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가르치는 음식문제 > 제1장 음식문제를 기록함에 있어서

이 책을 읽어보시는 독자 여러분에게 미리 알려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육식이 죄가 아니라는 이 책을 저술함으로서 채식을 주장하는 화잇부인을 거짓 선지자라고 하거나 그의 묵시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화잇부인의 묵시와 예언이 이중으로 되어 있는 점을 성경으로 검토하여 옳은 편을 찾아 증거 하고자 할 뿐입니다. 화잇부인의 묵시와 예언은 초기에 묵시와 예언이 다르고 또 그 후에 묵시와 예언이 달라졌습니다.
초기에는 레위기 11장의 부정한 음식을 구별 없이 먹었어도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어 중요한 묵시를 봐 내려 왔으며, 돼지고기가 영양 있는 음식이라는 묵시까지 보았다고 하였으며, 그 영양 있는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은 그릇된 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까지 하였다고 합니다. [영문교회 증언 205~207면]  

안식일 교회가 시작된 이후 수십 년 동안이나 레위기 11장의 부정한 음식을 구별하지 않고 먹어 내려왔으나 세월이 흐르고 교회가 부흥되자 사람의 의견이 자신도 모르게 들어오기 시작하여 결국 건강 개혁이라는 명목을 내 걸어 채식을 주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우리는 무조건 이에 따를 것이 아니라 성경을 검토하여, 초기의 예언이 옳은지 말기의 예언이 옳은지를 분별하여야겠습니다.
선지자라고 해서 잘못됨이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이에 대해서 모세는 다음과 같은 주의의 말씀을 하였습니다.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찌니라」 [신18:22]  

이 말씀은 아무리 선지자라 할지라도 성경이 가르친 교훈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교훈의 말을 하였을지라도 그 선지자가 방자히 말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화잇부인은 초기에는 순진하였고, 또 성경상 부정하다고 하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중요한 묵시를 보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부흥되고 많은 사람의 신임을 받게 되자 사단이 기회를 타서 음식문제가 나오기 시작함으로부터 점점 심하게 주장하여 지금은 채식주의가 하나님의 계명보다 높임이 되게 되었고, 그 이상 더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채식주의가 일반 사람의 생각에는 깨끗하고 신성한 교리로 생각되기 쉬우나 사실은 생명의 진리를 찾는 데에는 크게 방해를 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해서 성경으로 심각히 연구해 봐야 하겠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육식과 채식에 대한 명백한 판단을 내리시는 성경귀절들을 다음 순서로 살펴보기로 합시다.

성경이 가르치는 음식문제 > 제2장 성경이 가르치는 음식문제

성경이 가르치는 음식문제에 대하여 창세기로부터 살펴보고 현재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을 가감하지 말고 주님이 잡수시고, 사도들이 먹고 가르치신 그대로 물려받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님이 잡수시고 본을 보여주신 이상 무엇을 더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주님은 일찍이 말씀하시기를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심부름하는 사람이 심부름 시키는 사람보다 크지 못하니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하셨고, 「내가 본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도 내가 행한것 같이 행하게 함이라」 [요13:15~17] 하셨으니 주님이 잡수신 모본과 사도들이 가르치신 교훈을 그대로 지키고 먹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 지나치면 이론의 우상이 되며 교리의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세기로부터 기록되어 있는 음식문제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창조시에 에덴동산에서는 「씨 맺는 채소와 씨 있는 실과」를 식물로 주셨고 [창 1:29, 2:15~17] 생명과도 주셨습니다. [창3:22]
2. 범죄한 이후에는 생명과는 빼앗기고, 대신 토지를 갈아 수고한 농산물을 먹게 하신 것입니다. [창3:17, 22~24]
3. 홍수 이후에는 모든 동물을 식물로 주신 것입니다.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9:3] 하셨습니다.
4. 모세 때 와서는 시내산에서 언약의 말씀을 주시고 음식문제를 새로 구별해서 먹도록 모세 율법으로 제정하신 것입니다. [레11:1~47]
5. 신약에 와서는 구약 때 세운 의문의 율법은 십자가로 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허시고 [엡2:11~17] 전에 가증히 여기시던 이방 사람과 구약 때에 부정한 음식까지 모두 깨끗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은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 총회에서 음식문제를 토론한 후에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찌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행15:28~29] 고 결정지어 주었습니다. 성령이 같이 하시어 결정지어 주셨는데 누가 감히 변경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각처에 편지할 때마다 음식문제를 말하였고, 의문을 순종하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고까지 하였습니다. [갈3:10~11, 갈5:4 비교] 그리고 음식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치 못하게 하라」 [골2:16] 또는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롬14:20] 또는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 임이니라 불신자 중에 누가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고전10:25~27] 또는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 [딤전4:3~5] 또는
「두 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행10:15] 하였습니다.  

혹은 말하기를 사도행전 10장 15절에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셨다는 말은 먹고 못먹는 음식을 가르쳐 하신 말씀이 아니라, 이방 사람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 하나 그렇게 생각한다면 레위기 11장의 부정물에 대해서 부정한 짐승의 사체가 사람의 몸에나 옷에나 어디든지 묻으면 부정해진다고 하였는데 [레11:31~40] 부정한 음식물이 이방 사람의 위장 안에 들어가 있으니, 그 사람을 깨끗하게 하셨으면 그 사람의 위장 속에 들어가 있는 부정한 음식물까지도 깨끗하게 되었다는 것은 사실이 증명되고 있지 않습니까?  

구약 당시에는 여호와께서도 이방 사람을 가증하게 여기셨습니다. 그 까닭은 그들이 부정한 음식을 먹은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이방 사람과 부정한 짐승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이방 사람을 깨끗케 하셨으면 부정한 짐승도 깨끗하게 된 것이며, 부정한 짐승이 깨끗케 되었으면 이방 사람도 깨끗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

성경이 가르치는 음식문제 > 제3장 정하고 부정한 짐승은 장래일의 예언

혹은 말하기를 그러면 신명기 14장이나 레위기 11장의 먹고 못먹는 짐승들의 구별은 무엇 때문에 정하여 놓았느냐고 할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은 아니니」 [히10:1] 하였습니다.

그런고로 신명기 14장이나 레위기 11장의 정하고 부정한 모든 짐승은 장래일의 예언이 되었는데, 그 모든 짐승은 전 세계 인류를 표상한 것입니다. 즉 정결한 짐승은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을 표상한 것이요, 부정한 짐승은 이방 사람들을 표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모세 율법으로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정결한 짐승만 먹게 하신 것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택해서 성민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신14:1~21]

그러나 부정한 짐승으로 표상한 이방 사람은 허락 받은 자손이 오시기를 기다린 것인데 [갈3:19, 엡2:11~17 비교] 허락 받은 자손 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의 피로 정결케 하셨으니 [엡2:12~19, 갈3:28 비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구별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방 사람을 깨끗케 하신 동시에 이방 사람으로 표상하였던 부정한 짐승까지도 깨끗케 된 것입니다. 기록한 말씀에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행10:12] 라고 한 그 짐승들은 신명기 14장이나 레위기 11장에 기록한 짐승들을 다시 반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유대 사람이나 헬라 사람이나 야만인이나 할 것 없이 전 세계 민족을 다 표상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신 것은 인종차별 하지 말고, 전 세계 민족들에게 전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릇에 담긴 모든 짐승이 다 하늘로 올리워 간 뜻은 복음을 받아들인 모든 민족이 같은 은혜로 다같이 하늘로 갈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이신 것입니다. [행10:10~16]
레위기 11장과 사도행전 10장을 연결해서 자세히 연구해 보시면 예언의 확실한 뜻을 깨달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 때에 짐승들에 대해 해석을 다음과 같이 하였습니다. 모세 율법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었습니다.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찌니라」 [신25:4] 모세가 말한 것은 그 당시 소를 위해서 염려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말씀도 신약에 와서는 예언이 되어 그 소는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일꾼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라고 사도 바울은 해석하였습니다. [고전9:9~10]
그와 같이 레위기 11장의 먹고 못먹는 짐승은 구약 당시에는 먹고 못먹는 짐승으로 구별하였으나, 그 성경 귀절들이 복음시대에 와서는 예언으로 해석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 당시에는 부정한 짐승으로 표상되어 있는 이방 사람은 부정한 음식을 먹었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 오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사람들과 한 자리에 앉게 되어도 부정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다 부정한 음식물 때문이었습니다. [레11:31~40, 갈2:11~16 비교]
그러나 부정한 음식물을 먹는 사람이라도 7일간 결례식을 행한 후에는 성 안에 들어올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행21:26]  

그러므로 모든 의식의 본 제물이 되신 예수님이 당신의 희생의 피로 부정한 짐승과 이방 사람을 다 깨끗케 하셨으니, 부정한 음식을 먹은 사람이나 안 먹는 사람이나 구별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행10:28, 48, 갈2:11~14비교]
만일 오늘날까지 폐한 음식문제를 그대로 지킨다면, 그들은 죄악 중에 살고 있을뿐 아니라 마지막에 그 음식문제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갈3:10~11, 5:4]

그 이유는 그들이 모세 율법으로서는 죄를 범하고 있는 사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은혜에서 끊어진 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부정한 음식은 먹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부정한 음식을 먹은 사람과 접촉함으로 부정함을 입게 되어 모세 율법을 범한 것이 되고 [행10:28, 11:3, 갈2:1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세 율법을 의지하여 행함으로 은혜에서 떨어지고,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자가 된 것입니다. [갈3:10~11, 5:4 비교]  

모세 율법으로 말미암아 이방 사람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가 막히어 서로 교제도 못하고 한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던 것은 모두가 음식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주님의 희생의 피로 막힌 담을 헐어 놓으셨는데, 돌아가서 레위기 11장의 음식문제를 세우게 된다면 주님의 십자가는 헛것이 되고 [갈2:21] 주님이 헐어 놓으신 것을 다시 쌓는 일이 될 것입니다. 주님은 허시고 우리는 다시 쌓는다면 우리는 주님의 뜻을 거스리는 사람이 되고 주님 앞에 죄를 범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갈2:18]  

옛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거느리시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무렵에 제일 먼저 여리고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그때 여호수아가 예언하여 누구든지 이 성을 다시 세우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수6:26]
그 후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성을 건축하다가 저주 받은 역사가 있습니다. [왕상16:34] 마찬가지로 모세 율법의 의문을 행함으로 의지하는 자는 저주하는 아래 있다고 하였는데 [갈3:10~11] 다시 모세의 율법으로 돌아가 레위기 11장을 주장하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저주를 피할 수 있겠습니까?  

여리고성을 다시 세우다가 저주받은 역사는 오늘날에 와서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점에 대한 오묘한 진리는 자기들이 주장하던 의문의 제도인 음식문제에서 해방이 되어야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혹은 생각하기를 이사야 65장 4~5절과 이사야 66장 17절의 돼지고기와 쥐고기에 대한 예언을 글자 그대로 해석함으로, 신명기 14장이나 레위기 11장의 음식문제를 그대로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언 역시 사도 바울의 해석과 같이 해석한다면 그 예언은 반드시 신약시대에 나타날 거짓 그리스도 교회를 예언한 것입니다. 기록된바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이라 그들이 무덤 사이에 앉으며 은밀한 처소에서 지내며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물건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사람에게 이르기를 너는 네 자리에 섰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 하나니 이런 자들은 내 코의 연기요 종일타는 불이로다」 [사65:3~5, 사66:17 비교] 하였으니,

위에 말한 이 예언은 분명하게 하나님의 교회와 비슷한 거짓 교회가 나타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에서도 해석한 바와 같이 신명기 14장이나 레위기 11장에 기록한 짐승들은 전 세계의 인류를 표상하였고, 정결한 짐승은 하나님의 백성을 표상하였고, 가증한 짐승은 이방 사람을 표상하였는바 정결한 짐승과 비슷한 짐승은 역시 예언적으로도 하나님의 백성과 비슷한 거짓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발은 쪽발이라도 새김질을 못하는 짐승이나 또는 새김질은 해도 발이 쪽발이 아닌 짐승은 다 장차 나타날 거짓 그리스도 교회를 예언한 것입니다. [레11:2~8]  

참 교회를 예언한 것은 새김질도 하고 쪽발이 되어야 정결한 짐승과 같이 참 그리스도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새김질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의미함이요, 발이 쪽발인 것은 예수의 믿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정결한 짐승은 새김질도 하고 발이 쪽발인 것 같이 참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 [계14:12] 라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 교회가 이사야 65장이나 66장의 예언과 같이 단편적인 교리만 가지고 주장하기 때문에 최후에 멸망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새김질 즉 계명만 주장하는 안식일 교회나, 돼지 즉 믿음만 주장하는 장·감리 교회나, 쥐고기와 같은 괴상한 교리는 결국 예언대로 부정한 교리가 되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할 것은 초대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의된 지시대로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 이외에는 더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가지 음식문제는 사도행전에 세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하였고 [행15:20, 29, 21:25 참고] 또 이 음식문제를 정하실 때 성령이 입회하셨다고 하였습니다. [행15:28~29]  

이 이상 더 지나치게 한다면 요한계시록의 예언과 같이 성경에 기록된 재앙을 다 받게 될 것입니다. [계22:18~19] 혹 궤변자들의 질문에, 그렇다면 뱀 고기나 쥐 고기나 술, 담배 등 다 먹어도 되느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중에 먹지 않는 음식까지 끌어다 붙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술, 담배는 다른 성경 귀절들의 기록을 살펴보고 그 교훈대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채식이다, 육식이다 하고 교리를 정할 필요는 없고 각자의 체질에 따라 육식할 사람은 육식하고 채식할 사람은 채식하면 되는 것입니다. [롬14:2~3]

성경이 가르치는 음식문제 > 제4장 에덴동산의 채식주장

레위기 11장의 음식문제를 주장하는 그들은 그 후 한걸음 더 나아가서 창세기 1장29절의 채식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에덴동산에는 채식으로 살게 하셨으니 에덴동산에 갈 사람은 채식을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식으로 해석한다면 여호와께서도 에덴동산에 가실 수 없고 [창18:1~8, 눅24:43] 예수님이나 사도들도 에덴동산에 가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 됩니다. [요21:8~13, 눅24:40~43]  

여호와께서도 고기를 잡수시고, 예수님께서도 고기를 잡수셨으며 사도들도 또한 먹었는데 그 분들이 못가는 곳에 누가 간다는 말입니까?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채식주의는 그리스도 밖에서 만들어진 사람의 계명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 당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바리새 교인들이 건강법칙으로 세워진 장로의 유전으로 인하여 예수님을 비난한 사실이 있습니다. [마15:1~11]

바리새 교인들은 사람의 계명인 장로의 유전을 심하게 주장함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뿐 아니라 예수님이 손 씻지 않으시고 잡수신 일까지도 비난하였던 것입니다. [눅11:37~38, 막7:1~9]
이런 역사들이 마지막 때에 나타날 예언이 성취되고 있으니 현재 실행하고 있는 채식주의가 명백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사람의 유전이 높임을 받게 될 때에 그들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 교회에서 건강법칙이라는 채식주의가 화잇부인의 유전인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문제에 대하여 먼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때에 따라 허락하신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에덴동산의 교훈을 받을 수도 없고 또는 모세 율법으로 가르친 교훈을 받아서도 안됩니다.  

우리가 받아 행하고 먹어야 할 교훈은 예수님이 잡수시고 사도들이 먹고 가르치신 초대교회 신앙입니다. 이에서 지나치면 사단의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사단의 비상한 술책은 보통사람의 생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단은 교회 안에서 죄를 범하게 하는 것으로 교회를 망치게 하는 것 보다 하나님께 지나친 충성을 한다는 구실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이 더 큰 사단의 기묘한 술책입니다.  

그런고로 오늘날 복음시대에 와서 주님의 교훈이 있고 사도들이 교훈이 있는데 그 교훈을 무시하고, 모세의 교훈을 받는다든가 에덴동산의 교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사귀의 가르침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딤전4:1~6]
그들이 주장하는 채식론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그 이상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에 있어서는 채식문제가 사단의 무서운 마취약이 되어 있습니다. 마취약이라 함은 채식주의에 마음이 완전히 끌리면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가 심지어는 간장이나 된장까지 꺼리게 됨으로 완전히 포로가 되어 그 이상 다른 방면에는 생각할 자유를 얻지 못하게 되어 구원에 이르는 새로운 진리가 올지라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하는 채식을 구원의 머리가 되어 있어서 아무리 옳은 진리가 온다 할지라도 채식을 머리에 놓지 않는 교리는 거절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채식주의 안에만 구원에 이르는 진리가 있고, 채식하지 않는 교회는 천사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들은 사단의 역사라고 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바가 있는데, 그들이 말하기를 「육식을 하는 사람의 입에서 황금이 쏟아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입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맹세하였습니다. 그들의 말을 따지고 보면 여호와의 말씀도 안듣고 [창18:1~8] 예수님의 말씀도 안듣겠다는 [눅24:43]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여호와께서도 육식하시고 예수님께서도 육식하셨는데 그런 지망없는 말을 하여 스스로 죄를 짓고 있으니 참으로 어이없는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채식주의는 사단의 무서운 마취약이 아닐수 없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 교인들이 채식주의는 주장하지 않았으나 그와 비슷한 성결에 관한 건강 법칙으로 예수님을 비방하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였으니 얼마나 위험한 일이겠습니까?

그들이 주장하는바 손을 씻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 함은 그들의 건강법칙입니다.[마15:1~11] 그들이 심하게 주장하는 건강 법칙이 예수님을 비방하였으니 [눅11:37~38] 어떻게 주님의 교훈을 받아들이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옛날 가인과 아벨 사이에도 그와 같은 역사가 생겼던 것입니다. 가인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신령하신 분이시니 깨끗한 물건으로 제사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깨끗한 농산물로 제사 드렸으며, 아벨은 진리를 따라 양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속죄제의 희생의 제물을 받으심으로 사람의 의견으로 행한 가인의 제사는 저주가 되고 말았습니다. [창4:1~5] 오늘날 채식주의자들이 그러한 형편에 있는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같은 음식을 가지고, 먹으라고 하신 때가 있고 먹지 말라고 하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점에 대해서 사람의 의견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먹으라 고 한 때는 먹고, 먹지 말라고 한 때는 먹지 않는 것이 순종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사도시대의 교훈을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갈1:6~9]  

예수님이 잡수신 대로 사도들이 먹고 전한대로 지키면 그만입니다. 더 잘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단입니다.
만일 에덴동산에서 채식했다고 해서 채식을 해야 한다면 에덴동산에서는 옷을 입지 않았으니 지금 우리도 옷을 입지 말고 예배드리자고 하지 않겠습니까? [창2:25]
우리는 이런 지나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행하시고 잡수신 본을 받아 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요13:15] 그 교훈에서 더할 필요도 없고 덜할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음식문제 > 제5장 믿음의 조상들이 다 육식함

노아 이후 믿음의 조상들 중에 육식하지 아니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의의 후사이신 노아도 먹었고 [창9:1~3]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먹었고, 천사와 여호와께서도 잡수시고 [창18:1~8] 약속의 자손 이삭과 야고보도 먹었고 [창27:25]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도 먹었고 [출12:12~] 살아서 승천한 엘리야도 먹었고 [왕상17:6] 침례 요한도 메뚜기를 먹었고 [마3:4] 다니엘도 평상시에 먹었다. [단10:3]  

혹은 말하기를 다니엘은 육식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나, 이스라엘 민족으로서는 희생의 제육이나 유월절 양의 고기를 먹지 않으면 백성중에 끊어진다고 여호와의 명령이 있는 이상 [민9:13] 다니엘이 육식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직까지 모세 율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주장입니다.  

다니엘이 바벨론에 포로된 가운데 왕의 반찬을 먹지 않기로 결정한 것은, 레위기 11장의 부정하다는 음식물이 섞여 있으므로 그 부정한 음식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고 한 것입니다. [단1:8]

왕의 반찬에는 구약 성경상 부정한 음식물이 섞여 있기 때문에 다른 음식으로 바꾸어 달라고 까다롭게 말하기보다 간단하게 채식으로 먹게 해달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자유생활 할 때는 레위기 11장의 구별된 좋은 육미를 먹은 것입니다. [단10:8]
신약에 와서는 신령하신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도 잡수시고 [눅24:43] 사도들에게도 생선을 구워주시고 [요21:1~13] 또 많이 잡게도 하셨으며, 떡과 생선을 4천명 5천명을 먹이신 이적도 행하신 것입니다. [마14:17~21, 막8:7~8]  

혹은 말하기를 예수님 당시의 생선과 오늘날의 생선이 다르다고 주장 합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란 그 당시의 바다는 깨끗하였으므로 생선도 깨끗하고, 오늘날은 각종 더러운 오염물질이 바다로 들어가 물고기가 더러워 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바다보다 예수님 당시의 바다가, 성경상 가증한 사람의 시체 같은 것이 더 많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요단강이나 갈릴리 바다에는 전쟁으로 죽은 사람의 시체와 안식일 교회에서 말한 바와 같이, 로마제국의 군대들의 잔인무도한 학살로 죽은 사람의 시체가 수없이 바다로 들어가 더러워졌던 것입니다.
채식주의자들의 생각과 같이 바다가 더러워져서 생선을 못먹는다면 그 더러워진 바다에서 생산한 소금이나 해초 등 파래나 김도 먹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세상에 깨끗한 것이라고는 없습니다. 만일 채식하는 사람들의 말대로 생각한다면 부활하신 몸으로 생선을 잡수시며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이 1900년 후에 바다고기가 더러워질 줄 모르시고 제자들에게 생선을 먹이시고 당신 자신도 잡수시며 본을 보여 주셨겠습니까?

오늘날 바다가 각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화공약품 등 오염물질 때문에 바다의 생물들이 많이 죽고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육지에도 그에 못지 않게 농약이나 화공약품의 공해와 자동차나 비행기 등에서 나오는 공해물질로 육지의 생물도 많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역사에도 식량 곤란으로 일본에서 도입한 쌀이 농약을 많이 쓴 것이어서 그 쌀을 먹은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사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다의 고기나 육지의 식물이 모두 사람에게 위험을 준다는 가능성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육식에 의한 해로움보다도 채소에 의한 피해가 더 크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채독 회충 같은 피해가 육식의 그것보다 더 크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이미 잘 밝혀진 사실입니다. ​

성경이 가르치는 음식문제 > 제6장 육식함으로 악해진다는 문제

혹은 말하기를 육식을 하면 악해진다고 하며 채식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동물을 비교하여 볼 때, 육식을 하는 동물은 악하고 식물을 먹는 동물은 순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곡해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전의 채식만 하고 육식이라고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은 시대의 사람들이 어찌하여 하나님을 노엽게 할 만큼 심성이 악해져서 홍수로 멸망까지 당하였겠으며 [창6:5~7] 깨끗한 식물만 먹던 가인은 왜 친동생인 아벨을 무자비하게 돌로 쳐서 죽였을까요? [창4:1~8]  

그리고 천하 만민 가운데서 특별히 택하신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일부러 악한 백성들로 만들기 위하여 다른 민족보다 더 많은 고기를 먹게 하셨을까요?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성경상으로도 만물의 영장 [창1:27~28] 이라는 특수한 위치와 그에 상응하는 지능이 있기 때문에 무지한 동물에 비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마땅히 언제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채식을 하라고 하실 때에는 채식을 해야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육식을 하라고 허락하실 때에는 육식을 해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홍수 이후에는 육식은 채식대신 주어졌기 때문에 육식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신 식물로 생각해야 합니다. 「채소를 준 것 같이 그 동물을 다 너희에게 식물로 주노라」 [창9:3] 하셨으니, 채소와 조금도 다르게 생각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에게는 육식을 함으로서 인체가 그 영향을 받아 지혜가 발달되어 보통 인간들의 생각하는바 선과 악의 분별을 더 잘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 과학문명의 발달도 육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앞서고 있는 원인도 육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은 생각하기를 현대 과학문명은 구원에 이르는 문명이 아니고 죄를 짓는 문명이라고 하겠으나, 육식을 부정하게 여기고 채식을 많이하는 "인도" 같은 큰 나라는 오히려 하나님의 첫째 계명을 어기는 나라로서 우상숭배의 모국이 되었으니 이것이 죄를 없이하는 채식주의의 나라라고 하겠습니까?  

따지고 보면 모두가 이론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먹으라고 할 때에는 먹는 것이 충성이요, 먹지 말라고 할 때에는 먹지 않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리고 동물은 선과 악에 대한 분별력이 없는 무지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 동물의 식성에 따라 생명을 유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육식 동물은 육식을 해야 기력을 분발할 수 있으며, 채식 동물은 채식을 해야 원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양에게 그가 먹지 못하는 고기를 억지로 먹인다고 해서 악해지는 것도 아니고, 사자에게 그가 먹지 못하는 풀을 억지로 먹인다고 해서 순하여 지는 것도 아닙니다. 무지한 동물은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먹히게 되는 것이 자연계에 있어서의 먹이연쇄 관계인 것입니다.  

이른바 대어는 중어식 하고 중어는 소어식[大漁는 中漁食하고 中漁는 小漁食] 함도 이것이 그들에게 허락된 식물인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러한 무지한 동물에 비할 수 없으며 사람에게 있어서는 육식을 함으로써 영양을 보충하여 심령의 발달이 또한 순화된다 하겠습니다. ​

성경이 가르치는 음식문제 > 제7장 채식을 해야 늦은 비 성령을 받는다는 문제

또 말하기를 채식을 해야 늦은 비 성령을 받는다는 주장을 하는데 성경에는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늦은 비 성령에 대해 예언한 것은 요엘 선지자, 호세아 선지자, 스가랴 선지자들에 의한 것이나 채식해야 늦은 비 성령을 받는다는 말은 단 한군데도 없습니다.[욜2:23, 호6:3, 슥10:1, 14:16~19]  

기록한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과 같을 것이라」 하셨으니 이른비 성령 부어 주실 때 사도들이 먹고 행한 그대로 우리도 먹고 행하면 늦은 비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들에게만 이른 비 성령을 내리신 것이 아니라 부정한 음식을 구별해 먹지 않은 이방 사람에게도 이른 비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행2:1~4, 8:14~17, 10:44~48, 15:8~11 비교]
이른 비 성령을 부어주신 역사를 보아서 늦은 비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화잇부인도 음식을 구별하지 않고 먹을 때에 성령에 충만하여 묵시를 보고 장래일에 대하여도 중요한 예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영문교회 증언 1권 205~207면]
성경을 기록한 모든 선지자들이 다 육식을 하였고 채식을 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것이라고 하였고, 모든 성경은 성령에 감동되어 하나님에게서 받아 기록한 말씀이라고 하였는데 [딤후3:16, 벧후1:20~21 비교] 성경을 기록할 때 감동되었던 성령과, 화잇부인이 묵시를 볼 때 감동되었던 성령과 늦은비 성령과 다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첫날 저녁,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시어 생선을 잡수신 후에 기운을 부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눅24:43, 요20:21~22 비교] 채식함으로 성령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고 오히려 육식 중에 늦은 비 성령 받게 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첫날에 기운을 부시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은 [눅24:43, 요20:21~22비교] 육식함으로 늦은 비 성령을 받는다는 약속이 더 큰 의미로 나타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분명한 사실이 성경적으로 확실한데 성경을 떠나서 이론과 교리의 우상을 만들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이른 비 성령을 부으신 이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시요 늦은비 성령 부어 주실 이도 그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같은 하나님, 같은 주 예수님께서 육식하시고 생선을 잡수셨으며 [창18:1~8, 눅24:43 비교] 이른 비 성령을 부어 주셨는데, 이른 비 성령을 부어 주실 때는 육식한 사람들에게 부어 주시고 [요21:8~13] 늦은 비 성령을 부어 주실 때에는 육식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는 어디 있으며, 성령을 부어 주실 주인은 잡수시면서 성령을 받을 사람은 먹어서는 안된다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의 예언서를 보면 장차 채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을 예언하였고, 그들은 화인 맞은 것 같이 거짓말을 하며 외식하는 자라 하였는데[딤전4:1~5] 과연 채식주의자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거짓말을 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듣고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듣는 말은 수없이 많으나 직접 거짓말 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오래전 즉 서기 1956년 2월 3일 낮 사경회, 반내현 안식일 교회 목사는 다음과 같은 예언과 맹세를 하였습니다.
「앞으로 예수 재림이 10년 안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차라리 돌매를 목에 메고 바다에 빠져 죽겠다.」 라고 맹세하였는데 장소는 동래구 재송동 안식일 교회, 사경회 때 한 말입니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강태봉 목사와 같은 채식주의자들이 1964년 10월 22일에 예수 재림한다는 주장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잘사는 가정의 부부간에 이혼까지 하게 한 사실도 있었고, 실패한 후 또 그런 무리들이 일어나 늦은 비 성령 내리신다고 거짓말을 하여 수백명의 마음을 들뜨게 해서 생활고에 빠지게 하고, 일곱 번을 속이고 또 1971년 12월에 예수께서 재림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었는데 예언한 기간이 지났으니 또 거짓말로 예수 재림을 연장시킬 것이 뻔한 일입니다.

그렇게 거듭 속아도 돌아설 줄 모르고 그대로 매달려서 계속 속고 있는 것을 볼 때, 채식주의는 사단의 무서운 마취약임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들이 거짓말 해 놓고 그 거짓말을 하나님께로 슬쩍 돌리는 것이 또한 기묘한 것입니다. 그들이 예언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슬쩍 바꾸어 예언이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다고 하면서 따르는 사람들의 발목을 매어 놓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매이어 있는 사람은 백번을 속는다 하더라도 오히려 예언이 성취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로 생각하지 않고 성공의 계단에 올라선 것으로 생각을 함으로 사단이 끄는대로 끌려가는 것입니다. 자기 잘못으로 거짓말을 하고 그 거짓말을 하나님께 돌리는 그 죄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음식문제 > 제8장 건강법칙과 하나님의 계명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의 계명 즉 유전이 높임을 받게 될 때에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계명은 무시를 당하고 말게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바리새 교인들이 모세 율법에도 없는 장로의 유전을 빙자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마15:1~20, 막7:1~23]  

오늘날도 그 당시의 일이 반복되고 있으니 현재 안식교회 교인들은 건강법칙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첫째가는 계명을 범하는 줄 모르고 있으니 [마22:35~38] 참으로 예언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화잇부인 선지자가 처음에는 음식을 구별하지 않고 부정한 음식물을 먹으면서도 묵시를 보아 내려왔는데 교회가 차차 부흥되자 사단이 침입하여 방자한 말을 하기 시작하여 성경에 없는 건강법칙이 나오기 시작하여 채식이 하나님의 계명 이상으로 높임을 받게 되어 지금은 막을래야 막을 수 없는 안식일 교회에서의 큰 계명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선지자라 할지라도 그 시대를 가르친 성경절이나 예언한 바가 없으면, 채식을 주장한 선지자는 방자히 말했거나 사귀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기록한 말씀에
「선지자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그 일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희는 저를 두려워 말찌니라」 [신18:18~22] 하시었습니다.
위의 말씀을 본다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라도 교만해지면 사귀의 가르침을 받아 방자한 말을 하게 되는 수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과연 채식주의는모세 율법이나 신약의 새 언약에도 말씀한 증험이 없고 화잇부인의 독특한 주장으로 방자히 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도 성경 예언의 성취인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내다보고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찌니라 이는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않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딤전2:12~14]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만일 여자가 선지자라 할지라도 교회를 주장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일 여선지자라 할지라도 교회를 주장하게 된다면, 처음에는 잘 해나가도 나중에는 해와와 같이 사귀의 가르침을 받아 죄에 빠지게 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채식이 죄가 아니라 주님께서 가르치신바 없는 일을 방자히 주장하는 것이 죄요, 또는 자기들의 주장하는 채식에 눈이 가리워져 장차 올 참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과연 안식일 교회가 음식문제만 주장하지 않았다면 마지막 기별인「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것인데, 그들이 주장하는 사람의 계명으로 도를 삼아 가르침으로 헛된 노력이 되고 말았습니다.[사29:13~14]
그들이 마지막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채식문제 때문입니다.  

과연 사도 바울의 예언과 같이 디모데전서2장 12~14절의 권면을 듣지 아니한 결과로 디모데전서4장 1~6절의 예언이 성취되고 있습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딤전2:12~14, 4:1~6 비교]
이 예언은 현실에 나타난 사실을 보면 너무도 분명해서 부인할래야 부인 할 수 없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아멘-
저자 안 상 홍
1971년02월초판발행
1977년01월재판발행
2007년09월삼판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