 그 사명에 들어가게 할 진리를 받아 전하는 사람은 한 사람을 통해 되는 것이다.
각 시대를 통해 그 시대에 나타낼 진리는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나타낸 것이 또한 증명이 된다. 그리고「굳센터」책 6페이지에 말하기를 인치는 사업이 해 돋는 데서 올라 온다는 말과 이사야 41장「동방의 한 사람을 일으켜」라는 말을 해명하기를「하나님의 보좌가 나타난 동편쪽 하나님에게서 부터 나온다는 의미인 것이다」하였다. 하나님의 보좌가 어느 쪽인지도 모르고 바로 가르치는 사람의 말을 반대공작에 자기 자신도 모르는 말로 억측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은 동편이 아니고 서편이다. 지상 성소에도 하나님이 계시는 지성소는 성막 서쪽에다 지성소를 세웠던 것이다.(출26:1~33)
에스겔 선지자는 안식일 교인들과 같이 하나님의 보좌가 동편에 있는줄 알고 태양 신에게 경배하는 자들의 광경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여호와의 전 문앞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25인이 여호와의 전을 등지고 낯을 동으로 향하여 동방 태양에게 절을 하더라」(겔8:16) 하였다. 그리고「굳센터」15페이지에 날짜 규정을 반대하였는데 나는 그들이 성력의 날짜 규정의 원칙인 첫날의 기준이 어디서부터 시작인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다. 출애굽기 12장 2절에 성력을 주셨는데 그 성력은 지구를 에워돌고 있는 달의 운행법에 맞추어 매달 합삭(合朔)드는 날로 초 1일을 정한 것이다. 그 날을 유태인은 월삭(月朔)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합삭이 가령 밤중에 들 때는 어느 날이 초하루가 되느냐가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 역세를 연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서기 1966년 양력 1월 22일 영시(零時) 46분에 합삭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밤을 밝아오는 새 날로 초하루를 정했고 유대력 즉, 성력에는 그 전날인 양력 1월 21일로 초하루가 된 것이 모세때 부터 정해져 내려온 그 역세에 판 박아 놓았다. 여기에서 밤이 어느 쪽에 속했다는 것은 역사로도 확인할 수 있다. 영적 이스라엘 지도자라고 하면서 이스라엘 역세조차도 제대로 모르는 그들이 자기 자신도 모르는 말을 억측으로 사람들을 속이고 있으니 그 죄를 다 어찌 할 것인가?
그리고「굳센터」22~24페이지에 3차의 7개 절기 해명에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날이 3월 3일이고 40일 후인 4월 12일에 첫 돌비를 가지고 내려 왔다고 하였다. 그러면 자기들의 말과같이 3월 3일에 올라 갔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올라 가는 날 행적을 보면 3월 3일 아침부터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가 크게 들리며 십계명과 절기지키는 법과 민법까지 (출19:1, 16~부터 20장, 21장, 22장, 23장 1~4까지) 발표한 것을 기록하였다. 이 역사는 3월3일날의 역사이다. 그 한날 동안에 모세는 하나님 앞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일도 있다.(출19:16~25)
그 다음날 아침에 할일이 있었으니, 그 날은 제단을 쌓고 소를 잡고 번제와 평안제를 드리고 그리고 모세가 피를 취하여 제단과 백성들에게 뿌리고 여호와께서 3일에 우뢰소리로 발표하신 그 말씀을 기록한 언약서를 백성 앞에 낭독하고 백성과 언약한 후 이스라엘 장노 중 70인과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고 한 후에 다 보낸 후 모세와 여호수아가 시내산에 올라가게 될 때 구름이 산을 가리우고 6일이 지나고 7일 만에 여호와께서 구름가운데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구름속으로 들어가 40일 40야를 지냈다고 하였다.(출24:4~18)
3월 3일부터 계산된다면 성경에 나타난 숫자만 해도 47일만에 내려온 것이 분명하고 또 두번째 십계명 받으러 올라간 날에 대해서 그들의 말이 첫번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온 4월 12일 다음날 4월 13일에 올라가 40일이 지난 5월 22일에 두번째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왔다고 한다.「굳센터」23페이지 중간, 여기에 대해서 성경을 살펴 보기로 하자.
모세가 산에서 지체함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긴 일이 있었고(출32:1~6) 그로 인하여 모세는 들고 내려오던 십계명 돌판을 깨뜨리고(출32:15~19) 저희들이 만든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족속으로 마시게 하고(출32:20) 모세가 영중에 공포하기를 누구든지 여호와께 속한자는 내게로 나오라 하니 레위 자손이 다 나오니 각각 칼을 차게 하고 그 칼로 영 이문에서 저문까지 왕래하며 그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도륙하니 그 날에 3천명 가량 죽었다고 하였다.(출32:25~28)
모세는 그 이튿날에 백성들이 우상 숭배한 죄로 하나님 앞에 올라가 백성의 죄를 자백한 일도 있었다.(출32:30~32)
그후 통회하는 마음으로 단장품을 다 버리고 장막을 영 바깥 먼곳에 옮겨치고 회막이라고 하면서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영 바깥 회막으로 나가 간절한 기도들을 하였던 것이다. 그 기도한 기간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그 날짜수가 하루나 이틀간의 일은 아니다.(출33:1~23) 그후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너는 전에 깨뜨린 것과 같은 석판 둘을 만들어 예비하였다가 아침에 시내산 꼭대기에 올라와」(출34:1~2) 하였다. 위의 성경절들을 자세히 살펴 연구해 보면 첫 번째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온 날과 두 번째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날 중간 사이는 일개월 이상 경과한 때이다.
첫 번째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와 우상을 불에 태운 일과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리고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백만이나 넘는 백성들에게 그 물을 마시게 하고 새로 레위인을 소집하고 무장시키고 내란을 일으키어 3천명의 사람들이 죽어 장례하였으며 모세는 그 이튿날 하나님 앞에 용서를 빌었으며, 내려와 하나님의 지시대로 장막을 영 바깥에 내다치고 통회 기도들을 하였으며 석판을 다듬어 준비했다가 그 이튿날 아침에 시내산에 올라간 그 모든 행적을 성경에 명백히 나타난 날짜 수만 하여도 수십여일이 된다.(출32:19,30, 34:1~2) 이렇게 명백히 나타내 보이시는 성경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첫 번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온 다음 날이라고 하는 4월 13일에 두 번째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 갔다고 엉터리 없는 거짓말을 하니 그들의 말을 옳다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 어찌 될 것인가? (사9:16 참고)
그리고 안식일 교회 신학 교사들이나 신학 박사들은 그릇된 사상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바리새인들 모양으로 비난하기를 좋아하고 남의 조그만 결점이라도 찾아 비난하려고 갖은 수단과 언변을 다 써가며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남을 비난한다는 것이 자기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자기가 자기 스스로 비난하고 또 자기들이 믿고 있는 화잇부인의 예언서까지 부인하고 있다. 「굳센터」책 39페이지에 취각절과 대속죄일간에 10일전인 예언의 기간 서기 1833년부터 윌리엄 밀러 예수재림운동이 취각절의 예언 성취라는 말은 내 말이 아니고 화잇부인의 말이다.(본교회약사 1페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책을 비난하기 좋다고 예언의 신에 있는 말까지 비난하고 있으니 그 비난은 도대체 누구에게 하는 비난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옛적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던 바리새교인들의 자손됨을 증명하는 것이다. 「굳센터」책의 억측으로 반대한 말을 다 해명하자면 귀중한 시간만 허비할 따름이요, 어린아이 같은 말을 다 나타내서 말하기도 곤란하다. 나는 지금까지 삼육 신학대학의 교사들이 그렇게 성경 지식이 없는 줄은 참으로 몰랐다. 「굳센터」책을 발행한 박종기씨는 배우는 학생이라고 하니 잘 알지 못하고 한 말이라고 이해가 되지만 그 배후에 그 책을 감수했다는 소위 신학대학 교사들의 성경지식 상태를 볼 때 한심하기 짝이 없다.
「굳센터」책을 감수해 주셨다는 송권, 이영린, 조병서, 구인서 박사등 4인의 성경지식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눈먼 지도자들의 말을 옳다고 따라가는 순진한 양들의 영혼이 결국 어찌 될 것인가?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릇되게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리라」(사9:16)하였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들의 받을 분깃을 다 받고 있으므로 하늘나라의 분깃을 받지 못할찌라도 누구에게 원망할 여지가 없지만 이 세상에서 영생을 바라고 그 거짓 교사들을 따라가며 굶주리고 헐벗고 절약해가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며 따라간 순진한 양들이 구원받지 못하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 되겠는가?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세워진 참 진리를 반대하는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천국 문을 막고 자기들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막는 사람같이 이 진리를 반대하려고 눈이 뒤집힌 신학대학 교사들이 이 진리에서 조그마한 점이라도 찾아 보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억측으로 하지 않으면 이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는 기별」책 속에서 조그마한 흠이라도 찾을 길이 없다. 그들의 억측으로 하는 말을 다 해명하려면 지면과 귀중한 시간만 허비하게 되기 때문에 위에 간단히 몇 가지를 해명한 것만으로도 신학대학 교사들의 성경 지식에는 거의 눈먼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고도 남음이 있겠으므로 그만 두기로 하겠다.
「굳센터」책에 반대한 모든 문제의 해명은「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책 속에 거의 다 되어 있으니 자세히 살펴 연구해 보시기 바란다.
해명자 : 안 상 홍
기록한 말씀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계22:18~19)하시었다.
이 말씀 가운데 특별히 주의해야 할것은 구약 모든 절기는 십자가로 다 폐했다 하더라도 신약에 와서 행하여야 할 주님의 실지 교훈으로 세워주신 새 언약에서 행할 믿음의 법, 곧 새 언약의 절기가 있는 것이다.
사도 요한을 통해서 하신 말씀에「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하신 그 예언의 말씀은 사복음 가운데 주님께서 실지 교훈으로 친히 행하시고(눅22:7~20) 말씀하시기를「내가 본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도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행하게 함이라」(요13:15) 하신 그 말씀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 모든 말씀에서 더하든지 덜하는 것은 믿지 않는 것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사도들이 닦아둔 터 위에 세움을 받았으니 사도들이 어떻게 행한 것을 살펴보고 그대로 행하여야 할 것이다.
기록한바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고전3:10, 11:1~2, 엡2:20~22 비교) 하였다. 그러나 혹은 생각하기를 우리는 사도들의 행한 본을 받아 다 행하고 지키며 성경대로 산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성경해석은 각자 마음에 생각나는대로 해석함으로, 혹은 세상의 권리나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도 자기들은 성경대로 산다고 할 것이며 혹은 진리를 훼방하며 진리를 멸시하며 조롱하는 사람도 자기들은 성경대로 산다고 주장할 것이며 혹은 악을 행하며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자기들의 생각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법이라고 주장할 것이다.(요16:2)
그런고로 성경은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은 교훈으로서는 하나님의 참 진리를 깨닫기 어려운 것이다. 성경은 성신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말씀인고로 그 해석자가 역시 같은 성신의 감동하심을 받아야 그 말씀을 분별하는 것이다.(벧후1:20~21, 고전2:11,16)
■ 사람에게서 배운 교훈
사람에게서 받은 교훈은 다만 기초 지식 뿐이다. 옛날 바리새 교인들이 선생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교훈으로 만족한 생각을 가지고 교만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침례 요한이나 예수님까지라도 배척하였던 것이다. 그와 같이 마지막 주의 재림의 길을 준비하는 때에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질 것이다.(대쟁투 상권 508~510페이지) 그러나 옛날 바리새인들은 오늘날 안식일 교인들보다 성경의 예언을 더 잘 알았던 것이다.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올 것을 알았으며(마17:10, 막9:11~13, 말4:4~6) 또는 그리스도가 다윗성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까지 잘 알았다.(요7:40~52, 미5:2)
그러나 그들이 알기는 잘 알았으나 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를 배척하였으며 자기들이 고대하고 기다리던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이는 선생들에게 가르침을 받은 교훈이 교만을 이루어 저희들의 눈을 멀게 하였던 것이다. 만일에 그들이 선생들에게 배운 바 지식이 없었더라면 교만심이 없는고로 침례 요한을 엘리야로 알았을 것이며 따라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아 보았을 것이다.(마17:11~13, 요1:35~37)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는 날까지 성경의 예언이 계단적으로 맞지 않으면 참 그리스도가 아니요 거짓 그리스도라고 생각하였으며 예수께서 행하신 이적까지도 바알신의 능력이라는 것을성경에서 잘못 배웠기 때문에(신13:1~5, 마12:24, 막3:22) 오히려 예수님을 따라 다니는 무리를 가련한 처지로 여겼으니 저희들의 생각에는 성경의 예언을 깨닫지 못하고 잘못 따라 다니는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요7:48~52)
그러나 오늘날 안식일 교인들은 엘리야가 와야 되는 것도 모를 뿐 아니라 엘리야가 어느 방향에서 나타나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런고로 사도 요한을 통하여 하신 말씀에「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하신 말씀이 안식일 교회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옛날이나 오늘날이나「랍비」들 학교에서 배운 교훈은 다 그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랍비」들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학자들은 다만 삯꾼으로 이용하여 당신의 사업을 맡기사 당신의 자녀들을 길러 내게 하시고 완전한 진리가 나타나는 때까지 그들에게 당신의 사업을 의탁하신 것뿐이다.
저희들에게는 풍부한 물질과 풍부한 생활비를 공급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축복을 받기는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 같은 사람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를 살피게 되면 혹 구원의 자리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 옛날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법을 받아 가지고 내려왔으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심으로 그들의 직분을 빼앗아 사도들에게 넘겨주신 것 같이 완전한 진리는 세상에서 가장 낮고 천한 계급의 사람들을 부르사 진리의 증거자로 세우신다. 그들은 세상 소망은 일푼어치도 없고 오직 하늘 나라의 소망뿐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자기 생명과 같이 귀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이다.
만일에 교회가 세상 권세자나 학자들이 주장하게 되는 때가 오면 그때는 바로 부패한 상태인줄 알아야 될 것이며 새로운 진리로 개혁할 때가 온 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고로 교만은 죄가 되나니 누구든지 교만으로 이 기별을 배척하면 그 죄를 핑계할 수 없을 것이다.(요15:22) 누구든지 시대를 따라 나타나는 새로운 진리의 빛을 받고 받지 않는 책임은 각자에게 있는 것이다. 누구든지 지금 전하는 이 기별을 연구하여 이 특별한 기회를 잃지 않도록 신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행하여야 할 것이다.
옛날 구약시대의 이사야 선지자는 그의 계시 가운데 장차 있을 메시야의 임하심과 그 길을 예비할 선지자에 관한 문제를 보았던 것이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40:3~11) 하였으며
말라기 선지자는「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말3:1) 하였다. 이 예언은 예수 초림시대에 침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그 일부가 성취되었다.
그 당시 하나님의 성전을 맡아 가지고 있던 바리새교인들이나 서기관들은 형식과 외식 가운데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며 사람에게 칭찬 받는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노라고 하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사람의 유전과 사람의 가르친 계명으로 도를 삼아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던 것이다.(마15:7~9)
■ 자비로써 기별을 보내심
패역한 백성들이지만은 그래도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구원의 길을 보이시기 위하여 기쁜 소식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셨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 영광에 눈이 어두워진 그들은 무관심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비로 보내주신 선지자를 멸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수고하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앉아서 소문을 들으니「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마3:1~3) 하는 소리에 양심의 찔림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친히 가보지 않고 앉아서 사람을 보내어 형편을 알아보려고 하였다.
「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나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1:19~23) 하였다.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한「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라」하면 침례 요한이 자칭 엘리야라 하지 않아도 성경을 상고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엘리야의 사명으로 온 줄을 알게 될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하는 말을 들은 바리새교인들 중에 요단강으로 침례를 받으러 나갔던 것이다.
회개하지 못한 그들의 몸차림과 화려한 옷차림은 침례 요한의 눈에는 독사와 같이 보였다.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한벌은 없는 자에게 주라고 하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마3:7) 하였다.
세상 영광으로 눈을 가리운 바리새교인들은 배로 그 하나님을 삼고 의복으로 영광을 삼고 세상 일만 생각하는 그들이 자기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 책망을 듣고 감당치 못해서 다 물러갔던 것이다.(눅7:29~30) 이와 같은 모든 역사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는가? 이와 같은 역사는 다 지나간 것이 아니다.
그 모든 역사의 예언 성취는 지금 우리들 앞에 있다. 현재 하나님의 법을 맡아 가지고 있는 안식일 교회의 지도자 측은 옛날 침례 요한 당시의 바리새교인들과 꼭 같은 상태를 보여 주고 있다. 화잇부인은 예수 초림과 재림의 때의 형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소식과 같이 그의 재림에 대한 기별도 일반 백성들의 종교적 지도자들에게는 부탁되지 않았다.」(쟁상 510) 또는「재림의 진리를 이해하고 그 선전에 당한 자는 소위 학자라든가 신학자라는 사람들이 아니었다.」(쟁상 506) 하였다.
■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
혹은 생각하기를 침례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기록한 말씀에「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눅16:16, 17) 하신 이 말씀을 따라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단편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옛적 모세 때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선지자와 침례 요한까지는 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기 때문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하게 되면 당신이 그리스도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하면 요한 이후에 나오는 선지자가 엘리야의 사명이 되는 것이며 그 다음에 가서 그리스도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당신의 초림에만 관계되는 말씀이다. 침례 요한 이후로는 예수 재림을 증거하는 복음 선지자가 있는 것이다. 12사도로 부터 시작하여 편지서나 복음서나 장래일이나 현재일을 예언하는 사람은 다 복음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침례 요한이 죽은 후 20년이나 30년이 지난 후에도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러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행21:10)
또는「그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행11:27)
또는「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행13:1)
또는「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하고」(행15:32) 하였다.
이와 같은 선지자들이 복음시대에 와서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사도 당시에만 선지자가 있고 오늘날에는 선지자가 없어야 하는가? 아니다. 사도 당시에 선지자가 있었으면 오늘날에도 반드시 선지자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 당시나 오늘날이나 다 같은 복음시대이기 때문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오히려 예수 재림시기에 큰 선지자를 보내신다고 예언하였다. 기록한 바「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5) 하시었다. 어느 때든지 선지자가 없을 때에는 참 진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 엘리야는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할 마지막 진리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옛 세상은 다시 되풀이하고 있다.
침례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로써 구원의 기별을 예루살렘에 보낸 것 같이 재림의 기별도 당신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인 즉 안식일 교회에 보내시는 것이다.
이 기별의 내용은 사도시대에 있었던 초기의 신앙심을 재부흥 시킴으로 무너진 성전을 완전 복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막9:12) 하셨다.
이 말씀은 예수 초림때만 가리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 재림때에도 먼저 엘리야를 보내사 파괴된 부분을 회복해야 된다는 말씀이다.
■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
말라기 선지자는 장차 이즈러지고 파손된 율례와 법도를 복구함으로 구원의 주를 맞게 될 것을 보았다.「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4~5) 하시었다.
혹은 이 예언이 예수 초림 당시에 있었던 침례 요한을 가리킨 예언이라고 하여 엘리야의 사명이 끝을 맺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크게 강조한 적이 없고 다만 침례로써 예수님을 맞기 위한 성결과 회개의 침례를 베풀어 예수 초림의 길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은 마지막 예수 재림을 영접할 준비로서 모세에게 명한 율례와 법도로써 정결함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한 진리를 선포할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나타나야 한다. 이 기별은 예수 초림때가 아니고 성경의 말씀과 같이「극렬한 풀무불 같은」날이며「교만한 자와 행악한 자는 다 초개와 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남기지 아니하실 때이다.(말4:1) 그러므로 에수님께서도 침례 요한에 대해서 엘리야라고는 말씀하셨지만(마11:9~14, 17:10~13) 말라기 4장 5절을 가지고 증거하신 적은 한군데도 없고 다만 말라기 3장 1절만 가지고 증거하신 곳은 몇 군데 있다. (마11:10,막1:2, 눅7:27)
과연 말라기 3장 1~5절까지 자세히 보면 침례 요한과 예수 초림에 대한 예언이 더욱 분명한 것이다. 기록한 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재물을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3:1~3) 하시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침례 요한이 와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였고 예수님은 제사장들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저희들이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고 날마다 그들을 가르치시기도 하였다.(요7:14~29)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이 다 같은 엘리야의 사명에 대한 예언이나 그 예언서에 나타낸 시대에 관한 문제는 엉뚱하게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라기 3장 1절이나 말라기 4장 5절이나 다 엘리야 사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침례 요한에게 일부 그림자로 약간 비추었을 뿐이요 그 예언의 완전 성취는 예수 재림하시기 직전에 있을 예언이다.
혹은 말하기를 안식일 교회가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라고 한다. 만일 이 교회가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될것 같으면 이교회를 지도하던 선지자가 죽지 않고 살아서 예수 재림을 맞아야 한다. 옛적 실지 엘리야가 살아서 승천하였기 때문에(왕하2:11) 살아서 주님을 맞이할 남은 백성들을 가리켜 엘리야의 사명이라고 한다.(예언의 신 P.K 227 페이지)
침례 요한도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살아서 예수 초림의 구주를 영접하였던 것이다. 그와 같이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도 살아있는 산 성도 14만 4천이 완전히 변형을 입고 승천하게 되어야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다.(참고서 예언의 신 P.K 227) 침례요한도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살아서 예수 초림의 구주를 영접하였던 것이다
그와같이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도 살아있는 산성도 14만4천명이 완전히 변형을 입고 승천하게 되어야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다. (참고서 예언의신pk.227) 그런고로 주의 재림이 가까운 시일이 되면 먼저 선지 엘리야를 보내어 주의 재림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이 완전한 증거로 증거하신 후에 예수 재림하실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록한 바「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5:4) 하였으며 아모스 선지자는「주 여호와께서는 그 은밀한 뜻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지 아니하시리라」(암3:7) 하셨다. 주 재림의 큰 날을 위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새로운 진리로 거룩하게 하신 후 기일 선포하시고 재림 하실 것이다. 이에 대하여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또 미구에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마치 많은 물소리 같아서 우리에게 예수의 재림하실 일자와 시간을 알리시는데 살아있는 14만 4천 성도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되 악인들은 이를 우뢰와 지진으로 알더라.
하나님께서 예수 재림의 시간을 말씀하실 때에 또한 우리에게 성신을 부어주시니 우리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발하여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던 때에 그 얼굴에서 발한 빛과 같더라.
14만 4천 성도는 다 인치심을 받아 완전히 단합되었으며 이마에는 새 예루살렘과 및 예수의 새 이름을 포함한 광명한 별이 있더라.」(본교회약사 40~41 페이지) 하였다.
화잇부인 묵시 중에는 예수 재림시 살아있는 14만 4천 성도들이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였으며 예수 재림하실 일자와 시간까지 알려주신다고 하였다.
혹은 말하기를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하나 신·구약 성경을 다 찾아 보아도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기록한 곳은 없다. 다만 안식일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증거가 된다고 한 것뿐이다.(출31:13~17, 겔20:12) 안식일이 증거 또는 표징이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증거 또는 표징이라는 것이다. 안식일이 증거라고 한 것과 안식일이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증거라 한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만일 표징이라 증거라 한 말이 하나님의 인이 된다면 할례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인 받았다고 해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옛날 아브라함에게도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세워 지키게 할 언약은 이것이니 너희 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너희는 양피에 할례를 받을지니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언약의 표니라」하시었다.
그런고로「증거라」「표라」해서 하나님의 인(印)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고로 요한계시록 7장의 인치는 문제에 대하여 다른 성경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고후1:22〕「거기 또한 우리들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엡4: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롬4:11〕「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고전9:2〕「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위에서 기록한 모든 말씀을 연구해 보면 사도 직분의 인치심도 있고 믿음의 의를 인친 것도 있고 성령을 받은 것도 인치신 보증이라고 하였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될 시에는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7장의 14만 4천 성도에게 인치는 문제는 마지막 살아서 승천함을 받을 엘리야의 사명을 가리킨 것이다. 요한계시록 7장의 인치는 문제는 자기가 기록한 요한복음에 밝혀 놓았다.「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요3:32~33) 하시었다.
요한계시록이나 요한복음은 한 성령을 통하여 한 솜씨로 기록한 것이다. 예수님의 증거하신 진리를 받는 자에게 인을 치셨다고 하였다. 사도 바울도 진리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는 자에게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 것이라고 하였다.「너희도 진리의 말씀을 들었나니 이는 너희를 구원한 복음이라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그 허락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침을 받았으니」(엡1:13) 하였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7장2~4절과 에스겔 9장 4절에 대한 예언서를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특히 교회를 위한 사업을 마치는 때 즉,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흠이 없이 능히 설 수 있는 14만 4천명에게 인치는 사업을 하는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의 잘못을 깊이 느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사업에 관한 선지자의 예언 가운데서 손에 각각 살육하는 기계를 잡은 사람들로 표상되었다.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가라사대 너는 예루살렘 성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의 이마에 한 표를 두라」(겔9:4) 이때에 어떠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이 말씀 중에서 특별히 주의 할 것은 성신의 능력이 그들의 마음속에 성취하신 사업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순결한 표를 받는 사람들은「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으로 표시된 사람 즉, 교회안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들이다.」(증언보감 1권 415) 하였다.
또 기록하기를「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찍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나 천사는 읽을 수 있는 표이다. 왜냐하면 멸하는 천사가 이 구속의 표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엘렌지 화잇주석 SDABC 7권 968) 하였으니 이 말씀은 에스겔 9장 4~6절의 예언이 포함되어 있다.
또는 기록하기를「얼마 후에 하나님의 자녀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오 그것이 우리의 이마에 찍혀졌으면!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러 갈 때에 지나쳐 버림을 당한다는 생각을 누가 견딜 수 있을까?」(엘렌지 화잇주석 SDABC 7권 969)
하였으니 만일에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 될 것 같으면 벌써 하나님의 인들을 맞고 있는 도중이 되어야 할터인데 화잇부인 자신도 아직인을 받지 못하고 말하기를「얼마 후에 하나님의 자녀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오- 그것이 우리의 이마에 찍혀졌으면」하는 말의 뜻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화잇부인은 하나님의 인을 구속의 표라고 하였다. 구속의 표는 거룩한 도성에 들어갈 특권인 것이다. 이 특권은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그 옷을 빠는 자라야 구속의 표를 받게 되는 것이다.(계7:14, 22:14 비교)
멸하는 천사가 이 구속의 표를 보고 넘어가 표 없는 자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으로 표시한 것은 옛날 출애굽 당시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구속의 표가 된것 같이(출12:13) 남은 백성들에게도 십자가를 기념하는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구속의 표, 곧 하나님의 인이 되어 마지막 재앙에 멸하는 천사로 하여금 볼 수 있는 구속의 표가 되는 것이다.(겔9:4~6)
■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오는 천사
그러면 인치는 사업은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인가? 기록한 바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7:2~3) 하였다.
성경에 기록한 말씀대로 본다면 인치는 사업이 반드시 동방에서 나타나야 하겠다. 혹은 생각하기를 성경 번역이 잘못된줄 생각하겠으나 헬라 원어에도「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대한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알아 보려면 구약 성경에서 연결되어 있는 짝을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기록한 바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읽어보라 이것들 중에 하나도 빠짐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나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명하시고 그 신이 모으심이라」(사34:16) 하시었다. 그런고로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서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기록한 바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신자가 누구뇨」
또는「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 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사41:2,25~27) 하였으며 또는「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사46:11) 하였으니
동방에서 택한 사람은 기쁜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사명이니(사40:3~9, 41:25~27 비교) 일차에는 침례 요한으로 일부가 예언 성취되었으나 실상은 복음시대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다. 옛날 아합왕 당시에 실지 엘리야도 요단 동편 길르앗에 거한 사람으로써(왕상17:1~4) 오류에 빠져 있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동방의 독수리」「동방에서 사람을 일으켜」한 그 말씀이 이 진리에다 부합 시킬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오늘날 한국에서 여러 사람이 나타나 저마다 내가 동방의 택한 사람이라 하니 무엇으로 구별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정확한 답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신을 보내실 때 성경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정표를 주신 것이다. 첫째는 보내시는 시기와 그 목적에 관한 진리인 것이다. 그 정표는 다음과 같다. 이사야 41장 2절에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키게 될 때에는 5절에 보면 섬들이 두려워하며, 땅 끝까지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와서 우상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연합운동들을 하고 있다.
그러면 그 섬들이란 무엇인가? 예언상 섬들로 표상된 것은 우상숭배에 가까운 적 그리스도의 단체들이다. 이 단체들이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키게 될 때 마귀는 최후 발악으로 종교 연합운동을 일으켜 하나님의 백성을 없이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은 큰 시련기에 놓여 있으나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하니 두려워 말며 내가 네 하나님이니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너를 도와주며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하시었다. 과연 이 예언의 떄는 벌써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 진리가 시작됨으로「바티칸」공회에서 종교 연합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선지자의 예언은 피할 수 없다. 서기 1962년 3월 17일에 저자는 안식일 교회에서 이 진리로 인하여 출회를 당하였다. 그로 인하여 이 진리를 사랑하던 23명의 신도들은 동년 3월 24일 안식일에 탈회 성명서를 내고 나와서 진리 교회를 세우고 그해 4월 18일에 유월절을지켰다.
이것을 알고 있는 사단은 두려워하여 로마 교황의 마음을 충동하여 그해 종교 연합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다.
「바티칸」공회에서 종교 연합운동이 시작한 때는
제 1 차 회의 1962년 10월 11일부터 12월 8일까지
제 2 차 회의 1963년 9월 29일부터 12월 4일까지
제 3 차 회의 1964년 9월 14일부터 11월 2일까지
제 4 차 회의 1965년 9월 14일부터 12월 8일까지
1966년 1월 1일부터 5월 29일까지 성년으로 지켰다 한다.
참석한 종교단체는 약 209종파가 승인하고 참석했다고 한다.
그 회의에서는 공회의 법을 제정하였는데, 그 법을 무시할 때에는 종교재판에 처함이라고 한다.(카톨릭 신보 발행)
아직까지는 그 회의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장차 우리 진리가 널리 전파됨에 따라 크게 실시될 것이다. 이것은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정표이고 내부적 정표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구약 모든 성경의 말씀에서 장차 복음시대에 나타날 사건을 예언으로 해석해서 알아볼 수 있도록 해석해 놓은 책이 정표이다. 기록한 바 「여호와의 말씀이 너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의 말이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어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예언하고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고하고 우리로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게 하거나 혹 장래사를 보이어 후래사를 예언하던 너희가 신 됨을 우리로 알게하고」(사41:21~26) 또는
「내가 처음부터 종말을 보이고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행하리라 하였고 동방의 독수리, 곧 내가 정하여 놓은 사람을 먼 나라에서 부르리니」(사46:10~11) 하시었다.
그런고로 동방에서 불러내신 당신의 사자의 정표는 구약 모든 역사를 통해 복음시대에 일어날 사건들을 밝히 보여주는 진리이다. 침례 요한도 자기가 가지고 온 정표가 있었는데 그 정표는 엘리야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띤 것은 바로 엘리야의 사명으로 왔다는 정표이다.(구역성경 왕하1:8, 마3:4 비교)
예수님께서도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신 그것으로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다는 정표를 보이신 것이다.(슥9:9, 눅19:29~40 비교) 침례 요한이나 예수님에 대한 정표는 많이 있지만 간단한 실례를 들면 그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진리가 나타는 때와 기한에 있어서는 지상 성전 건축과 복음사업의 연결 해석으로써 정확한 시기를 알려주고 있지만 요한계시록 7장 1절에서도 대강 표시하고 있다.「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사방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과 바다와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하였다.
예언상 바람은 세상에 나타날 전쟁을 가리키는 것이니「땅 네 모퉁이」라 하였으니 동·서·남·북 전세계 대 전쟁이 일어날 즈음해서 나타날 새 진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바람은 1차대전 시기도 아니요, 2차대전 시기도 아니요, 땅 네모퉁이라 하였으니 마지막 전세계 대전쟁이 일어나려고 들먹할 무렵이라는 것이 명백하다. 그 시기에 이르러서 인치는 천사의 사명이 해 뜨는 곳으로 부터 시작될 것을 보이신 것이다.
■ 동방의 독수리와 고레스왕
이사야 서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보통적으로 해석하는 바는 동방의 독수리에 대하여 바사왕 고레스를 말한 것이라고 하여 그 동방의 독수리에 대하여 좀 더 연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예언이 다 지나갔다고 결론을 맺고 말았다. 단편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그 이상 더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고레스왕은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쁜소식과 자유의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예언 성취가 고레스 왕으로 하여금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리만큼 되어 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이 썩어져 없어질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인 한 민족에 관한 예언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가치없는 예언이 되며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을 연구하여야 좋을런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할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와 규례를 멸시하다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당하기도 하고 포로생활을 하기도 하고 각국에 흩어지기도 하고 다시 은혜를 받아 본국으로 돌아올 것에 대한 예언들이 많이 있다.
그러면 그 모든 예언과 예언 성취된 역사들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우리는 거기에서 멈추어 있을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예언과 역사는 복음시대에 와서 완전 성취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내다보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고레스왕이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경험은 장차 복음시대에 있을 그림자이다.
만일에 그 예언이 고레스왕 당시에 완전 성취되었다면 성경의 모순된 점이 많다. 왜냐하면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키는 때에 섬들이 두려워하며 다 연합하여 우상을 견고하게 세우는 종교연합 운동이 일어나게 되며(사41:5~7)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려워하는 표정이 있음으로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는 말씀도 있었다.(사41:8~10)
또 기록한 말씀에「내가 자산에 강을 열고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고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하며」(사41:18, 25)하였으니 예수 재림때에 있을 예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고레스왕 당시에는 그러한 일들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고레스왕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한 때였다. 본국으로 돌아갈 기쁜 소식을 듣는 때이었다. 그러나 동방의 한 사람을 일으키는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히 두려워하는 표시를 나타내었으니 고레스왕 당시는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다. 그런고로 사도 요한은 마지막 예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한 인치는 사업이 동방 끝 해 돋는 곳에서부터 나타날 것을 바로 보고 기록하였다.(계7:2, 사41:2, 사46:11 비교)
그리고 「해 돋는 곳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자라」(사41:25~27) 한 그 사람의 사명은 시온의 기쁜소식을 전할 자라고 하였는 바(사41:27)시온에 기쁜소식 전할자의 사명은 이사야 40장 3~9절과 연결된 성경절인데 그 성경절이 또한 침례 요한에게 예언 성취 되었다고 복음기자 마태와 누가는 기록하였다.(마3:1~3, 눅3:3~6, 사40:3-9,41:27 비교)
이렇게 연결해서 연구하게 되면 이사야 41장 2절 동방에 한 사람을 택한 것이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라는 것이 밝히 나타나는 것이다.
기록한 말씀에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위에 섰더라」(계12:17) 하였다. 지금 우리는 여인의 남은 자손들 중에 들기 위하여 여인의 남은 자손에 대한 문제를 심각히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여인의 남은 자손들은 안식일 교인들이라고 한다. 왜냐하면「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받은 자라」하였고「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신이라」(계12:17, 19:10 비교) 한 이 두 절을 가지고 단편적으로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므로 마지막 때에 있을 진리를 크게 방해하고 있다.
그러면 여인의 남은 자손에 대한 문제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기록한 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 하였다.
이 말씀은 일반적 공통된 교리로 본다면 구속의 경륜을 세우신 예수님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서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이 되는가? 물론 여러 가지로 대답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 진리를 따라 연구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기록한 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7:14)「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마1:18~23) 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로 하신 말씀은 장차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실 예수님을 가리켜 예언하신 말씀이니 여자의 후손이라 하심은 남편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남자의 후손이라 하지 아니하고 남편없이 홀로 낳았다고 해서 여자의 후손이라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여자의 남은 자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찌어다 그렇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찌어다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54:1) 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 54장 1절의 예언은 성령으로 낳은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것을 밝혀 해석하였다.(갈4:27~29 참고) 그런고로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 여자의 후손이 될 수 있으며 마지막 늦은비 성령을 충분히 받아야 여자의 남은 자손이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계12:2,5) 하였다. 이 묵시는 예수님의 탄생과 승천을 일부 표시한 것이다.
그러면 벌써 지나간 예수님의 탄생과 승천하신 광경을 왜 다시 요한에게 보여 주셨을까? 이는 붉은 용에 대한 해석과 여인의 남은 자손에 대한 문제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계시록 12장 1~17절까지 자세히 연구해 보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 아이를 낳은 그 여인의 남은 자손도 그 여자가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즉, 성령의 한 계통으로 예수님이 성령으로 나신 것 같이 남은 자손도 늦은비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남은 백성들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창3:15, 사7:14, 마1:18~23, 사54:1, 갈4:27~29절 참고)
그러면 지금 우리도 늦은비 성령을 받지 못하고 있으니 우리도 여인의 남은 자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늦은비 성령은 용이 최후 행동개시를 하게될 때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히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장차 늦은비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약속이 보장되어 있다.
이 약속은 구약과 신약의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약속되어 있는 허락의 자손이다. 허락의 자손이라 함은 그 자손들이 세상에 나타나기 전에 미리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정해두신 자손을 허락의 자손 곧 약속의 자손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였다.
기록한 바 「그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낳은 자를 핍박하더니 이제도 그러하도다」(갈4:29) 하였으며 또는「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4:28) 하였다.
이삭은 미리 약속해 주셨지만은 이스마엘은 미리 약속한 일이 없으므로 육체를 따라 낳은 자손이 되어 있고 이삭은 미리 약속해 두셨다는 것으로 성령을 따라 낳은 자손이라고 바울은 결론을 지어 놓았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전에 모든 선지자들이 미리 예언해 놓았으면 그 백성들은 허락의 자손이 되는 동시에 성령을 따라 낳은 자손이 된다.
■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으로 세워진 교회
우리가 받은 진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으로써 세워진 마지막 교회이다.
이 교회를 가리키는 예언서들을 찾아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일곱 우뢰의 개봉(계10:4) 이책 17장에 해설이 있음.
2. 엘리야의 사명(말4:4~5절) 이책 제2장에 해설이 있음.
3.「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는 기별(계3:14~22절, 증언보감 77페이지) 이책 9장에 해설이 있음.
4.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오는 천사(계7:1~3) 이책 제3장에 해설이 있음.
5. 동방의 독수리(사41:2, 46:11) 이책 제3장에 해설이 있음.
6. 여호수아의 사명(수5:1~15) 이책 제10장과 제18장에 해설이 있음.
7. 셋째 천사의 기별(계14:9~12) 이책 제8장에 해설이 있음.
8. 헤롯 성전 건축시대(요2:20) 이책 제15장에 해설이 있음.
9. 여인의 남은 자손(계12:17) 이책 제4장에 해설이 있음.
10. 큰 권세를 가진 천사(계18:1~3) 이책 제6장에 해설이 있음.
위에 기록되어 있는 명백한 예언의 말씀을 연구하게 되면 사도 베드로의 말과 같이「우리에게 있는 예언이 더욱 확실하여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너희 마음에 샛별이 떠오르기까지 이것을 살피는 것이 아름다우니라」(벧후1:19) 한 말씀과 같이 연구하게 되면 이 교회는 여인의 남은 자손이 된 것을 알게 되는 동시에 마음에 샛별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상 허락의 자손인 동시에 성령을 따라 낳은 자손이 된다. 그러므로 장차 때가 되면 약속의 자손들에게 늦은비 성령의 크신 축복이 내려질 것이다.
■ 여인의 남은 자손의 특징
그리고 여자의 남은 자손의 특징은「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받은자라」(계12:17) 하였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생각하기를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교회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가 많이 있으니 무엇으로 구별할 것인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계12:17)라는 말씀은 오늘날 계명을 지키노라고 하는 안식일 교회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으로써 이즈러지고 파손된 십계명을 완전 복구한 교회를 가리킨 것이니 첫째 계명인 유월절 성만찬으로부터 완전 복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예수의 증거를 받은 자라」(계12:17) 하신 말씀은 성령을 가리킨 말씀이다.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시는 것이다.「보혜사가 이르면 나를 위하여 증거하실 것이요」(요15:26) 하시었다. 그리고 예수님 탄생하셨을 때에도 결례의 기간 33일이 지난 후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에도 시므온이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다.(눅2:25, 33)
침례 요한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수님을 보고「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34) 하였다. 사도들은 이른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에 대중 앞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강력히 증거하였던 것이다.(참고 행2:1~4, 24~25, 행5:30~32, 요15:26, 요일5:7~9 비교)
그런고로「예수의 증거는 예수를 증거하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혹은 예언의 신이라」(계19:10)하였다. 이 말씀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언하는 성령이라고도 하고 예언하시는 성령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지한 인간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당신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라고 하시며 장차 있을 일의 예언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여인의 남은 자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대언의 영이라 혹은 예언의 신이라」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제자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얻어 다른 나라 방언을 말하니 성령이 말하게 하신대로 하더라」(행2:4) 하였으니 이는 사람의 마음대로 말하지 아니하고「성령이 말하게 하신대로 하더라」하신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신 이는 곧 성령이란 말씀이다.
또는「진리의 성령이 이르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너희를 인도하리니 그 마음대로 할 것이 아니라 듣는 것으로 말할 것이요 또 장래일로 너희에게 말하리라 성령이 나를 영화롭게 하였으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말하리라」(요16:13~14, 눅12:11~12) 하시었다. 이와 같은 성령은 오늘날 안식일 교회에서 받았다는 성령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기록한 바 「이는 아직 한 사람도 성령 내리심을 받지 못하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사도가 손으로 우리에게 안찰하매 즉시 성령을 받은지라」(행8:16~17) 하였다. 이와 같은 성령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 주셨지만은 마지막 때에 용이 분노하여 여인의 남은 자손으로 더불어 싸우게 될 시에 각 개인에게 불같은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히실 것이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는 마지막 여인의 남은 자손 곧「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받은 자들」에 대한 예언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또한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며 새 영을 너희속에 두고 너희 육신 가운데서 돌같은 마음을 제하고 살같은 마음을 너희에게 줄 것이요 또한 내 성신을 너희속에 두어 너희로 하여금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라 너희가 반드시 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요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며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겔36:24~28)
또는「내가 저희에게 한 마음을 주며 새 신을 너희속에 둘 것이요 그 육신의 돌같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나의 율례를 행하고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할찌니 그리하면 저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리라」(겔11:19~20) 한 말씀은 세상 끝날에 여인의 남은 자손들이 이즈러지고 파손된 율례와 법도와 규례를 바로 찾아 지키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된 인을 치시고 보증으로 늦은비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주실 것이다.
기록한 바 「나의 율례를 행하고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리하면 저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리라」(겔11:20) 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새 언약의 절기를 지키는 사람은 일부 진리의 성령을 받은 사람이 되는 동시에 마지막 늦은비 성령 받을 표가 되는 것이다.(겔11:19~20절 참고)
십계명과 신약에서 말하는 의문의 율법 또는 몽학선생이라는 율법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출24:12) 하였으며
사도 바울도 로마인에게 편지할 때에「대개 우리가 육체로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은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찌니라 그런즉 우리가 무슨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다면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롬7:5~7) 하였으니 위에 기록한 율법이나 의문이나 계명을 포함해서 같은 뜻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3장 6절, 7절에「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를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하는 의문의 직분도(고후3:6~7) 한 위에 기록한 의문이라는 말은 헬라 원어에는 문자(文字)라는 뜻으로 되어 있으며 또는「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였으니」(엡2:15) 하였으며
또는「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쫓아세운 것이 아니요」(히7:16) 하였으며, 또는「대개 전 계명이 연약하고 무익함으로 폐하였으니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찌라」(히7:18~19)하였으니 돌에 새긴 십계명 중에는 의문에 속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위에 기록되어 있는 의문의 율법에 관한 성경절들을 자세히 연구한다면 십계명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화잇부인도 이 의문의 율법이라고 하는 몽학선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갈라디아서의 중심 진리는사람이 의문의 법이나 도덕적인 율법이나 어떤 율법이라도 그것을 지킴으로써 의를 얻을 수가 없음을 가르친다. 나는(화잇부인) 갈라디아서의 율법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은 무슨 율법인가?
나는(화잇부인 자신) 이에 대한 답으로써 그것은 의문의 율법과 십계명의 도덕 율법을 다같이 포함한다고 말한다.」(Selected messages 6. 1 p.233) 하였다.
그런고로 십계명을 포함한 옛 언약이 새언약으로 완전히 변경된 것이다. (히7:12)
■ 옛 언약은 무엇인가?
모세 율법에는 십계명을 언약이라고 말씀하신 동시에 절기도 또한 언약이라고 하였다.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을 지내는 동안에 여호와께서 모든 율법을 반포하실 때에 삼차의 칠개 절기를 말씀하시면서 이 절기의 뜻대로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의 비석을 주신 것이다.(출34:18~2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말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의 뜻대로(삼차 칠개 절기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노라 하시니라 모세가 음식을 폐하고 40주야를 여호와와 함께 거하니 여호와께서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판에 기록하시니라」(출34:27~28) 하였으며
신명기에도「여호와께서 너희의 지킬 언약을 반포하시니 곧 십계명이라....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여 너희로 건너가서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행하게 하셨느니라」(신4:13~14, 5:1~3) 하시었으며
열왕기하에는 유월절을 언약의 말씀대로 지킨다고 하였으며(왕하23:1~3, 21~23)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말하기를「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있는 성소가 있나니」(히9:1~7) 하였다. 바울은 대속죄일에 관한 절기를 첫 언약의 섬기는 예법이라고 하였다. 그런고로 십계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인바
첫째 계명에서 넷째 계명까지는 한분이신 하나님만 섬기는 언약이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은 오직 절기뿐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을 파함으로 저주를 받은것이며(사24:1~5) 다시 절기를 깨닫고 지킬 때에는 축복을 받은 것이다. 다섯째 계명에서부터 열째 계명까지는 우리 인간에 대한 도덕적 율법인 바 이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인간끼리 선을 행하는 것 뿐이요, 하나님께 유익을 주는 것은 아니다.(욥35:6~8) 십계명이 다르고 절기가 다르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아직까지 옛 언약도 새 언약도 분별치 못하는 사람이다.
혹은 말하기를 십계명은 법궤 안에 있고 율법책은 법궤 밖에 두었는데(신31:24~26) 법궤 안에 있는 십계명은 영원히 있을 것이로되 그 율법책은 주님의 십자가로 폐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십계명과 그 율법책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법궤 곁에 두라한 율법책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를 포함한 신명기를 말한 것이다.
이 신명기를 기록한 때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후 40년을 마치고 허락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해인 십일월 초 일일에(신1:1~5)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총회를 열고 당일에 그 신명기의 말씀을 설명하고 쓰셔서 주셨던 것이다.(신1:5, 27:11, 31:22~26 비교)
그런데 그 책속에 무슨 말씀이 적혀 있나하면 십계명과 십계명의 세부적 설명이 들어 있으며(신4:12~14, 5:1~21, 29:1 비교) 또는 먹는 음식과 십일조가 들어있다.(신14:3~21, 22~23) 그런고로 십계명이 적혀져 있는 그 율법 책을 폐했다는 사람은 십일조나 음식 문제나 십계명까지 모두 폐했다는 말이나다름이 없다.
왜냐하면 신명기 책속에는 십계명과 십일조와 음식 문제까지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명기 책이 폐했으면 십계명이나 십일조나 음식까지 다 폐한 것이 된다.
그 율법책을 법궤 곁에 두는 것은 법궤 안에 있는 십계명의 내용을 상세하게 기록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십계명을 부분적으로 해석하자면 아래와 같다.
■ 인간에 속한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신5:16) 하신 그 말씀의 내용을 상세하게 율법책에 기록하였는 바「부모를 치는 자는 용서없이 죽일찌니라」(출21:15) 또는 「부모를 저주하는자는 용서없이 죽일지니라」(출12:17)또는
「패악한 아들이 있어 그 부모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징책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돌로 쳐 죽여 너희중에 악을 제하라」(신21:18~21) 또는「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거든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라」(신27:16) 하였으며
「살인하지 말라」(신5:17) 하신 말씀 중에는「사람을 쳐 죽인자는 용서없이 죽이되 고살이 아니면 나 하나님의 허락이니 내가 그 피할 곳을 정할 것이요, 그 이웃을 짐짓 찾아가서 계획적으로 죽였으면 내 단에서라도 잡아 죽일찌니라」(출21:12~15)
또는「구멍 뚫는 도적을 쳐 죽이면 대살할 것이 없으나 해 돋은 후에 쳐 죽이면 대살할찌니라」(출22:2~3) 또는「살인자가 그리로 도피하여 살 만한 경우는 이러하니 누구든지 본래 혐의가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인 일이라」(신19:4~6) 하시었다.
또는 간음하지 말라(신5:18) 하신 말씀중에는「누구든지 남의 아내 곧 이웃의 아내와 간통하면 그 간부와 음부를 용서없이 죽여라 누구든지 그 계모와 동침하는 자는 그 아비의 하체를 범하였은즉 둘 다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누구든지 그 자부와 동침하거든 둘 다 반드시 죽일찌니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하였음이라」(레20:10~22)
또는「처녀인 여자가 남자와 약혼한 후에 어떤 남자가 그를 성읍 중에서 만나 통간하면 너희는 그들을 둘 다 돌로 쳐 죽일 것이니」(신22:23~30) 하시었다. 이외에도 간음죄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또는「도둑질 하지 말라」(신5:19) 하신 말씀 중에는「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았거나 판 자는 소 하나에 소 다섯을 갚고.. 도적이 장물을 배상하려니와 배상할 힘이 없으면 그 몸이 팔릴 것이요」(출22:1~9) 또는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후려다가 그를 부리거나 판 것이 발견되거든 그 후린자를 죽일찌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 악을 제할찌니라」(신24:7) 하신 외에도 도둑에 대한 설명이 이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는것이다.
또는「네 이웃을 거짓 증거하지 말라」(신5:20) 하신 말씀 중에는「위증하는 자가 있어 사람을 변박하여 행악하였다 하거든 논쟁하는 양측이 같이 하나님 앞에 설 것이요 재판장이 자세히 사실하여 그 증거가 위증이요 그 형제를 거짓으로 변박한 것이 판명되거든 저가 그 형제에게 행하려 하던대로 저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긍휼히 여기지 말고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발은 발로 갚아라」(신19:16~21) 하시었으며
또는「네 이웃의 아내나 집이나 밭이나 노비나 소나 나귀나 네 이웃에 있는 것을 탐내지 말라 하시니라」(신5:21) 하신 그 모든 말씀의 세부적 설명이 모세 율법책에 많이 있는 것이다.(신24:10~22, 28:1~68)
■ 첫째 계명과 그 해석
위에 기록한 인간에게 속한 계명의 세부적 설명이 그 율법 책속에 기록되어 있는 것 같이 하나님에게 속한 계명에도 세부적 설명이 그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은 양면에다 새긴 돌비 두 개가 있다.(출32:15~16, 34:28~29)
첫째판은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니 이는 하나님께 속한 계명이요, 둘째 판은 다섯째 계명부터 열째 계명까지니 이는 우리 인간에게 속한 계명이 된다.
그런데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께 속한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안식일이나 모든 절기는 규례를 따라 성소 안에서 한 분이신 하나님만 섬기는 계명이기 때문에 첫째 계명에서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하나님께 속한 계명이라고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함으로써 첫째 계명을 지키게 되는가?
기록한 바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출20:3) 하신 말씀 중에는 다른 신만 섬기지 말라는 말씀만 아니라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 동시에 나만 섬기라는 두 가지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고로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만 섬기는 방법은 너희를 종노릇하던 애굽 땅에서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곳에서 유월절에 구원해 내셨으므로 이 날에 여호와께 제사드리라는 첫째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무조건「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고 독재적인 행세를 쓰시지 않으신다. 나만 섬기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반드시 우리가 하나님만 섬겨야 할 조건이 서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너희를 종이 되었던 땅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이날을 기념하라」(출13:3~10, 12:17 비교) 하시었다.
구속하신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정하여 대대로 지키라(출12:14)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첫째 계명을 말씀하실 때나 유월절을 말씀하실 때나 선두에 동일한 말씀으로 기록하였다.「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 너를 종 되었던 애굽에서 나오게 한 자로라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신5:6~7,출20:2~3)
하시고 또 유월절을 말씀하실 때에도「여호와의 능하신 손으로 너희를 종이 되었던 땅,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이날을 기념하여」(출13:3~10, 12:17, 신16:1~17 비교) 하시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크신 권능의 손으로 너희가 종 노릇하고 있던 애굽 땅에서 구원해 내셨으니 구원자가 내가 아니냐 그런고로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나만 섬기되 너희를 구원해 낸 그 날을 기억해서 그 날에 나를 섬기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첫째 계명에 대해서 확실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의 가장 큰 비밀이 들어 있는 것이 첫째 계명이다. 그러므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첫째 계명이라는 것만 알았지 첫째 계명의 원리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율법학사가 큰 계명에 대해서 예수님을 시험해 보려고 하였다.
네가 참으로 선지자이면 큰 계명을 아느냐 하는 식으로 물어 보았던 것이다. 기록한 바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마22:35~40) 하시었다.
그러면 모든 선지자의 기록 가운데「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하나님을 사랑하는 첫째 계명을 지킨 사람은 누구라고 하였는가? 성경 가운데 명백하게 기록된 사람은 유다왕 요시야의 행적 가운데서만 볼 수 있는 바「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온전히 여호와를 향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준행한 임금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이와 같은 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더라」(왕하23:25) 하였다.
요시야왕은 모세의 모든 율법을 준행한 임금이라고 하였는데 그는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첫째되는 계명인 유월절을 지킨 것이 그에게는 큰 성공이었다.
기록한 바 「대저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날부터 이스라엘 열왕과 유다 열왕의 시대에도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요시야왕 십팔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키니라」(왕하23:21~25) 하시었다.
그런고로 유월절이 하나님의 첫째되는 계명이라는 것을 예수께서 명백히 증거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 중에는 넷째 계명도 포함된 것이지마는「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38, 왕하23:21~25 비교) 하신 그 말씀이 바로 유월절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총회 앞에서 강론할 때에 유월절에 대하여 그와 같이 말하였던 것이다.
기록한 바 「이스라엘아 들어라 여호와 우리의 하나님은 유일하신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한 이 말씀을 네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쳐 네 집에 앉았거나 길에 행하거나 누웠다가 일어날 때에 이 말씀을 강론하고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미간에 붙여 기념표를 삼으며 네 집 문설주와 성문에 기록하라」(신6:4~9) 하시었다. 「네 손목에 매여 표를 삼고 미간에 붙여 기념표를 삼으며」하신 말씀은 유월절의 기념표를 그와 같이 하신 말씀이다.
「여호와의 율법이 너희 입에 있게 하라 이 예식을 네 손에 기호와 미간의 기념표로 여기라 하라 여호와 능하신 손으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연년이 기한에 이르러 이 규례를 지킬찌니라」(출13:9~10) 하시었다.
그런고로「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신 이 말씀은 곧 유월절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나 외의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하신 말씀을 깊이 연구하게 되면 첫째 계명은 유월절을 가리킨 것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유월절은 첫째되는 계명이 되어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우리를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만 섬기는 조건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유월절을 지키게 되면 다른 신은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이요 유월절을 안 지키게 되면 다른 신은 내 자신이 알지 못하는 순간 침입해 들어오기 때문이다. 기록한 바 「내가 이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의 장자와 생축의 처음난 것을 다 치고 그 모든 신을 심판하리니 나는 여호와로라」(출12:12, 민33:4) 하시었다.
혹은 생각하기를「그 모든 신을 심판하리니」하신 말씀은 출애굽할 그 당시에만 그렇게 된줄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때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안지키게 되면 다른 신을 끌어 들여 신당을 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바알신을 섬기며 신접한 자나 박수들이 많아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사 다시 하나님의 유월절을 지키게 될 때에 그 모든 신과 우상은 전멸을 당하고 박수나 신접한 자까지 멸망을 받았던 것이다.
옛날 히스기야왕 당시에나 요시야왕 당시에도 오랫동안 절기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우상들이 가득히 차 있었고 황폐된 성전을 수축하는 중에 성전 안에서 율법책을 얻게 되므로 다시 유월절을 지키게 되었으며, 유월절을 지키게 될 때에 그들의 눈을 열어 주심으로 예루살렘이나 유다 고을마다 가득히 차 있는「귀신 접한 자와 및 박수와 집에서 위하는 데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멸망시키었다」(왕하23:21~24, 대하30:1~5, 31:1)
그리고 유월절을 지킨 후에 제사장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니 그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었다고 한다.「그 때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일어나서 백성을 위하여 축복하매 그 소리가 들으신 바 되어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하신 처소에 상달하니 곧 하늘이더라」(대하30:27) 하였다.
히스기야왕이나 요시야왕은 오랫동안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였던 사람이었던고로 그 모든 우상들을 전멸시키기 전에는 그 모든 우상들을 섬겼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유월절을 지키게 되므로 다른 모든 우상을 전멸시키게 된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출애굽하던 유월절에다가 우상의 심판 날로 정해 놓으셨기 때문이다.
어느 때든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키게 되면 다른 신들은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하는 것이요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다른 신을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순간에 섬기게 되는 법이다.
옛날 이스라엘왕 여로보암이 백성들로 하여금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할 때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고 백성들에게 말하기를「너희가 예루살렘에 올라 가기가 너무 괴로우니 이스라엘아 볼찌어다 이는 너희 신이니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라오게 하신지라」(왕상12:25~33) 하였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예수께서 정해주신 날에 행하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다른 날로 무슨 절차의 기념 행사를 정해 놓고 이날은 거룩한 성일이라고 정하여 지키게 되는 법이다. 이것이 바로 우상인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도 여기에 대하여 기록하기를「대개 너희가 전에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의 사방에 있는 이방 사람의 규례대로 행함이라」(겔11:12)고 책망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를 지키지 않을 때에는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반드시 다른 기념식을 정하여 지키게 되는 법이니, 곧 이방 사람의 규례를 지키는 것이 된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대로 유월절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다른 신을 섬기는 조건이 된다. 혹은 말하기를 유월절은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오늘날 우리에게는 십자가로 폐하였다고 한다.
구약 당시에도 유월절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의 생각에는 유월절은 출애굽할 때에 필요했지 이제는 더욱 좋은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된다고 하며 우상을 만들어 섬겼던 것이다.
그와 같이 오늘날에도 구속 사업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유월절은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해당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전 세계에 있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속받는데 중요한 날이다.
구약 때에 유월절을 통해서 애굽에서 나오고 또 유월절을 통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이 썩어 없어질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제정하신 것이 아니요 실지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제정해 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유월절 밤을「여호와의 밤」이라고 하시었다.(출12:42)
애굽에서 이루어진 유월절은 모형이었고 주님께서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을 행하시며 새 계명 즉 새 언약의 제도를 주심으로(눅22:20, 히9:15 비교) 실상을 이루사 전 세계 죄악의 종노릇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신 날이 되었으므로 이날을 기념하신 것은 다른 신을 섬기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만 섬긴다는 조건이 된다. 십자가는 유월절 날을 폐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그 날을 광명하게 비추어 주신 것이다.
■ 유월절 성찬 예식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성찬 예식의 중대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시었다. 「떡을 가져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이 내 몸이라 너희를 위하여 준 것이니 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잡수신 후에 잔을 가져 또 이와같이 하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린 것이니라」(눅22:19~20)하시고
또는「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요6:53~56) 하셨다.
이 말씀은 당신이 유월절 양으로써 십자가에 달리실 몸과 십자가에서 흘리실 보혈을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다가 인을 쳐 놓은 것이다. 그런고로 이 예식으로 말미암아 주님 안에 거하게 되므로 생명을 얻게 되는 동시에 마지막 날에 살려 주심의 약속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잔을 가지시고「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린 것이니라」(눅22:20)
하시면서 포도즙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하시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라」(요15:5) 하시었다.
이 말씀은 마지막 성찬 예식장에서 포도즙을 주시며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크신 사랑의 공로를 유월절 성찬 예식에다가 새 언약으로 정하시고 말씀하시기를「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15:12)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3~15)하시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의「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라」하신 말씀은 누가복음 22장 20절의「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린 것이니라」고 하신 말씀이다.
다른 삼 복음에는 새 계명이라고 하지 않고「새 언약」또는「언약」이와같이 기록되어 있고 요한복음에는「새 언약」또는「언약」이라고 기록하지 않고「새계명」또는「나의 계명」(요13:34, 15:10~12)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새 언약 곧 새 계명은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주의 기념일로서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것 같이 우리 형제들끼리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고전10:16~17)하였으니 이 예식은 형제끼리 사랑은 물론이고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몸을 미워하는 사람이 없나니 주님 안에서 한 몸이 되면 또한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 같이 형제의 몸을 자기 몸같이 사랑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월절만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법은 여러 가지 규례가 있는 것이다.
즉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념하는 날이 되는 것이며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도와 예배드리는 것은 항상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것이며 유월절은 죄악의 종노릇하는데서 구속하셨으므로 우리 죄인들에게는 가장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 된다.
■ 둘째 계명과 그 해석
둘째 계명에도「우상을 만들지 말찌니」(신5:8~10) 하신 뜻은「여호와께서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삼가 스스로 부패케하여 아무 형상과 같은 우상을 조각하지 말찌니」(신4:15~19) 또는
「내가 하늘에서부터 너희에게 말하는 것을 너희가 친히 보았으니 너희는 나를 비겨서(나를 위하므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너에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20:22~24) 하시었다.
「우상을 만들지 말찌니」하신 그 이유는 그와 같이 호렙산 화염 중에서 아무 형상을 보지 못하고 하늘에서 친히 너희가 들었으니 아무 형상을 조각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무슨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만이 둘째 계명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 계명을 범할시에는 반드시 둘째 계명을 범하게 되나니 이는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첫째 계명을 범하게 될 때에 우상을 만들어 섬겼던 것이다.
그와 같이 무슨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만이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례를 어기고 다른 규례를 정하여 지키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참것에 우상을 만드는 것이 된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정하신 안식일이 있는데 일요일을 안식일이라고 하며 이날을 지키게 되면 이것이 곧 안식일의 우상을 만드는 것이다. 화잇부인은 우상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가 진리를 거절하는 것은 그 진리를 주신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요, 우리가 율법을 유린함은 율법을 주신 그 하나님의 권위를 부인함이 되는 것이다.
거짓된 교리와 이론의 우상을 만드는 것은 마치 돌이나 나무로 우상을 만드는 것과 같이 되기 쉬운 일이다.」(쟁하425) 하였다. 그런고로 실제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다 우상이다.
■ 셋째 계명과 그 해석
셋째 계명의「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지 말라」(신5:11) 하신 뜻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셋째 계명을 다 지킨 것이 아니니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과 거룩하게 부르는 것에 대한 문제를 다음으로 연구하여 보자.
기록한 바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세워 거룩히 구별하여 드리고」(대하2:4) 또는「저 무리가 이곳을 향하여(성전을 가리킴) 빌며 주의 이름을 높이고 그 죄에서 떠나거든 주 하늘에서 들으사」(왕상8:35~36, 39) 또는「네가 지은 이 집을 내가 거룩하게 구별하였으니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둘 것이요」(왕상9:3)
또는「네가 내 이름을 기념케 하는 곳마다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출20:24) 하셨으니 여호와의 이름을 두신 곳은 곧 성전이다. 그 성전 안에서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되 정하신 규례를 따라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였던 것이다.
만일에 정하신 규례를 따라 지키지 아니하고 사람이 정한 규례를 따라 말하기를 이 기도 주간은 일년 동안 지은 죄를 사함을 받는 기도 주간이다 하고 혹은 이날은 흥성 안식일이다 혹은 성찬 예식을 각각 자기 마음대로 행하며 이 떡과 이 잔은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의 몸과 주님의 보혈이다 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동시에 하나님을 망령된 분으로 만들고 있는 행세이다.
기록한 바 「오직 여호와 네 하나님이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가 애굽에서 나오던 시각 곧 초저녁 해 질 때에 드리고」(신16:6) 하셨으니 우리가 성만찬 예식을 행하되 주님께서 마지막 새 언약으로 주시던 그 날을 찾아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높이게 되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 되겠는가?
그런고로 이 셋째 계명도 첫째 계명을 범하는 때에는 반드시 셋째 계명을 겸하여 범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여호와의 안식일이 있는데 일요일을 안식일이라고 예배를 보며 기도하면서 이날은 여호와의 거룩한 안식일입니다 하고 부르짖는다면 이것이 바로 우상을 만드는 동시에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행세이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혹 일요일에 예배보는 것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이와같이 성찬 예식에도 주님께서 마지막 새 언약으로 베푸신 그날을 찾아 행하는 사람은 평시에 행하는 성찬 예식이 우상이 된다든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일컫는 행세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평시에 행하는 성찬 예식은 옛날 법에 평시에 개인이 드리는 속죄 제물과 같은 것이다.
■ 넷째 계명과 그 해석
기록한 바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게 명한 대로 안식일을 성일로 지키라」(신5:12~14) 하신 뜻은「엿새 동안에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만드시고 제 칠일에 쉬었으니 그런고로 여호와가 안식일을 성일로 삼고 복을 주었느니라」(출20:11) 하셨으니
즉, 창조주의 기념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안식일 지키는 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안식일에는 일년된 흠없는 수양 둘과 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니 이 제사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민28:9~10) 하였으며
또는「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찌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레24:5~8, 대상9:32, 23:31, 대하2:4, 겔46:4 비교) 하였다.
옛날 모세 율법에는 안식일 지키는 의식이 있었으므로 안식일을 절기라고도 하였다.「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가 공포하여 성회를 삼을 여호와의 절기는 이러하니라 엿새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라 너희는 무슨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 거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안식일이니라」(레23:2~3) 하시었다.
넷째 계명의 안식일을 절기라고 하신 것은 성소 안에서 안식일의 규례를 따라 조석 번제를 드리며 진설병과 전제를 드리는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식일을 범하는 문제에 있어서도「안식일에는 너의 집에서 불도 때지 말라」(출35:2~3)「일하는 자는 용서없이 죽여라」(출31:15) 하였으며「산에서 나무하는 자도 죽여라」(15:32~36) 하신 말씀과 안식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법궤 곁에 둔 율법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 의문의 직분이 성신의 직분으로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십자가로 그 모든 직분이 변역된 것이다. 기록한 바 「제사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히7:12) 하였으며 또는「저가 또 우리로 하여금 새 언약의 일군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의문으로 함이 아니요 성신으로 함이니 대개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성신은 살리는 것이라」(고후3:6~11) 하였으니
지상성소로 말미암은 의문의 직분이 성신의 직분으로 변역된 것이다. 둘째 계명에「우상을 만들지 말찌니... 무슨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절하여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진노하는 신이니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아비의 죄를 자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고 나를 사랑하며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은혜를 천대까지 베풀찌니라」(신5:8~10) 하셨으니
만일에 이 계명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있다면 크게 모순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계명들이 장차 변역될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같이 각자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렘31:29~33) 하였다.
옛날법으로 본다면 아비의 죄가 자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 하신 말씀을 따라 아비의 죄로 그의 자손과 친척까지 멸망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아간의 실례를 살펴보면(수7:20~26) 그 당시에 법이 어떻다는 것을 알수 있는것이다.「아비가 신 포도를 먹은즉 아들의 이가 시다」하는 속담은 아비의 죄가 자손까지 죄가 미친다는 속담이다.(겔18:1~4)
만일에 그 십계명이 변개되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 이방 사람은 복음을 받아 들일 수도 없고 또는 부모의 죄가 자손 삼 사대까지 미치게 되니 그 후손이 또 그 후손으로 그 죄에 영향이 미치게 되니 누가 구원받게 될 것인가? 그러나 새 언약을 주신 오늘날의 법은 아버지가 신포도를 먹는다고 해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하는 구약시대가 아니고 신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시다하는 때이다.(렘31:29~30, 겔18:1~4 비교)
또는「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18:20) 하였다. 만일에 그 율법이 변개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안식일에 우양으로 조석 번제를 드려야 할 것이며 안식일에 진설병을 드려야 할 것이며 안식일에는 집에서 불도 때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같은 의식은 지상 성소에서 의문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주님 십자가로 도말하시고 지상 성소가 하늘 성소로 옮겨지므로「제사의 직분이 변역한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히7:12) 하였다.
그런고로 지금은「돌에 써서 새긴 죽게하는 의문의 직분」(고후3:7) 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성신의 법으로 행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옛 계명을 초월해서 교훈하셨다.「옛 사람에게 하신 말씀을 너희가 들었나니 살인치 말라... 하였으나 오직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여워하는 자마다 재판을 받고」(마5:21~22) 하였으며
사도 요한은「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곧 살인하는 자니」(요일3:15) 하였으며 「또 하신 말씀을 너희가 들었나니 간음치 말라 하였으나 오직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사람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 하였느니라」(마5:27~28) 하신 말씀과 같이 완전히 변개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골로새인들에게 편지하기를「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로 인하여 사람의 폄론을 받지 말라 이는 다 장래일에 그림자니 그 형상은 곧 그리스도께 속하였느니라」(골2:16~17) 하신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절기나 안식일로 인하여 사람의 폄론을 받지 말라 하였다고 폐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골로새인들에게 편지한 사도 바울은 고리도인들에게 편지하기를「이러므로 우리가 절기를 지키되」(고전5:7~8)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대개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죽으신 날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고전11:23~26) 하였다.
이날은 우리를 이 죄악 세상에서 구속해 내신 구속주의 기념일로 예수 재림하시는 날까지 지키며 전하는 날이다.
■ 절기나 안식일은 하나님의 날
그런고로 절기나 안식일을 하나님의 날이라고 하였으며 성일이라고 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출12:14)
또는「아빕월을 지켜 여호와 네 하나님의 유월절 예식을 행하라」(신16:1)
또는「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보였으니 사람이 만일 행하면 반드시 그로 인하여 살리라」(겔20:11)
또는「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라」(느8:8~9)
또는 「이 밤은.. 여호와의 밤이라」(출12:42) 하시었다.
내 안식일, 내 모든 절기, 여호와의 절기, 하나님의 유월절, 내율례 내 규례, 여호와의 성일이라 하심은 다 하나님께 속한 날들이기 때문이다.
호세아 선지자는 절기나 안식일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내가 그 모든 희락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과 및 모든 명절을 폐하겠고」(호2:11)
이 말씀은 장차 당신의 백성들이 저주받아 부정함을 입었을 때에 당신의 거룩한 성일들을 도로 취하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호2:1~13, 8:1 비교) 호세아 선지자의 하신 말씀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가 범죄하므로 생명과를 빼앗기는 것과 같이 이 죄악 세상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백성들에게 이 모든 절기나 안식일을 허락치 않으신다는 말씀이다. 누구든지 절기나 안식일을 완전히 폐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이방신이나 바알신에게 속한 것이 증명된다.
만일에 절기가 폐한 것이라면 율법도 폐한 것이 되고 율법이 폐한 것이라면 안식일도 폐한 것이 된다. 모세는 그 모든 절기와 안식일은 영원한 규례니라 평생토록 기억하라 하였으며(출12:14, 31:15~16, 신16:3, 레23:21, 31 비교) 이 날들을 기념하는 곳마다 강림하여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출20:24, 신7:11~13, 약1:25)
절기나 안식일은 하나님에게 속한 계명인고로 그의 계명을 지켜야 그의 백성이라고 인정함을 받는 것이다. 기록한 바 「나의 율례를 행하고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할찌니 그리하면 저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리라」(겔11:20, 36:27~28 비교) 하시었다.
그리고 제사장 엘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삼상2:25) 하였다. 그런고로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는 계명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는 계명이 있는 바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한 것은 하나님께 속한 계명 절기나 안식일에서 사함을 받을 수 있으나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계명 절기나 안식일을 범하면 빌 곳이 없는 것이다.
정한 시기에 규례를 따라 행하지 않으면 죄를 당한다고 하였다.「정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니 정한 시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한 고로 그 죄를 당할찌며」(민9:13) 하시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우리도 모세 율법의 기록한 여러 가지 의식을 그대로 행하자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꼐서 모세 율법에 기록한 여러 가지 의식을 단축해서 변경시켜 놓으신 새 언약의 법을 따라 행하자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십자가로 모세의 모든 율법은 완전히 폐하였다. 그러나 대신 주님께서 세워 놓으신 새 법이 있는 것이다.
이 새 법을 또한 모세에게 그림자로 보이사 모형의 제도를 지상 성소에서 행하게 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새 언약의 행할 법은 예수님이 침례 받으신 후 공생에 3년 반 동안 복음을 전하시며 가르치시고 모본으로 행하신 그 본을 받아 그대로 지키고 행하여야 한다. 예수님이 행하시고 사도들이 행한 것은 다 새 언약으로 들어간다.
그외 모세 율법에 있다고 해서 행하고자 하는 것은 폐한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되므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가 된다.
새 언약은 옛 언약을 완성시키는 것이므로 옛 의문의 제도가 변역하여 신령적 제도로 행하게 된 것이다. 기록한 바
「우리의 유월절 양을 이미 죽여 제사드렸으니 그 양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러므로 우리가 절기를 지키되」(고전5:7~8) 또는「제사의 직분이 변역한 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히7:12) 하였다. 의문의 직분이 성신의 직분으로 변역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이 죄악세상(애굽)에서 나온 날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려고 애굽에서 나올 때에 행하신 유월절을 택하여 마지막으로 당신의 제자들과 유월절 성찬 예식으로 새 언약을 주신 것이다.(눅22:7~13, 출13:8~10 비교)
예수께서 행하신 유월절은 옛 의문의 제도가 아니다. 양을 먹는 대신에 당신의 몸을 표상하는 떡을 먹게 하신 것이며 양의 피를 제단에나 백성들에게 뿌리는 대신에 당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즙을 마시게 하여 우리의 몸을 정결케 함으로「성령이 거하실 성령의 전」이 되게하신 새 언약의 도리를 주셨으니 우리는 이날을 기억하고 이날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고전11:23~26, 눅22:15~20, 요6:53~55 비교)
만일에 예수께서 마지막 행사로 남겨주신 유월절 예식이 아무날에나 행하여도 관계가 없을것 같으면 아무날에나 성찬을 행하시고 아무날에나 행하여도 관계 없는 것으로 본을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우리에게 본을 주시려고 유월절을 기다리고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시었다.
「내가 해 받기전 너희와 한가지로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고 말씀하시었다.
「내가 해 받기전 너희와 한가지로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눅22:15) 하신 것은 유월절이 아니고는 당신의 사업을 이룰수 없기 때문에 그날을 기다려서 제자들과 한가지로 유월절 잡수시기를 원하고 원하셨던 것이다. 그런고로 그 예식을 유월절 먹는 잔치라고 기록된 것이다.(눅22:8,11,15, 마26:17, 막14:12~14) 화잇부인도 주님의 마지막 성찬 예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유대 역세의 정월 14일 바로, 1,500년간의 장구한 시일에 걸쳐서 유월절 양을 잡아 내려온 그달 그날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잔치를 잡수시고 이 절기를 세상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서 당신의 죽으심을 기념할 날로 제정하셨다.」(쟁하 155) 하였다. 그런고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크신 공로를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다가 새 언약으로 인을 쳐 놓으신 것이다.
유월절 떡은 십자가에 달리실 주님의 몸이 되는 것이며 유월절 포도즙은 십자가에서 흘리실 주님의 보혈이 되는 것이다. 유월절은 십자가의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 주시는 예식이다. 예수께서 행하신 바는 모두가 다 우리를 위한 모본을 주셨기 때문에 유월절 날을 택하사 행하시고 그날을 기념하라고 하신 것이다.「내가 본을 주어 너희도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행하게 함이라」(요13:15) 하시었다.
■ 유월절과 마지막 성찬 예식
혹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마지막 성찬 예식 행하신 날이 유월절 날이 아니고 유월절 전날 정월 13일 해진 후 밤에 행하시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태나 마가나 누가 이 삼복음에는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유월절을 예비하라」또는「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마26:17, 막14:12, 눅22:7~8, 13~14 비교) 하시었으니 예수님이 친히하신 말씀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화잇부인도 기록하기를「유월절 양을 잡아 내려온 그달 그날에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잔치를 잡수시고」(쟁하 155페이지) 하였다. 또는 말하기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유월절 날이라고 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유월절이 가장 큰 날인고로 죄인을 십자가에 달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시체로 부정함을 입게 되거나 마음에 부정을 입게 되면 유월절 잔치에 참예 못할 뿐 아니라 또 큰 명절이기 때문에 죄인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내어 주지도 않는다.(민9:6~11, 행12:3~7)
사도 당시에만 하여도 사도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때에 유월절이 되었음으로 유월절 지나기를 기다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의 사자가 베드로를 옥에서 구출한 날은 바로 유월절 밤이었다. (행12:7~10)
그러나 성력 정월 15일 곧 무교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발한 날이요(민33:3) 또는 애굽 사람의 장자 죽은 시체를 장례지내는 날이 되었으므로(민33:4) 유대인들이 이날에는 죄인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전례로 내려오는 행사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이 받는 저주 아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저주 아래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 가운데서 우리르 속량하셨으니 기록하였으되 나무에 달린 자 마다 저주 아래 있다 하였나니」(갈3:13, 신21:22~23) 하였다.
그런고로 성경 여러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 연구해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 바로 유월절 다음날 무교절 날인줄 알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 잡수신 날은 바로 유월절 양 잡는날 곧 14일 저녁이다.
기록한 바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 잡수시게 예비하리이까」(막14:12)하였다.
■ 다른 신을 멸망시키는 유월절
기록한 바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출20:3) 하신 말씀중에 하나님만 섬기라는 명령과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이 두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유월절을 지키게 되면 그 두 가지 명령을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유일한 이유는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나를 죄악의 땅에서 구속하신 구속주를 섬기는 것이 되는 동시에 유월절을 지킴으로써 다른 모든 신과 우상은 전멸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출애굽하던 유월절 밤에「모든 신을 심판하리니」(출12:12) 하신 말씀은 애굽에서 나오는 그날 밤에만 모든 신에게 심판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그후 어느 때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지 않으면 예루살렘 성에나 모든 백성들에게 다른 신들이 침입해 들어오고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면 우상들이나 다른 신들은 전멸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유다왕 요시야도 유월절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자기 조부 므낫세가 세운 신당과 우상들을 섬겼던 것이다.(왕하21:1~3, 22:8~20) 그러나 요시야왕은 서기관 사반이 읽어주는 언약책의 말씀을 듣고 그 옷을 찢고 통곡하며 크게 감동하였던 것이다.
그 후부터는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으로부터 유다와 사마리아에 있는 모든 가증한 신과 우상을 다 멸하고 유월절 지킨 후에 나머지 귀신 접한자와 박수와 집에서 위하는 데라빔과 우상과 모든 가증한 것을 다 멸하였던 것이다.(왕하23:1~25)
그리고 요시야왕의 증조부 히스기야왕도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킨 후에 영적 눈이 열려 유다 모든 고을에 있는 석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어 버리며 산당과 제단을 훼파하여 다 멸하였던 것이다.(대하30:1~27, 대하31:1)
그러므로 유월절은 사귀의 처소와 귀신의 옥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영광의 빛이 되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이 사귀의 처소와 귀신의 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진리가 나타날 것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 영광으로 세상이 환한지라 장대한 소리로 불러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사귀의 처소가 되고 더러운 귀신의 옥이 되고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18:1~2)하였는바. 그 영광의 빛은 사귀의 처소와 더럽고 가증한 귀신의 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광채이다. 요시야왕도 하나님의 성전안이 사귀의 처소가 된줄도 모르고 더럽고 가증한 귀신의 옥인줄도 모르고 18년 동안 더러운 각색 귀신들과 바알신을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유월절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의 눈으로 하나님의 성전안을 들여다 보니 각색 귀신의 처소인줄 알게 되자 즉시 각색 사귀들을 다 파괴시키고(왕하23:1~7) 유월절을 지키고 각 고을에 있는 우상과 신접한 자까지 다 멸하였던 것이다.(왕하23:21~25)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8:1~3절의 영광의 빛은 주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말미암는 유월절 성만찬의 진리의 영광이다. 과연 이 진리를 깨닫는다면 사귀의 처소를 눈으로 보는것 같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어느 때든지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게 되면 다른 신들은 멸망시키고 한 분이신 하나님만 섬기게 됨으로 첫째 계명을 순종하는 것이 된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유월절의 진리를 깨닫고 지키게 되면 영적 눈이 열려 자신이 알지 못하고 섬기던 우상도 알게될 뿐 아니라 교회안에 있는 많은 우상들을 보고 가증히 여기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사단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곧 유월절이다. 사단은 옛적이나 오늘날에나 이 유월절을 없이 하려고 갖은 노력과 술책을 다 쓰는 것이다.
왜냐하면 출애굽 당시 유월절 밤에 모든 신을 심판하시는 날로 정하신 것은 유월절을 해마다 지키면 다른 신이 침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날에 마지막 유월절 행사로 십자가에 달리실 당신의 몸과 보혈을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단의 정권을 빼앗아 당신의 제자들에게 새 언약으로 주셨으므로 제자들이 새 언약의 제도를 지키게 되면 사단은 멸망을 받게 되는 것이며 그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사단은 교회정권을 잡고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원받지 못하도록 억압적 정책을 다 쓰고 우리를 구속하신 구속주의 기념일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총회 앞에서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전할 때에 자기가 죽은 후에 있을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주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기록한 바 「그 선지자나 몽상자는 너희를 유인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내신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명하여 행하라 하신 도에서 떠나게 하려는 자니 저를 죽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신13:5) 하시었다.
이 말씀은 너희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유월절을 속량하여 내신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라는 말씀인데 곧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자라는 말씀이다. 복음시대에 와서도 장차 있을 거짓 선지자에 대한 주의를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 중에서도 장차 거짓 스승들이 있어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를 구속하신 주를 배반하고 속히 멸망함을 스스로 취하리니」(벧후2:1) 하였다. 「자기를 구속하신 주를 배반」하였다는 말씀은 십자가의 크신 공로를 세워 놓으신 유월절 성찬 예식을 배반하는 자들이라는 말씀이다.
여기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는 생각하라」(히10:29)하였다.
당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신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는 말씀은 마지막 유월절 성찬 예식을 행하실 때에「잡수신 후에 잔을 가져 또 이와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린 것이니라」(눅22:20) 하셨으니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는 말은 유월절 성찬 예식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오늘날에도 사단은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빼앗긴 정권을 그대로 붙들고 있으려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약의 피로 자기들을 거룩하게 하신 구속주의 날을 기억치 못하게 온갖 술책을 다 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우리의 대제사장의 중보사업을 깨닫지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우리들이 예수님과 교통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여기에 대하여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단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가장 유의하여야 할 일들을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다른 일에 점령되도록 무한한 간계를 고안한다. 그 속이는 자의 괴수는 속죄의 희생과 전능하신 중보자에 대하여 밝히 나타내 보이는 큰 진리를 싫어한다.」(쟁하 285) 하였다.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의 그림자이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삼차의 칠개 절기를 따라 당신이 성취시킨 그 날들에 지상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심으로(히7:25, 롬8:26~27,34, 사53:12 참고)
이 진리를 깨닫고 행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과 교통함으로 하늘 아버지의 마음을 지상의 자녀들이 알게되는 동시에 지상의 자녀들의 마음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안식일에는 안식일의 규례를 따라 당신의 백성들과 교통하는 것이며 유월절에는 유월절의 규례를 따라 당신의 백성들과 교통하는 것이며 대속죄일에는 대속죄일의 규례를 따라 당신의 백성들과 교통하는 것이며 평시에 행하는 성찬 예식은 평시에 드리는 속죄제로 예수님과 교통하는 것이 되며 매일 아침 저녁 예배보는 것은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 같이 예수님과 교통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매일 드리는 예배나 안식일의 예배나 평시에 행하는 성찬 예식은 우리를 구속하신 유월절에 가서 주님의 몸과 보혈로 말미암아 정결하여 지는 것이다.
■ 우리의 죄가 사단에게로 옮겨짐
옛날 지상 성소에서 행하던 모든 의식 중에 매일 드리는 상번제나 안식일에 드리는 번제나 평시에 드리는 개인의 속죄제나 서원제를 막론하고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은 그시 그시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드리는 희생 제물로 말미암아 개인의 죄가 성소로 옮겨지는것 뿐이다.
그러나 성소로 옮겨진 백성들의 죄를 정결케 하는 날이 있으니 유월절과 대속죄일이다. 유월절에는 유월절 양의 피로 백성들에게 뿌려(대하30:16, 출24:6~8, 히9:19~20) 거룩하게 하는 것이며 대속죄일에는 대제사장이 향로에 불과 향을 담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한 후 속죄 제물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의 부정함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속한 후 그 모든 죄를 아사셀 수염소 머리에 안찰하여 이스라엘 족속의 모든 죄와 불의를 옮겨주고 광야로 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모든 백성의 일년 동안 지은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이다.(레16:20~22)
그런고로 속죄 제물인 수염소 두 마리중 한 마리는 속죄 제물이 되고 한 마리는 아사셀을 위한 제물이 되었는데 이 두 마리의 수염소는 장래일의 예표로써 속죄 제물의 수염소는 예수님을 표상한 것이요 아사셀의 수염소는 사단을 표상한 것이다.
그런고로 지상 성소에서 행한 속죄 제물이 그 당시에 백성들의 죄를 없이 하지 못하고 장차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완전 제물을 드리게 되므로 구약 당시에 행한 속죄 제물인 수염소의 피가 백성들의 죄를 정결하게 하였던 것이다.(히9:9~10, 15, 10:1~4 비교)
그와 같이 오늘날에도 매일 드리는 상번제와 같은 예배가 있고 매 안식일에 드리는 번제와 같이 안식일의 예배가 있는데 이 모든 예배는 그 즉시로 완전히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 성소로 옮겨졌다가 유월절 성만찬 예식으로 주님의 몸과 주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을 때에 하늘 성소로 옮겨진 죄까지 사단에게로 넘겨줌에 따라 일년 동안 지은죄가 다 정결하여 지는 것이다.
이날은 사단이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그 피 흘린 죄가 그 피 흘린 사단에게로 돌아가는 날이다. 지상 성소는 하늘 성소의 모형이므로 성소의 규례와 율례는 똑같은 것이다.
그런고로 사도 요한은 묵시중에 본 바「또 다른 천사가 금 향로를 가지고 와서 제단 곁에 서서 향을 많이 받아가지고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놓으니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 가는지라」(계8:3~4) 하였다.
이 묵시는 지상 성소에서 행한 것 같이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번씩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의식이 하늘 성소에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레16:11~17, 34, 눅1:10 비교) 화잇부인은 기록하기를「그런데 지상 성소에서 모형적으로 행한 일은 당연히 하늘 성소에서 집행될 것이다.」(쟁하 187) 하였다.
하늘 성소에서도 지상 성소와 같이 죄를 완전히 정결케 하는 날은 유월절이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다시 살리리니」(요6:53~54) 하시었다.
누구든지 말만 가지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의 행하시는 모든 의식 중에 한가지라도 버리면 당신과 상관이 없다고 말씀하시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로 더불어 상관이 없느니라」(요13:8) 하신 이 말씀은 그 당시 베드로에게만 해당된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제자의 발씻기는 일은 주님의 의식 중에 가장 적은 일이지마는 그와 같은 적은 일도 행하지 않을 때에는 주님과 상관이 없다고 하셨는데 주님의 몸과 주님의 보혈에 참예하는 일이야 얼마나 더 중요하겠는가?
주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보혈에 참예하지 않으면 생명이 없다고 말씀하시었다.(요6:53) 화잇부인은 주의 마지막 만찬이나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하여 기록하기를 「그 갖가지의 행사는 세상의 구속을 이루는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R. H. 1895년 6월 18일) 라고 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이 문제에 대하여 심각히 연구하여야 될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새 언약의 제도 곧 구속주의 기념일을 지키게 되면 영생을 얻고 죽어도 마지막 나에 다시 살리심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이 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정하여 대대로 지키라」(출12:14) 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하시고「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6, 19)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월절이 하나님 나라에서도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단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죄에 빠진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기념하는 그 날에 하늘에서는 장자의 총회를 여신다는 것을 밝히 보여주신 것이다.
기록한 바 「새 언약의 중보되신 예수와 및 뿌린바 피니라」하셨으니 이는 유월절 양의 피를 백성들에게 뿌려 거룩하게 하시는 구속의 날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날은 잃어버린 양을 도로 찾은 날로써 우주 모든 장자들이 모여서 어린 양에게 영광을 돌리는 날이 될 것이다.(히12:22~24) 기록한 바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따라 찾도록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이르러 그 벗과 이웃을 모으고 말하되 나와 같이 즐기자 내가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기뻐하기를 회개할 것 없는 아흔 아홉의 의인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눅15:4~7, 히12:22~24 비교) 하시었다.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이 날은 구속함을 받은 우리들은 두말 할 것 없이 기억해야 될 일이지만은 죄를 알지 못하는 우주 전체 모든 장자들이 크게 주목하는 날이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담대히 지성소에 들어 가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 영생길이요 휘장은 곧 육체시니라」(히10:19~20) 또는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모든 장자의 총회와 교회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뿌린바 피니라」(히12:22~24) 하시었다.
우리는 이날에 일년 동안 지은 죄를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깨끗이 씻게 되므로 우리의 마음이 하늘 장자 총회에 참석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님은 그날에 대한 중대문제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었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쫒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12:31~32, 14:30) 하시었다.
이 말씀은 당신의 십자가로써만이 「이 세상 임금이 쫒겨 나리라」하신 것이다.(계12:5~9, 요12:31~32 비교) 즉 사단의 권세를 빼앗아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심으로 사단의 속박 아래서 완전히 구속하신다는 말이다.(요12:31~32, 히2:14 비교)
만일에 십자가에서 흘리신 속죄제물로 말미암아 백성의 죄를 사단이 쓰지 않으면 사단은 지금까지 지구의 대표로 하늘 장자 총회에 참석할 것이다.(욥1:6~12, 2:1~6, 계12:10 비교)
그러나 지금은 장자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은 주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약 당시에 범한 모든 백성들의 죄까지 다 쓰고 있을뿐 아니라 해마다 구원받는 모든 사람의 죄까지 그리스도의 희생의 보혈로 씻어 사단에게로 돌리게 되므로 일년동안 지은 죄를 완전히 사함을 받고 우리는 그날에 새 심령으로 하늘 장자 총회에 참석하게 되는 것이다.(히10:19~22, 12:22~24 비교)
혹은 생각하기를 믿고 기도하면 죄가 다 없어지는 줄 안다. 그러나 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는 항상 살아있다.우리 죄가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기어 사단에게로 옮겨가지 않으면 우리는 영원히 살 수 없다. 즉, 죄의 값은 사망이기 때문이다.(롬6:23)
또는 말하기를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죄진 사람의 죄를 그 즉석에서 사해 주셨으니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 죄가 다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냐 할 것이다.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여인더러 일러 가라사대 네 죄 사함을 얻었다」(눅5:20, 7:48) 하신 말씀은 당신의 몸이 성전이 되신고로 속죄 제물을 드리시는 날까지 그들의 죄가 주님의 몸으로 옮겨진것 뿐이다.
만일에 그 당시에 주님의 말씀으로 죄가 완전히 없어진다면 십자가에 달리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속죄 제물이 되신 것이다.(롬3:24~26) 예수님은 우리의 대제사장도 되시고 대속죄제물도 되사 우리의 죄 값으로 십자가를 지심으로 당신의 보혈로 정결케 된 사람의 죄를 사단에게로 넘겨주시는 대언자가 되신 것이다.
죄는 근본 사단에게서 나왔는데 주님께서는 우리의 대언자로써 그 죄를 죄의 창조자 사단에게로 도로 돌려 보내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지상 성소의 대제사장이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아사셀의 수염소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넘겨주는 의식과 같은 것이다.
그런고로 옛날에는 유월절을 지킴으로 모든 신들에게 심판을 내리고(출12:12, 민33:3~4, 왕하23:21~24, 대하30:1~5, 31:1 비교) 당신의 백성들에게는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이며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행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사단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당신의 백성들을 이 죄악의 땅에서 멸망의 종노릇 하는 데서 완전히 구속해 내신 것이다.(히2:14, 요12:31~32 비교)
그런고로 누구든지 이 예식에 참예하는 자마다 정결함을 받는 동시에 사단은 살인자라는 죄의 형을 해마다 쓰고 주님의 사업이 마칠 때까지 있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전15:55~56) 하였다. 사단의 계획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것은 곧 모세의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로써 사단을 멸망시키게 되는 것이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신5:7) 하신 말씀은 곧 유월절을 가리킨 것이다. 이날을 지키면 다른 신을 멸망시키는 일이 되는 동시에 우리들은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 한분만 섬긴다는 첫째 계명이 되는 것이다.
■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라
그런고로 말라기 4장 4절에 기록한 말씀은 암흑세기 1260년 동안 묻혀있던 이즈러지고 파손된 십계명을 완전 복구하라는 예언이지만 오늘날 안식일 교회에서 해석하는것 같은 그런 십계명의 복구운동은 아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의 요구는 근본 하나님의 뜻에 맞는 해석으로써 오늘날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부분을 말하는 것이다.
기록한 바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저희에게 보내리니 저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저희 아비에게 돌이키게 하리니」(말4:4~6) 하신 말씀을 연구하자면 다음과 같다.
말라기 4장을 기록하신 분이 1장, 2장, 3장을 다 기록하였으니 말라기 1장으로부터 3장까지 연구하여 보면 아비는 누구를 대하여 하신 말씀이며 자녀들은 누구를 대하여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다음 성경절로 밝혀주고 있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아들은 그 아비를 공경하고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거늘 아비된 나를 어디 공경하며 주인된 나를 어디 두려워 하였느냐」(말1:6) 하였다.
그런고로「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저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저희 아비에게 돌이키게 하리니」(말4:6) 하신 이 말씀은 엘리야의 사명을 통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을 제사장들에게 알려주고 제사장은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따라 성소 안에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절차와 규례를 정확하게 지키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오늘날에 와서는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과 교통하는 지상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공중의 학도 그 정한 때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도 그 올 때를 지키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렘8:7) 하였다.
이 말씀은 공중에 날아다니는 미물의 짐승들도 때를 알아 다니는데 내 백성들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때가 있는데 그 정한 때를 지키지 않고 저희들 마음대로 제사를 드려 내 이름을 더럽히고 더러운 떡을 내 제단에 드린다는 말씀이다.
기록한 바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니 너희가 이같이 말하는 것은 여호와의 상을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말1:7) 하였다.
이 말씀은 혹 생각하기를 부정하고 깨끗지 못한 떡을 제단에 드리는 것으로 해석할 것이다. 그러나 제물이 부정하다기보다도 하나님의 규례대로 행하지 않으므로 그 모든 제물이 부정한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제물은 다 같은 제물이지만은 이방 사람이 정한 날에 행하는 것이 곧 우상이었다.(겔11:11~12)
기록한 바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라 그 입술은 지식을 지켜 사람들이 그 입에서 율법을 구할 것이어늘 너희는 정도에서 떠나 다른 사람으로 율법에 넘어지게 하였도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파하였느니라」(말2:7~8)하였다. 레위와 세운 언약은 성소 안에서 절차를 따라 행하는 직분을 말하는 것이니 이 언약은 생명과 평강의 언약으로써 모압 평지에서 아론의 자손들에게 대대로 영원한 언약으로 주신 것이다.(말2:5~6, 민25:12~13, 사24:1~5, 사54:10절 비교)
그런고로「레위와 세운 언약을 파하였느니라」(말2:8) 하신 그 말씀은 제사장 직분으로써 규례를 따라 행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과연 오늘날 새 언약의 제사장들이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고 있다. 유월절 성찬 예식을 정한 규례대로 행할 것이어늘 구속주의 기념일을 배반하고 이방인들의 규례를 끌어들여 자기들의 마음대로 행함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히며 부정한 떡을 하나님의 제단에 드리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으로 보내주신 기별을 듣고 회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5) 하신 말씀을 연구하자면 아합왕 당시에 있었던 실지 엘리야의 경험을 살펴 볼 것이다.
그 당시에 엘리야는 무너뜨린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고 이스라엘 십이지파의 수효대로 열두 돌을 취하여 그 돌로써 제단을 쌓고 정한 시간 곧 저녁 소제를 드릴 떄에 제단 위에 제물을 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름으로 응답 받았던 것이다.(왕상18:30~38)
이와 같이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도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고 이스라엘 십이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두 돌로 제단을 쌓는 근본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회복하는 사명이다. 요한계시록 7장의 인치는 사업도 이스라엘 십이지파의 수효대로 똑같이 인을 맡게 되었으니 이 십이지파를 기록한 것은 그 수효대로 열두 돌로 제단을 쌓는 근본 하나님의 율례와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남은 백성들을 가리키는 것이다.(계7:2~8)
계시록 7장의 인치는 사업과 연결되는 에스겔 9장에도 같은 뜻을 보여주고 있다. 기록한 바 「그 중에 한 사람이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그릇을 허리에 차고 다 들어가 놋 제단 곁에 섰더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그 계신 바 그룹에서 올라 성전 문지방에 이르니 여호와께서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찬 사람을 불러 가라사대 너는 예루살렘 성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겔9:2~4) 하였다.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은 놋 제단 곁에 있을 때에 표를 두라는 허락을 받았다.
놋 제단 곁에 있었다는 것은 성소문제를 가리키는 것이다.
지금 이 날짜 규정을 증거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첫째 안식일을 정확하게 지키고자 함이요, 둘째는 지금 전하고자 하는 이 책의 모든 말씀을 연구하는데 방해를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 날짜 규정을 바로 알아야 모든 성경 구절을 오해하지 않고 순리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고로 성경에 기록된 날짜 규정을 연구하여 볼 것 같으면 다음과 같다. 예수님 당시에만 하여도 시간법을 사용하였는데 그 당시에 시간법은 다음과 같다. 아침 해 뜰때(日出)에 첫시간이 되어 저녁 해 질때(日沒)에 12시가 되었던 것이다.
즉, 오늘날 시간으로 비교한다면 오전 9시쯤이 되면 그 당시에 시간법으로 제 3시가 되고 오전 12시쯤 되면 제 6시라고 하였으며 오후 3시가 되면 제 9시라고 하였으며 오후 5시쯤 되면 제 11시라고 하였다.(개혁성경 마20:1~7, 27:45~46, 행2:15, 3:1, 10:3,9,30 비교)
그런고로 시간법이 있는 이상 첫시간이 날의 시작이 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혹 밤시간이 있는데 이 밤시간은 사도행전 23장 22절에만 볼 수 있는데 이 밤시간이 로마군법으로 사용하였을 뿐이요 그 당시에 유대인들이 보통 쓰는 말은 경(更)이라고 말씀하신 것 뿐이다.(눅12:38)
그리고 날짜 규정의 정확한 기록은 육일(六日) 창조의 역사 가운데서만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1장 3절부터 31절까지 잘 살펴봄으로 알게 될 것이다. 성경 구절들을 반절이나 한절의 기록으로 해석하여 자기의 주장을 맞추고자 함으로 크게 잘못되는 수가 많은 것이다.
기록한 말씀에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더라」(창1:5) 이 말씀만 똑떼서 해석한다면 밤사이 12시간만이 하루가 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된 말씀 중에는 그 말씀의 문맥을 따라 시작과 끝을 분별해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기록한 바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거늘 하나님이 빛을 보시니 선한지라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빛을 낮이라 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더라」(창1:3~5)
이 말씀 전부 합하여야 첫째날 일일에 발표를 하신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침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하루일과를 마치니 저녁이 되며 밤을 지낸 아침에 가서 첫째날을 발표하신것이다.
둘째날도 그와 같이 하루일과를 마친후에 저녁이 되고 밤을 지낸후 아침에 가서 둘째날에 발표하신 것이며(창1:6~8)세째날도 그와 같고 (창1:9-13) 네째날도 그와 같고 (창1:14~19) 다섯째날도 그와같고(창1:20~23) 여섯째날도 그와같이 여섯째날 낮에 하루일과를 마치고 나니 저녁이 되고 그 밤을 지낸 아침에 가서 창조일 6일을 마쳤다(창1:3~31)
혹은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기 전에 흑암(黑暗)이 먼저 있었다고 해서 그 흑암을 날짜 수에 넣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창조전 흑암을 저녁이라고 하시지 않으셨다.
저녁이라 함은 석양(夕陽)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저녁이라고 명칭을 붙일 수 있다. 만일에 창조하시기전 흑암을 저녁이라고 한다면 육일(六日)창조에 저녁이 하나가 과외로 더 있는 것이다. 육일 창조에는 낮(晝)이 여섯이요, 밤(夜)도 여섯째 마치는 때에 가서 육일 창조를 마치셨는데 창조전 흑암을 넣어 계산한다면 낮은 여섯이나 밤은 일곱 밤이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날짜 수에 넣지 않는 창조전에 있었던 흑암을 날짜 수에 넣고자 하는 것은 자기 주장을 세우고자 하는 생각뿐이다.
그런고로 마태는 주님 부활하신 첫날 새벽에 여인들이 무덤에 가던 그때에 대하여 기록하기를「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개혁성경 마태28:1절)하였다. 아침 해뜨기 전에「첫날이 되려는」하였으니 밝기전에는 완전한 첫날이 되지 않은 것을 의미한 것이다.
헬라 원어에는「이레 중 첫날로 행하는 해돋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비교해 보면「이레 중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라는말과 같은 것이다. 만일에 해 지는 때로부터 해 지는 때까지 하루가 된다면 모든 성경구절들이 하나도 맞지 않는 것이다. 이 날짜에 대한 성경구절들을 연구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월절은 성력 정월 14일 저녁이라고 하였으니(레23:5, 민9:3~5, 수5:10) 안식일 교회의 해석대로 한다면 정월 13일 해 진 후라야 14일 저녁 유월절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유월절은 정월 14일 해진 후 라고 하는 것은 성경상 분명한 것이다.
기록한 바 「양이나 염소 중에 흠 없는 일년된 숫컷을 취하여 이달 14일까지 두었다가 저녁에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양을 잡고」(출12:5~6) 하시었으니 14일 해 진 후가 유월절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시는 것이다.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내고 모든 백성들이 라암셋에서 집결해 가지고 15일 새벽에 출발하였던 것이다.(민33:3~4)
그런고로 14일 해 진 후 유월절 밤하고 이튿날 15일하고는 날이 맞지 않는 것이다. 유월절이라는 뜻은 14일 해 진 후 그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문설주에 피뿌린 집을 넘어 갔다고 하는 의미로 유월절이라고 하였으니 14일 밤을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14일 해 질 때에 양을 잡았으니 양잡는 때를 유월절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날 밤 여호와의 사자가 문설주에 피 발린 집을 넘어서 피 안발린 집에 재앙내린 때를 가리켜 유월절이라고 한 것이다.(출12:12~13)
그리고 대속죄일은 성력 칠월 십일인데 이 대속죄일은「구일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할찌니라」(레23:27~32) 하였으니 안식일 교회에서 해석하는 대로 본다면 팔일 해진 후부터 구일 저녁까지 지키라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된다면 대속죄일은 성력 칠월 십일이 아니고 구일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성경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레23:27)
■ 예수님의 시체를 장례지내는 시간
그리고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유대인들이 다 물러간 후 저물 때에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하여 장례식을 밤 늦게까지 행하였던 것이다. 기록한 바「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요19:38)
「이미 저물 때에(旣墓할 時)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니 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거늘」(막15:42~46, 마27:57 비교)「니고데모가 몰약과 침향 백근쯤 가지고 와서 유대인의 장례하는 법대로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가는 베에 그 향 재료를 넣어 쌌더라」(요19:39~40)「이에 내려 베로 싸고 바위를 파서 만든 무덤속에 뫼셔두니...이때는 예비하는 날이니 안식일이 거의 된지라」(눅23:53~54) 하였다.
유대인의 장례법으로써 세마포 사이에 향 재료를 넣어 싸자면 아무리 속히 한다 하더라도 6시간 이상 걸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조상 야곱의 시체에는 방부제를 바르는 기한이 40일이나 걸렸던 것이다.(창50:3) 화잇부인은 예수님의 시체를 장례 지낸 실정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요한은 사랑하는 주님의 시체를 가지고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했다. 그는 무정한 군사들이 함부로 예수의 시체를 거두어 불명예스러운 장지에 매장할 것을 생각하고 매우 근심하였다. 요한은 자기가 유대나라의 정치 당국자들에게서 아무런 호의도 받지 못할 것과 빌라도에게서도 별로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을 알았다. 이런 난경에 있을 때에 요셉과 니고데모가 와서 도와 주었다. 요셉과 니고데모는 둘다 산헤드린 공회의 회원이었고 또한 빌라도와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 두 사람은 세력과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의 시체를 정중하게 장사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요셉은 담대히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하였다. 빌라도는 예수의 시체를 요셉에게 주라는 공식적인 명령을 내리었다. 제자 요한이 사랑하는 주님의 귀한 유해에 대하여 매우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을 때에 아리마대 요셉은 총독의 위임장을 가지고 왔다. 니고데모는 요셉이 빌라도와 회견한 결과를 예측하고 값진 몰약과 침향을 백근 가량이나 가지고 왔다. 온 예루살렘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 죽은 때에라도 예수보다 더 존귀함을 받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정숙하고 공손하게 자기들의 손으로 예수의 시체를 십자가에서 내리었고 찔림을 받으시고 상하신 그의 시체를 주의하여 목욕시키고 피묻은 흔적을 씻기면서 그들은 동정의 눈물을 흘리었다... 그리하여 예수의 시체는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료를 넣어서 가는 베로 싼 후에 세 제자는 아직 사람을 장사하지 아니한 새 무덤으로 귀하신 저희 구주를 모셔갔다. 그리하여 찢어지고 상하신 수족을 거두고 상하신 손을 맥없는 가슴위에 접어 드렸다.」(살아남는 이들 260~261) 하였다.
위에 기록한 말씀만 보아도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인가? 요셉은 예수님이 운명하신 후에 빌라도와 회견끝에 공식적인 총독의 위임장을 받아 가지고 왔으며 니고데모는 요셉이 빌라도와 회견한 결과를 예측하고 값진 몰약과 침향을 백근가량 가지고 와서 장례지내게 하였으며 찔림을 받으시고 상하신 그의 시체를 주의하여 목욕시키고 피묻은 흔적을 씻기었다고 하였으며 니고데모가 가져온 향료를 넣어서 가는 베로 쌋다고 하였으며 온 예루살렘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 죽은 때에라도 예수보다 더 존귀함을 받은 일은 없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으며 몰약을 바르는 시간이라든가 세마포에 향가루를 넣어 싸는 시간이라든지 예수님의 시체에 목욕시킨 일이라든가 피묻은 흔적을 씻긴 그 모든 시간이며 요셉이 빌라도와 회견한 시간 등을 심각히 연구해 보면 거의 밤새도록 장례시간이 걸리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고로 장례 지내고 나니「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눅23:54)고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라온 부녀들은 그때에 돌아가 향과 기름을 예비하고 안식일에 쉬었던 것이다.(눅23:50~56, 마27:57, 막15:42~46, 요19:38~40 비교) 그런고로 사 복음을 다 대조해 보면 예수님의 시체를 밤에 장례지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금요일 해 진 후가 안식일이라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시체로 인하여 제자들에게 안식일을 범하도록 하실리가 만무한 일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체를 장례 지내는 시간이 금요일 해 진 후라는 것은 성경이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록한 바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마27:57~60) 하였으며 또는「이 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니 이미 저물 때에 아리마대 요셉이 왔으니 이 사람은 존귀한 의관이요 또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는자라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막15:42~45) 하였다.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빌라도에게 간 때는 이미 저물었을 때라고 하였다. 성경상 저물었다는 때는 해 진 후를 가리킨다.(마20:6~12, 26:20, 막14:17~18 비교) 사도 요한은 장례식이 늦게 시작된 이유를 알려주고 있으며(요19:38) 누가는 장례식이 밤새도록 걸렸다는 것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눅23:50~54) 사 복음을 다 살펴보게 되면 주님의 장례식이 어느 때에 지낸 것을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다.
■ 날의 시작
위에 기록한 모든 성경절을 비교하여 공정한 입장에서 해석해야 될 것이다. 예수님 당시의 시간법을 가지고 말한다고 해서 날의 시작이 해 뜰 때라는 말도 아니다. 날의 시작은 현대시대에 사용하는 시간을 가지고 변론할 수도 없다.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대로 하나님이 천지 창조 사업중에 빛을 내시기 바로전「빛이 있으라」(창1:3절 상단) 하신때 부터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하신 때는 미명이다. 「빛이 있으라」하심으로 밝아지기 시작된 것이다. 저녁이라 한 것은 빛이 있은 후 석양(夕陽) 일몰(日沒)을 가리켜 저녁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한날의 시작은 아침(새벽, 미명)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 반대자들의 주장
안식일 교회에서 저녁설을 주장하는 성경절은 상·하의 이유를 막론하고「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첫째 날이라」한 반절도 못되는 말을 가지고 결론을 내렸으며 또는 대속죄일인 7월 10일을 9일 저녁부터 지키라고 한 그것을 안식일 지키는 법이라고 한다.(레23:27~32)
그러나 모세는 재차 선언하기를 대속죄일 안식하는 법과 넷째 계명인 여호와의 안식일 지키는 법과 같지 않다고 하였다.(레23:38) 절기지키는 법이 각각 다르다. 유월절은 정월 14일 밤뿐이요, 대속죄일은 9일 저녁부터 10일 저녁까지이다.
그리고 느헤미야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안식일 전날에 성문을 닫았다는 것으로 저녁설을 주장한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안식일 전날 해 진 후 어두워 갈 때 성문을 닫은 것은 안식일이기 때문이 아니라 상인들이 안식일에 물건을 팔려고 금요일 저녁 늦도록 물건을 운반하기 떄문에 느헤미야가 성문을 닫고 그들을 꾸짖었던 것이다.(느13:15~21)
느헤미야는 금요일 해 지고 어두워 갈 때를 안식일이라 하지 않고 안식일 전날이라고 하였다.(느13:19) 그리고 또 하나는 안식일 저녁에 병자들이 예수님께 모여들므로 유대인의 사상은 해가 지면 안식일 지났다는 생각으로 모였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당시에 모든 병자들은 예수님께서도 안식일에도 병자들을 고친다는 소문은 다 듣고 있는 때이다. 시몬의 장모의 병을 낫게 하신 날도 안식일이었다.(막1:21,30~31)
그러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안식일 낮에는 체면상 모일 수 없어서 오후 저녁때부터 병자들은 모이기 시작하였다.(막1:29~34) 병자들이 모인 때를 성경에는「해 질 때에」(막1:32) 하였으니 그들과 같이 억측을 대자면 안식일을 범한 것이 된다. 해 진 후라고 하였으면 가하거니와 해 질 때라고 하는 것은 해가 서산에 넘어가는 무렵을 표시한다.
또는 바울이 드로아에서 이레 중 첫날 떡뗀 문제를 안식일 해 진 후 회집한 것이라고 하며 그 때를 이레 중 첫날이라고 한다.(행20:7~9) 이것은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해석이다. 전 세계의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여 수백여 종교계 중에 안식일 교인을 제외하고는 그렇게 해석하는 교회는 없다.
그 모임의 목적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행20:7) 하였다. 이 날은 안식일 해 진 후가 아니요, 일요일 아침부터 모였던 것이며 바울이 이튿날 가고자 하여 그날 저녁 늦게까지 강론을 하였던 것이다.(행20:7~11) 안식일 교인들이 그 이상 더 억측으로나마 내놓을 성경절은 없다.
그들이 무엇을 잘 아는 것 같이 헬라 원어니, 영어니해도 날짜 규정을 명백하게 해 놓은 성력은 모른다. 그들이 성력의 원칙을 알았더라면 그러한 억측은 하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출애굽기 12장 2절에 성력을 주셨는데 그 성력은 지구를 에워돌고 있는 달의 운행법을 맞추어 한달 한달 정해졌는데 매달 초 1일의 기준은 합삭(合朔) 되는 날로 정한 것인데 그날을 유대인은 월삭(月朔) 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합삭이 밤중에 들 때는 그밤을 그 전날 낮에다 부쳐 그 전날로 초 하루를 치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 밤을 지낸 낮에다 부쳐 그 다음날로 초 하루를 치느냐가 문제이다. 여기에 대해서 역세를 연구해 보기로 하자.
서기 1966년 양력 1월 22일 밤중(零時) 46분에 합삭(合朔)이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밤 자정으로 새 날의 기준을 두었기 때문에 밝아오는 새 날로 초하루를 정했고 유대력에는 그 전날인 양력 1월 21일에 성력 11월(스밧월) 초 1일 월삭이 되었으니 이는 모세때로 부터 정해져 내려온 그 역세에 판박아 놓은 것이다.
이 유대력을 연구하게 되면 밤이 어느쪽에 정해져 있는지 확인하게 될 것이다.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양성시키는 신학대학 박사들이 성력 곧, 교력조차도 모르는 그들이 진리를 반대하는 데만 눈이 뒤집혀 거짓말들을 하고 있으니 그 죄를 어떻게 할 것인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사도 당시에 있었던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가 사단에게 밟힘을 당한 이후 오늘날까지 다 밝혀지지 못하였으니 이는 첫째 성경을 이루려 하심이요, 둘째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기다리심이다. 기록한 말씀에「천하 만사가 다 기한이 있고 만가지 사무가 각각 그 때가 있나니」(전3:1) 하였으며
또는「때가 되면 나 여호와가 속히 이루게 하리라」(사60:22) 하시었다. 하나님의 뜻은 때가 되면 당신이 택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성신으로 거룩하게 하사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을 주심으로 당신의 오묘한 진리를 밝히 보게 하시는 것이다.(신29:4, 출4:10~12, 렘1:5~8, 33:2~3, 45:1~5)
그런고로 사도교회시대 이후로 교회가 사단에게 밟힘을 당한 후로 오늘날까지 당신의 백성들을 어두운 가운데 두심은 온 세상 사람들이 어두운데 살고 있으므로 어두운 것으로 전도하여 어두운데서 하나님을 열심히 더듬어 찾는 자들로 하여금 영광의 빛으로 한 계단씩 한계씩 인도하사 마지막으로 완전한 진리의 광명한 빛을 보게 하시는 것이다. 만일에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눈부실 만한 참 진리의 광선을 그대로 비출 것 같으면 빛을 감당치 못하여 돌아서 배척하는 것이다. (대쟁투 상권 164페이지)
다시 말하자면 광산속에 일하던 광부가 일하던 도중에 굴이 무너져 며칠 동안 어두운 흑암속에 있었던 사람을 구출한 즉시로 밝은 태양의 광선을 그대로 비출 것 같으면 그 사람의 눈은 광채로 인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는(봉사) 불구자가 될 위험이 있다.
그러기 때문에 흑암 속에서 구출한 즉시 광선을 보지 않도록 눈을 가리우고 어두운 지하실에 두고 그 사람의 안질에 상함을 받지 않을 정도로 때를 따라 조금씩 조금씩 광선을 넣어 주어서 근본 안질이 회복되는 때까지 때를 따라 조금씩 광선을 넣어 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1260년 동안 흑암 속에서 살던 백성들에게 사도 당시에 있었던 정오의 햇빛과 같은 그 진리를 그대로 비출 것 같으면 다 배척하고 돌아서게 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각 시대의 적합한 정도대로 진리를 한 계단씩 한 계단씩 인도하사 어느 시대든지 그 시대에 나타내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 시대에 나타내는 것이다.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람들은 각각 자기가 할 부분이 있으니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 처한 시대에 적당한 빛을 주셔서 당신의 맡기신 바 사업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다.」(쟁하 71페이지)
또는「비록 성령의 특별한 계몽을 받은 선지자일지라도 저희들에게 맡겨진 바 계시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 계시의 깊은 뜻을 받아야 할 적당한 시기에 미쳐서 공개될 것이다.」(쟁하 72페이지) 또는「주께서는 사람들에게 비상시에 특별한 진리를 주신다.
누가 감히 그것을 전하기를 거절할 수 있을까? 주께서는 그 종들로 세상에 그 은혜의 최후의 초대(招待)를 전하기를 명하신다. 저들은 잠잠할 수가 없다. 만일 저들이 잠잠하면 저들의 영혼은 위험에 빠진다. 그리스도의 사신된 자들은 결과를 염려하지 않는다. 저들은 다만 저희들의 의무를 다하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긴다.」(쟁하 461~462페이지)
또는「그러나 이 세상 마지막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 관계되는 특별한 진리가 전개되는 일은 이 세상 마지막 세대에 있을 것이다.」(증언보감 1권 356페이지) 하였다.
■ 윌리암 포이의 묵시
그런고로 기원 1844년 전에 예수 재림운동을 부르짖던 하젠포스나 윌리엄 포이 같은 사람들도 장차 있을 새로운 진리의 계단을 묵시로 보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가 묵시 중에 보매 한 큰 대(臺)가 있고 대 위에는 큰 무리가 모여 있는데 가끔 한 사람씩 그 대 밑으로 떨어지고 그 후에 백성이 또 둘째 대에 올라가는 것을 보니 거기서도 어떤 사람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으며 나중 셋째 대에는 예루살렘 성문까지 미쳤는데 또한 큰 무리가 그 위에 모여 있는 것을 보았더라」(본교회 약사 30페이지) 하였다.
그러면 이 세 층대는 무엇을 의미한 것이며 마지막 셋째 층대가 하늘 예루살렘 성문까지 미쳤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 것인가?
이 세 층대는 재림운동하던 그 당시로부터 마지막 새로운 진리가 일어나는 데까지 진리의 층대를 가리키는 것이다. 즉, 첫째 층대는 그당시 있었던 예수재림운동을 가리킨 것이요,
둘째 층대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를 가리킨 것이며
셋째 층대는 마지막 주의 재림의 길을 준비하는 새로운 진리를 가리킨 것이니 세 층대 위에 시대의 진리가 각각 진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 층대에 대하여서는 하늘 예루살렘 성전까지 미쳤다고 하였는 바 이 셋째 층대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진리는 하늘 예루살렘 성전에서 중보의 사업을 행하시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완전히 교통하는 진리의 단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와 교통할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하여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지상의 성막은 우리의 선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시는 하늘 성소를 인류가 볼 수 있도록 그 모형을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는 지상의 성소와 그 봉사로 말미암아 하늘 성소에 관한 긴요한 진리와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거기서 행하시는 주님의 봉사가 무엇임을 배울 수가 있는 것이다.」(쟁하 178,179)
또는「그런데 지상성소에서 모형적으로 행한 일은 당연히 하늘 성소에서 집행될 것이다.」(쟁하 187)
또는「저들의 마음을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하게 하는 빛을 받아야 할 것이요, 또한 믿음으로 거기서 봉사하시는 대제사장을 따라감으로 저들은 새로운 임무가 무엇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쟁하 193)
또는「예수의 중보로 말미암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속죄의 대사업을 행하시는 예수를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 뿐이니 이 봉사 를 밝히 가리키는 빛을 거절하는 자들은 그의 중보하시는 혜택을 입을 수 없는 것이다.」(쟁하 201)
또는「그러면 우리가 모형이 아닌 실제의 속죄일에 있어서 우리 대제사장의 사업을 이해하는 동시에 우리의 행하여야 할 의무를 충분히 깨달아 그대로 진실히 준행하는 것은 얼마나 더욱 요긴한 일일 것인가?」(쟁하 202) 하였다.
■ 셋째 층대와 마지막 기별
그런고로 마지막 셋째 층대에 관한 진리는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지상성소에서 행하던 삼차의 칠개 절기를 십자가로 완성시키고 동일한 하나님의 규례의 새 언약의 제도로 행하시는 예수님과 교통하는 단체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단체에 대하여 말라기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게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저희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4:5~6)하였다.
이 말씀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된 백성들간에 뜻을 알고 행함으로 교통할 수 있는 백성들을 가리키는 바 곧, 하늘 예루살렘 성문까지 미쳤다는 뜻이다.
그런고로「라오디게아」교회 안에는 이 기별을 받아들일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있는 반면에 지도자들 측에서는 맹렬히 반대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화잇부인은 이 반대자들에 대한 묵시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바른 증거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반대할 것이요... 교회의 운명이 달린 엄숙한 증거가 등한히 여김을 받고 거의 무시를 당하였다.」(증언보감 1권 77)
또는「나는 지난번 묵시 가운데서 이렇듯 과감한 참된 증인의 기별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보았다.」(증언보감 1권 406) 하였다.
오늘날까지 예언의 신을 연구하시는 여러분들은 이런 중대한 문제에는 별로 살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묵시는 그 일이 다 성취한 후에야 지금 전하는 이 새로운 진리를 받은 사람들이 깨닫고 감탄하게 될 것이다.
■ 예수 재림이 늦어진다는 핑계
그리고 혹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백성들이 준비하지 못한고로 예수 재림이 늦어진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예언하신 말씀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 재림을 사람이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영하시는 바는 일점 일획이라도 어길 수 없고 반드시 때를 따라 다 이루어질 것이다.(사14:24, 27, 45:23, 겔12:28, 합2:3)
그러나 그때가 될찌라도 교만한 자와 악한 자는 도무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기록한 바「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하나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지혜있는 자는 깨달으리라」(단12:10, 사29:14 대조) 하시었다.
성경상 악한 사람이라고 한 것은 믿지 않는 사람의 악한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고전5:9~13)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전하는 진리를 받아 연구하지 않고 오히려 진리를 배척하고 훼방하는 것 이상 더 악한 것은 없다. 성경상 악하다고 한것은 대부분 진리를 거스리는 사람들에게 해당된 말씀이다.
그런고로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은 도무지 깨닫지 못할 것이다. 교회가 오래되면 부패한 상태를 일으키게 되어 교만과 형식적 태도로 변해졌으므로 그중에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로 구원받게 하심이다.
과연 흑암 속에서 교회의 주권을 잡고 있는 지도자들이 새로운 진리의 빛을 받아들이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누구든지 빛을 받지 않는 자들은 이 빛을 반대하게 될 것인 바 이는 흑암의 세력이 빛을 싫어할 것은 빛이 밝아짐으로 흑암의 세력인 자신이 죽게되기 때문이다.(요3:19~21)
그런고로 각 시대를 따라 일어나는 새로운 진리를 멸시하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살펴보시기 바란다.
특히 주의할 것은 성경 해석이다. 성경 구절들을 억지로 해석함으로 멸망을 자처하는 것이다.(벧후3:15~16, 사28:13) 성경의 모든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이 성신의 감동하심을 입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인고로 성경해석자가 역시 같은 성신의 감동하심을 입어야 바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성경 기록할 때에 감동되었던 그 성령이 성경 구절을 해석할 때에도 그 성령이 감동되어야 그 성경 구절들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벧후1:20~21, 고전2:11~16)
즉, 내마음을 아는 이는 내자신이 더 잘아는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도 하나님의 성신 외에는 또한 아는 사람이 없고 성신으로 기록한 것을 같은 성신으로만 해석하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밝히느니라」(고전2:13) 하신 것이다.
만일에「랍비」들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은 교훈이 성경의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되었더라면 구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을 것이다.(고전2:7~8) 그런고로 옛날「랍비」들 학교와 같은 교회의 학교나 신락원 같은 학교에서 사람들이 가르치는 교훈이 신비에 싸여있는 하나님의 오묘한 진리를 꺠닫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금이나 은이나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행8:18~21)
만일에 학교에서 오묘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면 돈 주고도 살 수 있을 것이니 이는 돈만 있으면 신학교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으로 들어서는 참 진리는 침례 요한과 같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실지 교훈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요한은「랍비」들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아니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시려고 그를 온전치 못한 신학교 교사에게로 보내지 아니하시고 그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광야로 부르사 천연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법칙을 배우게 하신 것이다.
옛날 예수 초림시대나 오늘날 주의 재림시대나「랍비」들 학교나 신학교 같은데는 부패되어 교만과 형식적 교훈에 목이 곧아 새로운 진리를 전할찌라도 도무지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 새 진리를 받을 사람들
새로운 진리를 받을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령의 학교에서 실지 교훈을 받고 연단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교만심이 없는고로 겸손한 마음으로 무엇이든지 배우고자 하는 심정뿐이다. 누구든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배워지는 것이다. 그런고로 성경의 진리 말씀은 금과 안약의 원료가 되나니 누구든지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라오디게아」교회의 상태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성신은 말씀하시기를「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3:17) 하시었다.
혹은 말하기를 각 개인의 믿음을 말한 것이라고 하나 기록한 말씀은「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이 말을 써서 부치라」(계3:14) 하신 것이다. 사도 당시로부터 오늘날까지 일곱 교회시대로 나누어 내려오는 바 어느 교회시대를 막론하고 각 교회마다 잘못된 교리의 책망을 성신은 각 교회의 사자들에게 보냈던 것이다.(렘7:25~26, 암3:7~8)
마찬가지로 이「라오디게아」교회의 책망도 각 개인의 믿음을 가리킨 말씀이 아니라 이 교회의 교리를 책망하신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성경을 잘 아는고로 부족한 것이 없으며 예언의 신을 받았으니 부자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부족한 것 뿐이다.
즉,「네 곤고한 것」 네 심령이 상한 것과「가련한 것」죽게된 것과「가난한 것」믿음이 부족한 것과「눈먼 것」성신의 감동을 받지 못한고로 진리의 말씀을 분별치 못하는 것과「벌거벗은 것」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은 없는 것을 책망하신다. 이 다섯 가지의 종목을 제하여 놓으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 내가 문앞에 서서 두드리노니
그러나 이 증거의 말씀은 보시는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성신이 두드리시는 것이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성신으로 말미암아 이 진리를 깨달을 것이요, 누구든지 문을 닫으면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즉,교만은 문을 닫는 것이요, 겸손은 문을 여는 것이다.(계3:20) 이 기별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복된 기별이다.
누구든지 문을 열기만 하면 그리스도로 더불어 이 새로운 진리를 먹게 될 것이다.(겔3:1~3, 계3:20 비교) 누구든지 문을 열고 받아 들이기만 하면 그 속에서 생수가 솟아 나올 것이다. 화잇부인은 이 새로운 진리를 받아 들이기 위하여 예언의 신을 통해서 준비하라고 여러번 기록하였다.
「이 땅위에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이르기 전에 주의 백성중에 사도시대 이래 나타나지 않았던 초기의 신앙심의 재부흥이 일어날 것이다.」(예언의 신 GC 464페이지) 또는「나는 내가 본 흔들림의 뜻이 무엇인지 물어 볼 때에 이 흔들림이(라오디게아)교회의 진실한 증인의 권고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바른 증거로 인하여 일어날 것을 보았다.
이 증거는 그 받은 자의 마음에 효과를 나타낼 것이요 그로 하여금 표준을 높이고 바른 진리를 전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바른 증거를 받지 아니할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반대할 것이요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흔들림이 일어날 것이다. 그 참된 증인의 증거는 별로 주의를 받지 아니하였다.
교회의 운명이 달린 엄숙한 증거가 등한히 여김을 받고 거의 무시를 당하였다. 이 증거는 반드시 깊이 회개하게 할 것이니 이 증거를 받는 자는 이 증거를 순종하고 또한 정결함을 입을 것이다. 천사가 말하기를 귀를 기울여 들으라 하였다.」(증언보감 1권 77페이지)
또는 기록하기를「나는 지난번 묵시 가운데서 이렇듯 과감한 참된 증인의 기별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주의 백성들은 저희의 죄 가운데서 그저 졸고만 있다. 저들은 여전히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처한다.」(증언보감 1권 406페이지) 하였다.
그런고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 교회에서「라오디게아」교회에게 보내는 기별을 받아 들이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스스로 생각하기를 늦은비 성신이 내리실 때가 되면 나에게도 임재하시리라 하고 지금 보내시는 기별을 받지 아니하면 늦은비 성신받을 기회는 놓치고 마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한 모든 말씀은 다 장래일의 거울과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일이나 장래일을 알아보자면거울을 들여다 봄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전에 기록한 바는 다 우리를 교훈하려고 기록한 것이니」(롬15:4)
또는「이미 있던 일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이룬 일이 후에 다시 이루리라」(전1:9)
또는「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이미 있었고 장래일도 옛적에 이미 있었으니」(전3:15)
또는「내가 처음부터 종말을 보이고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여 가라사대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행하리라」(사46:10)
또는「대개 율법은 장차 오는 아름다운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은 아니니」(히10:1) 하였다.
옛적부터 이루어진 것은 다 지나간 것이 아니요 그일이 수차로 되풀이하여 일차, 이차, 삼차로 돌아오는 것이다.
옛날 아브라함 당시부터 내려오는 역사가 예수님까지 이르기는 수차로 되풀이 되었으니 아브라함의 일개 가정으로부터 일개 국가를 구성하고 일개 국가의 역사가 전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차례로 대강 말하자면 아브라함의 가정의 역사는 구약과 신약 전체를 표상하였고(갈4:21~31) 광야 40년 역사가 복음시대에 예수 초림으로부터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즉,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상의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밝히 보여주신 것이며 이중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1500년 역사가 또한 복음시대에 예수님 재림하시는 날까지의 거울로 밝히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무엘은 침례 요한을 표상한 것이요, 다윗왕은 예수님을 표상하여 예언되어 있으니 기록한 바「내 종 다윗이 영원토록 왕이 되리라」(겔37:24~25, 34:23, 렘30:9 비교) 하였으니 에스겔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때에는 다윗이 이미 죽어 땅속에 묻혀 있을 때이다.
그러나 에스겔은 후에 오실 예수님을 다윗의 이름으로 예언하였던 것이다.
그런고로 사무엘이 다윗을 기름부어 육신적 이스라엘 왕을 삼게 된 것은 침례 요한이 예수님께 침례를 베풀어 영적 이스라엘 왕을 삼게 될 것을 보이사 거울과 실상을 보이신 것이다.(삼상16:12~13, 마3:16~17 비교)
그리고 다윗왕의 신하 중에 아히도벨이 다윗왕을 배반하고 압살롬에게 모략을 베풀어 다윗왕을 죽이고자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스로 목매어 죽은 것 같이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팔다가 잘못을 뉘우치고 스스로 목매어 죽은 것이 거울과 실상을 이루려 하는 것이다.(삼하17:23, 마27:5)
■ 솔로몬시대는 사도시대의 예언
그런고로 솔로몬 왕은 사도시대를 표상한 것이요, 아합왕은 로마 법왕권 시대를 표상함이니 아합왕은 태양신 숭배하던 시돈왕 옛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한 일이 있으니 이 일의 실상은 순진한 그리스도 교회가 로마 다신교와 연합하고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받아들이게 될 것을 보이신 것이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다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태양신을 섬기게 되므로(계2:20, 왕상16:31, 18:7~21) 엘리야는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아합에게 증거하기를 수년간 우로가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고 그곳을 피하여 그릿 시내로 떠난 후 삼년 반 동안 비오지 아니하였던 바(약5:17~18, 왕상17:1~7) 그 비는 암흑시대 영적 진리의 성신을 표상한 것이다.
삼년 반이라 함은 날수로 1,260일인데 예언상 일일을 일년으로 이루어지게 하신다고 하였으므로(겔4:6) 즉, 1,260년을 의미한 것이다.(계12:6,14, 13:5)
그런고로 이 예언의 기간이 마칠 때로부터 갈멜산 꼭대기에서 기도하던 엘리야의 사명을 받은 마틴 루터와 같은 종교 개혁자들로 말미암아 진리의 신은 내리시기 시작하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온 세상에 햇빛과 같이 비치게 되었다.(왕상18:41~46)
그러나 아합왕의 자손들은 사마리아에서 번성해 가고 있으니 아합왕의 자손이라 함은 태양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지키는 것을 다 그의 자손으로 표상한 것이니 사마리아라 함은 솔로몬왕 후에 여로보암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고 사마리아에 있는 모든 백성들로 경배하게 하였으며 이방인들과 음행으로 더럽힌 곳이 즉 사마리아다.(왕상12:25~30, 왕하17:21~33 참고)
예수님 당시에만 하여도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과 서로 상종치 아니한 것은 그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요4:9)
그런고로 예언상 사마리아는 그리스도 교회라고 하면서도 바알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지키는 각 교회를 가리킨 것이다.
그들은 사마리아에서 번성하였으며 그들의 세력이 점점 강해질 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 그대로 그 집에 재앙을 내려 이세벨과 그 자손들이 전멸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왕상21:29, 왕하9:6~37, 10:1~28)
■ 예후의 사명과 안식일 교회
오늘날 예언의 신은 아합왕에게 두 번째 나타났던 엘리야의 사명과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을 성취시키는 예후의 사명을 겸한 것이다.(왕상21:17~29, 왕하9:30~37 비교) 예후는 이세벨과 그 자손들을 전멸시키게 될 것인 바 그들이 전멸을 당한다고 해서 육신이 멸망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들과 같이 계시지 않으심으로 구원을 받지 못하는 영적 멸망을 가리키는 것이다.
기록한 바「그러므로 선지자들로 하여금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써 저희를 죽였노니 너희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리라」(호6:5) 하였다.
그런고로 그들과 그들의 교회는 이 세상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각 시대를 따라 성신이 보내시는 새로운 진리가 증거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신이 그들과 같이 계셨으나 증인의 기별을 전하였을 때에 받지 아니하고 배척하게 되면 핑꼐할 여지없이 영적 멸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요15:22)
그런고로 엘리야와 예후의 사명을 겸한 예언의 신은 이세벨과 그의 자손들을 다 전멸시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후의 사명 가운데 부족한 것이 있으니 기록한 바「예후가 전심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며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더라」(왕하10:30~31) 하였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다 함은 솔로몬왕 말년에 솔로몬왕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은 돌이켜져 솔로몬왕이 죽은 후에 여로보암은 사마리아왕이 되고 르호보암은 유다왕이 되었다.(왕상11:7~13)
그 때에 여로보암이 생각하기를 유대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고로 백성들이 절기에 예물을 드리러 올라가면 그들의 마음이 변하여 유다왕 르호보함을 섬기게 될까 하여 금송아지 우상 둘을 만들어 놓고 백성들에게 말하기를「이는 너희 신이니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라오게 하신 자라」(왕상12:28) 하고 절기를 변개하였으므로 율법으로 말미암은 거룩한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한 그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다.
여로보암 시대에 이루어진 거울의 실상은 사도 말기로부터 교회는 세속화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율법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능력의 날들 곧 절기는 변하여 흐려지기 시작하였다. 사도들이 행하고 지키던 처음 사랑은 한 가지씩 한 가지씩 버리기 시작하였다.(계2:4~5)
오늘날 예후의 사명을 받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가 안식일은 지킨다 할찌라도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그 행세에서 돌이키지 않는 것을 책망하신 바 이 책망은 이 교회가 하나님의 진리를 떠났다는 책망이 아니라 전세대 사람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배반한 진리를 도로 찾지 않는다는 책망이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죄케 하였다함은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중대한 첫째 계명인 모든 절기를 범하고 대신 우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범죄케 하였으니 먼저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하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섬기게 한(왕상12:31~33) 이것이 여로보암에게 죄가 되었으니 예후의 사명 가운데 비록 안식일은 지킨다 할찌라도 거룩한 절기를 지키지 않는 것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죄케한 그 행세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록한 바「그러나 예후가 전심으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며」(왕상10:31) 하였다.
그런고로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부족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모든 절기를 말함이니 십자가로 완성된 하나님의 권능의 날들을 기억지 않는 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수차로 되풀이하는 거울과 실상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자세히 살펴 연구함으로써 지나간 일과 현재 일과 장래 일을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 우리들에 관한 시대는 광야 40년 역사를 마친 후 여리고 근처에서 유월절을 지키고 지상의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 같이 하늘 가나안을 향하여 준비하는 시대이다.(수5:1~15)
모세 율법에는 일년중 삼차의 칠개 절기(三次의 七개 節期)가 있는데 칠개 절기가 삼차로 조직되어 있으니「출애굽기」에는 삼차 절기에 대한 기록을「무교절(無酵節)과 맥추절과 추수절」이라고 하였으며(출23:14~17, 34:18~23)「신명기」에는 「무교절과 칠칠절(七七節)과 구려절」이라고 하였으며(신16:16~17)「역대하」에는「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帳幕節)」이라고 하였다.(대하8:13)
그러면 왜 삼차의 절기명이 각각 다른가? 이는 그 절기의 뜻을 표시하기 위하여 절기명이 두 세 가지씩 있으나 절기명이 다르다 해서 절기가 다른 것은 아니다. 즉, 맥추절과 칠칠절은 같은 절기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추수절, 구려절과 장막절은 다같은 칠월절기(七月節期)에 속한 것이다.
그리고 삼차 절기라고 해서 절기만 세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삼차의 칠개 절기가 있는데 본명과 비명을 합해서 십오개 이상의 절기명이 있고 모세율법에 들지 않는 부림절이나 수전절(修殿節) 같은 것이 있다.(에9:21, 32, 요10:22)
그리고 칠개 절기 본명은 다음과 같다.
유월절(逾越節), 무교절(無酵節), 초실절(初實節), 오순절(五旬節), 취각절, 속죄일(贖罪日), 구려절 일곱가지 절기가 삼차로 나누어져 있으니 일차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조직되어 있으며, 이차에는 초실절과 오순절이 조직되어 있으며, 삼차에는 취각절과 속죄일과 구려절이 조직되어 있다.
그리고 이 일곱가지 절기명을 다른 말로도 부르고 있는 바 무교절은 칠일절(七日節)이라고도 하며(겔45:21) 초실절을 요제절(搖祭節)이라고도 하며(레23:15, 출23:16, 34:22), 구려절을 장막절이라고도 하고 초막절(草幕節)이라고도 하는데(스3:4~6, 요7:2) 이 일곱가지 절기를 여러 모양으로 부르고 있으니 모든 절기명은 다음과 같다.
무교절, 유월절, 칠일절, 맥추절, 초실절, 요제절, 칠칠절, 오순절, 추수절, 칠일절, 구려절, 장막절, 초막절, 취각절, 속죄일 이와 같은 절기명이 있으나 삼차의 칠개절기를 이와 같은 여러 모양으로 부르고 있다.(느8:2, 14, 출23:15, 34:22, 레23:10~16, 39~41, 신16:9~10 참고)
■ 절기와 예언
여호와께서 이 삼차의 칠개 절기를 정하심은 장차 예수께서 십자가로 재림하시는 날까지 이루어 질 것을 모세의 행적으로 정하신 것인데 이 칠개 절기가 삼차로 분할되어 있으니
일차에는 유월절과 무교절이 같이 시작하나니 성력 정월 14일 저녁부터 칠일간 무교병(無酵餠) 곧 누룩 넣지 않은 떡을 어린 양의 고기와 쓴나물을 아울러 먹으며 해마다 이 날들을 기념하였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저녁에 여호와의 능력으로 애굽을 떠나 홍해바다를 건너기까지의 고난을 기억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기념하기 위하여 유월절과 무교절을 정하여 대대로 지키게 한 것이다.(출13:7~8)
이 절기에는 고난을 표시하기 위하여 쓴 나물과 무교병을 사용한 것이니 무교병을 "고난의 떡" 이라고도 하였다.(신16:3, 출12:17~18, 민9:11, 레23:5~6, 대하35:17, 막14:12)
이 절기의 실상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마지막 유월절을 잡수신 후에 그날 밤부터 고통이 시작되어 십자가를 지시고 육신이 운명하시는 때까지의 고난을 표상한 것이다. 그리고 홍해 바다에 들어간 것은 예수님이 무덤 속에 들어가실 것을 표상한 것이요, 바다에서 상륙한 것은 주님의 부활을 표상한 것이니 우리가 받고 있는 침례로 그 뜻을 보이시는 것이다.(고전10:1~2, 벧전3:21)
이차로 맥추절은 무교절 후 첫 안식일 다음날(일요일)에 맥추 중 처음 익은 열매를 한단 가져다가 제사장에게 주어 요제(搖祭)로 드리고, 그 후 칠 안식일 다음날 합 50일째 되는날 오순절에 새 소제를 드린 것이다.(레23:10~16, 출34:22, 민28:26, 신16:9~10, 행2:1)
이 절기를 정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나 홍해 바다를 건너선 날 정월 22일부터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날 3월 11일까지 합 50일이 된고로(출19:16~25, 24:1~18) 이 날들을 기억하기 위하여 맥추절을 정하여 대대로 기념하게 하였으니(출14:29~31, 19:1~2, 24:12~16)
이 일의 실상은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첫 번 들어가심으로 성신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주실 것을 보이신 것이니 예수님 부활 하신날 부터 예수님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던 날 곧 오순절까지 합50일째 되는 날이다.
모세는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아오는 것은 장차 예수님이 하늘성소에 들어가서 성신을 받아 백성들에게 주실 것을 표상한 것이다. (행2:1~4, 히9:11~12)
그리고 모세가 홍해 바다에서 상륙한 날 정월 22일부터 합 40일째 되는 날 성력 3월 초 일일에 시내산 앞에 장막을 치고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간 일이 있었으니 이 일의 실상도 예수 부활하신 후 40일째 되는날 승천하실 것을 보이신 것이다.(출19:1~7, 행1:3~9)
그런고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행한 것이 예수님은 하늘 성소에서 이루워지는 것이다.
■ 추수절과 장래 예언
삼차로 추수절을 칠월절기라고도 하는데(느8:13~14) 성력 칠월 초하룻날 취각절에 나팔을 크게 불어 대속죄일에 준비를 하고 성력 칠월 십일에 대제사장은 자기와 백성의 죄를 위하여 황소와 염소의 피로 속죄제를 드리고 일년에 한번씩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것이며 성력 칠월 십오일부터 칠일간 구려절을 지켜 모든 백성들이 산에 올라가 감람나무와 종려나무 가지를 취하여 초막을 지으며 집위에나 성전 뜰에 깔고 그안에 거하며 모세로 말미암아 지은 성막을 기념하였던 것이며 서로 도와주고 연락하며 즐거워하였다.(신16:11~15, 레23:39~43, 느8:9~18)
이 절기를 정하심은 모세가 첫번 십계명 받으러 3월 11일에 시내산 여호와 앞에 들어가(출24:15~18) 40일 동안 지내는 동안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됨으로 모세는 4월 21일에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다가 그들의 광경을 보고 들고 내려오던 십계명을 산아래로 던져 깨뜨려 버렸다.
그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중에 내란이 일어나 크게 재앙을 받아 3,000명의 사람이 사망을 당하기도 하였다.(출32:1~28)
그 후 모든 것을 정리하고 새로 마음을 수습하고 모세가 영 바깥 먼 곳에 장막을 옮겨치고 백성들은 단장품 같은 것을 다 제하여 버리고 마음을 정결케 한 후 영 바깥 회막으로 나가 여호와께 경배하였다.(출33:1~11)
모세는 여호와께 간절히 간구함으로 여호와께서 다시 은혜를 베푸사 전에 깨뜨린 석판 둘을 만들어 가지고 올라오라는 지시를 받으므로(출33:12~17) 모세는 6월 초일일에 석판 둘을 만들어 가지고 시내산 여호와 앞에 올라가 40일 동안 금식하며 지내는 동안에 여호와께서 그 석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신 것이다.
모세는 성력 칠월 십일에 그 십계명을 받아들고 내려와 모든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명하신 모든 말씀과 성막 지을 여러 가지 문제를 다 공포하고 그달 7월 15일부터 성막지을 재료 금, 은, 포목, 피물, 목재 등을 자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바쳐 풍성하게 하였다.(출35:1~39, 36:5~7)
약 7일 동안 백성들은 자진해서 노력을 다하였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을 대대로 기억하게 하시려고 모세의 행적을 따라 절기를 정하였으니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아들고 내려오던 날을 대속죄일로 정하시고 백성들이 성막지을 재료들을 바치기 시작한 날을 구려절로 정하사 칠일간 거룩하게 지켜 성막 짓던 형식을 행하여 기념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취각절을 칠월 초하룻날로 정하시게 된 것은 취각절은 대속죄일의 준비가 되는고로 칠월 초일일을 취각절로 정한 것이다.
그런고로 모세가 첫번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갈 때는 올라가던 날을 택하여 오순절을 정하셨으니 이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가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친히 십계명을 반포하셨으므로(출20:1~19,24:15~18)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가던 날을 택하여 오순절로 정한 것이다.
■ 대속죄일의 정하신 뜻
그러나 두 번째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갈 때는 모세가 산에서 40일 금식 후 십계명을 받은 그날을 택하여 백성들의 죄사함을 받는 대속죄일을 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절기는 장래일의 그림자라 모세는 시내산에서 여호와께 십계명을 받아 백성들에게 준 것은 장차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성신을 받아 백성들에게 부어주실 것을 보이신 것이다.(행2:32~33)
그러나 모세가 먼저 받았던 십계명을 깨뜨리게 된 것은 백성들이 금송아지 두 우상을 만들어 섬긴 죄로 그 십계명을 깨뜨리게 한 것 같이 예수께서 첫번으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던 오순절날에 하나님께 성신을 받아 백성들에게 부어주신 성신은 교회가 부패하여 태양신을 섬기게 되므로 그 성신을 도로 거두신 바 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줄기 빛만이 남아 내려오게 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내 종 다윗에게 한 들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니」(왕상11:36) 하신 것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범죄함으로 그 나라가 분할될 시에 하신 말씀이다.(왕상11:1~13)
그러나 이 예언의 성취가 사도시대 이후로 성취될 것을 보이신 것이다.
교회는 심한 핍박을 받고 오랫동안 사단에게 짓밟힘을 당하였다.
그리고 모세가 두 번째 시내산에 올라가 십계명을 받은 것은 장차 예수께서 두 번째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말세 복음 사업을 위하여 화잇부인에게 예언의 신의 선물을 부어주신 것이다.
그런고로 기원 1844년 10월 22일 곧 성력 7월 10일 대속죄일에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게 된 것은 모세의 행적을 이루시려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취각절도 실상으로 성취되었는 바 기원 1833년으로 부터 예수 재림운동을 일으켜 십년 동안 부르짖었으니 취각절서부터 대속죄일까지 10일인 바 예언상 10일을 10년으로 성취되게 하시려고 10년동안 재림운동으로 말미암아 큰 소리로 부르짖어 취각절을 이루어지게 하시고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던 것이다.(본교회약사 1페이지) 이 해석은 안식일 교회에서 한 말이다.
그런고로 삼차의 칠개 절기는 그 속에 진리가 무궁한 것이며 모세때로 부터 마지막까지 이루어질 것을 보이시는 것이다.
그런고로 삼차 절기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시대를 표상하사 각각 그의 권능을 나타내셨으니
첫째는 무교절이니 성부시대라고 할 수 있는 바 여호와께서 친히 행사하심으로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셨으며
둘째는 맥추절인 바 곧 성자시대라고 하나니 예수께서는 맥추(麥秋)의 처음 익은 곡식이 되사 잠자는 자의 처음익은 열매로 부활하시고(고전15:20)
승천하사 하늘 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이른비 성령을 내리사 초대교회시대의 맥추의 농작을 다 거두셨으므로
셋째는 추수절이니 성신시대라고 할 수 있는 바 이는 가을 농작의 마지막 거두는 추수 때를 가리킨 바 온 세상에 널려 있는 모든 알곡을 다 하늘 창고에 거두어 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절기는 현재까지 다 이루어졌으나 마지막 절기가 한가지 있으니 이는 장막절이다.
이 절기에는 예수 재림하실 기일 선포를 받은 후에 예수 재림 운동이 있을 것을 표상한 것이다.
옛날부터 지켜 내려오던 장막절의 마지막 성취가 마지막 예수 재림 운동이다. 화잇부인은 이 장막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장막절에는 기념하는 의미 이외에 상징의 의미도 있었다... 주께서... 알곡을 곡간에 모아 들이기 위하여 추수꾼을 보내시는 최후의 수확의 날을 예표하였다.」(PP541) 하였다.
지금 우리가 특별히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하늘 성소에서 무엇을 행하시고 계시며 지금 이 때가 어느 때인지 알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 알수 있도록 준비하셨으니 이는 모세 율법으로 말미암은 지상 성소 문제를 연구하게 됨으로 하늘 성소를 보게 되는 것이다.
모세가 장막을 지으라는 지시를 받았을 때 장차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하늘 성소 문제를 보이시고 그대로 모방하여 지키고 행하라고 하신 것이다.(히10:1, 8:1~5)
그런고로 모세가 본 하늘 성소는 그 당시 것이 아니라 장차 예수께서 세우실 하늘 장막을 보이신 것이다. 지상 성소를 연구함으로써 하늘 성소를 알게 되는 것이다.
화잇부인은 성소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지상의 성소와 그 봉사로 말미암아 하늘 성소에 관한 긴요한 진리와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거기서 행하시는 주님의 봉사가 무엇임을 배울 수가 있는 것이다.」(쟁하 179페이지)
「지상 성막은 우리의 선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시는 하늘 성소를 인류가 볼 수 있도록 그 모형을 보여 주신 것이다.」(쟁하 178페이지)
「지상 성소에서 모범적으로 행한 일은 당연히 하늘 성소에서 집행될 것이다.」(쟁하 187페이지)
「그러나 성소 문제를 연구함으로 더욱 밝은 빛을 받게 되었다.」(쟁하 200페이지)
「하늘 성소에서 사람을 위하여 하시는 그리스도의 중보사업은 구원의 경륜에 있어서 그가 십자가 상에서 죽으심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앞서가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신 그 휘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거기는 갈바리로부터 빛이 비추고 있다. 우리는 거기서 구속의 오묘함을 더욱 밝히 볼 수 있다.」(쟁하 286페이지)
「이상은 성경에 기록된 지상에 있는 유일한 성소이니 바울이 처음 언약의 성소라고 말한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 새 언약의 성소는 어떠한 것인가? 진리의 탐구자들이 다시 히브리서를 펴게되면 둘째 언약 곧 새 언약의 성소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쟁하 176페이지)
「예수께서 아버지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여셨으니 믿음으로 그에게 나아가는 모든 사람의 진실한 소망도 그의 중보하심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는 것이다.」(쟁하 286페이지) 하였다.
그런고로 성소 문제를 연구하지 않고는 구속의 경륜을 깨달을 수 없고 구속의 경륜을 깨닫지 않고는 십계명의 의의를 충만케 할 수 없다.
삼차의 칠개 절기를 따라 행하던 의문의 제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신령과 진실한 기도의 제사로 변역된 것이다.(히7:12, 8:3, 고전5:7~8, 요4:24)
■ 예수님은 몇 가지 제물이 되셨는가?
십자가는 모든 절기를 다 한꺼번에 완성시켰으니 그의 보혈은 유월절 양의 피도 되시고 제사장들을 위한 속죄 제물인 황송아지의 피도 되시고 백성들을 위한 속죄 제물인 수염소의 피도 되사 영원하신 속죄제물이 되셨으니(히13:10~12, 롬3:25)
십자가의 고난과 육신의 운명하심이 마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의 땅 애굽을 떠난 것과 같은 무교절을 이루셨으며, 초실절에 부활하심으로 맥추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어 요제(搖祭)의 제물을 이루셨으며 부활하신 후 첫 오순절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아버지께 성신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 주신 것이며(히9:11~12, 24, 6:19~20, 행2:33 비교)
주후 1844년 성력 7월 10일에 하늘 지성소에 두 번째 들어가심으로 대속죄일을 이루셨으니 십자가는 영원한 새 언약의 표가 되사 이 세상 끝날까지 기념을 행하는 것이다.(고전11:26, 사33:20, 습3:18)
모세 율법에는 이 모든 규례를「평생토록 기억하라 영원한 규례니라」(출12:14, 25, 레23:21, 신16:3) 하시었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그 예식에 참예함으로 그 예식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즉,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이라야 안식일의 참뜻을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이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은 유월절의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이며 초실절과 오순절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은 그 절기에 관한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모세 율법으로 말미암는 삼차의 칠개 절기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의 권능의 날로 변경된 것이다.
그런고로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거룩하게 지킴으로 복을 받은 것과 같이(출20:24, 습3:18~20, 스6:19~22, 말2:4~9 비교) 오늘날 우리들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하나님의 권능의 날들을 기억함으로 신령적 복을 받는 것이다.
예배하는 곳은 하늘 성소이니 이 성소안에 있는 십계명을 성신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 속에 새긴 바 됨으로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령의 전이 되는 것이다.(히12:18~22, 8:10, 고후3:3 비교)
■ 성전과 절기
어디든지 십계명이 잇는 곳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십계명을 거룩하게 하자면 성전을 거룩하게 해야 되는 것이며 성전을 거룩하게 하자면 절기를 거룩하게 지켜야 되는 것이다. (마23:16~22 참고)
혹은 생각하기를 계명을 지켜야 영생을 얻는 줄을 알면서(마19:17) 계명의 의의를 충만케 할 수 있는 절기는 깨닫지 못한다.
그의 권능의 날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며 계명의 의의를 충만케 할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 곧, 절기와 안식일을 완전히 지키면 다른 계명은 그 안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일반은 모든 절기가 십자가로 끝마친 줄은 알아도 절기가 변경된 줄은 깨닫지 못한다.
혹은 편지서를 구약성경과 같이 억지로 해석함으로(벧후3:15~16) 모든 절기가 다 폐한줄로 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을 인하여 사람의 폄론을 받지 말라 이는 다 장래일의 그림자니 그 형상은 곧 그리스도께 속하였느리라」(골2:16~17)「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 하노라」(갈4:10~11) 하신 이 모든 말씀은 모세 율법의 의문을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새 법의 절기나 안식일을 말한 것이 아니다.
만일 바울이 말한 것이 새 법의 절기나 안식일을 말한 것이라면 고린도인에게 편지하기를「그러므로 우리가 절기를 지키되」라는 언사를 쓸리가 만무한 것이다.
기록한 바「이는 다 장래일의 그림자니 그 형상은 곧 그리스도께 속하였느니라」하였으니 그리스도 안에서 행할 참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일렀으되「이미 제사의 직분이 변역한 즉 율법도 반드시 변역하리니」(히7:12) 하였으며 또는「우리의 유월절 양을 이미 죽여 제사드렸으니 그 양은 곧 그리스도시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절기를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누룩없는 떡과 같이 지성과 진실함으로 하사이다」(고전5:7~8) 하신 이 말씀을 보더라도 모형적 제도가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행할 참 제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각 그리스도 교회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모세로 말미암아 세워진 율법은 허락받은 자손이 오시는 날까지 있게 된 것이다.(갈3:17~29)
그러므로 허락받은 자손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율법을 완전히 이루었으므로 그 후로는 율법을 따라 행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옛것이 없어진 대신에 새것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면 새것이란 무엇일까?
기록한 말씀에「내가 본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도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행하게 함이라」(요13:15) 하시었고 사도바울은「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우신 바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신지라」(엡2:20) 하였다.
그러므로 옛 언약이 없어지는 대신에 새 언약을 주셨으니 곧 예수님이 지키시고 사도들이 지키신 새 언약의 절기들을 말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행하신 것 외에 또는 사도들이 행하고 모본을 준 것 외에 모세 율법으로 들어가는 것은 옛 의문을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가 되는 것이다.(갈5:4)
우리가 새 법으로 행하여야 할 상세한 문제는 이 책에 기록한「새 언약의 제도」란 문제를 연구하면 알게 될 것이다.
■ 사도시대의 형편
그런고로 그 모든 편지서를 자세히 알아보자면 그 당시의 형편을 먼저 알아야 하나니 그 당시에만 하여도 예수를 믿는 유대인들은 할례까지라도 다 행하고 지상 성소 안에서 모형적 의식을 그대로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행11:1~18, 15:1~21, 16:3, 21:21~26)
그러나 그 후 이방에 전도가 시작됨으로 부터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할례 받는 것과 모세율법의 모든 제도를 그대로 행할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다.
골로새와 갈라디아 교회에 편지한 내용을 알아보자면 사도 당시의 형편을 연구함으로 알게 되나니 그 당시 이른비 성신 내리시던 오순절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적과 기사가 나타남으로 많은 유대인들을 놀라게 함으로 수천명의 유대인들이 침례를 받고 입교한 무리 중에는 묵은 누룩도 많이 있었으니 즉, 전의 풍속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에 대하여 기록하기를「가만히 들어온 자」라고도 하고「적 그리스도」라고도 하였다.(갈2:4, 유1:4, 행15:24) 그들이 골로새와 갈라디아와 그외 여러 교회에 찾아가서 할례를 행하고 율법에 기록한 대로 다 의문의 제도를 그대로 행하고 지켜야 구원이 있다고 한 사람이다.(행15:1~5)
그들로 인하여 이방인들이 혼잡한 상태를 일으켜 마음이 각각 분산되어 타락된 일도 있었으며(갈3:1~4) 이 소식을 들은 사도들이 할례 문제로 적지 않은 변론과 토론이 있었던 다음에 다시 결안해서 위로의 편지까지 보낸 일도 있었다.(행15:5~7, 23~31)
그런고로 골로새와 갈라디아 교회에 전한 바울의 편지는 모세 율법대로 온갖 행세를 다 행하고 할례까지 받아야 구원이 있다고 하는 자들의 주장을 물리쳤던 것이다.(행15:5)
새 법으로 행하는 절기를(롬2:25~29) 만일에 그 모든 편지로 인하여 다 폐한 것이라면 지금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도 폐한 것이 된다.
기록한 바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을 인하여 사람의 폄론을 받지 말라」(골2:16) 하였으니 이 말씀을 본다면 안식일도 폐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안식일도 구약시대로 본다면 의문에 속한 율법이기 때문이다.
매 안식일에 의문의 제도를 따라 양 두 마리로 조석에 번제를 드렸으며 이 번제는 매일 드리는 상번제 외에 매 안식일에 의문의 제도를 행하였던 것이다.(민28:9~10, 대하2:4, 겔46:4~5 참고)
그리고 매 안식일마다 진설병을 갈아드렸던 것이다.(레24:8, 대상9:32)
그런고로 레위기 23장 2절 3절에 보면 안식일도 절기라고 한 것이다.
그런고로 모든 선지자들이 절기와 안식일을 연결적으로 기록하였는 바 느헤미야는「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느10:33) 하였으며 호세아는「그 모든 희락과 명절과 월삭과 안식일과 및 모든 절기를」(호2:11) 하였으며 역대상 23장 31절에는「또 안식일과 초하루와 절기에 모든 번제를 여호와께 드릴새」하시었으니 이 모든 말씀을 대조해 보면 골로새 2장 16절에 기록된 안식일이 절기의 안식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넷째 계명의 안식일이다.
이 안식일을 모형의 예식 곧, 옛 언약을 따라 행하지 말고 신령적 새 언약의 제도로 행하라는 말씀이다.(히7:12, 고전5:7~8)
■ 옛 선지자들은 무엇을 증거하였는가?
그런고로 옛 선지자 이사야는 기록하기를「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너의 눈이 예루살렘은 안전한 처소됨을 보리니 옮기지 못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원히 빠지지 아니하며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찌라」(사33:20) 하였으며
또는「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저희는 네게 속한자라」(습3:18) 하였다.
이 두 선지자의 예언은 지상 성소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행하실 새 언약의 제도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사33:16~22, 습3:14~20 참고)
그런고로 우리는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행하심을 따라 신령적 진실한 기도의 제사를 올려 주님과 완전히 교통하여야 되는 것이다.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저들의 마음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하게 하는 빛을 받아야 할 것이요, 또한 믿음으로 거기서 봉사하시는 대제사장을 따라감으로 저들은 새로운 임무가 무엇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쟁하193)
또는「예수의 중보로 말미암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속죄의 대속사업을 행하시는 예수를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들 뿐이니 이 봉사를 밝히 가리키는 빛을거절하는 자들은 그의 중보하시는 혜택을 입을 수 없는 것이다」(쟁하 201) 하였다.
이 말씀은 지상 성소의 제도를 따라 행하는 것이 곧 하늘 성소 제도를 따라 행하게 되리라는 말씀이다.
그런고로 삼차의 칠개 절기를 연구하여 지상 성소의 제도를 보고 그 규례대로 행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따라 완전히 교통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절기뿐만 아니라 할례까지도 아주 폐한 것이 아니다.
육신의 할례가 신령적 그리스도의 할례로 변경된 것이니 기록한 바「또 그 안에서 너희가 할례를 받았으니 이는 손으로 한 할례가 아니요 정욕의 몸을 벗어난 것이니 그리스도의 할례니라」(골2:11~12) 하였다.
침례는 육신의 할례가 변하여 마음의 할례가 된 것이다.
옛날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육신적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언약의 표가 된 것 같이(창17:9~14) 오늘날 우리가 침례를 받으므로 정욕의 몸을 벗어 버리는 믿음의 할례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된 언약과 구원 받는 표가 되는 것이다.(벧전3:21, 막16:16)
그런고로 모든 절기는 다 변경된 것이요, 한 가지라도 폐한 것은 없다.
그런고로 화잇부인은 율법의 불변성에 대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성소와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에 관한 지식을 깨달은 사람들은 저희들이 이해한 그 진리의 체계가 매우 아름답고 조화된 것에 대하여 경탄하고 기뻐하였다. 그리하여 귀중한 빛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마음이 불붙듯 하였다. 저들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즐거이 받아들이는 바 될 것을 확신하였다.」(쟁하 235)
그런고로 우리는 이「라오디게아」교회의 운명이 달린 이 중대한 성소 문제를 깊이 연구하고 완전히 그리스도와 교통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에다 생명과를 두시고 인류시조 아담과 해와로 따먹고 영생하라고 하였으나 아담과 해와가 범죄하므로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해와를 쫓아내시고 두 그룹 천사와 두루 돌며 번쩍이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다.(창3:22~24)
만일에 죄인의 손으로 생명나무에 손을 댄다면 화염검에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생명과를 잃어 버린 아담은 바울의 말한 바와 같이「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롬7:24)하고 자탄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생명과를 다시 먹을 수 있는 진리를 보이셨으니 이는 십자가에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생명과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멀리 보았던 것이다.(히11:4, 13)
그러므로 그 진리를 가인과 아벨에게 증거하였으나 가인은 그 진리를 받지 않고 자기의 의견으로 주장을 삼아 농산물로 제사하고 아벨은 순종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받아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어린 양으로 제사하였던 것이다.(창4:1~4)
이 제도가 모세 때까지 전해온 바 되었고(창8:20~22, 12:7, 15:9) 모세 때부터 하나님의 완전한 규례의 제도를 세우셨으니 모세로 말미암아 삼차의 칠개 절기를 기록하여 장차 있을 그리스도를 증거하신 것이다.(히3:5)
모세가 지상의 성막을 건축할 때 장차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서 행하실 것을 보고 그대로 만든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보이신 것은 그당시 있는 것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우실 참 장막을 묵시로 보이사 그대로 지으라고 하신 것이다.(히8:2, 5, 9:11~12, 24, 10:1 비교)
화잇부인께서도 묵시 중에 하늘 성소를 볼 때 모세가 보고 만든 법궤와 꼭같은 것으로 보고 기록하였으니「하늘에 있는 성전이 열리매 내가 하나님의 법궤를 보니 법궤 위에 두 천사가 있어 좌우편에 섰는데 저희가 법궤를 향하여 내려다보며 그 날개로는 속죄소를 덮혔더라」(본교회약사 59페이지, 출25:16~22, 40 대조) 하였다.
■ 생명과와 그룹천사
그러면 법궤 위 속죄소 양편에 두 그룹천사를 세우신 뜻은 무슨 까닭인가? 이는 영생에 들어가는 생명과가 있기 때문이다. 즉, 십계명은 아담과 해와가 따먹던 생명과 대신에 주신 것이다.
그런고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네가 영생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19:16~17) 하신 것이다.
하늘에 있는 생명과를 먹으면 영생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일단 죄로 인하여 잃어 버린 생명과는 이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형을 입기 전에는 감당치 못하기 때문에 생명과 대신에 죄인들이 자기 죄에서 구원받을수 있는십계명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이 십계명 역시 죄인의 몸으로는 받을 수 없는고로 속죄제물의 희생의 피로 정결함을 받은 후에 십계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만일에 죄인의 몸으로 법궤 곁에 가까이 가거나 부정한 손으로 법궤를 만지면 죽음을 당한 것이다.(레10:1~2, 민18:3, 삼상6:19, 삼하6:6~7 비교) 이는 하늘 생명과 나무를 지키던 두 그룹천사가 화염검을 가졌던 것과 같이 법궤를 지키는 두 그룹천사도 화염검을 가지고 법궤를 지키기 때문이다.
즉, 하늘에 생명과 나무를 지켰다는 말씀은 장차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세워질 참 장막안에 법궤를 지키는 것을 표상한 것이다.(창3:22~24, 출25:16~22, 40, 본교회약사 59페이지 비교)
그런고로 대제사장이라도 지성소에 한번 들어가려면 속죄 제물의 거룩한 피로 정결함을 받은 후에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하였던 것이다. (레16:1~34, 히9:18~28)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다 장래일의 그림자라 모세 때부터 행하여 내려오던 모형적 예식은 곧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 것이니 짐승의 피로 정결함을 입은 것이 아니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입은 것이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은 모든 인류의 죄값으로 흘리셨으니 누구든지 그 피를 힘입어서만이 지성소에 들어가 십계명(생명과)을 받게됨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다.(히10:19~20, 6:19~20, 롬3:22~25, 8:3~4 비교)
이 세상에서 아무리 의인이라도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지 않고는 영생에 들어갈 수 없다.(행4:12, 요6:48~57, 히10:19~20 비교)
그런고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각가지 절기를 지켜 십계명의 의의를 충만케 할 것이다. 절기가 없이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을 수 없다.
내가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는 것은 옛날 구약시대나 오늘날 신약시대나 절기로써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는 것이다.
그런고로 기록한 말씀에「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보였으니 사람이 만일 행하면 반드시 그로 인하여 살리라」(겔20:11, 18:9, 레18:5) 하신 것이다. 지상 성소에서 행하던 예식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 성소에서 행하게 된 것이다.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지상 성소에서 모형적으로 행한 일은 당연히 하늘 성소에서 집행될 것이다.」(쟁하 187페이지) 하였다.
만일에 절기가 폐한 것이라면 예수께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히8:3, 사33:20)
혹은 말하기를 절기와 십계명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사람은 구속의 경륜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사실은 십계명이 있음으로 성전을 건축하였던 것이며 성전이 있으므로 절기가 필요한 것이다.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모든 절기의 율례와 규례는 하나님의 첫째가는 계명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지 않으면 세상의 많은 신들중에 어느 신에게 숭배하고 있는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고 섬기게 되는 것이다.
옛날 이스라엘왕 여로보암이 백성들로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할 때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것이며(왕상12:25~33) 히스기야왕과 요시야왕은 여호와의 절기를 깨닫고 지키게 되므로 우상과 모든 산당과 신접한 자까지 다 멸하였던 것이다.(대하30:1~5, 31:1~2, 왕하 23:1~4, 21~24)
요시야왕도 여호와의 절기를 깨닫기 전에는 자기 조부 므낫세가 세운 산당과 우상들을 섬겼던 것만은 확실한 사실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참뜻을 깨닫지 못하면 자연히 우상을 섬기게 되는 법이다.
그런고로 우리가 안식일을 지킨다 할찌라도 하나님의 첫째 계명을 범하게 되면 모두가 범한 자가 되는 것이니(약2:10~12) 이 뜻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을 것이다.
모세와 예수님은 이 세상에 탄생하실 때로부터 같은 경험을 당하였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시기를 잘 알고 있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기한을 사단은 먼저 알고 있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할 모세가 탄생할 그 때를 짐작하고 바로왕의 마음을 충동시켜 히브리 백성들이 남자를 낳으면 다 죽이게 하던 그 때에 모세가 탄생되어 죽음을 당할 뻔 하였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바로의 왕궁으로 피난되었던 것이며(출1:15~22, 2:1~10) 예수님께서도 탄생하실 때에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여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안에 있는 남자는 두 살 아래로 다 죽이게 하였으나(마2:16) 모세가 바로의 궁전 안으로 피난하였던 것 같이 예수님께서도 애굽으로 피난 하시었다.(마2:14, 출2:5~10)
그런고로 사단이 아무리 날뛴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예정하신 목적은 변개할 수 없는 것이다.(사14:24~27 참고)
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내가 저희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워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신18:15~19) 하신 말씀도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행3:22~24)
그런고로 모세의 행적은 장차 예수께서 행하실 일의 거울이 되나니 모세가 백성들과 더불어 유월절을 행하고 그 날 밤으로 백성들을 거느리고 애굽을 떠나 홍해 바다까지 가는 순간에 당한 고생은 장차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같이 마지막 유월절을 잡수시고 그날 밤부터 십자가에서 육신이 운명하시는 시간까지의 고난받으실 것을 표상한 것이요, 모세가 백성들을 거느리고 홍해 바다에 들어간 것은 예수께서 무덤 속에 들어가실 것을 표상한 것이요, 바다에서 상륙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표상한 것이니, 지금 우리들이 받고 있는 침례로 그 뜻을 보이시고 있다.(고전10:1~4, 롬6:3~7, 벧전3:21 참고)
그리고 그후 성력 3월 초에 시내산에 올라간 일이 있었으니 그 날이 홍해 바다를 건넌 후 40일째 되는 날인데(출19:1~7) 예수께서도 부활 하신 후 40일째 되는 날에 승천하실 것을 표상한 것이다.
그리고 모세가 홍해 바다를 건넌 후 50일째 되는 날에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으니 이날을 곧, 오순절로 정하신 바 예수께서도 부활하신 후 50일째 되는 날에 첫 번으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하나님께 성령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주신 것이다. (히9:11~12, 6:19~20, 10:19~20, 행1:3~9, 2:1~4, 출14:29~31, 24:12~16 참고)
■ 예수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문제
그런고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은 것은 장차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성신을 받아 백성들에게 부어 주실 것을 표상한 것이다.(행2:33)
그러나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는 순간에 백성들이 우상을 만들어 섬김으로 그 십계명을 깨뜨린 바와 같이 예수께서도 사도들에게 부어주신 성신은 교회가 타락되어 태양신의 날을 지키게 됨으로 그 성신은 도로 거두신 바 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한 줄기 빛으로 오늘날까지 복음사업이 유지해 내려왔던 것이다.
기록한 바
「그 아들에게는 한 지파를 주어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한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니」(왕상11:36)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한 것이다.
그리고 그 후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오라 갔다가 40일 만에 받아 가지고 내려왔으니 이 날이 곧 성력 7월10일 곧, 대속죄일인 바 예수께서도 기원 1844년 10월 22일 곧, 성력 7월10일에 하늘 지성소에 두 번째 들어가심으로 화잇부인에게 예언의 신의 선물을 부어주심으로 실상을 이루신 것이다.
그런고로 삼차의 칠개 절기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행적을 기억하게 하심으로 장차 예수께서 행하실 일과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일까지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혹은 생각하기를 예수께서 지성소에 한번 들어가시면 재림하시는 날까지 지성소에만 항상 계시는 줄 안다.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상 성소에도 백성들을 대표하여 중보하는 대제사장이 있는데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중보사업을 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백성이 없을 때에는 중보사업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지상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이 없을 때에는 중보사업도 중단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대해서 안식일 교회에서 배운 다니엘 8장 9~11절의 예언과 같이 적은 뿔 곧, 로마 법왕권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으로 헤쳐 버렸다.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를 없애 버린 것은 곧, 다니엘 8장 11절의 말과 같이「그 성소를 허는지라」한 그 예언을 성취시킨 것이다.
그러므로 다니엘 8장 9절의 적은 뿔의 세력으로 하늘 성소는 헐린 바 됨으로 대제사장 예수님의 중보사업은 다니엘 8장 13~14절의 2,300주야의 예언기간이 마치는 날까지 중보사업은 중단되고 만 것이다.(다니엘 연구 제8과 8문 답, 해설참고)
그러므로 예수께서 오순절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 가셨지만 교회가 파괴됨으로 중보사업이 중단 되었다가 예언의 기간이 되므로 다시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중보사업을 시작하신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말의 뜻은 중보사업을 하신다는 말이다.
지성소에 들어가셨다고 해서 늘 지성소 안에 계신 것이 아니요, 지상에 있는 백성들과 교통하는 절기와 안식일에 규례를 따라 중보하시는 것이다.
그 외에는 항상 하나님 보좌곁에 좌정해 계신다.(히8:1, 12:2, 행7:55~56, 엡1:20 비교)
하늘 지성소라고 해서 하나님께서 항상 계시는 보좌가 아니다.(계20:4,11~15, 단7:9~10, 계4:1~21 참고)
하나님의 보좌와 속죄 사업하는 증거 장막과는 별도로 있다.(계8:3~4, 11:19, 15:5 비교) 하늘 지성소는 세상 법정과 같은 것이다.
재판소에는 판사, 검사가 있는 동시에 변호사가 있는 것 같이 하늘 지성소에도 만민의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 우리 죄를 위한 변호사인 예수님이 중보사업을 하시나 평시에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
예수께서 지성소 문을 닫고 나오신다는 뜻은 중보사업을 마치신다는 뜻이다.
■ 예수, 하늘 지성소에 처음 들어가신 날
혹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승천하시던 그 당시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시지 않고 바깥 성소에 계시다가 주후 1844년에 비로소 하늘 지성소에 첫 번 들어가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록한 말씀에「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히 속죄함을 이루사 지성소에 단번에 들어 가셨느니라」(히9:12) 하였으며
또는「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히10:12) 하셨으니 그당시 이미 지성소에 들어가 계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제물이 또 증거할 수 있으니「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시고」하였으니 이 제물은 대속죄일의 제물을 밝히 드러내고 있다.
염소는 백성들의 속죄 제물이요, 송아지는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권속을 위하여 드리는 속죄 제물이다.(레16:1~34)
앞 장막 곧 바깥 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속죄 제물이 필요치 않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시지 않고는 성신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주실 수 없는 것이다.
기록한 바
「하나님이 그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허락하신 성신을 아버지께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 주셨으니 너희 보고 듣는 것이라」(행2:33) 하였다.
오순절에 내려주신 성령은 예수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증거이다.
어느모로 보든지 그 당시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는 기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또는 기록한 말씀에「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 영생길이요, 휘장은 곧, 그 육체시니라」(히10:19~20, 6:19~20) 하셨는 바
「휘장은 곧 그 육체시니라」하신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그리스도의 육체로 말미암아 지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던 것이다.(마27:50~51, 히10:20) 그런고로 히브리서에 기록된 휘장은 지성소에 가리운 지성소에 휘장이 분명한 것이다.
그런고로 지상 성소에 관한 문제를 연구함으로 하늘 성소의 중요한 문제를 밝힐 수가 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묵시로 본 하늘 성소는 장차 예수꼐서 행하실 하늘 성소를 보이신 것이다.
그런고로 지상의 성소 예식을 봄으로 예수께서 행하시는 예식을 알게 되는 것이며 또는 앞에 될 일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이 알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여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였고 그리스도는 그 집을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그 집이라」(히3:5~6) 하였다.
■ 아브라함과 장래일의 예언
그리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역사 중에도 여기에 대한 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니 기록한 바「계집 종에게서 낳은 자는 육체를 따라 난 자요 자유하는 여인에게서 난 자는 허락으로 말미암아 난 자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인은 곧 두 언약이라」(갈4:22~24) 하였다.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여종 하갈의 몸에서 난 이스마엘과 자유하는 여인 사라의 몸에서 난 이삭이 있으니 두 여인은 두 언약이라고 하였는 바 하갈은 시내산에서 받은 지상 성소와 그 언약을 표상한 것이요,
자유하는 여인 사라는 하늘 성소와 새 언약을 표상하였는데 (갈4:25~26, 히8:5, 9:15 참고) 여종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 같이 하나님의 종 모세로 말미암아 시내산에서 첫 언약을 받아 지상 성소를 세운 것이며(히9:1~4) 자유하는 여인 사라의 몸에서 허락의 자손 이삭을 낳은 것 같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언약, 곧 둘째 언약을 받아 하늘 성소를 세우게 되었으니(히8:7~8) 이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과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다. 즉, 옛 언약과 새 언약이 있을 것을 예언으로 보이신 것이다.(롬9:7~9)
혹은 말하기를 둘째 언약은 모세 때 주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화잇부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언약을 둘째 언약이라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진리의 탐구자들이 다시 히브리서를 펴게되면 둘째 언약 곧 새 언약의 성소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쟁하 176페이지) 하였다.
그런고로 모세 때에 둘째 언약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도 바로 해석하지 못하고 예언의 신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허락의 자손 이삭이 탄생하기전 14년 전에 여종 하갈의 몸에서 이스마엘을 낳으니 이스마엘은 이삭이 나기까지 장자의 명분을 받아왔으니 허락의 자손 이삭이 탄생한 후로는 장자의 기업을 같이 받지 못하고 쫒겨났다.
이 모든 역사가 다 장래일에 예언이 되었으니 곧 모세로 말미암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다. (갈3:16, 4:25)
그런고로 예수님 자신도 당신은 허락의 자손 이삭이라는 것을 밝히 말씀하셨다.
기록한 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이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8:56, 창18:10 비교) 이 말씀은 곧 당신이 허락으로 말미암은 자손이라는 것을 밝히 들어내신 것이다.
이삭은 장차 오실 예수님을 표상하였으므로 이삭을 허락의 자손이라고 하신 동시에 예수님을 허락의 자손이라고 예언되어 있으니 곧, 아브라함의 허락의 자손은 하나님의 허락의 자손으로 표상된 것이다.(행3:25~26, 갈3:16, 롬9:7~9 비교)
그런고로 아브라함의 독생자를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를 제물로 바치실 것을 표상한 것이다.
그런고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고자 할 때 양으로 대신 제물을 삼게하신 것은 장차 하나님의 독생자를 참 제물로 바치시기까지 짐승을 잡아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삼차의 칠개 절기를 정하여 대대로 지켜 내려온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모리아산은 예루살렘 성터가 된 것이다.(대하3:1, 창22:1~2)
이곳에서 이삭 대신 양으로 제물로 바치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독생자 이삭으로 표시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참 제물로 바치기까지 짐승의 피로 대신해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한 것이다.
그런고로 이스마엘은 모세로 말미암는 지상 성소와 그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요,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하늘 성전과 그의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의 행적을 살펴 연구함으로 우리와 예수님과 연결할 수 있는 진리와 장차 그리스도께서 행하실 모든 문제와 예수 재림하실 기일까지 밝힐 수 있는 것이다.
처음 다윗왕이 성전을 건축하려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심으로(삼하7:1~2, 왕상8:28, 대상22:8~9)
1. 주전 1011년 솔로몬왕 제4년 2월에 첫째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솔로몬왕 제11년 8월 주전 1004년에 낙성되었으니 7년 반만에 준공된 후 424년 3삭 8일간 보전되었다가(왕상5장, 6장, 7장, 왕하2장, 3장, 4장 대상28:2~21) 주전 586년에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이 그 성전을 파괴하였다. (대하5장, 6장, 36,18~21)
2. 그다음 주전 537년에 유대 방백 세스바살이 바사왕 고레스 원년에 명령을 받아 5만명 이상 되는 백성과 성전 기명을 가지고 귀국하고, 주전 536년 2월에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일어나 일을 시작하여 정초석만 하고 15년간 중지당하고(스1:1~4, 8~11, 5:14~16, 3:7~8, 학1:15, 스4:24) 다시 주전 520년 다리오왕 2년 6월 24일에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가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어 예언함으로 그때 부터 스룹바벨과 예수아가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여 주전 516년 다리오왕 6년 12월 3일에 낙성되니 공사는 4년 5삭 9일만에 준공되었다.(스6:1~8, 14~15, 5:1~2)
그후 서기관겸 제사장이 된 에스라는 주전 457년 아닥사스다왕 7년 정월에 출발하여 5월에 도착하여(스7:7~9) 서기관겸 제사장의 직무로 성소 봉사를 행하고 백성들에게 율법을 날마다 가르쳐주며 가증한 일을 다 처벌하며 완전한 서기관의 일을 행하였다.(스7:10~12, 21, 9:1~4, 10:10~14, 느8:13)
3. 그후 아닥사스다왕 20년 7월경 주전 444년에 성전 수리와 성벽 건축하기를 시작하여 주전 432년 아닥사스다왕 32년 6월 25일에 낙성되니 공사는 12년만에 준공되고 느혜미야는 다시 왕에게로 가게 됨으로 그의 동생 하나니와 관원 하나냐에게 맡겨주고 그해 9월경에 바벨론으로 가서 수년을 지내는 동안에 공사 중에 방해하던 대적들이 대제사장들과 사돈이 되어 성전 골방들을 차지하고 있었다.(느2:1~6, 6:15, 7:1~2, 13:6~9)
그후 느헤미야가 와서 다 내어 쫓고 정결하게 하였다.
그후 주전 170년에 수리아왕 안디오커스 엠피파에스가 그 성전을 탈취한 후 168년에「주비터 올님포」우상을 세우고 신당을 삼았더니 유대 나라를 독립케 하던 유대인 마카비오가 주전 165년에 안디오커스를 반항 승리하고 성전을 수리하니 그때 부터 수전절을 세워 지키며 기념하더니(요10:22) 주전 63년에 로마대장 봄베가 또 성전을 훼파하였다.
4. 그후 헤롯왕이 주전 37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안디오커스를 죽이고 주전 20년부터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46년 후에도 준공하지 못했다가 주후 64년에야 완성하였다.(요2:19~20)
그후 주후 71년 8월에 로마대장 디도가 그 성전을 파괴시키고(눅21:5, 겔4:6~8) 그후에는 주후 136년에 로마왕 헤드리안이 쓰스신당을 그 터에 지었고, 그후 로마왕 쥴리앙이 주후 363년에 성전을 다시 세우려 하다가 정지하였고, 주후 637년에 그 터에 회회교에서 오말이란 교당을 지어 1330년간이나 지나오다가 주후 1967년 6월에 전쟁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이스라엘 쪽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면 지상성전 건축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있는가?
이는 이미 먼저 기록한 바와 같이 지나간 역사는 다 장래일의 예언이라는 것으로 기록하였다.
그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1500년 역사가 복음시대에 나타날 예언서가 되었으면 역시 지상성전 건축도 복음시대에 어떠한 예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지상성전 건축한 모든 역사가 다 장래일의 예언이라고는 할 수 없고 성경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는 것만이 장래일의 예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다 이루었다」(요19:30) 하신 그 이후에는 지상성전 건축과 복음시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상성전 건축이 장래일의 예언이 되는 성전건축은 성경에 명백히 적혀있는 솔로몬 성전과 스룹바벨 성전과 느헤미야성 건축과 헤롯왕의 성전건축이니 이 성전 건축 역사가 장래 무엇으로 예언 성취되는 것인가?
다음으로 연구해 보기로 하자.
■ 지상성전 건축은 후에 있을 복음교회
에스겔 선지자는 다윗왕을 후에 오실 예수님을 표상하여 기록하였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겔34:23)
또는「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 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라」(겔37:24~25, 렘30:9 비교)하시었다.
에스겔 선지자는 다윗왕이 죽은지 400년이 지난 후에 나온 선지자인데 그의 입을 통하여 장차 오실 예수님을 다윗의 이름으로 예언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다윗은 예수님을 표상하였으며 솔로몬 성전 건축시대는 사도시대 복음사업을 표상한 것이다.
그런고로 솔로몬왕 후에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들로 범죄케함으로 부터 계속하여 아합왕의 모든 역사가 기록되어 있으니 이 모든 역사의 예언성취도 사도시대 이후에 바알신 숭배일인 일요일을 안식일 대신으로 끌어들이기 시작하여 법왕권 통치하에 진리가 밟힘을 당한 암흑시대를 표상한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 중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던 스룹바벨의 성전 건축의 실상도 로마 법왕권 통치하에 갇혀있던 진리가 위클립과 마틴루터와의 종교개혁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복음사업을 표상한 것이다.
그런고로 스룹바벨 성전 건축 당시에도 처음에는 성전지대만 놓았다가 중지를 당하고 있었으나 새로 성전 건축을 시작한 것 같이(스4:23~24, 5:1~2, 6:14 비교) 개혁의 시초에도 위클립과 요한 허쓰같은 복음의 선지자들이 복음사업의 개혁의 기초를 잡았으나 성립은 보지 못하였으니 곧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대쟁투 상권 127~191)
그런고로 스룹바벨 성전 건축의 실상인 복음시대의 시작은 법왕권 세력의 기간인 1260년의 예언의 기간이 마치던 주후 1798년부터 1844년까지의 복음사업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느헤미야 성 건축의 실상도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두 번째 들어가시던 1844년 성력 7월 10일부터 새로운 진리로 복음사업이 시작하였으니 곧,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의 전도사업이 기원 1964년까지 120년 전도사업을 가리킨 것이다.
이 예언을 반대하는 자들의 말은 느헤미야는 성전을 건축한 일이 없고 성벽만 쌓은 것이라고 티를 잡고 반대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느헤미야가 성전을 건축하였거나 성벽을 건축하였거나 하등에 관계없는 것이다.
문제는 느헤미야 당시에 역사는 후에 있을 예언으로써 안식일 교회를 표상한 것이다. 그리고 반대자들의 말은 느헤미야가 성전은 건축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성경에는 성전 중수한 흔적이 전혀 없지 않다.(느2:8)
그런고로 느헤미야 성 건축 기간인 120년이 마치면 예수 초로당시에 46년만에 건설된 지상의 새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요2:20) 실상인 마지막 전도사업이 있게 될 것인 바 이 마지막 복음 전도사업은 말라기 4장 4절 말씀과 같이「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말4:6) 하신 말씀과 같이 모세 율법에 통달한 완전한 서기관 에스라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사 율법의 모든 법도를 가르쳐 지키게 하심으로 주의 재림의 길을 예비하실 것이다.(말4:1~6, 스7:6~12, 느8:13, 겔11:19~20 비교)
그런고로 헤롯왕의 성전 건축 46년은 마지막 예수 재림시에 있을 하늘 새 예루살렘 성전 건축이 시작될 것을 예표한 것이다.
그리고 지상 성전 건축에 대해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구속사업을 마치심으로 지상 성전 건축은 완전히 끝마치셨다.
그 후에는 지상성전 건축이 있었을지라도 복음시대에 있을 예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다.(요19:30, 마27:50~51 비교)
(옛날 지상 성전 건축은 장차 있을 각 시대 복음 사업이 나타날 예언임. 성전그림 책자 참조)
■ 년수 해석
그리고 혹은 생각하기를 구약 당시에는 성전 건축한 년수 해석의 일년을 십년으로 해석하면서 신약의 헤롯왕의 성전건축 46년은 그대로 46년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기록하였으되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을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와 믿음이 굳세지 못한 자가 다른 성경을 푸는 것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을 취하느니라」(벧후3:16) 하였다.
그런고로 구약성경은 표상적으로나 예언으로 해석할 문제가 많이 있으나 신약 성경은 실지 교훈으로써 요한복음 2장 20절에 기록된 헤롯의 성전 건축기간 46년이라는 년수 그대로 실지 년수 46년으로 해석해야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도 묵시나 주님의 비유절은 표상 적으로나 예언으로 해석할 문제가 많이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지상 성전 건축 문제와 신약의 복음사업 문제를 연결적으로 연구하게 되면 지금 이 때가 어느 때인지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년수 해석 문제에 대하여 느헤미야 성전 건축 12년을 120년으로 해석하는 이유는 어디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안식일과 십일조 제도는 같은 뜻을 표시하고 있다.
즉, 칠일 만에 당하는 안식일과 칠년 만에 당하는 안식년과 칠년 일곱번 만에 당하는 희년과 칠천년 만에 당하는 지구의 안식 천년이 있을 것을 진리로 보여 주시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는 제도를 주셨으나 수입의 십분의 일만 해석 할 것이 아니라 애굽땅 죄악 세상에서 400년 동안 지내면서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못한 그 년수의 십분지 일인 40년을 광야에서 하나님께 봉사하면서 규례와 법도를 배우게 하신 것이다.
즉, 아브라함의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가 400년 동안 괴로움을 받으리라 하신(창15:13) 이 400년의 십분지 일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께 봉사하게 하사 예언을 성취하게 하신 것이다.(신29:5)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리라 하신 뜻은 정탐하러 보낸 날 수 40일로 정하신 것으로 말씀하셨으나(민14:34)
사실은 예언을 성취시키려고 40년동안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 봉사하게 하시려고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차기까지 40년 동안 광야에 머무르게 하신 것이다.(창15:16, 레18:24~28)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온지는 400년이 아니고 430년만에 나왔으니 광야생활 40년은 십분의 일도 못되지 않느냐고 비난할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41년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갔어도 들어가던 즉시로 다 점령하지 못하고 3년이 지난 후에 본격적으로 점령이 되었고 그 후에 각 지파대로 토지 분배하였던 것이다. (수14:1~15 참고)
그러므로 그 예언대로 허락한 땅을 점령하기까지 43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가정의 역사가 또 예언의 년수를 보여주시고 있다.
사도 바울은 첫 언약과 둘째 언약에 대한 예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기록한 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하가)에게서 나고 하나는 자유하는 여인(사라)에게서 낳았다 하였으니 계집종에게 난 자는 육체를 따라 난 자요, 자유하는 여인에게서 난 자는 허락으로 말미암아 난 자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인은 곧 두 언약이라」(갈4:21~31) 하였다.
그런고로 하가와 이스마엘은 시내산에서 받은 첫 언약을 표상한 것이요 사라와 이삭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는 둘째 언약(히8:7~13) 곧, 새 언약을 가리킨 것이다.
즉, 모세로 말미암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다.
하가의 몸에서 난 이스마엘이 출생한 14년 후에 사라의 몸에서 이삭이 나고(창16:15~16, 17:24) 이삭이 탄생되기 전에는 아브라함의 장자의 반열에 들었지만은 이삭이 난 후에는 장자의 기업을 받지 못하고 쫓겨난 것 같이 허락의 자손 예수님이 탄생하심으로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하늘나라 기업을 빼앗기고 말았다.(창21:3~10, 갈3:15~29 비교)
이스마엘과 이삭 중간 사이는 15년간이 되었는데 시내산에서 첫 언약 받은 때와 둘째 언약 즉, 새 언약을 주신 기간은 약 1500년이 되었으니 이것은 1년이 백년으로 성취되었다.
그런고로 1일이 1년으로만 성취된다고 고정시킬 수 없다.
먼저 예언 성취된 것을 보고 후에 이루어질 문제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론은 폐지하고 지상 성전 건축은 복음시대에 나타날 교회를 표상한 것이다.
그런고로 지상 성전 건축기간과 복음교회 전도기간을 연결해서 계산해 볼 때 틀림없이 1년이 10년으로 예언이 성취되어 있으니 실지 예언이 성취된 것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예언의 성취로써 나타난 것 까지도 부인한다면 그 이상 더 권할 여지가 없다.
그들에게는 반대하고자 하는 심정이라 천사가 와서 말 할찌라도 듣지 않을 사람들이다.
그런고로 구약 당시에 지상 성소 건축은 후에 있을 복음사업으로 말미암아 하늘 성소를 건축할 모형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십분의 일로 모형의 시일을 정하여 두셨던 것이다.
그런고로 솔로몬왕이 건설한 성전 건축기간 칠년 반은 사도시대 복음사업 칠십 오년간 에베소 교회시대를 끝마치고 그 후부터는 점점 변하여 처음 사랑은 없어졌다.
그리고 스룹바벨 성전 건축기간 4년 6개월은 위클립과 루터와 같은 큰 개혁운동가들이 일어나 개혁의 길을 예비해둔 후 즉, 법왕권 암흑세기 1260년 기간이 마치는 기원 1798년으로부터 1844년까지 46년간 복음사업이 있을 것을 표상한 것이요, 느헤미야 성 건축기간 12년은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의 복음사업 120년으로 성취될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 당시에 있었던 헤롯왕의 성전 건축기간 46년이 마지막 예수 재림시대에 있을 새로운 진리가 전개됨으로 끝마칠 것이다.
이 새로운 진리는 티나 주름잡힘이 없는 완전한 진리가 전개되어 46년만에 지상사업은 끝마칠 것이다.
그러나 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환난의 때를 감하시리니 그 때는 택한 백성들에게도 무서운 시험이 계속되는 날들이다.(마24:21~22)
그러나 얼마를 감하실런지 지금은 알 수 없으나 헤롯성전 건축 46년이 마치기 전에 예수 탄생하셨으니 예수 재림하실 때에도 헤롯 성전 건축의 실상인 마지막 복음기간 46년이 마치기 전에 예수 재림하시게 될 것으로 생각되나 그러나 지금은 이 문제에 대해서 확실한 지시가 없어 결정지을 수가 없으므로 이 문제는 하나님의 비밀로 남겨두기로 하겠다.
그러나 그 날이 당하기전 칠년 전에 성령을 통하여 예수 재림 하실 기일을 선포하시게 될 것이다.(본교회 약사 40페이지)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또한 그러하리라」(마24:37) 하심과 같이 홍수가 내리기 칠일 전에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홍수가 내릴 날을 선포하시었다.(창7:4) 그러므로 예수 재림하실 때에도 재림하시기 칠년 전에 재림하실 기일을 선포해 주실 것이다.
그 때부터 칠년간 예수 재림 운동을 일으켜 장막절의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다.(살전5:4, 슥14:17~19) 그러나 사망의 그물이 항상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고로 예수 재림하시는 날을 기다리는 것보다 오늘의 책임을 완수하며 항사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마24:42~51)
화잇부인께서도 기일 선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또 미구에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마치 많은 물소리 같아서 우리에게 예수의 재림하실 일자와 시간을 알리시는데 살아있는 14만 4천 성도들은 그 음성을 알아 듣되 악인들은 이를 우뢰와 지진으로 알더라」(본교회 약사 40페이지)하였다.
■ 성경상 교회는 무엇인가?
그런데 복음사업을 하늘 성전 건축이라함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신 동시에 성도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에 붙은 각 지체라고 하였다.(골1:18, 엡4:15~16, 고전12:27)
그런고로 교회라 함은 지상의 건물만 가리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을 가리킴이니(엡2:20~22, 고전3:9, 16, 고후6:16, 히3:6, 벧전2:5) 우리가 다 하늘성전 건축 재료들이다.(계3:12)
그런고로 각 시대의 복음사업으로 말미암는 하늘 성전 건축은 지상에서 성도의 수가 차므로 하늘 성전이 완성되는 것이다.
지상의 건물교회는 아무리 훌륭하게 건설되었을찌라도 종말에 가서는 다 불에 소멸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하늘 성전으로 표상된 성도들은 신랑이 재림하시는 때 거룩한 신부가 되어 신랑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고후11:2, 사49:18)
그런고로 교회를 아내로 표상하는 동시에 성도들을 그의 아내로 표상하였다.
그런고로 마지막 14만 4천명은 하늘 새 예루살렘 성전 건축 재료들이다.
그 수가 차면 하늘 새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되는 것이다.(계7:1~8, 19:7~8, 21:9~11, 14:1, 3:12 비교)
화잇부인이 본 묵시 중에도 인 맞은 14만 4천 성도의 면류관에 새 예루살렘이라는 광명한 별이 있다고 하였다.(본교회 약사 41페이지)
그런고로 산 성도 14만 4천명이 구성될 시에는 하늘 새 예루살렘 성전이 준공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14만 4천명이 성전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옛날에도 각각 사람의 명칭을 따라 솔로몬이 세운 성전이니 스룹바벨이 세운 성전이니 느헤미야가 세운 성전이니 헤롯이 세운 성전이라고 한 것같이 산 성도 14만 4천명이 구성되므로 새 예루살렘 성전이 완성되는 것이다. 어느 시대든지 그 당시에 있었던 성도들이 그 당시에 성전을 건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기록한 말씀에「내가 또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로 쫓아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21:1, 사49:18 비교)하였다.
이 말씀은 새 예루살렘 성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으로 표상되어 있는 것 같이 산 성도 14만 4천명의 행실이 신부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것으로 보여주고 있다.(고후11:2, 계19:7~8 비교)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것 같이 외모로 단장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없어지지 아니할 것으로 단장하되 온유하고 단정한 성품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지극한 보배니라」(벧전3:3~4) 하였다.
마지막 살아서 승천함을 받을 14만 4천명 산 성도는 흠이 없는 거룩하고 깨끗한 세마포를 다 입어야 할 것이다.(계14:4~5)
아담 해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생명과를 잃어버린 동시에 안식일까지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런고로 그 후손들 중에 아벨, 에녹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같은 조상들은 잃어 버린 생명과와 안식일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멀리 바라보고(히11:4~14) 구원자 그리스도의 몸을 표상하는 어린 양으로 제사를 드렸으니 그 제도가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모세 때까지 내려왔던 것이다.
모세 때에 와서야 성력을 주시고(출12:1~2) 생명과 대신 유월절과 안식일과 모든 절기와 십계명을 주심으로 완전한 그리스도의 제도를 세우시고 규례를 정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그러므로 내가 저희를 인도하여 애굽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러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보였으니 사람이 만일 행하면 반드시 그로 인하여 살리라 또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저희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아」(겔20:10~12)라고 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모세 때로부터 일반이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생명의 도를 세우셨으니 이는 장차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실 그리스도의 제도를 지상성소에다 모형을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기록한 바
「대개 율법은 장차 오는 아름다운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니」(히10:1)「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형상과 그림자라」(히8:5) 하였으며
또는「그러나 아담으로 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죄와 같이 죄를 범하지 아니한 자도 사망아래 다스림을 받으니 아담은 후에 오실 자의 표적이니라」(롬5:14, 고전15:45)「그리스도께서 이르러 장래 아름다운 일의 대제사장이 되사」(히9:11) 하셨으니 후에 오실 자 예수 그리스도의 제도를 모세 때에 와서 모형으로 세워 두셨던 것이다.
■ 잃어 버린 안식일을 찾은 때
그런고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로 모세가 성력을 받기까지는 안식일을 지켰다는 기록은 신·구약 전서를 다 살펴 보아도 아담이후 모세 때까지 내려온 사람들 중에 안식일을 지켰다는 기록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에 대한 기록이 한 군데 있는 바「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켰느니라」(창26:5) 하신 말씀을 크게 곡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내 명령과 계명과」하신 이 계명을 혹 십계명을 가리켜 하신 말씀인줄 안다.
이 말씀에 대한 기록을 차례로 연구하자면 다음과 같다.
「내 말을 순종하고」라 함은「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히11:8) 하였으므로 고향을 떠나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요「내 명령을 지켰다」는 말씀은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지켰다는 말씀이요(창22:18)「계명을 지켰다」는 말씀은 안식일을 지켰다는 말씀이 아니요, 육신의 할례를 받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계명으로 주신 것이다.
모세에게는 십계명을 언약의 말씀이라고 하였는 바「여호와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시니라」(출34:28, 신5:2~3)하였으니 모세에게는 십계명이 언약의 말씀이 되었고 아브라함에게는 육신의 할례로 언약의 표를 정하시고 계명이 되게 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세워 지키게 할 언약은 이것이니 너희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언약의 표니라」(창17:9~11) 하셨으므로 아브라함에게는 이 언약의 말씀이 계명이 된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나 모세에게나 언약이 곧 계명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율례와 법도를」지켰다 하심은 그당시 행하던 제사 제도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모세 전에는 각 시대를 통하여 그 당시에 지시하신 말씀이 그들에게 계명이 되고 율례와 법도가 되었던 것이다.(창4:3~5,15, 5:24, 6:8~9, 9:3~6, 17:1~14 참고)
에덴동산에서는 선악과가 아담 해와에게 계명이 되었던 것과 같이 어느 시대를 무론하고 그 시대의 계명이 있었던 것이다.(창2:15~17)
그러나 넷째 계명의 안식일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세까지 내려온 사람들 중에 지켰다는 성경 구절들은 신·구약 전서를 통해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만일에 아브라함이 안식일을 지켰다면 지켰다는 기록이 구약 성경에 없으면 신약 성경 어느 한면 구석에라도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요1:17, 7:19) 할례는「조상(아브라함)에게서 난 것」이라고(요7:22) 하시었다.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언약을 430년 후에 세운 율법」(갈3:17) 이라고 하였으며 또는「레위의 자손이 제사 직분을 얻었을 때에 백성이 율법을 받았으니」(히7:11) 하였으며, 느헤미야는 기록하기를「시내산에 강림하시고... 계명을 주시고 거룩한 안식일을 보이시며 주의 종 모세에게 부탁하사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주시며」(느9:13~14) 하였고
모세는 말하기를「호렙산에서 우리와 언약을 세우셨은즉 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 오늘날 여기 살아있는 우리와 세우신 것이라」(신5:2~3)고 명백히 알려주시고 있는데 성경의 말씀을 부인하고 성경에 없는 말을 가지고 억측을 하니 참으로 답답하기 한이 없다.
모세는 분명하게 말하기를「이 언약은 여호와께서 우리 열조(모세 이전 조상들)와 세우신 것이 아니요」(신5:3) 하였다.
과연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고 나오기 전에는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고 하였다.
「여호와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이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을 섬긴지라」(수24:2)하였다.
만일 아브라함이 십계명을 알았더라면 왜 다른 신들을 섬겼을 것인가?
혹 생각하기를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십계명을 가르쳐 주셨을 것이라고 하겠으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다 말씀해 주시고 할례까지 명백히 가르쳐 주신 하나님이(창17:7~11) 제일 중요한 안식일이나 십계명은 왜 성경에 나타나게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께서 판단해 주시기 바란다.
혹은 말하기를 요셉이 간음죄를 알았다고 해서 요셉도 십계명을 알고 있던 것이 아니냐고 한다.
그러면 애굽의 법률로도 간음죄의 형벌을 요셉에게 내렸으니(창39:19~20) 애굽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셨다고 하겠는가?
이런 어린아이 말 같은 것은 대답하기도 곤란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인간의 도덕적 법률은 하나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이방사람들에게도 허락하사 지키게 하셨으니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연고로 하나님 앞에 호소하기를 자기는 간음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창20:4~7)
그런고로 십계명을 주심으로 살인죄나 간음죄나 도적죄를 알게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혜를 주셨고 양심을 주셨으므로 그 양심으로 모든 죄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며 또는 하나님을 알게 하였으니 모든 만물을 보아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게 하신 것이다.(롬1:19~20)
또는 말하기를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전에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고 만나의 기적이 안식일을 구별하였다고 한다.(출16:1~36)
이 말은 성경을 크게 곡해한 것이다.
십계명을 받음으로 안식일을 지켰다는 것이 아니라 성력을 받음으로 안식일을 찾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받기 전 수르 광야에 나와 마라에 와서「여호와께서 백성을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 시험하여」(출15:25) 안식일에 만나의 기적까지 나타내시게 된 것이다.
십계명을 받기 전에 마라에서「여호와께서 백성을 위하여 규례를 정하시고」「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시험하리라」(출15:25~26, 16:4, 28) 하셨던 것이다.
그런고로 아담 해와가 범죄함으로 잃어 버린 안식일은 모세에게 성력을 주심으로 안식일을 찾아 지키게 되었다.
기록한 바
「거룩한 안식일을 보이시며 주의 종 모세에게 부탁하사」(느9:14, 요1:17) 하시었으니 안식일은 모세에게 보이시고 부탁하셨고 아무 다른 사람에게 보이시거나 부탁하셨다는 기록은 없다.
■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그런고로 아담 해와가 범죄한 이후 모세까지는 아담과 같이 죄를 범하지 아니한 사람도 다 사망아래 다스림을 받은 것이다.(롬5:14~15)
모세에게 성력을 주심으로 완전한 법도를 세우사 일반이 구원받을 언약의 비석 곧, 십계명을 주셨는 바「네가 옛적에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펴신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런고로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셨느니라」(신5:15) 하셨으니 안식일도 애굽에서 나옴으로 허락하였다는 것을 밝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력을 주심으로 유월절 첫 계명을 정하시고(출12:1~7) 그 후에 다른 모든 규례와 안식일과 모든 계명을 주셨으므로(겔20:10~12) 이 세상이 마치는 날까지 성력은 폐할 수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성력을 통하여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시고 계신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부터 성력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절기를 구별하신 것이다. 제자들과 유월절을 행하심과 십자가의 고난으로 무교절을 이루어 주심과 초실절 제물 바치는 날에 부활하사 잠자는 자의 처음 익은 열매가 되심과 오순절에 첫번으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으로 하나님께 성신받아 제자들에게 부어 주심과(행2:33)
기원 1844년 성력 7월 10일 대속죄일에 하늘 지성소에 두 번째 들어가심으로 대속죄일을 이루어지게 하신 모든 역사가 다 성력을 통하여 일을 진행하신 것이다.
성력이 없이는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예수님과 우리들이 연결될 수 없다.
하늘 성소에서 모든 절차를 따라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시는 예식에 우리들의 기도가 연결되어야 허락하실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눅1:10, 계8:4)
그런고로 율법과 성력은 분리될 수 없다.
만일에 성력이 폐하였다면 율법도 폐한 것이요, 율법이 폐한 것이라면 안식일도 폐한 것이 된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성력을 주심으로 모든 율례와 법도와 안식일을 주셨기 때문이다.(겔20:10~12, 신5:1~3)
■ 주님의 보혈과 나
그런고로 그리스도의 보혈이 나에게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지상 성소에서 절기 때 짐승을 잡아 드리던 희생의 피는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보혈이 된 것이다.
지상 성소에서도 매일 드리던 제사가 있었으며 개인적 평소에 드리던 속죄 제물도 있었으나 중요한 문제는 절기에만 있었던 것이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다는 것이 그와 같다.
오늘날 우리가 그의 보혈을 의지하며 매일같이 조석으로 기도의 제사를 드리지만은 중요한 문제는 성력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절기에만 있는 것이다.
구약시대나 신약의 오늘의 시대나 행하는 법은 같은 것이다.
짐승의 피로 지상 성소에서 행하던 것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늘 성소에서 행하는 것으로 변경된 것 뿐이다.(히7:12)
우리들의 대제사장 예수께서 제사장 복을 벗는날 까지는 절차의 제도가 폐할 수 없는 것이다.
모세 율법에는 그 모든「규례와 법도를 평생토록 기억하라 영원한 규례니라」(출12:4, 신16:3, 레23:21, 31) 하시었다. 모세로 부터 내려오는 모든 선지자들이 말한 것은 다 하나님의 첫째가는 계명인 모든 절기를 가지고 경고하신 것이다.
예레미야선지자는 「공중의 학도 그 정한때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도 그 올때를 지키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렘8:7) 하였으며 호세아선지자는「내 백성은 지식이 없으므로 멸망을 받을 것이요 너는 지식을 버림으로 내가 또한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율법을 잊어버림으로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 버리리라」(호4:6) 하였으며
스바냐 선지자는「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내가 모으리니 저희는 네게 속한 자라 저희가 시온의 수치를 무거운 짐과 같이 여기는 자라」(습3:18~20) 하였다.
절기 지키는 시온성이 절기를 지키지 않음으로 큰 수치를 당한것이다.
이사야는「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너희 눈이 예루살렘은 안전한 처소됨을 보리니 옮기지 못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원히 빠지지 아니하며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사33:20, 8:20)하였다.
말라기 선지자는「너희가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말4:4~6) 하였으니 이 모든 선지자가 말한 것은 다 절기를 두고 말한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모든 제도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사단은 이것을 없이하려고 교회안에 까지라도 들어와서 반대를 일으키려고 운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 신자라도 절기는 별로 중대한 문제 같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주의 재림시기가 가까워옴으로 주의 백성 중에 주의 진리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이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새로운 진리의 성신을 받아 이 진리안에서 기쁨으로 다 하나가 될 것이다.
기록한 바「또한 성신을 너희속에 두어 너희로 하여금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반드시 내 규례를 지켜 행할 것이요」(겔36:26~28, 37:24) 하였다.
이 모든 예언은 다 그리스도로 더불어 받은 은혜안에서 행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기록한 바
「그 때에 내 종 다윗이 저희 왕이 될 것이요 저희에게 다 한 목자가 있을 것이요 저희가 또한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리라」(겔37:24~25) 하였으니
다윗은 죽어 장사한지 수백년 후 에스겔 선지자로 예언한 바「내 종 다윗이 영원토록 그 왕이 되리라」(겔37:25) 하였으니 이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혜의 왕국에서 행할 것을 예언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은혜의 법도를 사람 마음대로 폐하겠는가?
하나님의 백성은 성력(聖曆)을 따라 행할 것이요,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의 역세(曆歲)를 따라 행하게 되나니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과 사단의 백성과 구별되어 있는 것이다.(요일4:5~6)
기록한 바
「나의 율례를 행하고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할찌니 그리하면 저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요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리라」(겔11:20) 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며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기록하지 말고 인봉하여 두라」(계10:4) 하시었으니 일곱 우뢰를 영원히 봉한 대로 있을 것인가 다시 개봉(開封)이 될 것인가? 성경의 기록한 말씀 중에 뜻이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인봉하라고 하신 뜻은 개봉할 때가 있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계시록 10장 4절에 봉하라 하신 일곱 우뢰는 계시록 10장 7절에 개봉될 때를 가르쳐 주고 있다.
이 비밀은 전에 없던 새 것이 아니라 옛적부터 그 종 여러 선지자들에게 보이신 새 언약의 진리인 것이다.(계10:4, 7 비교)
성경 말씀 중에는 우뢰라는 기록이 여러 곳에 있는 바 요한복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듣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음성이 우뢰소리로 들린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가로되 내가 이미 영화롭게 하였고 또 다시 영화롭게 하리라」(요12:28)하신 음성이 들릴 때에도 요한은 그 음성을 바로 듣고 요한복음에 기록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뢰소리로 들렸던 것이다.(요12:29)
계시록에도
「하늘에서 소리가 나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계14:2)하였으니
「내게 들리는 소리는」하고 구별된 언어로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듣는 사람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그런고로 다른 사람에게는 일곱 우뢰로만 듣게 되었으나 사도 요한은 그 음성을 바로 듣고 기록하려고 하였으나 인봉하라는 명령이 있으므로 일곱 우뢰라고 기록한 것 뿐이다.
그러면 일곱 우뢰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신·구약 성경 가운데 우뢰라고 기록한 곳이 있으니 어디든지 우뢰 소리가 발하는 곳마다 하나님의 표적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 일곱 우뢰의 오묘
그러나 일곱 우뢰라고 기록한 것은 일곱에 대한 숫자의 의미가 있는 바 일곱은 완전한 숫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인식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일곱을 완전으로 변경시킨다면 일곱 우뢰가 아니라 완전한 우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디서 완전한 우뢰가 발하였는가?
이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 앞에서 발하신 우뢰가 완전한 우뢰소리가 아니라 이스라엘 총회 앞에서 발표하신 우뢰가 완전한 우뢰라고 할 수 있으니 완전한 우뢰소리가 발표된 때는 시내산 화염 중에서 모든 백성에게 우뢰같은 음성으로 언약의 말씀을 발표하신 것이다.(출19:16~19, 신5:1~5)
그런고로 일곱 우뢰는 완전한 우뢰를 말하는 바 이 우뢰를 발표하실 때에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과 삼차의 칠개 절기를 정하여 주셨는 바「시내산에 강림하시고 하늘로부터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실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주시고」(느9:13) 하였다.
그런고로 일곱 우뢰소리만 들을 것이 아니라「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계13:9, 3:22) 하셨으니 우뢰에 대한 원칙을 깊이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성경 말씀 중에는 알기 어려운 문제가 많이 있는 바 침례 요한도 자기가 선지자다 엘리야다 하지 아니하고「나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니」(요1:23) 하였다.
누구든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대한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연구한 사람은 그가 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인줄 알게 되는 것이다.(사40:3~9, 말3:1, 4:5)
예수께서도 침례 요한이 자기 제자를 예수께 보내어 물어볼 때 내가 그리스도라 하시지 않으시고「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하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한다 하라」(눅7:19~22) 하심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을 연구한 사람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사29:18, 19, 35:4~6)
이와 같이 우뢰에 대한 문제를 연구한 사람이면 일곱 우뢰가 무엇을 가리킨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시내산에서 우뢰소리가 발표할 때에도 모세는 그 음성을 분별하여 바로 들었으나 백성들은 우뢰와 번개와 큰 진동하는 소리로 들었기 때문에(출19:16~19, 20:18~19) 백성들이 두려워 모세에게 이 우뢰소리를 더 듣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계시록 10장 4절에 기록된 일곱 우뢰도 일반에게는 바로 듣지 못하게 되었으나 요한은 모세가 들은 완전한 언약의 말씀을 바로 들은 것이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
그러나 이 일곱 우뢰를 봉하게 된 것은 마치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잊어버림과 같이 만일 이 꿈을 알아내고 해몽하는 자가 없으면 바벨론에 모든 박사와 다니엘과 그의 동류 세 사람까지라도 다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와 같이 이 일곱 우뢰도 교회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진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석하지 않으면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 곧, 바알신 숭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백성들까지도 다 영혼의 멸망을 받게 될 것인 바 이는 느부갓네살 왕의 꿈이 세상 마지막 운명을 결정한 것 같이 일곱 우뢰도 마지막 교회의 운명을 결정한 중대한 문제가 되므로 왕의 꿈도 잊어 버리게 하신 동시에 일곱 우뢰도 봉하게 하신 것이다.(단2:1~6, 계10:4)
만일에 그 꿈을 잊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다니엘이 해몽할 여지없이 바벨론 박사들이 거짓으로 다 해몽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왕의 꿈을 잊어 버리게 하사 다니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사 그 꿈을 알아내는 사람이라야 해몽이 분명하다는 것을 왕으로 인정하게 하신 것과 같이(단2:9) 일곱 우뢰도 봉하게 된 것은 개봉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속에 깊은 진리를 해석 할 때 깨닫는 사람들로 하여금 확실하게 믿게 하시려고 봉하게 하신 것이다.
만일에 이 일곱 우뢰를 봉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모든 거짓 교사들이 거짓 해석으로 하나님의 뜻을 그릇되게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고로 이 일곱 우뢰가 마지막 교회의 운명이 달린 진리가 되기 때문에 봉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봉했다고 해서 원칙의 뜻과 의미를 다 봉한 것은 아니다.
일곱 우뢰를 봉하라고 하신 것은 다니엘의 묵시와 같이 정하신 기한 안에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봉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하나님의 뜻은 일곱 우뢰라고 하신중에 다 표시되어 있다.
다니엘의 묵시도 봉하여 두라고 해서 묵시의 내용까지 다 봉한 것은 아니다.
묵시의 내용은 기록되어 있으나 정한 기한 안에는 깨달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봉한 것으로 되어 있다.(단8:26, 12:4, 9)
이사야 선지자도「율법을 인봉(印封)하여 두라」하셨으니 율법이라면 누구나 다 잘아는 사실인데 율법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인봉하여 두라 하신 것은 율법 자체를 봉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중요한 문제가 정한 기한 안에는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봉하라는 것으로 되어 있다.(사8:16)
이와 같이 일곱 우뢰도 정하신 기한 안에는 깨달을 수 없기 때문에 봉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일곱 우뢰라고 하신 말씀이 의미가 없거나 뜻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일곱 우뢰만 기록하였을찌라도 정한 기한이 돌아오면 일곱 우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다만 일곱 우뢰라고만 기록하게 하신 것이다.(계22:10, 단12:9~10)
그런고로 오늘날 교회의 운명이 위급한 시기에 놓여 있는 이때 우리들은 이 문제를 깊이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 일곱 우뢰와 율법
이 일곱 우뢰에 대한 연구 재료는 옛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말씀 중에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기록한 바 「너는 이 증거의 말씀을 싸매고 율법을 인봉(印封)하여 나의 제자 중에 맡기라」(사8:16) 하셨다.
성경 말씀 중에는 짝이 없는 기록이 없다.
기록한 바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중에 하나도 빠짐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나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명하시고 그 신이 모으심이라」(사34:16) 하시었다.
그런고로 계시록 10장 4절에는「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기록하지 말고 인봉하여 두라」하시었으며 이사야 8장 16절에는「너는 이 증거의 말씀을 싸매고 율법을 인봉하여 나의 제자 중에 맡기라」(구역성경 사8:16 참고) 하시었다.
율법도 인봉하라고 하신 동시에 일곱 우뢰도 인봉하라고 하사 짝을 맞추어 연구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면 이사야 8장 16절에 인봉한 율법은 무엇을 말하는가?
이사야는 인봉하라는 율법에 대해서도 결론적으로 기록하였으니「우리의 절기 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너희 눈이 예루살렘은 안정한 처소됨을 보리니 옮기지 못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원히 빠지지 아니하며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찌라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사33:20~30) 하였다.
그런고로 시내산에서 완전한 우뢰로 발표하신 율법과 이사야 8장 16절의 인봉하라는 율법과 일곱 우뢰를 봉하라는 문제들을 연결해서 연구하게 되면 확실한 사실이 들어나는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이사야 8장 16절에 기록한 율법은 십계명만 가리킨줄 안다. 그러나 율법이자 계명이요 하나님께 속한 계명이자 절기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사야 8장 16절을 기록한 이사야는 이사야 33장 20절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율법 중에 오늘날까지 나타나지 않고 봉한 대로 있는 것은 삼차의 칠개 절기 밖에 없다. 인봉한 일곱 우뢰의 비밀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마지막으로 반복될것이다.
기록한 바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총회)을 위하여 내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말4:1~6 참고) 하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선지자가 마지막 주의 재림하실 때에 나타낼 예언도 다 절기를 말한 것이다.(참고 겔36:26, 37:24, 습3:18, 렘8:7, 겔11:20) 삼차의 칠개 절기는 일곱 우뢰가 개봉(開封)이 되기 전에는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속에 오묘한 진리는 더욱 분별치 못할 것이다.
오늘날 혹 절기에 대한 문제를 안다 할찌라도 부분적으로만 알았을 것이다. 오늘날까지 이 진리가 봉하게 된 것은 성경을 이루시려고 하신 것이다. 때가 되면「하나님의 오묘함이 반드시 이루리니 이는 그 종 여러 선지자에게 보이신 복음과 같은 것이다」(계10:7)
일곱 우뢰가 지금까지 성경 속에 감추어져 있었으므로 비밀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실상은 전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다 지키고 행하던 것인데 교회가 사단에게 밞힘을 당함으로 부터 하나님의 참된 진리가 성경속에 감추어져 때가 차기까지 봉하여 두신 것이다.(계10:4, 사8:16)
이 삼차의 일곱가지 절기는 다 모세 율법의 정한 절기라고 할 수 있으나 실상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신 새 언약의 날들과 연결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찌라도 절기와 안식일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순간에 다른 신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여호와의 거룩히 구별하신 모든 절기에」(스3:5, 사30:29)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지 사단을 섬기는 일인지 구별할 수 있는 문제는 그 모든 절기로서만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대하13:9)
그런고로 일곱 우뢰는 삼차의 칠개 절기를 가리키는 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칠개 절기
(1) 유월절 성만찬
(2) 무교절 금식기도
(3) 초실절의 실상인 부활절 기념
(4) 오순절 기도와 부흥회
(5) 취각절 기도
(6) 대속죄일 죄사함의 특별기도
(7) 장막절 전도대회
이 일곱가지 절기가 완전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그런고로 일곱 우뢰의 비밀인 삼차의 칠개 절기 속에는 하늘 성전에 관한 문제만 아는것이 아니라 장래 있을 교회문제까지 깨달을 수 있는 진리가 무궁무진한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일곱 우뢰는 봉하였으니 우리의 알 바가 아니라고 한다. 이와 같은 말은 이사야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모든 묵시는 너희에게 봉한 책의 말과 같으니 혹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말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사29:11)하였다.
성경상 지식이 가장 유식하다는 교회가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 하는 것은 이사야의 예언을 성취시키지 않는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에 가서 하신 말씀에「저희가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가르친 계명뿐이라」(사29:13)고 책망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께 속한 계명의 원칙을 깨닫고 요시야 왕과 같이「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하나님을 사랑하는 첫째되는 계명을 지켰더라면(왕하23:21~25, 마22:36~38 비교) 일곱 우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고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추측적으로 생각하기를 일곱 우뢰는 재림에 관계되는 문제라고 하여 그 문제를 깊이 연구하지 않는 것은 바리새 교인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다윗성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과 엘리야가 먼저 와야 그리스도가 오리라 하고 추측적 생각만 가지고 엘리야와 메시야에 관한 문제를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들의 생각과 맞지 않음을 침례 요한을 배척하는 동시에 그리스도를 배척하였던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갈릴리에서 날 수 없고 또는 엘리야가 와야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갈릴리 사람이라고 배척하였으며 엘리야도 오지 않았는데 어찌 그리스도가 오실 수 있느냐고 비방하였던 것이다.(참고 요7:49~52, 막9:11~13)
그러나 그들이 메시야에 대한 문제를 깊이 연구하였더라면 그리스도를 갈릴리 사람이라고 배척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갈릴리에 대해서 예언하였기 때문이다.
기록한 바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신지라 흑암중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사9:1~3) 하시었다.
이와 같이 일곱 우뢰도 깊이 연구하였더라면 주의 재림에 관한 기별이 어디서 발견될 것을 가히 짐작할 것이다.
구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 내려온 유월절을 더듬어 볼 때 제일 처음으로 애굽에서 지키고 출애굽한 역사와(출12:12~42) 광야에 나와서 성막을 다 짓고 제 2년에 유월절 지킨 역사와(출40:1~25, 민9:1~14 비교) 광야생활 40년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로 여리고 맞은편 길갈에서 지키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역사와(수5:10~15)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키지 않으므로 우상화 되었을 때 유월절을 깨닫고 지키게 되므로 우상들을 전멸시킨 요시야왕과 히스기야왕 당시의 역사와(왕하22, 23:1~25, 대하30:1~27, 31:1 비교)
바벨론 포로 중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성전을 짓고 유월절을 거룩하게 지킨 역사와(스6:14~22)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새 법으로 지킨 유월절을 볼 때(눅22:7~20, 고전11:23~26 비교) 하나님의 크신 사업이 이루어질 때마다 유월절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다.
그런고로 구약 당시에 나타난 유월절은 그림자이고 실지 유월절의 중대한 문제가 복음시대에 있는 것이다.
거울에 관한 오묘한 이치를 완전히 깨닫는다면 주님의 구속사업이 무엇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역사는 복음시대 2,000년간에 나타날 사건을 보이신 것이다.
광야 40년 역사 중에 세부적 부분을 제외하고 우선 유월절에 관한 문제만 연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즉, 출애굽 당시에 지킨 유월절은 거울이 되고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지킨 것이 실상이 되고 시내 광야에 나와서 제 2년에 유월절 지킨 것이(민9:1~14) 거울이 되고,
예수님 승천하신 후 사도들이 새 언약으로 지킨 것이 실상이 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후 가나안 땅에 들어갈 무렵에 여리고 맞은편 길갈에서 지킨 유월절은 거울이 되고 복음시대 마지막 하늘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로 남은 자손들이 지킬 유월절은 실상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고로 애굽에서 이루어진 유월절은 모세로 말미암아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하사 장래일에 거울을 비추어 주신 것이요,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믿음의 광야로 인도하사 실상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런고로 이 예식은 모든 잡신과 우상을 다 물리치고 자유의 몸으로 하나님 한 분만 따라가는 첫째 계명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특별히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지 않을 때는 반드시 다른 이방인의 규례를 받아 들이게 되는 법이다.
기록한 바
「너희가 전에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 사방에 있는 이방 사람의 규례대로 행함이라」(겔11:12) 하였으며
또는「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파니 곧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2:13) 하였으니
첫째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규례를 저버린 것이며 둘째는 사람이 스스로 만든 것 이 두 가지가 큰 죄라고 하였다.
그런고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고는 자신이 무엇을 섬기고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
우상을 섬기느냐 우상을 멸하느냐 하는 문제가 이 유월절에만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는 바「내가 이 밤에 애굽 땅에 두루 다니며 사람의 장자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을 다 치고 그 모든 신을 심판하리니 나는 여호와로라」(출12:12) 하신 말씀은 이 유월절로서만이 다른 신을 심판할 수 있는 권세를 이날에 두셨기 때문에「나 외의 다른 신을 위하지 말라」하신 첫째 계명을 정하사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대대로 이날을 지키라고 하신 것이다.(출20:2~3, 신5:6~7,출12:13~14,17 , 신16:1~6 비교)
이날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는 가장 큰 날이요, 거룩한 성일이요, 하나님의 날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날은 유대인에게 뿐만 아니라 실상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큰 날이 되었으니 이는 계명의 순서적으로 보아도 첫째되는 계명이기 떄문이다.(참고 마22:35-38, 왕하23:21~25, 신6:1~5, 출20:2~3, 13:3, 12:17, 신16:1~6 비교)
유월절은 모세로 부터 내려옴으로 모든 선지자가 큰 날이라고 증거하여 왔고 예수님께서도 크고 첫쨰가는 계명이라고 증거하셨던 것이다.
거짓 선지자의 목적은 구약시대나 신약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첫째 계명 곧 유월절을 없이 하려는 목적이다.
기록한 바
「그 선지자나 몽상자는 너희를 유인하여 애굽땅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내신 여호와 너희 하나님을 배반하고 그 명하여 행하라 하신 도에서 떠나게 하려는 자니」(신13:5~10) 하였다.
거짓 선지자는「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의 유월절만 없이하여 버리면 다른 계명은 무효가 될 뿐만 아니라 저희들은 멸망을 받는 대신에 오히려 큰 성공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큰 시험은「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 하심이다」(신13:1~3)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유월절은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행하실 것으로 말씀하셨으며(눅22:16, 히8:5) 또는「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눅22:19) 또는「내가 본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도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행하게 함이라」(요13:15) 하시었다.
이 예식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깨닫게 되는 동시에 모든 형제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같은 사랑을 맺은 근본 진리가 들어 있다.
떼는 떡은 주님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며 잔은 주님의 피를 상징한 것이다.
한 덩어리 떡과 한 잔의 포도즙을 여러 사람이 한가지로 참예한 모든 형제가 다 한 마음과 한 몸을 이루어 화목한 사랑을 맺는 오묘한 진리인 것이다.
잔은 죄사함을 위한 언약의 피요, 떡은 생명을 주시는 거룩한 제물이 된다.(요6:51~57, 고전10:16~17, 11:23~27, 마26:26~28)
예수께서 행하신 유월절은 옛 의문의 제도가 아니라 새 언약의 제도를 세우사 우리에게 본을 주셔서 행하게 하신 것이다.(눅22:19~20)
유월절 양의 고기를 먹는 대신에 당신의 몸을 상징하는 떡을 먹게 하셨으며 양의피를 제단이나 백성들에게 뿌리는 대신에 당신의 피로 상징하는 포도즙으로 성령의 전이 되는 우리의 몸을 정결케하는 새 언약의 제도를 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예식을 유월절 먹는 잔치라고 하신 것이다.(마26:17~25, 막14:12~16, 눅22:14~16)
우리는 예수께서 마지막 행사로 모본을 주신 이 유월절의 오묘하고 뜻 깊은 진리를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예식이 비록 땅에서 행할찌라도 하늘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계8:3~4, 히8:5, 12:22, 마18:18~20 비교)
예수께서 유월절 행사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 받았던 것이며(눅22:42~44)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유월절 지키고 나니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나타나서 여리고성을 칠 수 있는 작전 계획을 세워주신 것이다.
그런고로 유월절에 관한 하나님의 비밀을 사람이 능히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유월절이 아니고는 십자가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다.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신때도 역시 유월절 만찬석에서 새 계명을 주셨는 바 새 계명은 온 율법의 근본 진리를 밝히 드러 내신 것이다.
새 계명은 십자가요, 십자가는 사랑이요,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롬10:4)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율법을 세우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서로 사랑을 맺을 수 있는 오묘한 법칙을 세우신 것이다.(욥35:6~8, 막2:27)
■ 새 언약과 새 계명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하신 말씀과「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또한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거니와」(요일3:16,요15:12~14) 하였다.
그런고로 새 계명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릴만한 정도의 사랑을 맺는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내가 저희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안에 계셔 저희로 하여금 다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요17:17~23) 하신다 다~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는 것이니 이는 유월절양의 피로써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우리가 축사하는 바 축사하신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한가지로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을 한 가지로 참예함이 아니냐 떡이 한 덩이니 우리 많은 자가 한 몸이 됨은 우리가 다 한 떡을 같이 나눔이니라」(고전10:16~17, 5:7~8) 하시었다.
그의 피로 정결함을 받은 것과 많은 형제가 한 몸이 되는 것은 이 유월절 예식 뿐이다.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들이 하나가 되는 것은 오직 유월절로써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는 예식이다.
이 예식을 규례없이 이 교회에서는 이날에 행하고 저 교회에서는 저날에 행하는 것은 하나가 되는 예식이 되지 못하고 규례없이 행하는 어지러운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 예식은 규례적으로 전 세계에 있는 당신의 백성들이 다 한날에 하늘성소에서 대제사장 예수님과 연결적으로 이 예식을 행하는 것이 즉 주님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이 진리를 완전히 깨닫는다면 이 예식을 행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모든 형제가 다같이 화목한 사랑을 맺어 다같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즉, 사랑이 구원이다.(참고 요17:11, 20:23, 요일3:14~19, 갈5:14~15, 벧전4:8, 고전13:13)
유월절은 곧 사랑의 계명이다.
예수께서 새 계명을 주신 날은 유월절 성찬 예식장에서 주신 새 계명이다.(요13:34) 새 계명이라고 하신 것은 옛 계명이 변경되었기 때문에 새 계명이라고 하셨지만 사실은 출애굽 당시에 세운 옛 계명이다.(요일2:2~8, 3:24, 요6:53,56 비교)
누구든지 이 사랑의 절기를 지켜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예하기를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크신 공로를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다가 새 언약으로 굳게 세워 놓으셨으므로 유월절 떡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몸이 되는 것이며 유월절 포도즙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주님의 보혈이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유월절은 구속주의 기념일이 되는 것이며 안식일은 창조주의 기념일이 되는 것이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이 유월절 즉, 사랑의 절기로서 큰 사랑을 이루었던 것이다.
사도들은 해마다 어디로 가든지 그날이 되면 여행중이라도 지키고 행하였던 것이다.
화잇부인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에서 유월절을 당하였을 때에(행20:6~16) 행한 행적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의 신자들과 함께 무교병을 먹었다」(예언의 신 AA.390) 하였다.
무교절은 유월절과 같이 시작된다.
유월절은 다만 성력 정월 14일 저녁뿐이요, 무교절은 15일이라고 기록하였으나 사실은 14일 저녁부터 시작하여 칠일간 무교절을 지켰던 것이다.
이 절기를 정하심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저녁을 마치고 그날 새벽에 애굽을 떠나 홍해 바다를 건너기까지의 고난과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게 하신 것인데(출13:7~8) 쓴나물과 무교병은 고난을 표상한 것이니, 무교병을 고난의 떡이라고 하였다.(신16:3)
이 고난의 예식은 장차 예수께서 당하실 십자가의 고난을 예표한 것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 저녁부터 홍해바다에 들어가기까지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이 있었다.
이 고난을 해마다 기억하게 하사 장차 어떻게 이루어질 것을 보이신 것이다.
그런고로 무교절은 십자가의 고난을 표상한 것이요, 홍해 바다에 들어간 것은 예수님이 무덤 속에 들어가실 것을 표상한 것이며 홍해 바다에서 상륙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표상한 것이니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침례로 그 뜻을 표시하고 있다.
그런고로 모세는 무교절에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 광야로 인도하였으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세상 죄악의 땅(애굽)에서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믿음의 광야로 인도하게 된다.
누구든지 믿고 침례를 받으면 홍해바다를 건너 믿음의 광야로 들어간 사람이 된다.(고전10:1~4, 벧전3:21, 롬6:3~4)
그런고로 우리가 이 무교절을 지켜야 할 것은 십자가의 고난을 같이 참예하고자 함이니 이는 장차 받을 환난을 미리 맛보는고로 우리가 감당치 못할 환난을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게 되는 것이다.(눅22:43~44)
■ 주께서 금식일로 정해주심
그리고 이 예식은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교병을 먹음으로 이 절기를 지켰으며 예수께서는 이날을 금식일로 정하여 주셨던 바 말씀하시기를「신랑과 이별할 날이 이르리니 그날에 금식할 것이니라」(막2:18~22, 마9:14~15) 하시었다.
과연 하신 말씀과 같이 예수께서는 그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못하시고 제자들도 그날에 두려움과 여러 가지 근심 걱정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먹지 못하였을 것이다.
제자들이 그날에 알지 못하는 순간에 금식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하는 동시에 우리들이 행하여야 할 증거로 보이신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십자가를 다시 새롭게 하는 이날을 금식하므로 십자가의 고난을 같이 참예하여 영적 감화를 충만하게 받아야 할 것이다.
사도 당시에는 해마다 이날을 지켰으나(행20:6, 예언의 신 AA.390페이지) 신약성경 가운데 확실한 기록이 없는 것은 그 당시에 이미 다 지킨 연고로 자세한 기록은 없었을찌라도 그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은 성신의 감동을 받아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간절히 살펴볼 때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나타날 것이다.(요14:26, 고전2:10, 요7:17, 벧후1:19)
혹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무교절이 아니고 유월절날 14일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무교절은 절기의 안식일이 됨으로 죄인을 나무에 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은 크게 오해한 것이다.
왜냐하면 정월 15일은 출애굽한 날이다.(민33:3)
그날이 정식 안식할 날이라면 백성들을 괴로운 중에 출애굽 시키실리가 만무한 일이다.
그러나 유월절에는 정식 안식일이 될 뿐만 아니라 가장 큰 날이 됨으로 죄인을 나무에 달 수 없고 또 그렇게 하려고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고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유월절이 아니고 유월절 다음날 15일 무교절이었다.
정월 15일은 출애굽하던 그 날로서 죄인들의 시체를 가장 많이 장사한 날이다.(민33:3~4)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이 날에는 죄인들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은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이 받는 저주 아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다.(갈3:13, 신21:22~23 비교)
사도 당시에만 하여도 사도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유월절이 되었으므로 유월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고 기록하였다.
「잡으매 옥에 내려 군사 넷씩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지나기를 기다려 백성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행12:1~5 비교) 하였다. 주의 사자가 베드로를 옥에서 구출한 날은 유월절 밤이었다.(행12:4~9)
예수님의 부활절은 하나님의 크신 권능의 날을 기념하는 것이다.(엡1:19~20, 롬1:3~4, 행5:30~32)
혹은 말하기를 침례받는 것이 주님의 부활절 기념이라고 하나 실상은 아니다.
침례와 부활이 같은 뜻은 표시하고 있으나 행하는 예식은 같지 않은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침례의 관계가 어떻게 된 것을 연구하여 볼 것인 바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그 구름과 바다에서 다 침례를 받고」하였다.(고전10:1~4, 벧전3:21, 롬6:3~4)
그런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에서 상륙한 그날을 해마다 기념하기 위하여 맥추의 초실절을 정하여 대대로 기념하게 하신 것 같이 실상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날을 해마다 기념하게 하셨으니 이는 처음 익은 곡식을 요제의 제물을 드리는 초실절 제물의 본체로 부활하셨으므로 초실절 예식이 변하여 부활절 예식이 된 것이다.(고전15:20, 레23:10~11, 15~16)
내가 침례받은 것은 내 자신의 구원을 원함이요, 주님의 부활하신 하나님의 권능의 날을 기념하는 것은 될 수 없다.
주님의 부활을 내가 믿고 침례를 받아 내 자신의 구원받기를 원하는 것과 하나님의 권능의 날을 해마다 기념하는 것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만일에 침례가 주님의 부활절 기념이 된다면 해마다 침례를 받아야 할 것이다.
주님의 부활절을 해마다 지켜야 하는 것은 모세 율법의 초실절의 실상이 부활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침례는 육신의 할례가 변하여 마음의 할례를 받는 예식인줄 알아야 할 것이다.(골2:11~12)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할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표가 된 것 같이(창17:9~11)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침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된 표가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부활과 침례는 같은 뜻이 표시되어 있으나 침례가 주님의 부활절 기념이라고는 할 수 없다.
■ 떡을 떼어 주심으로 눈이 밝아짐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알지 못하고 있는 당신의 부활 기념에 대한 진리를 밝혀 보여주셨으니「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주시매 두 사람이 눈이 밝아 알아보더니」
또는「두 사람이 또한 길에서 만난 바와 떡을 떼심으로 예수신줄 안일을 말하더라 이 말을 할 때에 예수 친히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편안함이 있을찌어다」(눅24:30~31, 35~36) 하시었다.
이 말씀 가운데는 주님의 부활절에 관한 문제를 밝히 보여주신 것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축사하신 떡을 떼어주심으로 예수신줄 알아보게 된 것을 예루살렘까지 와서 사도들이 모인 곳에 와서 자세히 설명할 때에 예수께서 즉시로 나타나셨다.
예수께서는 이 제자 두 사람이 와서「떡을 떼심으로 예수신줄 알게 되었다」는 그 증거의 말을 전하기까지 기다리시다가 그 말이 끝마치자 즉시로 나타나셨다.
(눅24:36, 행10:41) 제자들은 그날 저녁까지도 바리새인들을 두려워하여 한곳에 모여 문을 닫고 있던 중에 엠마오에서 두 제자가 와서 특별한 진리를 전하는 중에 예수께서 친히 나타나심으로 당신의 뜻을 보이신고로 이 뜻을 깨달은 사도들은 해마다 이날을 거룩하게 기념하였던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주님의 부활절 지키라는 성경 구절이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성경 구절들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영적 눈이 어두워 그 성경 구절들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성경 구절들을 바로 볼 수 있는 문제는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버리고 다시 새로 배우고자 하는 심정 밑에서 지금 전하는 새로운 진리를 자세히 연구함으로 차츰차츰 알아보게 되는 것이며「주님 부활하신 첫날 축사하신 떡을 받음으로 두 사람의 눈이 밝아 예수신줄 알아보게 된 것과」같이 부활절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말미암아 그 성경 구절들을 바로 찾아보게 될 것이다.(눅24:30~31)
엠
마오에 가던 두 제자의 눈이 밝아진 뜻 깊은 이 성경 구절들을 별로 주의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눈이 밝아졌다는 기록은 창3장 7절과 눅24장 31절에 기록한 말씀은 짝된 성경 구절들이다.
아담과 해와는 선악과를 먹음으로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몸의 벗은 줄을 알게 되었으며 예수께서 부활하신 첫날 축사하신 떡을 떼어 주심으로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 예수신줄 알아보게 된 것은 짝이 되어 죄의 눈이 밝아진 것과 영적 눈이 밝아진 것이니 아담 해와가 선악과 따먹고 두 사람이 눈이 밝아진것은 죄의 눈이 밝아진 것이요, 예수께서 부활하신 첫날 축사하신 떡을 받은 두 사람의 눈이 밝아진 것은 영적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성경 가운데 특별한 문제는 두 사람의 증인을 세우시는 것은 확실하다는 증인을 세우는 것이니 모세 율법에는 두 사람의 증인이 없이는 인정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모세 율법을 따라 증인을 세우시기 위하여 언제든지 두 사람씩 보내시게 되는 것이다.(요8:17, 눅10:1, 24:31, 신17:6)
그런고로 누구든지 이 부활의 뜻 깊은 진리를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장차 부활에 참예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도들은 주님의 부활을 강력하게 증거한 것이다.(행1:22, 3:15, 4:33, 17:31 벧전1:3, 고후1:9~10비교)
그런고로 주님의 부활은 영원한 규례로 정하여 주신 삼차의 칠개 절기 중에 속한 맥추의 초실절 제물의 실물이 되사 잠자는 자의 처음 익은 열매로 부활하셨으므로「부활하신 후 자던 성인들이 많이 일어나 거룩한 성으로 들어간 것이다」(마27:52~53) (예언의 신 D.A 785~786페이지)
그런고로 사도 당시의 복음으로 인하여 구원받은 성도들은 다 맥추 농작의 익은 곡식이 되고 오늘에 와서는 가을 농작 마지막 추수절의 익어가는 곡식이 된 것이다.(출23:16)
오순절(五旬節)은 맥추의 처음 익은 열매를 여호와께 요제로 바친 날부터 합 50일째 되는 날이다.
이날은 칠칠절이라고도 하며 맥추절이라고도 하는데 맥추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치는 초실절과 오순절 간에는 칠 안식일이 들어 있기 때문에 칠칠절이라고도 한다.(레23:10~21, 출34:22, 신16:9~10, 민28:26, 행2:1)
예수께서는 맥추의 초실절 제물의 본체로 잠자는 자의 처음 익은 열매로 부활하신 것이다.
부활하신 날부터 오순절까지는 합 50일이 되었던 것이다.(고전15:20, 레23:15~16)
그날에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의 취임식을 거행하사 하늘 지성소에 첫 번으로 들어가심으로 사도들에게 이른비 성신을 부어 주셨던 것이다.(히9:11~12, 행2:1~4, 33)
그런고로 이 오순절은 성신의 날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교회의 부흥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40일째 되는 날 제자들은 감람산에 모으시고 분부하시기를 열심으로 기도하여 아버지의 허락하실 성신을 받으라고 하시며 제자들을 위하여 축사하시며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유하던 다락방에 모여서 다같이 합심하여 오순절까지 간절한 기도를 올림으로 예수께서 그 기도를 받아 오순절에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서 당신의 의의 향으로 분향하였던 것이다.
제자들의 기도는 향연을 따라 하나님 보좌 앞으로 상달됨으로 그 기도의 응락하신 보증으로 크신 능력의 성신을 보내신 것이다.(히8:3~4, 9:12, 6:19~20, 계8:3~4 눅1:10, 요16:7, 행1:3~14, 2:1~4 비교)
오늘날 우리도 예수께서 하늘 성소에서 절기를 따라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실 때에 우리도 같이 행하여 할 것이며 하늘 지성소에 분향하실 때에는 우리도 따라서 기도를 올려야 할 것이다.(눅1:10, 계8:3~4, 나1:15)
■ 우리의 기도가 향연에 실려야 함
향연을 따라 올라가는 기도는 분명코 응락하시는 것이다. 기도가 없이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이 날에 기도를 마치고 전도회를 열면 성신의 능력이 같이 행하시므로 교회는 크게 부흥할 것이다.(행2:41)
우리가 땅에서 행하는 것은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마18:18~20, 히8:1~3, 계8:3~4, 사33:20)
땅에서 행하지 않고는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그 규례를 따라 행함으로 모든 백성들이 통일될 수 있으며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예수님과 우리들이 연결되는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사도 당시부터 오순절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폐한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생각은 성경 해석을 잘못한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에게 편지하면서도 오순절을 말하였다.(고전16:8, 행20:16)
만일에 이방인들이 오순절을 지키지 않았으면 오순절이 어느날 인줄 알아서 어느날이라고 날짜를 기록하지 않고「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리니」(고전16:8) 라고 기록하였을 것인가? 그러므로 그때 까지도 이방인들이라도 오순절을 지켰다는 것을 진리로 알 수 있다.
혹은 말하기를 바울이 고린도교회 편지할 때에 오순절을 말한 것은 유대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러 있겠다고 한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편지 내용을 보면 유대인들에게 한 편지가 아니라 육신적으로는 순진한 이방인들에게 한 편지였다.
기록하였으되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사람 되었을 때에 벙어리같은 우상에게로 끌려가서 그 끄는대로 끌려 갔느니라」(고전12:2, 16:8 비교) 그런고로 편지받을 사람들이 육신으로 보면 이방사람들이다.
이 문제를 연구하자면 구약 모세 율법에 기록된 삼차의 칠개 절기를 깊이 연구함으로 알 수 있다.
이 오순절은 모세가 첫 번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날을 기억하는 동시에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첫 번 들어가심으로 성신을 받아 사도들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가 사도들이 행한 모본을 받아 행하는 것은 주님의 분부를 실행하는 것이다.(빌4:9, 고전11:1, 마28:20, 요13:15 비교)
우리는 이 오순절을 지켜 하늘 성소에서 행하시는 예수님과 완전히 교통하여아 할 것이다.
지상 성소에서도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할시는 모든 백성들이 뜰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이다.(눅1:10)
예수께서도 하늘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따라 당신의 의의 향으로 분향(기도)하실 때에는(시141:2, 계5:8, 롬8:34) 우리도 기도를 올려야 할 것이다.
죄인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 상달할 수 없다.
예수께서 의의 향으로 기도(분향)하실 때마다 죄인의 기도가 향연을 따라 하나님 앞으로 상달될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절차를 따라 예수님과 교통하는 기도를 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오순절이라는 명칭은 구약성경에서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사도들이 지키면서 구약절기인 칠칠절을 변경시켜(신16:16~17, 대하8:13, 레23:1~16 비교) 오순절(五旬節)이라고 하였는 바 뜻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부터 성신강림하신 날까지 50일이 되었다는 뜻이다.
취각절은 가을 농작의 마지막 거두는 추수절의 시작인데 나팔을 크게 불어 대속죄일의 준비로 성회를 열고 거룩하게 지키는 날이다.(레23:24~25, 민29:1~6)
대속죄일의 준비로 칠월 초일일을 취각절로 정하여 성회를 열고 화제를 드리고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였던 것이다.(레23:24~31, 출34:28~29)
그러나 그 모든 일은 장래일의 그림자니 실상은 기원 1833년으로 부터 1844년까지 있었던 예수 재림운동이 있을 것을 보이신 것이다.(교회약사 1페이지)
취각절 부터 대속죄일 까지는 십일인 바 십일은 예언상 십년으로 표상되어 있음으로 예수께서 하늘지성소에 들어가시던 기원 1844년 시월 이십 이일 곧, 성력 칠월 십일 대속죄일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 운동이 취각절을 성취시켰던 것이다.
그런고로 삼차의 칠개 절기는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취각절을 성취시키는 재림운동이 일어나 나팔을 크게 분것 같이 크게 외쳤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한이 다 차가는 기원 1844년 성력 7월 초하루 부터는 모든 형제들이 더욱 합심하여 간절한 기도가 있었으므로 에수께서 그 기도를 받아가지고 기원 1844년 10월22일 곧 성력 7월 10일 대속죄일에 하늘 지성소에 두 번째 들어가신 것이다.
그 당시에 그 운동이 있게 된 것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행하지 않을 때에는 이상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록한 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눅19:37~40) 하시었다.
그런고로 그 운동은 알지 못하고 행하였으나 취각절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다같이 합심하여 취각절을 지키고 그날 부터 대속죄일까지 십일간 간절한 기도를 올리게 되면 예수께서 분향하실 때에 우리들의 기도가 향연을 따라 하나님 앞으로 상달되어(계8:3~4) 기도의 응락하신 보증으로 늦은 비 성신을 내리시기 시작할 것이다.(계7:1~3)
성신은 곧 하나님의 인맞은 보증이다.(엡1:13~14, 4:30, 요3:33, 고후1:22)
그의 뜻을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장차 받을 구원의 표를 그 이마에 두사 보증으로 성신을 부어주시는 것이다.(행5:32)
대속죄일은 성력 7월 곧 「에다님월」(왕상8:2) 10일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년동안 지은 죄를 속하는 날이다.
이 날에 대제사장이 둘째 장막인 지성소에 들어가 자기와 백성들의 모든 죄를 위하여 속죄제물의 피로 정결케한 후 분향하는 예식이 있으니(레16:29~30, 히9:7) 여호와께서 이 절기를 정하심은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 40일만에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오던 그 날을 택하여(출34:28~29) 한 규례를 삼아 백성의 죄사함을 받는 대속죄일을 정하여 대대토록 이 날을 기억하게 하신 것이다.(레16:30~34, 23:27~31)
그런고로 십계명을 받은 그 날을 택하사 십계명을 둔 지성소에 들어가는 예식이 대대로 있게 하신 것이다.
해마다 대제사장은 자기와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황소와 수염소의 피로 속죄제를 드리고 지성소에 들어가 분향할때 모든 백성들은 뜰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할 때에 그 기도가 향연을 따라 하나님 앞으로 상달되는 것이다.(눅1:10, 계8:3~4, 히9:1~12, 레16:6~20)
이 모든 예식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늘 지성소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이신 것이다.
지상의 성소에서 행하는 예식은 장차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질 것의 표상이다.(히9:19~23, 10:1)
그런고로 대제사장마다 지성소에 한번 들어가려면 십일 전부터 간절한 기도로 준비하여야 한다.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첫 번 들어가시던 오순절에도 사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으며(행1:14) 기원 1844년전 예수 재림운동으로 말미암아 수만명의 간절한 기도로 취각절을 이루사 하늘지성소에 두 번째 들어 가셨던 것이다.
■ 예수께서 두 번째 지성소에 들어가심
모세가 십계명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것은 장차 예수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실 것을 보이신 것이니 모세가 첫 번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날이 곧 오순절이다.
예수께서도 오순절에 첫 번으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으며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온 날이 성력 7월 10일 대속죄일인고로 예수께서도 기원 1844년 성력 7월 10일 대속죄일에 두 번째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보배피를 속죄 제물로 단번에 드렸으므로 다시는 피흘림의 제사는 드릴 것이 없으나 해마다 대속죄일이면 대제사장의 직무를 따라 지성소에서 분향하신다.(계8:3~4)
우리들은 이 기회를 따라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분향하실 때 올리는 기도는 향연을 따라 보좌 앞으로 상달되는고로 그 기도의 응락하신 보증으로 늦은 비 성신을 부어 주실 것이다.
지나간 예수 재림운동 당시에도 그들의 기도의 목적은 달랐을찌라도 대속죄일의 당한 기도가 되었으므로 그들의 기도는 향연을 따라 하나님 앞으로 상달되어 기도의 응락하신 보증으로 일부 화잇부인에게 예언의 신의 선물을 주셨던 것이다.
화잇부인에게 주신 예언의 신은 마지막 늦은비 성신받을 보증이다.
예언의 신 가운데는 늦은 비 성신을 받을 것을 크게 증거하였으며 예언의 신의 중대문제가 이 때를 예언한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첫날에 제자들이 모인 곳에 오셔서 기운을 부시며 성신을 받으라 하신 것은 그 당시에 성신은 받지 못하였으나 오순절에 받을 성신을 미리 보증하신 것이다. (요20:22)
그런고로 사도 당시에는 맥추절 기도 주간으로 말미암아 이른비 성신을 부어 주셨으나 마지막 날에는 추수절 기도 주간으로 말미암아 늦은 비 성신을 전과 다름없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의 성신을 부어 주실 것이다.(호6:3, 욜2:23, 슥14:16~18)
그런고로 예수님과 교통하는 날이 곧 이 날이 되는 것이며 일년 동안 지은 죄를 속하는 날이 곧 이 날이다.
그런고로 이날에 모든 죄를 용서하심을 받고 허락하실 성신의 선물을 받도록 준비해야 될 것이다.
예수께서 분향하신다는 말씀은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심을 의미함이다.(시141:2, 사53:12, 롬8:26~27, 34, 히7:25)
이 날의 진리를 받은 여러분의 기도가 향연을 따라 하나님 앞에 상달되기까지 이날을 거룩하게 지키시기를 바란다.
화잇부인은 지상 성소와 하늘 성소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지상 성소에서 모형적으로 행한 일은 당연히 하늘 성소에서 집행될것이다.」(쟁하 187) 하였으며
또는 「모형이 아닌 실제의 속죄일에 있어서 우리 대제사장의 사업을 이해하는 동시에 우리의 행하여아 할 의무를 충분히 깨달아 그대로 신실히 준행하는 것은 얼마나 더욱 요긴한 일일 것인가」(쟁하 202) 하였으며
또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시는 하늘에 있는 성소는 근본적인 한 실체(實體)이니 모세는 이것을 모본하여 지상 성소를 지은 것이다. 이와 같이 찬란한 지상의 성막은 우리의 선구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시던 하늘 성소를 인류가 볼 수 있도록 그 모형을 보여 주신 것이다.」(쟁하 178)
「지상 성소와 그 봉사로 말미암아 하늘 성소에 관한 긴요한 진리와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거기서 행하시는 주님의 봉사가 무엇임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쟁하 179) 하였다.
그런고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인 절기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완전한 교통은 할 수 없다.
옛날 히스기야왕 당시에 절기를 거룩하게 지키니 그들의 기도가「들으신 바 되어 그 기도가 여호와의 거룩하신 처소에 상달되니 곧 하늘이더라」(대하30:20~27) 하였다.
장막절은 추수절의 끝절이요 일년 중 마지막 절기가 되는 것이다.
이 절기에는 모든 백성들이 산에 올라가 감람나무 가지와 석류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를 취하여 초막을 짓기도 하고 지붕 위에나 성전 뜰에 깔고 그 안에 거하기도 하며 혹은 빈곤한 가정을 서로 도와주기도 하며 거룩하게 지킨 것이다.(느8:9~18, 슥14:16~18, 레23:39~43, 신16:11~15)
여호와께서 이 절기를 정하심은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아가지고 내려오던 성력 7월 10일부터 모든 백성들에게 언약의 말씀과 성막 지을 문제를 다 설명한 후(출34:27~35) 그 달 15일부터 7일간 성막 지을 재료 금, 은, 포목, 목재 등을 자원하는 사람들이 넘치도록 풍성하게 드려 성막을 짓게 하였다. (출35:4~29, 36:5~7)
여호와께서 이 성막 지을 재료를 자원하여 바친 7일간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말미암아 대대토록 기억하게 하시려고 장막절을 정하여 지키게 하였으니 이 장막절을 구려절이라고도 한다.
구려(構廬)라는 의미는 막집을 얽어맨다는 말이다.
기록한 말씀에는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구려에 7일동안 거하여 내가 이스라엘 족속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구려에 거하게 한 줄을 대대로 알게 하라」(레23:42~43) 하였으므로 혹은 생각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나올 때에 구려에 거하게 한줄을 대대로 알게하라 하였으므로 구려라는 말을 어느 지방을 가리킨 줄을 안다.
그러나 구려절이라는 뜻은 장막절이나 초막절이나 다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막절을 지킬 때마다 장막짓는 형식을 행하여 초막을 짓기도 하고 종려나무나 석류나무나 산버드나무를 취하여 성전마당에나 지붕위에나 깔고 덮기도 한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들은 이 절기를 어떻게 행할 것인가?
옛날 솔로몬 성전으로 부터 예수 초림 당시까지 건축된 성전 역사는 사도당시로부터 예수 재림하시는 날까지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각 시대에 나타나는 그리스도 교회를 표상함이니 복음 전도로 말미암는 하늘 성전 건축의 거울이 된 것이다.
그런고로 성전 건축의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봄으로 말세의 복음사업이 몇 층으로 개혁될 것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절기에 전도대회를 열어 예수 재림운동의 기초를 잡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도 이 절기에 대한 진리를 우리들에게 보이셨으니 말씀하시기를 「명절 끝날 곧 큰날에 에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39) 하시며 큰 소리로 외치셨다.
오늘날 우리도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 재림의 길을 준비하는 전도대회를 열어 7일간 장막절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장막절의 실상은 마지막 예수 재림운동을 가리킨 것이니 때가 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별을 보내시고 일을 시작하신다.(암3:7)
그 기별은 그날을 당하기 7년전에 예수 재림의 기일 선포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들어날 것이다.(살전5:1~4, 창7:4, 18:17, 암3:7) (본교회 약사 40페이지 비교)
그러나 그 때를 당하여 기별을 보내실찌라도 교만한 자는 그 기별을 받지 못할 것이다.(단12:10) 최후의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시는 때는 마지막 장막절이다.(슥14:16~18)
■ 최후 수확의 날
화잇부인은 이 장막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장막절에는 기념하는 의미 이외에 상징의 의미도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여행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수확의 절기로서 땅의 열매의 수확을 축하하고 주께서.... 알곡을 곡간에 모아들이기 위하여 추수꾼을 보내시는 최후의 수확의 날을 예표하였다.」(P.P 550) 하였으니 예수 재림 운동에 관한 예언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앞으로 이 책에 기록한 뜻깊은 진리는 분명코 이루어지고야 말것이다.(눅16:17, 마5:18, 사14:24,27)
옛날 바리새교인들이 메시야가 오실줄은 알면서도 그를 영접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오늘날 많은 성경학자들이 늦은 비 성신을 내리실줄은 알면서도 성신받을 진리는 깨닫지 못한다.(렘8:7, 3:3)
누구든지 스스로 나는 산다 하는 증거를 받았다 하며 교만심을 내어 성신이 보내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기별」을 배척하면 살리라 하신 말씀도 소용이 없다.(겔33:13) 예언의 신은 우리에게 살리라 하신 증거라고 할찌라도 지금 전하는 이 기별을 배척하면 예언의 신 가운데 이 기별에 관한 증거를 바로 찾아볼 수 없는고로 바른 길로 행하지 못하고 곁길로 걸어가게 될 것이다.
예언의 신 가운데는 장차 이 기별이 있을 것을 확실하게 증거한 것이다.
누구든지 예언의 신을 잘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이 기별도 잘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런데 장막절이 전도대회로 변경되었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장막절은 모세 당시 성막 건축의 기념행사이기 때문에 즉 성막 건축을 표상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구약당시에 성전 건축 역사는 신약에 와서 하늘 성전 건축의 표상인고로 복음 전도로 말미암아 하늘 성전 건축 재료들을 수집하는 것이다.
곧 성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엡2:20~22, 고전3:9, 16, 고후6:16, 히3:6, 벧전2:5, 계3:12) 마지막 산 성도 14만 4천명은 예수 재림 7년 앞두고 재림운동을 시작하여 끝날까지 외치게 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4:6)
이 말씀은 주전 586년전 유다왕 시드기야 당시에 파괴된 성전을 재건하는데 대하여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지상 성전 건축은 복음시대에 있을 진리의 성전을 예표한 것이니 사실은 사도시대에 있었던 초기의 신앙이 회복되는 때를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 교회에게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은 성령이다.
성령은 우리 어두운 심령을 밝혀주심으로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또는 하늘에 있는 모든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망원경으로 주신 것이다.
기록한 바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대개 성령은 모든 것을 통달하시고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하려 하심이라」(고전2:10~16 참고) 하였다.
사도시대에 있었던 초대교회 신앙을 알게 하심으로 그 진리를 바로 찾아 행함으로 은혜를 받게 하시고 또 장래일을 알게 하심으로 우리 믿음을 튼튼하게 하시는 것이다.
기록한 바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예언하고 또 이전일의 어떠한 것도 고하여 우리로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게 하리라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진술하여 너희가 신 됨을 우리로 알게하고 또 복을 내리거나 화를 내려 우리로 놀래며 함께 보게하라」(사41:22~23, 요16:13 비교) 하시었다.
이와 같은 진리의 성령은 오늘날 가장 경건하게 산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찌라도 받지 못하고 있다.
만일 그와 같은 진리의 성령을 받았더라면 초대교회의 신앙은 벌써 회복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진리를 가졌노라고 하는 교인들이라 할찌라도 사마리아교인들처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았을 뿐이요, 능력의 성령은 받지 못하고 있다.
기록한 바
「이는 아직 한 사람도 성령 내리심을 받지 못하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러니 사도가 손으로 우리에게 안찰하매 즉시 성신을 받는지라」(행8:16~17) 하였으며
또「홀연히 하늘로부터 소리있어 크고 급한 바람같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진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제자들이 다 성신의 충만함을 얻어」(행2:1~4) 하였다.
■ 처음 행위를 가지라
그러면 오늘날에는 왜 그런 특별한 성령의 기사가 없는가?
이것은 시대가 달라서 그런 것도 아니요 기도의 힘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원인은 초대교회가 지키고 행하던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사도교회 말경 즉, 주후 100여년 후에 와서는 초대교회 진리는 한 가지씩 한 가지씩 변하기 시작하여 예수께서 새 언약으로 주셨던 유월절 성만찬 예식은 없어지고 평시에 행하는 형식적 성찬 예식 뿐이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2:4) 하였으며 화잇부인은 이 성경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신을 보내사 제자들의 사업에 능력을 주시었다. 하루에 수천명씩 회개하였다. 한 시대동안에 복음은 천하 각국에 전파되었지마는 조금씩 조금씩 변화가 생기었다. 교회는 첫 사랑을 잃고 이기주의자가 되고 안락을 사랑하게 되었다.」(예언의 신 T.8권 26페이지)
그러므로 옛날 유다왕 여호야김과 시드기야왕 시대에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고 포로생활을 하게된 것 같이 그리스도 교회도 진리가 변함에 따라 점점 타락상태로 큰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로마 다신교 교리와 연합되므로 세속이 교회 주권을 잡게되는 동시에 교회 감독이 변하여 법왕을 세우게 되었으며 다신교 지위를 법왕에게 줌으로 교회의 진리는 완전히 변함을 당하고 성도들은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교(異敎)의 습관은 그리스도교 안에 침입하였다. 교회가 다신교에서 심한 핍박을 받을 때에는 세상과 타협하거나 세상을 따르는 정신이 억제되어 있었으나 핍박이 그치고 그리스도교가 왕궁에서와 귀족들에게 환영을 받게 될 때에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의 단순함을 버리고 다신교의 제사장들과 화려한 허식을 본받아 하나님의 율법 대신에 인간적인 이론과 유전을 채용하였다. 제 4세기 초엽에 콘스탄틴 황제의 표면적 회개는 일반에게 많은 환영을 받았나니 세속이 경건의 두루마기로 가장하고 교회안에 걸어 들어오게 되었다.」(예언의 신 C.C 49~50페이지) 하였다.
그러므로 첫사랑, 곧 새 언약의 진리가 끊어지는 동시에 이른 비 성령의 능력도 끊어지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예레미야 선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단비가 그치고 늦은 비가 없을찌라도 네가 창녀의 낯을 가지고 수치를 알지 못하도다」(렘3:3)하였다.
그러나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하여 법왕권의 세력이 마치는 때 루터 종교개혁 이후 파괴되었던 성전 곧, 초대교회 진리는 한 가지씩 한 가지씩 회복되어 가는 중이지만 초대교회의 진리가 완전히 회복되면 오순절에 내린 성령과 같은 성령을 부어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기록하기를
「그런고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일을 행하라」(계2:5) 하였으며 선지자 예레미야는 기록하기를「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선한 길을 찾아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6:16) 하였으며 말라기 선지자는 기록하기를「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말4:4)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구약 당시에는 모세 율법이라고 하나 신약시대인 오늘날에 와서는 예수께서 마지막 새 언약으로 주신 유월절 성만찬을 가리키는 것이다.
■ 그 영광으로 세상이 환한지라
이 초대교회의 진리는 정오의 햇빛이라고 할 수 있는 바 사도 요한은 이 진리가 회복되는 때를 가리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 영광으로 세상이 환한지라」(계18:1) 하였으니 그 영광으로 세상이 환한지라 함은 진리의 광채인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일어나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비취었음이라 어두움이 땅을 덮으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비치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에 행하고 열왕은 너의 비치는 영광에 행하리라」(사60:1~3)하였다.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온 지구는 하나님의 진리의 영광으로 환하게 될 것이다. 이 빛은 온 지구 온 민족에게 비추게 될 것이다. ... 위기는 목전에 박두하였다. 우리는 지금 성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 말세를 위한 큰 진리를 선포하여야 할 것이다. 오래지 아니하여 모든 사람들이 이 경고를 듣고 스스로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끝이 이를 것이다.」(예언의 신 T.6권 14페이지) 하였으며
또는「하나님께서는 빛과 지식을 위하여 기도하는 남녀를 보고 계신다. 저들의 심령은 오랫동안 재로 먹힌 바 되었으니 만족치 못하였다. 모든 의의 원수는 저들을 곁길로 가게하여 소경과 같이 더듬어 나갔지만저들은 마음이 정직하여 좀더 좋은 도(道)를 배우려고 갈망한다.... 성신은 진리를 찾는 많은 고상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은혜를 심으며 그들의 성격과 전에받은 교육을 거스리고 진리에 공명(共鳴)하도록 마음을 일깨워 주신다. 참 빛이 있으니 세상에 내리사 각 사람에게 다 비치는지라 하였다. 이 빛은 그들의 심령을 비치우니 주의하기만 하면 이 빛이 저희 발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것이다.」(예언의 신 P.K. 376~377페이지) 하였다.
그런고로 오늘날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로서는 오순절에 내리신 성령과 같은 성령을 받을 수 없다.
그와 같은 성령은 사도시대의 진리가 회복되어야 한다.
화잇부인은 기록하기를
「세상 끝날에는 하늘의 모든 제도가 회복될 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변경할 때에 파괴되었던 하나님의 율법이 이제 수리될 것이다. 개혁자로써 세상 앞에 설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은 모든 영구적 개혁의 근본이 되며... 또는 십계명의 모든 명령을 지킬 필요를 분명히 가르쳐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이끌린 저들은 그와 협력하여 무너진 곳을 수축하게 될 것이다. 저들은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가 되어 길을 수축하여 거처하는 자가 될 것이다.」(예언의 신 P.K 678페이지) 하였다.
그런고로 예수께서 마지막 새 언약으로 주시던 첫사랑 유월절 성만찬 예식과 그 당시에 제자들이 받아 행하던 초기의 신앙 곧 생수의 근원되는 진리를 찾아 행하지 않으면 늦은 비 성령은 받지 못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쫓을지니 저희가 이 말씀대로 말하지 아니하면 정녕코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8:20) 하였다.
■ 늦은 비 성령에 대한 선지자들의 예언
주전 790년전 선지자 요엘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시온의 자녀들이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 하라 저가 너희에게 이른 비를 적당히 주시고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음이로다」(욜2:23)
이 예언의 말씀을 혹 사도시대 오순절에 내리신 성령으로 예언 성취된 줄 알것이다.(행2:1~4, 15:21 참고)
그러나 오순절에는 그 일부가 성취되었고 실상은 예수 재림하시기 직전에 나타나실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기록하였으되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경호를 발하라 이 땅의 거민들로 떨게 하라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름이니 곧 임박함이라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니 산꼭대기에 흑암이 퍼짐같도다」
또는「그 때에 내가 내 신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고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피와 불과 연기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핏빛 같이 되리라」(욜2:1~3, 23, 28~31) 하였으니
이 예언은 오순절에 일부가 성취었다 할찌라도 완전 성취는 늦은 비 성령 내리실 떄를 가리키신 것이다. 그리고 호세아 선지자도 늦은 비 성령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마땅히 여호와를 알 것이요 간절히 여호와 알기를 힘쓸찌니 저가 나타나심은 아침 같이 일정하여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니 곧 땅을 적시는 늦은 비로다」(호6:3) 하였다.
우리가 마땅히 알기를 힘쓸 것은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배워야 할 것이니 이것은 곧 늦은 비 성령받는 조건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스가랴 선지자도 늦은 비 성령 내리실 예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장마 때가 되거든 여호와께 비 내리기를 빌고 곧 번개를 지으시는 여호와께 구하라 저가 또한 소나기를 내리시고 각 사람의 밭에 채소를 주시리라」(슥10:1) 하였다.
화잇부인은 이 예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땅의 추수의 종말이 가까워지면 성령의 은혜를 특별히 주셔서 교회로 인자의 임하심을 준비시키겠다는 약속이 있다. 성령의 강림을 장마비 내리는 것으로 비유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장마 때에 그 능력을 더욱 증가하도록 추수 주인에게 간구하여야 할 것이다.」(예언의 신 A.A 55, 슥10:1비교) 하였다.
그런고로 스가랴 선지자는 늦은 비 성령 부어 주실 것을 예언하신 동시에 또는 늦은 비 성령 받을 수 있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다.
기록한 바
「그 날에 죄와 더러운 것을 씻는 샘 근원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슥13:1)하시었다.
「죄와 더러운 것을 씻는 샘 근원」이 무엇이겠는가 유월절 어린양의 피는 죄와 더러운 것을 씻는 샘 근원이 되는 것이다.(대하30:16~17)
또는 「예루살렘을 치러온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 그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지 아니한 자에게 비를 내리지 아니하시고 또한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하면 그 땅에도 비를 내리지 아니할 것이요 올라와서 장막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에게 여호와께서 이와 같은 재앙을 내리실 터인데 애굽 사람과 열국 사람이 올라와서 장막절을 지키지 아니한 자는 이 형벌을 받으리라」(슥14:16~19) 하시었다.
혹은 생각하기를 절기와 늦은 비 성령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 할 것이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우리의 몸은 성령의 거하실 성령의 전이라고 하였다.(고전3:16~17, 6:19) 하나님의 성령은 또한 우상으로 더럽힌 곳이나 가증한 곳에 계실 수 없다.
그러면 사람들의 몸으로써 완전한 의인이 있는가?
「의인이 없나니 곧 하나도 없으며」(롬3:10) 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의인이 있는가? 바울은 말하기를「그러하면 어떻게 되리요 우리는(믿는 자는) 저희보다(믿지 않는 자보다) 나은 자뇨 아니라 대개 우리가 일찍(그전에) 말하기를 유대 사람이나 헬라 사람이나 다 죄아래 있다 하였느니라」(롬3:9) 하였다.
그런고로 사람이 자기 의로 성령을 받을 만한 정결한 성령의 전이 되지 못하는고로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정결함을 받아야 성령이 임재하시게 되는 것이다.
구약 당시에도 우상으로 더럽힌 성전을 유월절양의 피로 정결케한 후에야 그 성전에 하나님이 계시게 되고 그들의 기도는 응답받았던 것이다.(왕하23:1~25, 대하30:1~27 참고)
그러므로「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내가 모으리니」(습3:18) 하셨으며 스가랴 선지자는 장막절 지키러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 비를 내리지 아니하신다고 하였다.(슥14:16~19)
이 앞으로 모든 사람에게 선물을 한 가지씩 받게 될 터인데 절기를 지키는 자에게는 늦은 비 성령을 받게 될 것이고 절기를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재앙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가랴14장 16~19절의 예언을 입증하시기 위하여 장막절 중에 성전에 오르사 날마다 전도하시고 장막절 끝날에 말씀하시기를「사람이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사람이 나를 믿으면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리라 하시니 이는 믿는 사람의 받을 성신을 말씀하신 것이니 이 때 성신이 내리지 아니하심은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아직 영광을 얻지 못하심이라」(요7:2, 14, 37~39 비교) 하시었다.
그날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오순절에 부어주실 성령을 일부 말씀하셨으나 실상은 스가랴 선지자와 동일한 예언으로써 말세에 내리실 늦은 비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예언상 장막절은 마지막 말세 추수때를 예표하였다.
화잇부인은 장막절에 대한 해석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장막절에는 기념하는 의미 이외에 상징의 의미도 있었다. 그것은 과거의 광야여행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수확의 절기로서 땅의 열매의 수확을 축하하고 주께서... 알곡을 곡간에 모아들이기 위하여 추수꾼을 보내시는 최후의 수확의 날을 예표하였다.」(예언의 신 P.P 541페이지)
그런고로 스가랴 14장 16~19절의 장막절을 지키러 온다고 한 것은 마지막 절기지키는 남은 백성들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 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
그러므로 스바냐 선지자는 구원받을 남은 백성들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내가 모으리니 저희는 네게 속한자라 저희가 시온의 수치를 무거운 짐과 같이 여기는지라 볼찌어다 이 때에 내가 반드시 너희를 괴롭게 하는 자를 벌하여 저는 자를 구원하고 쫓겨난 자를 모으며 각국에 흩어져 수욕받는 자를 찬송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그 때에 내가 너희를 데려오고 그 때에 모아오리니 대개 내가 너희 사로잡힌 자를 너희 눈앞에 돌아오게 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명성과 찬송을 천하 만민중에서 얻게 하리라 하시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습3:18~20)
또는「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 같이 날아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2:1~3) 하시었다.
화잇부인은 이 예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여기에 우리의 할 일이 있다. 이 말씀은 죄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아니고 하나님의 판단을 준행하며 그 계명을 지켜온 이땅의 모든 겸손한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각 사람이 해야할 일이 있나니 만일에 모든 사람이 순종한다면 안식일을 지키는 우리들 가운데 아름다운 연합이 있을 것이다.」(예언의 신 I.T 426페이지) 하였다.
스바냐 선지자는 주전 640년으로 부터 609년 까지 31년 역사를 가지고 있던 유다왕 요시야시대 선지자로써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박함에 대하여 멸망과 살육을 당하지 않고 구원받을 백성들은 오직 주의 규례를 지키는 모든 겸손한 자들 곧 절기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들만이 화를 면할 것이며 다니엘과 같이 포로가 될찌라도 명성과 찬송을 얻게 하실 것이며 각국에 흩어졌을찌라도 본국으로 돌아올 길이 열릴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러나 그 예언이 썩어져 없어질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말세인 예수 재림하실 직전 곧, 지구의 멸망이 임박한 시기를 가리켜 예언하신 말씀이다.
화잇부인은 이 예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스바냐가 말한 바 유다에 대한 임박한 심판의 예언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때 회개하지 않은 이 세상에 내릴 심판에도 똑같이 적용된다.」(예언의 신 P.K 389페이지) 하였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하는 것은 사하시려니와 성신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시려니와 오직 누구든지 말로 성신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지 아니하리라」(마12:31~32) 하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신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단이라고 훼방하는 자를 가리킨 것이다.
기록한 바
「오직 누구든지 성신을 훼방하는 자는 사하여 줌을 얻지 못하고 반드시 영영한 죄에 빠지느니라 하심은 저희가 말하기를 더러운 귀신이 들렸다 한 연고니라」(막3:29~30) 하였다.
그리고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성신으로 죄인을 책망하시고 죄를 꺠닫게 하시사니 만일 성신의 역사를 최후까지 거절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위하여 이 이상 아무것도 더 할 수 없는 것이다.」(예언의 신 P.P 405페이지) 라고 하였다.
지각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배운 교훈과 같지 않으면 무슨 말이든지 사단에게로 돌리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자기가 스스로 사단의 부하가 되려고 기초를 잡는 것이다.
화잇부인은 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가 진리를 거절하는 것은 그 진리를 주신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요 우리가 율법을 유린함은 율법을 주신 그 하나님의 권위를 부인함이 되는 것이다.」(쟁하 425) 하였다.
그런고로 만사를 조심하여야 할 것은 혹 지금 전하는 이 기별도 사단에게로 돌릴까 두려워 하노라 성신의 보내시는 기별을 사단에게로 돌린다면 그 죄는 사하심을 받기 어려울 것이다.
마음이 겸손하고 지각이 있는 사람은 모든 일에 주의하여 잘 살피는 것이다.(행17:11)
확실히 알지 못하고 지각없이 말을 토하여 성신의 능력을 사단에게 돌린다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마지막에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마12:36~37, 요12:47~48)
그런고로 누구든지 지금 전하는 이 기별을 받기 전에는 자기들의 받았던 진리를 믿고 행한 바로 의롭다함을 받았을찌라도 이 기별을 듣고 배척한 후에는 자기들의 죄를 핑계할 수 없을 것이다.(요15:22,호6:5)
지금 전하는 이 말씀은 내 스스로 말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광명의 빛을 내게 비추사 당신의 오묘한 진리를 내게 보이시고 이 앞에 이루어질 일과 행할 일을 증거하게 하였으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시는 분은 이 기별이 하나님께로 왔는지 사단에게로 왔는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요7:17~18, 살전5:19~22)
■ 신앙의 기준은 성경
그런고로 이 책에 증거한 성경 여러 구절들을 간절한 마음으로 한절도 빠짐없이 찾아보게 되면 하나님의 뜻 깊은 진리가 밝혀질 것이다.
만일에 성경의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이 진리를 거절하고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외에는 다 사단의 공작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빌라도 총독 앞에서 예수님께 대하여 맹세함과 같으니
기록한 바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찌어다」(마27:25) 라고 맹세한 것은 구원이 다른데 있지 아니하고 저들에게만 있다는 것을 자만하였기 때문에 그와 같은 위험한 맹세를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지금 보내주시는 새로운 진리를 거절하고 구원이 자기들에게만 있다고 교만심을 갖게 됨으로 바리새교인들의 자손됨을 증명하는 것이다.
화잇부인은 또 기록하기를
「저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교회에서 설명한 그대로만 받도록 배웠으니 많은 사람은 아무리 성경에는 분명히 나타난 것이다 할찌라도 그것이 저들의 교회의 규정과 반대되는 경우에는 아무것도 믿지 아니하려 한다. 성경 가운데는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가 분명히 있을찌라도 많은 사람은 그 영혼을 지키는 것을 저희 목사들에게 즐겨 맡긴다. 오늘날 종교를 믿노라고 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 종교상 지도자들에게 배운 것 이외에는 자기들의 신앙에 대하여 아무 설명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저희들은 구주의 가르침에 대하여는 거의 주의하지 않고 도리어 그 지도자들의 말에만 절대적 신임을 둔다. 그러면 지도자들이란 과오가 없는 자들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희가 빛을 가진 자들이란 사실을 알지 못하고야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저들의 지도아래 맡길 수 있을 것인가? 많은 사람은 세속의 길을 내어 버릴 도덕적 용기가 부족하므로 학자들이 가르치는 길을 따르고 저들은 스스로 연구하기를 싫어하므로 아무 소용도 없이 오류의 쇠사슬에 매이는 바 되는 것이다.」(쟁하 443, 444)
「우리는 성경을 연구하는 일에 전력을 다할 것이요 사람으로 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하나님의 오묘함을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의 지혜를 다 쓸 것이다.」(쟁하 447) 하였다.
그런고로 우리는 이 말씀을 배워야 하리니 기록하였으되 「오늘날 너희가 만일 그의 소리를 듣거든 옛적에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히3:15)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살피고 자비로써 보내주시는 새로운 진리를 심각히 검토하시기를 원하는 바이다.
화잇부인은 이 진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현대 진리를 전하는 사역자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을 등한히 하지 말것이다. 참된 증인의 증언은 귀에 거슬리지 않는 기별이 아니다.」(증언보감 1권 나 11페이지) 하였다.
물론 반대하는 사람의 귀에 거슬리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니 그러기 때문에 심각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 끝으로 부탁드리는 말씀
예수 재림을 기다리시는 여러분들이여 십자가에서 흘리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정결함을 받으시고 하늘 가나안에 들어가십시다.
옛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 40년을 마친 후 여리고 맞은편에서 유월절 양의 피로 정결함을 받고 천사장의 인도 받아 지상의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마지막 남은 백성들이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고 예수님의 인도받아 하늘 가나안에 들어갈 참 것의 거울입니다.(수5:1~15, 계7:1~4 비교)
저자 안 상 홍
1960년01월초판발행
1962년10월재판발행
1964년10월삼판발행
1968년08월사판발행
2005년04월오판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