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책자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책에서 중요한 문제를 뽑아서 자세하게 기록하였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예수 재림 직전에 일어나고 있는 중대한 문제들입니다.
1. 말라기 4장 5절의 예언과 같이 엘리야가 과연 와야 하는지? 또는 엘리야가 와서 무엇을 하는지?
2. 요한계시록 7장 1~3절의 예언과 같이 인치는 천사는 언제 어디서부터 인을 치며 어떻게 인을 치는가?
3. 요한계시록 12장 17절의 예언과 같이 여자의 남은 자손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4. 요한계시록 10장 4절의 인봉(印封)한 일곱 우뢰는 무엇을 가리키며 누가 개봉할 것인가?
위에 기록한 네가지 문제는 말세를 만난 교인으로서 무관심할 수 없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도 아닙니다. 석양에 해가 지면 밤이 오지요, 밤이 오면 찾기 어렵습니다. 빛이 내 앞에 있을 때 노력하십시요.
적은 노력이 영원한 상급이 되는 수가 있고 적은 게으름이 영원한 영생을 놓치는 일이 됩니다.
도끼는 이미 나무 뿌리에 놓여졌습니다. 마지막 재앙은 미구에 내려질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최후 진노의 재앙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진리를 사랑하시는 독자 여러분 기회를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라며 심각히 연구하시어서 하나님께서 자비로서 보내주시는 구속의 인(印)침을 받으시고 영원한 하늘나라에 다 같이 들어가시기를 기원합니다.
저 자 안 상 홍
기록하였으되,
【말4:1~5】「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나의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예수 재림하시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계7:1~3】「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계12:17】「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
【계10:4】「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계22:10】「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하시었다.
옛날 구약시대의 이사야는 그의 계시 중에서 장차 오실 메시야의 임하심과 그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에 관한 문제를 다음과 같이 보았던 것이다.
【사40:3】「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하라.」하였으며 또는
【사40:6~11】「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하시었으며 말라기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말3: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하시었다.
이 예언은 예수 초림 당시에 침례 요한으로 말미암아 그 예언의 일부가 성취되었다. 그 당시에 하나님의 성전을 맡아 가지고 있던 바리새교인들이나 서기관들은 형식과 교만 가운데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칭찬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고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사람의 유전과 사람의 가르친 계명으로 도를 삼아 가르침으로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였던 것이다.(마15:7~9)
이와 같이 패역한 백성들이지마는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다시한번 자비로써 구원의 기별을 보내셨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 영광에 눈이 어두워진 그들은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자비로써 보내주신 선지자를 멸시하였던 것이다. 비록 패역한 족속일지라도 한때는 하나님이 같이 하신 적이 있었던 백성이라 하나님의 음성을 약간 기억할 수가 있었던가?
【마3:1~3】「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고 외치는 소리에 양심의 찔림을 받게 되어 친히 가보지는 않으며 앉아서 사람을 보내어 형편을 알아 보았었다.
【요1:19~23】「또 묻되 그러면 무엇 네가 엘리야냐? 가로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가로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하였다.
이사야의 예언한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 하면 침례 요한이 자칭 엘리야라고 하지 아니하여도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엘리야의 사명으로 온 줄을 알게된 것이다. 선생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은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는 말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들 중에 요단강으로 침례를 받으러 나갔던 것이다.
그러나 회개하지 못한 그들의 몸차림과 화려한 값진 옷차림은 요한의 눈에는 독사와 같이 보였던 것이다.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한벌은 없는 자에게 주라고 하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3:7】「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였다.
세상 영광에 눈을 가리운 바리새교인들이나 서기관들이 자기들의 생각과 맞지 않는 책망을 듣고는 감당치 못하여서 다 물러갔던 것이다.그러나 한편 순진한 백성들은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을 생각하면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괴로움과 권세자들의 학대는 날이 갈수록 심하여 가고 있었으며(마23:4) 더구나 로마의 식민지로써 외국인들의 학대는 더 말할 여지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로마 사람들의 요구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들어 주어야 하였으며 로마 사람이 원하는 일이라면 오리(五里)까지의 짐이라도 들어다 주어야 되는 시대였다.(마5:39~42)
이러한 괴로운 세상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는 메시야의 오심이 큰 소망이었던 것이다. 그 당시의 부패된 지도자들의 교훈은 썩은 심령에서 나오는 교훈이라 썩어서 냄새가 날 지경이었다.
그들은 큰 소리로 백성들을 가르치며 길가에서 자랑하는 기도를 하며 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들에게 랍비라 칭함 받기를 좋아하는 그들의 행동은 (마23:1~7) 순진한 백성들에게 슬픔만 안겨 주었던 것이다. 이러한 괴로움 속에서 좀 더 밝은 빛을 찾으려고 갈급하였던 때에 때마침 그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들려 왔던 것이다.
침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마3:1~6】「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하는 놀라운 소리가 들려 왔던 것이다. 절망 가운데 있었던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마5:2~10) 그들은 다시 옛적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서를 살피게 되었으니 기록한 바
【사40:9~11】「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와 같은 예언의 시대가 돌아올 것을 명상하며 기뻐하였던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도 그들에게 기쁜 예언을 하였으니 기록한 바
【말3:1】「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하시었다.
■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 엘리야
침례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의 사명인 것이다.요한은 백성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요1:23, 사40:3~9비교) 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예수 초림과 재림을 포함한 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신다는 예언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굶주린 백성들은 요한의 외치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 같이 아름답게 들려 왔던 것이다.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요한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요단강으로 모여 들었다. 침례 요한은 그들에게 메시야의 오심이 임박하다는 것을 증거하였다. 백성들은 여러 가지로 질문하기도 하였다.
【눅3:10~14】「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하고 각 사람의 형편을 따라 대답하였다.
그러나 시온의 기쁜 소식이라고 하여서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다 기쁜 소식은 아니었다.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장들이나 지도자들의 편에 가담되어 있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증오심을 일으킬 만한 역경의 기별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그들에게는 최후의 심판의 기별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진리를 갈망하는 자들에게는 생명의 말씀이 되었던 것이다. 진리를 믿고 요한에게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도 있었으니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하러 보내심을 받은 엘리야의 사명이기 때문에 요한은 항상 외치기를 예수님을 증거하였던 것이다.
【요1:35~42】「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마3:11】「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요3: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하며 메시야에 대해서 항상 증거하였기 때문에 요한의 침례를 받은 사람은 거의 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된 것이다.
■ 지나간 역사는 장래일의 그림자
침례 요한 당시에 있었던 역사는 지금 우리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지나간 역사는 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역사의 예언 성취는 지금 우리들 앞에 놓여 있다. 그 모든 역사는 인류의 종말인 오늘날에 나타나야 되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한 모든 말씀은 거의 다 장래 일의 거울과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을 알아 보자면 지나간 역사의 거울을 들여다 봄으로 알게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전3:15】「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이미 있었고 장래 일도 옛적에 이미 있었으니」또는
【사46:10】「내가 처음부터 종말을 보이고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여 가라사대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행하리라」하시었고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고전10:11】「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하였다. 말라기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으로 명백하게 증거하였다.
【말4:5】「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말4:1~3】「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때이다. 그러므로 침례 요한을 보내사 엘리야의 사명으로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한 것 같이 마지막 때에도 엘리야를 영적 예루살렘인 안식일 교회에 보내사 진리로 인하여 굶주리고 허덕이는 백성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오시는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하게 하는 것이다.
화잇부인도 마지막 엘리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엘리야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 살아 있을 성도들의 상징이었다.」(예언의 신 P.K227) 하였다.
그러나 안식일 교회 지도자들은 마지막 엘리야의 기별을 받아 들이지 못할 것을 화잇부인은 보고 증거하였다.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소식과 같이 그의 재림에 대한 기별도 일반 백성들의 종교적 지도자들에게는 부탁되지 않았다.」(쟁상510)하였다.
혹은 생각하기를 대쟁투 상권 510페이지의 기록은 일요일 교회 지도자들에게 대한 예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일요일 교회는 예언상 사마리아교회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예언은 일요일 교인들에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유다와 사마리아에 대한 역사를 살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주전 975년경에 솔로몬왕이 죽은 후 이스라엘 나라는 두 나라로 분열 되었는데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예루살렘에서 유다 왕이 되었고 솔로몬의 신복하였던 여로보암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숭배심이 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 절기를 지키러 해마다 가고 있었다.
여로보암은 백성들로 절기를 지키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사마리아에서 모든 백성들로 경배하게 하였다. (왕상12:25~33) 그 후 아합왕 당시에는 이세벨로 말미암아 바알신과 아세라 목상등 여러 가지 우상으로 더럽혀진 곳이 사마리아다. (왕상16:30~34)그와 같은 가증한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요4:9)
위와 같이 지나간 역사는 장래 일의 거울로서 복음시대에 실물로 예언 성취될 것을 보이신 것이다.
다시 차례로 예언 성취된 것을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솔로몬 시대는 사도교회 시대에 나타날 실물의 예언이요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시대는 사도시대 이후 교회가 타락되어 가던 때의 예언이다. 사도시대로부터 유월절과 부활절을 한 절기로 일주간 안에 지켜오던 기독교회는 2세기 중엽에 이르러 변동되기 시작하였다. 라오디게아에서는 주후 167년경부터 유월절을 안지키기 시작하였다. 주후 197년 경에는 로마 교황 빅터(VICTOR)가 전 교회에게 유월절 폐지령을 내리고 완고하게 거절하는 교회를 책벌까지 하였다.
그러나 진리의 보호자들인 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와 이레네오 같은 사람들이 일어나 항의의 폭풍우를 일으키는 바람에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하고 로마지방을 중심으로한 서방 교회들만 빅터의 지시대로 변경된 날들을 지키고 소아시아와 예루살렘을 중심한 동방 여러교회는 사도시대로 부터 지켜 내려오던 유월절을 그대로 행하게 됨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열되었다. 이것이 여로보암과 르호보암 시대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왕상12:25~33, 교회사 초대편 121~123비교)
그 다음은 아합왕 당시의 예언 성취는 제4세기 초엽에 그리스도교회가 로마 태양신교와 연합하여 태양신교의 제도를 그리스도교회가 일부 받아들이던 때의 예언이다.(예언의 신 G.C49~50페이지)
로마 나라는 국교가 태양신이었다. 그럼으로 동지 (冬至)는 해가 제일 짧을 때니 태양 탄생한 날이라고 해서 12월22일 동지를 태양 탄생일이라고 로마 나라에서는 큰 명절로 지켜 내려온 것이다. 이 태양 탄생일을 예수 탄생일로 변경하고 그 후 교회의 여론을 막기 위하여 3일을 늦추어 12월 25일을 예수 탄생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콘스탄틴 황제는 태양신의 날인 일요일을 존중히 하기 위하여 321년에 일요일 휴업령을 내리는 동시에 (교회사 초대편 193) 325년 5월 6월에 니케아(Nicaea) 회의에서 동방 각 교회에서 지키던 유월절을 완전히 폐지시킴으로 (교부들의 신앙책125~126) 아합왕 시대의 역사가 콘스탄틴 황제 당시에 와서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위와 같이 구약의 역사가 시대를 따라 여러 가지로 예언이 성취되어 왔다.
그런고로 유다와 사마리아가 예수님 당시까지 분리되어 내려온 것 같이 복음시대에도 예수 재림하실 때까지 유다와 사마리아가 분리되어 내려올 것을 보이신 것이 구약의 역사다.
화잇부인이 기록한 대쟁투 상권 510페이지에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소식과 같이 그의 재림에 대한 기별도 일반 백성들의 종교적 지도자들에게는 부탁되지 않았다.」라고 기록한 것은 예수 초림때에 역사가 반복해서 예수 재림때에도 사실 그대로 나타날 것을 알고 기록한 것이다.
만일에 안식일교회 지도자들이 마지막 기별을 받아 들이게 된다면 옛적에 바리새교인들이 침례 요한의 기별을 받아 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안식일 교회가 예수 재림을 영접하게 된다면 옛날 바리새교인들도 예수 초림을 영접하였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 초림 당시는 거울이 되고 예수 재림 당시는 실물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안식일교회 지도자들은 예언상으로 마지막 진리를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안식일교회 교인들 중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요셉 같은 겸손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혹시 구원의 기별을 받아드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안에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사람들도 마지막 진리를 연구하게 되면 잘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겔9:4~6)
■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할 선지자 엘리야
혹은 생각하기를 침례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들 한다. 왜냐하면 기록한 말씀에
【눅16:16~17】「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하신 이 말씀을 따라 요한 이후로는 선지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와 같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의 말씀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옛적 모세 때로부터 내려오는 모든 선지자와 침례 요한까지는 다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기 때문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하게 되면 당신이 그리스도로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당신의 초림에만 관해서 예언한 선지자가 요한까지라는 말씀이다.만일에 요한 이후에도 선지자가 있다고 한다면 요한 이후에 나오는 선지자가 엘리야의 사명이 되는 것이며 그 다음에 가서 그리스도가 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메시야 즉 예수 초림을 증거한 선지자가 요한까지란 말씀이다.
침례 요한 이후로는 예수 재림을 증거하는 복음 선지자가 있는 것이다. 12사도로부터 시작하여 편지서나 복음서나 장래일이나 현재일을 예언하는 사람은 다 복음 선지자가 되는 것이다. 침례 요한이 죽은후 20년이나 30년이 지난 후에도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행 21:10】「여러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또는
【행11:27】「그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또는
【행13:1】「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또는
【행15:32】「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하였다.
이와 같이 선지자들이 복음시대에 와서도 많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사도 당시에만 선지자가 있고 오늘날에는 선지자가 없어야 하는가? 아니다. 사도 당시에 선지자가 있었다면 오늘날에도 반드시 선지자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도 당시에나 오늘날이나 다 같은 복음시대이기 때문이다. 말라기 선지자는 오히려 예수 재림시기에는 큰 선지자를 보내신다고 예언하였다. 기록하였으되
【말4:5】「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어느 시대이든지 선지자가 없을 때에는 참 진리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 엘리야는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할 마지막 진리를 전하게 되는 것이다. 옛 세상은 다시 되풀이 하고 있다. 침례 요한은 예수 초림의 길을 예비한 선지자로써 구원의 기별을 예루살렘에 보낸 것 같이 재림의 기별도 당신의 백성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인 즉 안식일 교회에 보내시는 것이다.
이 기별의 내용은 사도시대에 있었던 초기의 신앙심을 재 부흥시킴으로 무너진 성전을 완전히 복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 말씀하시기를
【막9:12】「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하였다. 이 말씀은 예수 초림때만 가리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수 재림때에도 먼저 엘리야를 보내사 부패된 부분을 회복하여야 된다는 말씀이다.
■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라
말라기 선지자는 장차 이즈러지고 파손된 율례와 법도를 복구하므로 구원의 주를 맞이하게 될 것을 보았던 것이다.
【말4:4~5】「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시었다.
혹은 이 예언이 예수 초림 당시에 있었던 침례 요한을 가리킨 예언이라고 하여 엘리야의 사명이 끝을 맺은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침례 요한은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크게 강조한 적이 없고 다만 침례로써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성결과 회개의 침례를 베풀어 예수 초림의 길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은 마지막 예수 재림을 영접할 준비로서 모세에게 명한 율례와 법도로써 정결함을 받을 수 있는 특수한 진리를 선포할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 기별은 예수 초림때가 아니고 성경의 말씀과 같이
【말4:1】「극렬한 풀무불 같은」날이며「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와 같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실 때이다.」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침례 요한에 대해서 엘리야라고는 말씀하셨지만(마11:9~14,17:10~13) 말라기 4장 5절을 증거하신 적은 한군데도 없고 다만 말라기 3장1절만 가지고 증거하신 말씀이 있다.(마11:10, 막1:2,눅7:27) 과연 말라기 3장 1~5절까지 자세히 보면 침례 요한과 예수초림에 대한 예언이 더욱 분명한 것이다. 기록한 바
【말3:1~3】「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리니 그는 금을 연단하는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은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하시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침례 요한이 와서 예수님을 메시야로 증거하였고 예수님은 제사장들이 알지 못하는 순간에 저희들이 구하는 바 주가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고 날마다 그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요7:14~29) 그러므로 말라기 4장의 예언이 다 같은 엘리야의 사명에 대한 예언이나 그 예언서에 나타난 시대에 관한 문제는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라기 3장1절이나 말라기 4장5절은 같은 엘리야의 사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침례 요한에게 일부 그림자로써 약간 보여 주었을 뿐이며 그 예언의 완전 성취는 예수 재림하시기 직전에 있을 예언이다.
혹은 말하기를 안식일교회가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라고도 한다. 만일 이 교회가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 될것 같으면 이 교회를 지도하던 선지자가 죽지않고 살아서 예수 재림을 맞이 하여야 한다.
옛적 실지 엘리야가 살아서 승천하였기 때문에(왕하2:11) 살아서 주님을 맞이 할 엘리야와 남은 백성을 가리켜 엘리야의 사명이라고 한다. 침례 요한도 이 예언을 성취하기 위하여 살아서 예수 초림의 구주를 영접하였던 것이다.
그와같이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도 살아있는 산 성도 14만 4천명이 완전히 변형을 입고 승천하게 되어야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다.(예언의 신 PK227)
그러므로 주의 재림의 가까운 시일이 되면 먼저 선지 엘리야를 보내어 주의 재림을 눈으로 보는 것같이 완전히 증거로 증거한 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것이다.사도 바울은 기록한 바
【살전5:4】「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하였으며 아모스 선지자는
【암3:7】「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하셨다. 주 재림의 큰 날을 위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새로운 진리로 거룩하게 하신 후 기일 선포하시고 재림하실 것이다. 이에 대하여 화잇부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또 미구에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마치 많은 물소리 같아서 우리에게 예수의 재림하실 일자와 시간을 알리는데 살아있는 14만 4천 성도들은 그 음성을 알아듣되 악인들은 이를 우뢰와 지진으로 알더라. 하나님께서 예수 재림의 시간을 말씀하실 때에 또한 우리에게 성신을 부어 주시니 우리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발하여 마치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던 때에 그 얼굴에서 발한 빛과 같더라. 14만 4천 성도는 다 인침을 받아 완전히 단합되었으며 이마에는 새 예루살렘 및 예수의 새 이름을 포함한 광명한 별이 있더라.」(본 교회약사 40~41)하였다.
화잇부인도 묵시중에는 예수 재림시 살아있는 14만4천 성도들이 인치심을 받았다고 하였으니 이미 죽은 사람은 14만 4천 성도들의 무리에 들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엘리야와 인치는 사명은 세계 제 2차 대전쟁 전에는 있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다.
기록하였으되
【계7:1~3】「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하였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며 인치는 천사는 어느 쪽에서 온다고 하였으며 방향의 기준은 어디서 잡아야 하며 인치는 시기 (시작하는 때)는 어느 때부터 시작되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다.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서 사방의 바람을 붙잡았다고 하였는데 그 바람을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다 치기까지 바람을 놓지 말라고 하였다.
바람이 전쟁이라는 것은 모든 성경 해석자들의 공통된 해석으로써 땅 네 모퉁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바람은 땅 네 모퉁이를 표상하는 전세계 대전쟁인 것이다. 땅 네 모퉁이라고 하면 동 · 서 · 남 · 북 지구 전체를 가르킨 것이다.요한계시록 7장 1절의 예언인 세계대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쟁 당시도 아니요, 제2차 세계대전쟁 당시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네 모퉁이 바람 (세계대전)을 놓지 말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만일에 2차 세계대전쟁 전에 요한계시록 7장의 인치는 사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2차 세계대전쟁이 마치기 전에 인치는 사업은 끝이 났어야 하며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셨어야 예언이 맞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 교회에서 주장하는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안식일 교회의 시작은 서기 1844년 이후로 생긴 교회로서 땅 네 모퉁이에 바람(제1차 세계대전쟁 1914~1918,제 2차 세계대전쟁1939~1945)이 일어나 이미 지나갔으니 예언의 말씀과 맞지 않는 것을 볼 때에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 아니라는 것이 정확하게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요한계시록 7장의 인치는 시기는 제3차 세계대전쟁 전에 시작되어야 하며 시작하는 방향은 해 돋는 쪽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헬라 원어에도 「해 돋는 쪽으로부터 올라오고 있습니다.」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니 요한이 묵시를 본 밧모섬이나 예루살렘을 기준하여 대륙(大陸)에 붙은 동쪽 끝인 한국에서 일어나야 정확한 해석이 되는 것이다.
■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印) 인가?
안식일 교회에서 말하기를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주장하나 신 · 구약성경을 다 찾아 보아도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곳은 단 한곳에도 없다.
다만 안식일이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 사이에 증거 또는 표징이라고 기록한 것 뿐이다.(출31:13, 겔20:12, 20) 만일 「증거다, 표징이다」하신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이 된다고 한다면 할례받는 것도 하나님의 인을 받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기록한 바
【창17:9~12】「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세워 지키게 할 언약은 이것이니 너희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을지니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언약의 표니라」하시었다.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이니라」 하시었으니 안식일 교회의 주장대로 한다면 할례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인을 받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겔20:12】「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하신 말씀과
【창17:11】「너희중에 남자는 다 할례를 받을지니 이는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니라」하신 말씀과 비교하여 본다면 「언약의 표이니라」하신 것이 하나님의 인에 대해서는 더 가까운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인치는 천사가 해 돋는 쪽에서 올라온다고 하였는데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해석에는 어떤 번역에는 「아침 해가 올라오는 것 처럼 나타난다.」(계7:2)라고 번역되어 있다고 하면서 그릇된 해석들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어떤 사람이 해석하는 대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묵시 받을 때 보여주신 예언의 뜻대로 성취되는 것이다.
동쪽의 반대되는 서쪽지방인 미국 사람들이 자기들의 주장에 맞추어 그릇되게 해석한 그들의 말을 듣고 따라 갈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보고 기록한 본문이나 헬라 원어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을 따라 「해 돋는 쪽으로부터 올라오고 있었습니다.」라고 기록한 말씀을 따라 해석하여야 한다.
그리고 안식일 교회는 1844년 이후에 창설된 교회로써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 아니라는 것을 역사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지구 네 모퉁이 바람인 (제1차 세계대전 1914~1918년과 제2차 세계대전 1939~1945) 이 일어난 것을 볼 때 성경과는 거리가 대단히 먼 해석이다.
요한계시록 7장 1~3절의 인치는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제3차 세계대전쟁이 일어나기까지 14만 4천 산 성도들에게 인을 치는 사업이 끝나야 하며 인치는 천사(엘리야)는 해 돋는 쪽(동방) 끝에서 일어나야 정확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가?
신약성경 중에서 인(印)에 관한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후1:22】「저가 또한 우리들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엡1:13】「너희도 진리의 말씀을 들었나니 이는 너희를 구원할 복음이라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그 허락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인침을 받았으니」
【엡4: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롬4:11】「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고전9:2】「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하였으니 위에 기록한 모든 말씀을 연구하여 보면 사도 직분의 인치심도 있으며 믿음의 의를 인치심도 있으며 성령받은 것도 인치신 보증이라고 하였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이 옳다고 인정될 때에는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주신 것이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7장의 14만 4천 성도들에게 인치는 문제는 마지막 살아서 승천함을 받을 엘리야의 사명을 가리킨 예언서이다.
요한계시록 7장 2절의 하나님의 인은 살아서 예수 재림을 영접할 14만 4천 성도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갈 구속의 인을 받는 것이므로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인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만이 구속의 인이 되는 것이다.
이 오묘한 진리는 옛적부터 보여 주셨는 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실 때에 유월절 지키는 가정에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집은 구원을 받았으며 양의 피가 없는 집은 재앙을 받았던 것이다.
애굽 사람이라 하더라도 양의 피를 바른 집은 구원을 받아 나왔으며 (출12:12~14, 37~38)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에도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정결함을 받은 후 허락의 땅 가나안에 들어간(수5:10~15) 역사는 장래일의 거울이 되어 있으므로 인하여 마지막 때에 정결함을 받고 주 예수의 재림을 맞이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갈 것을 확실한 예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구약시대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여호와 하나님이 당신의 희생의 피라고 명백히 기록하였다.(출34:25)
구약시대의 어린 양은 예수님을 대신하였던 것이다. 때가 이르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당신의 몸으로 인(印)이 되시어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구원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엡1:7】「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또는
【벧전1:18~19】「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또는
【계1:5】「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또는
【롬3:25】「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또는
【롬5:9】「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골1: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행20:28】「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위에 기록한 말씀과 같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구속, 화평, 화목, 의로움, 죄사함, 피로 사심 등등의 모두가 십자가의 흘리신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의 인이 된 것이다.
■ 예수님의 몸이 하나님의 인(印)
우리를 죄에서 구속한 인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은 물질로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몸으로 인(印)이 되게 하신 것이다. 누구든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만 먹고 마신다면 생명이 있으며 영생에 들어갈 특권이 있는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우리도 예수님의 피를 믿는다고 한다. 이런 말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명칭을 가진 교회는 다 그와 같은 말을 한다.
그러나 실지와 맞지 않으면 모두가 다 거짓과 이단이 되는 것이다. 우상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실지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실물의 우상인 것이다. 진정한 예수님의 피를 믿는 것은 주님의 가르치신 말씀을 따라 유월절 성만찬 예식만 구속의 인(印)이 되는 것이다.(눅22:7~20, 요6:50~57)
예수님은 최후의 유월절 성만찬 예식에서 잔을 드시사 말씀하여 가라사대「이 잔은 내가 너희 구속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니라」하시며 인을 쳐 놓으신 것이다.
출애굽할 당시의 유월절 양의 피로 인하여 구속함을 받는 것은 (출12:12~14) 신약시대에 있을 거울이었는데 구약시대의 거울을 봄으로 실물의 완전한 유월절로 말미암아 구원함을 받는 것을 알 게 되는 것이다.( 눅22:7~20, 고전11:23~26비교)
에스겔 선지자도 마지막 재앙에서 구원함을 받을 백성들이 유월절 양의 피로 구속의 표를 받고 재앙 면할 것을 보았던 것이다. (겔9:4~5, 출12:13비교)
화잇부인은(계7:2~4, 겔9:4) 위의 성경절에 대한 예언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특히 교회를 위한 사업을 마치는 때, 즉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흠이 없이 능히 설 수 있는 14만 4천명에게 인치는 사업을 하는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의 잘못을 깊이 느낄 것이다. 그들은 마지막 사업에 관한 선지자의 예증 가운데서 손에 각각 살육하는 기계를 잡은 사람들로 표상되었다. 이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가는 베옷을 입고 서기관의 먹 그릇을 허리에 차고 있었다.」
【겔9:4】「가라사대 너는 예루살렘 성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의 이마에 한 표를 두라」이 때에 어떠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이 말씀 중에서 특별히 주의할 것은 성신의 능력이 그들의 마음속에 성취하신 사업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순결한 표를 받는 사람들은 가는 베옷을 입는 사람으로 표시된 사람, 즉 교회 안에서 행하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들이다.(증언보감1권 415)
이 말씀은 에스겔 9:4~6의 예언이 포함되어 있다. 또 기록하기를「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찍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의 눈으로 보지 못하나 천사는 읽을 수 있는 표이다.
왜냐하면 멸하는 천사가 구속의 표를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엘렌지 화잇주석 SDABC7권 968)
또 기록하기를 「얼마 후에 하나님의 자녀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오! 그것이 우리의 이마에 찍혀졌으면.... 천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치러 갈 때에 지나쳐 버림을 당한다는 생각을 누가 견딜 수 있을까?」(엘렌지 화잇주석 SDABC 7권 969) 하였으니 만일에 안식일이 하나님의 인이 될 것 같으면 벌써 하나님의 인들을 맞고 있는 도중이 되어야 할터인데 화잇부인 자신도 아직 인을 받지 못하고 말하기를 「얼마후에 하나님의 자녀된 각 사람은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게 될 것이다. 오 그것이 우리의 이마에 찍혀졌으면....」하는 말의 뜻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화잇부인은 하나님의 인을 구속의 표라고 하였다. 구속의 표는 거룩한 도성에 들어갈 특권인 것이다.
이 특권은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빠는 자라야 구속의 표를 받게 되는 것이다.(계7:14, 22:14비교)
멸하는 천사가 이 구속의 표를 보고 넘어가고 표 없는 자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으로 표시한 것은 옛날 출애굽 당시의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구속의 표가 된 것 같이(출12:13) 남은 백성들에게도 십자가를 기념하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가 구속의 표 곧 하나님의 인이 되어 마지막 재앙에 멸하는 천사로 하여금 볼 수 있는 구속의 인이 되는 것이다.(겔9:4~6)
■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오는 천사
그러면 인치는 사업은 어디서부터 시작될 것인가? 기록한 바
【계7:2~3】「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하였다.
성경의 기록한 말씀대로 본다면 인치는 사업이 반드시 동방에서 나타나야 하겠다. 혹은 생각하기를 성경 번역이 잘못된 줄 생각하겠으나 헬라 원어에도 「해 돋는 쪽으로부터 올라와」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대한 문제를 더욱 분명하게 알아보면 구약성경에서 연결되어 있는 짝을 찾아 보아야 할 것이다. 기록한 바
【사34:16】「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읽어 보라. 이것들 중에 하나도 빠짐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나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명하시고 그 신이 모으셨음이라」하였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서들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기록한바
【사41:2, 25~27】「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켜 의로 불러 그 발앞에 이르게 하신 자가 누구뇨」또는 「내 이름을 부르는 자를 해 돋는 곳에서 오게 하였나니....내가 비로소 시온에 이르기를 너희는 보라 그들을 보라 하였노라 내가 기쁜 소식 전할 자를 예루살렘에 주리라」하였으며 또는
【사46:11】「 동방의 독수리 곧 내가 정하여 놓은 사람을 먼 나라에서 부르리니 내가 말하였으매 과연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음에 과연 행할찌니라」하였으니 동방에서 택한 사람은 기쁜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사명이니(사40:3~9, 41:25~27비교) 일차는 침례 요한으로 일부가 예언 성취되었으나 실상은 복음시대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다.
옛날 아합왕 당시에 실지 엘리야도 동편 길르앗에 거한 사람으로서 (왕상17:1~4) 오류에 빠져있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쁜소식을 전하여 파괴되었던 제단을 다시 복구하였던 것처럼 동방인 한국에서 사도시대 이후 파괴되었던 초대교회 진리를 회복함으로 예수 재림의 길을 예비하게 되는 것이다.
사단도 이 뜻을 알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한국에서 여러사람이 나타나 저마다 내가 동방의 선지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사단의 속임수를 아시기 때문에 마지막 선지자를 보내실 때에는 성경으로 찾아볼 수 있는 정표를 주신 것이다.
첫째는 보내시는 시기와 그 목적에 관한 진리인 것이다. 그 정표는 다음과 같다. 이사야 41장 2절에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키게 될 때에는 5절에 보면 섬들이 두려워하며 땅 끝까지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와서 우상이 흔들리지 않게 하는 종교연합운동들을 하고 있다. 그러면 그 섬들이란 무엇인가?
섬들은 바다 가운데 솟아있는 것이 섬이다. 예언상 바다를 인류사회 즉, 이 세상 만민을 가르킨 것이다.
기록한 바
【계17:15】「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하시었다. 그러므로 이사야 41장 5절의 섬들은 인류사회에서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는 거짓교리인 우상 숭배자들이다. 땅 끝까지 각처에 널리 퍼져 있는 이 단체들이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키게 될 때 마귀는 최후의 발악으로 종교연합운동을 일으켜 하나님의 백성을 없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시기를 당할 때 하나님의 백성은 큰 시련기에 놓여 있으나 하나님께서 위로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사41:10】「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 말며 내가 네 하나님이니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너를 도와주며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하시었다. 과연 이 예언의 때는 벌써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 진리가 시작됨으로 「바티칸」공회에서 종교연합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니 참으로 선지자의 예언은 피할 수 없다. 서기 1962년 3월 17일에 저자는 안식일 교회에서 이 진리로 인하여 출회를 당하였다.
그로 인하여 이 진리를 사랑하던 23명의 성도들은 동년 3월 24일 안식일에 탈퇴 성명서를 내고 나와서 진리교회를 세우고 그해 4월 18일에 유월절을 지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유월절을 지킨 이후 그해 10월에 「바티칸」공회에서 일요일을 지키는 세계적 교회들의 종교연합운동이 일어났으니 이사야의 예언이 잘 맞은 셈이다.
「바티칸」공회에서 종교연합운동이 시작한 때는
제1차 회의 1962년 10월 11일부터 12월 8일까지
제2차 회의 1963년 9월 29일부터 12월 4일까지
제3차 회의 1964년 9월 14일부터 11월 2일까지
제4차 회의 1965년 9월 14일부터 12월 8일까지
1966년 1월 1일부터 5월 29일까지 성년으로 지켰다고 한다. 참석한 종교단체는 약209종파가 승인하고 참석하였다고 한다. 그 회의에서는 공회의 법을 제정하였는데 그 법을 무시할 때에는 종교재판에 처함이라고 한다.(카톨릭신보 발행)
그러면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킬 때에 섬들인 일요일 교회들이 무엇 때문에 두려워하며 종교연합운동을 할 것인가?
첫째 문제는 동방에서 한 사람인 엘리야로 말미암아 바알신 선지자와 아세라목상 선지자를 합하여 850명을 죽인 일이 있다.(왕상18:1~40) 그런고로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중에는 우상을 멸망시키는 진리가 들어 있다.(참고서 새 언약책 11~14페이지를 연구하면 알 게 될 것이다.)
둘째는 진리를 빼앗아간 마귀들이 도로 빼앗기게 될 때에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빼앗아갈 때 활동한 사단이 도로 빼앗기게 될 때에는 더욱 심한 활동을 할 것은 두 말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325년 니케아(Nicaea)공회의에서 연합운동으로 말미암아 유월절 진리를 없이하였고 다시 유월절 진리가 나오게 되므로 1962년 10월부터 맹렬하게 「바티칸」공회에서 종교연합운동을 하기 시작하였다.
유월절은 마귀를 멸망시키는 진리인 것이다. (참고 새언약책 11~14페이지) 그러므로 섬들의 연합 1962년 10월 「바티칸」공회의 종교연합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유월절을 지키는 단체가 엘리야의 사명의 정표인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 회의의 결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우리 진리가 널리 전파됨에 따라 크게 실시될 것이다. 이외의 더 확실한 정표는 구약 모든 성경 말씀에서 장차 복음시대에 나타날 사건을 예언으로 해석하여서 알아볼 수 있도록 해석해 놓은 책이 정표이다. 기록한 바
【사41:21~26】「여호와의 말씀이 너 우상들은 소송을 일으키라 야곱의 왕의 말이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어 장차 당할 일을 우리에게 예언하고 또 이전 일이 어떠한 것도 고하여 우리로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 게 하거나 혹 장래사를 보이며 후래사를 예언하여 너희가 신 됨을 우리로 알게하고」하였으며 또는
【사46:10~11】「내가 처음부터 종말을 보이고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여 가라사대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행하리라」하였고 「동방의 독수리 곧 내가 정하여 놓은 사람을 먼 나라에서 부르리니」하였다.
그러므로 동방에서 불러내신 당신의 사자의 정표는 구약 모든 역사를 통하여 복음시대에 일어날 사건들을 밝히 보여주는 것이 마지막 선지자의 정표이다.
침례 요한도 자기가 가지고 온 정표가 있었는데 그 정표는 엘리야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띤 것은 엘리야의 사명으로 왔다는 정표이다. (왕하1:8, 마3:4)
예수님께서도 어린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신 그 것으로 이스라엘 왕으로 오신다는 정표를 보이신 것이다.(슥9:9, 눅19:29~40비교) 그런고로 거짓이 너무 많이 성함으로 참 것을 구별하기가 어려워서 정확한 정표로 구별해 보지 않으면 거짓에 속아 넘어가기 쉬운 것이다.
사탄도 광명한 천사인척 가장을 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진리를 방해하기 위해서는 거짓이 나와 저마다 내가 엘리야다 하고 활동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기 때문에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으로 정확한 정표를 두신 것이다.
당신이 보내시는 마지막 엘리야는 나오는 방향이 어디이며 어떠한 시기에 무엇을 가지고 오며 엘리야가 죽은 후에 예수 재림하실 것이냐 엘리야가 살아서 예수 재림을 영접할 것이냐 엘리야가 한 사람이냐, 여러 사람이냐 상세하게 예언과 정표가 맞아야 할 것이다.
정표에 대한 순서적으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인치는 천사(엘리야)가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야 하며
2.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 시작되어야 하며
3. 「바티칸」공회의 종교연합운동이 일어나기 직전에 유월절 지키는 교회가 시작되어야 하며
4. 사도들이 지키던 초대교회 진리를 회복시키는 교리라야 하며
5. 성소문제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늘위의 예루살렘 성소에서 대제사장 예수님과 완전한 연결로 교통하는 교리라야 하며
6. 구약의 모든 역사로 신약에 나타날 예언으로 볼 수 있도록 해석해 놓은 것이 정표가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 진리를 위하여 정표를 두신 것은 마지막 진리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확실성을 주시기 위한 정표이요 또는 사단이 방해 공작하는데 진짜, 가짜를 구별하는데 확실하게 구별해 볼 수 있도록 하신 것이 정표이다. 좋은 기별이 올 때에는 반드시 가짜 기별이 생기기 마련이다. 초대교회 진리를 빼앗아 버린 사단이 그 진리를 다시 회복시키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빼앗아 갈 때 활동한 사단이 도로 회복할 때에는 더욱 심한 활동을 할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는 유별나게 여러 사람이 나타나 저마다 동방의 선지자라고 하며 안식일교회 개혁파라고 하는 자들 중에도 내가 엘리야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일들이 생기게 된 것은 한국에서 엘리야의 사명이 나타날 것을 사단이 먼저 알고 있기 때문이다.
■ 동방의 독수리와 고레스왕
이사야서를 연구하시는 분들이 보편적으로 해석하는 바는 동방의 독수리에 대해서 바사왕 고레스를 말한 것이라고 하여 동방의 독수리에 대하여 연구할 기회를 주지 않고 끝을 맺고 말았다.
단편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그 이상 더 깨달을 수 없을 것이다. 과연 고레스왕은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쁜 소식과 자유의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예언 성취가 고레스왕으로 하여금 다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리 만큼 되어 있다. 그러나 구약시대의 모든 선지자들의 예언이 썩어져 없어질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인 한 민족에 관한 예언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가치없는 예언이 되며 오늘날 우리들은 무엇을 연구하여야 좋을런지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모든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와 규례를 범하다가 다른 나라의 침략을 당하기도 하고 포로생활을 하기도 하고 각국에 흩어지기도 하고 다시 은혜를 받아 본국으로 돌아올 것에 대한 예언들이 많다.
그러면 그 모든 예언과 예언 성취된 역사들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우리는 거기에서 멈추어 있을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예언과 역사는 복음시대에 와서 완전 성취로 되풀이하고 있을 것을 예언으로 보이신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고레스왕이나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당한 경험은 장차 복음시대에 있을 그림자이다.
만일에 그 예언이 고레스왕 당시에 완전 성취되었다면 성경의 모순된 점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이사야 41장 2절의 동방에서 한 사람을 일으키는 때에는 섬들이 두려워하며 땅 끝에서 모여와서 우상을 견고하게 세우는 종교연합운동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였으며 (사41:5~7)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려워하는 표정이 있음으로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는 예언의 말씀도 있었다.(사41:8~10) 또 기록한 말씀에
【사41:18, 25】「내가 자산에 강을 열고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고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하며」하였으나 고레스왕 당시에는 그런 일들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고레스왕 당시에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뻐하고 즐거워 한 때였다. 본국으로 돌아갈 기쁜 소식을 듣는 때였다.
그런고로 고레스왕 당시에는 육신적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부 예언이 성취되었으나 신약에 와서도 마지막때 동방에 한 사람인 엘리야의 사명으로 완전 예언 성취될 것을 보이신 것이다.
이 예언의 연결로써 사도 요한도 예수 재림을 맞이하기 위한 인치는 천사가 동방 끝 해 돋는 곳에서부터 나타날 것을 보고 기록하였다.(계7:2, 사41:2, 46:11비교) 그리고
【사41:25~27】「해 돋는 곳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자라」한 그사람의 사명은 시온의 기쁜 소식을 전할 자라고 하였는 바 시온에 기쁜 소식 전할자의 사명은 이사야 40장 3~9절과 연결된 성경절인데 그 성경절이 또한 침례 요한에게 예언 성취되었다고 복음기자 마태와 누가는 기록하였다. (마3:1~3, 눅3:3~6, 사40:3~9, 41:27 비교)
이렇게 연결해서 연구하게 되면 이사야41장 2절 동방에 한 사람을 택한 것이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이라는 것이 밝히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엘리야의 사명 가운데 들어있는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을 또한 여인의 남은 자손이라고 하였다.
기록한 말씀에
【계12:17】「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위에 섰더라」하였다.
지금 우리는 여인의 남은 자손들 중에 들기 위하여 여인의 남은 자손에 대한 문제를 심각히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여인의 남은 자손들은 안식일 교인들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받은 자라」하였고 「예수의 증거는 예언의 영이라」(계12:17, 19:10 비교)고 한 이 두절을 가지고 단편적으로 성경을 그릇되게 해석하므로 마지막 때에 있을 진리를 크게 방해를 주고 있다.
예언의 영을 받은 사람들은 사도들이다. 그리고 예수의 증거를 받은 사람들도 사도들이다.
기록한 바
【계19:10】「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하였다.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라고 분명하게 기록하였으니 예수의 증거는 이미 사도 요한과 그의 형제들인 사도들이 오순절에 받은 성령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끝에 가서 늦은 비 성령받을 백성들을 가리킨 것이다. 화잇부인이 예수의 증거를 받았다고 하는 말은 요한계시록 12장 17절과 19장 10절을 크게 곡해한 말이다.
이 문제에 대해 상세한 기록은 다음 「여인의 남은 자손의 특징」이라는 제목에서 살펴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여인의 남은 자손에 대한 문제를 어디서부터 찾아야 하는가?
신약 성경의 중대한 문제를 연구할 때에는 반드시 구약성경에서부터 연결적으로 짝을 맞추어 해석해야 바른 해석이 된다. 그런고로 여인의 근본으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기록한 바
【창3: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하였다.
이 말씀은 일반적 공통된 교리로 본다면 구속의 경륜을 세우신 예수님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다.
과연 예수님은 예언상 여자의 후손이 되어있다. 그러면 어떻게 되어서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이 되는가?
물론 여러 가지로 대답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원칙적 진리를 따라 연구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기록한 바
【사7:14】「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또는
【마1:18~23】「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로 하신 말씀은 장차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실 예수님을 가리켜 예언하신 말씀이니 여자의 후손이라 하심은 남편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기 때문에 남자의 후손이라 하지 아니하고 남편없이 여자 홀로 낳았다고 하여서 여자의 후손이라 하신 것이다. 즉, 처녀가 남자없이 애기를 낳았으니 누구의 성을 따라 누구의 자손이라고 해야 하겠는가? 할 수 없이 여자의 성을 따라 여자의 후손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야 선지자는 여자의 남은 자손을 증거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54:1】「잉태치 못하며 생산치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구로치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홀로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사야 54장 1절의 예언은 성령으로 낳은 자손이라야 구원받을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것을 밝혀 해석하였다.(갈4:27~29) 그런고로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이 여자의 후손이 될 수 있으며 마지막 여자의 남은 자손도 성령으로 낳은 자손이라야 여자의 남은 자손이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계12:5】「이 여자가 아이를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하였다. 예수님의 탄생과 승천하신 광경을 왜 다시 요한에게 보여 주셨을까? 이는 붉은 용에 대한 해석과 여인의 남은 자손에 대한 문제를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계시록 12장 1~17절까지 자세히 연구해 보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 아이를 낳은 그 여인의 남은 자손도 그 여자가 낳은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님을 성령으로 나신 것 같이 남은 자손도 한 계통으로 성령으로 낳아야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계12:5~17) 그러면 지금 우리는 성령으로 낳지 아니하였으니 여인의 남은 자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우리는 성령을 따라 낳은 자손이 되어 있다. 기록한 바
【갈4:28~29】「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손이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하였다.
육체를 따라 난 자는 하갈의 몸에서 낳은 이스마엘(창17:15)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성령을 따라 낳은 자손은 사라의 몸에서 난 이삭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그러면 한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한 혈통을 따라 낳았는데 왜?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낳았다고 하며 이삭은 성령을 따라 낳았다고 하느냐? 이 문제를 자세히 말하면 약속의 자손은 성령을 따라 낳았고 약속없이 낳은 자손은 육체를 따라 낳은 자손으로 되어 있다. 기록한 바
【롬9:9】「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라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또는
【갈4:28】「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하였으니 예언으로 미리 정해 놓으신 교회는 약속의 자손이 되는 동시에 성령을 따라 낳은 자손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 여인의 남은 자손들은 전에 모든 선지자들이 미리 예언하여 놓았으므로 그 백성들이 약속의 자손이 되는 동시에 성령을 따라 낳은 자손이 된다.
약속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모든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이 미리 예언하여 놓은 백성을 약속의 자손이라고 하였는 바 마지막 백성들에 대한 예언은 다음과 같이 약속하여 놓으셨다.
1.【말4:5】「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보내리라」
2.【계7:2~3】「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3.【사46:11】「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위에 기록되어 있는 명백한 예언의 말씀을 연구하게 되면 사도 베드로의 말과 같이
【벧후1:19】「우리에게 있는 예언이 더욱 확실하여 어두운데 비치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너희 마음에 샛별이 떠오르기 까지 이것을 살피는 것이 아름다우니라」한 말씀과 같이 연구하게 되면 이 교회는 여인의 남은 자손이 된 것을 알게 되는 동시에 마음에 샛별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에 약속의 자손인 동시에 성령을 따라 낳은 자손이 된다.
■ 여인의 남은 자손의 특징
여인의 남은 자손의 특징은
【계12:17】「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받은 자라」하였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생각하기를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교회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교회가 많이 있으니 무엇으로 구별할 것인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계12:17) 라는 말씀은 오늘날 계명을 지키노라고 하는 안식일 교회를 가리킨 것이 아니라 마지막 엘리야의 사명으로써 이즈러지고 파손된 십계명을 완전히 복구한 교회를 가리킨 것이니 첫째 계명인 유월절 성만찬으로부터 완전 복구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예수의 증거를 받은 자라」(계12:17) 하신 말씀은 성령을 가리킨 말씀이다.
성령은 예수를 증거하시는 것이다.
【요15:26】「보혜사가 이르면 나를 위하여 증거하실 것이요」하시었다. 그리고 예수님 탄생하셨을 때에도 결례의 기간 33일이 지난 후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에 시므온이 성령에 감동되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증거하였다.(눅2:25~33) 침례 요한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수님을 보고
【요1:29~34】「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하였다.
사도들은 이른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에 대중 앞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강력히 증거하였던 것이다. (참고 행2:1~4, 24~25, 5:30~32, 요15:26, 요일5:7~9 비교) 그러므로 「예수의 증거」는 예수를 증거하시는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계19:10】「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혹은 예언의 영이라」하였다.
이 말씀도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언하는 성령이라고도 하고 예언하시는 성령이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지한 인간들에게 성령을 주시고 당신의 말씀을 받아 대언하라고 하시며 장차 있을 일의 예언도 하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여인의 남은 자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대언의 영 혹은 예언의 영이라」하신 것이다.
기록한 바 「제자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얻어 다른 나라 방언을 말하니 성령이 말하게 하신대로 하더라」하신 것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신 이는 곧 성령이란 말씀이다. 또는
【요16:13~14】「진리의 성령이 이르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너희를 인도하시리니 그 마음대로 할것이 아니라 듣는것으로 말할것이요 또 장래일로 너희에게 말하리라 성령이 나를 영화롭게 하였으니 내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말하리라」(요16:13,14 눅12:11~12) 하시었다. 이와같이 성령은 오늘날 안식일 교회에서 받았다는 성령과는 같지 않은 것이다. 기록한바
【행8:16~17】「이는 아직 한 사람도 성령 내리심을 받지 못하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만 받을 뿐이더니 사도가 손으로 무리에게 안찰하매 즉시 성령을 받은지라」하였다. 이와 같은 성령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 주셨지마는 마지막 때에 용이 분노하여 여인의 남은 자손으로 더불어 싸우게 될 시에 각 개인에게 불 같은 성령의 전신 갑주를 입히실 것이다.
그리고 에스겔 선지자는 마지막 여인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받은자들」에 대한 예언을 다음과 같이 하였다.
【겔36:24~28】「또한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며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너희 육신 가운데서 돌같은 마음을 제하고 살같은 마음을 너희에게 줄것이요 또한 내 성령을 너희속에 두어 너희로 하여금 내율례를 행하게 하리라 너희가 반드시 내 규례를 지켜 행할것이요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며 내 백성이 되며 나는 하나님이 되리라」또는
【겔11:19~20】「내가 저희에게 한마음을 주며 새 신을 너희속에 둘것이요 그 육신의 돌같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육체의 마음을 주어 나의 율례를 행하고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할지니 그리하면 저희는 내 백성이 될것이요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리라」한 말씀은 세상끝날에 여인의 남은 자손들이 이즈러지고 파손된 율례와 법도를 바로찾아 지키게 됨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된 인을 치시고 보증으로 늦은 비 성령을 풍성하게 부어 주실 것이다. 기록한바
【겔11:20】「나의 율례를 행하고 내규례를 지켜 행하게 할지니 그리하면 저희는 내백성이 될것이요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리라」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새 언약의 절기를 지키는 사람은 일부 진리의 성령을 받은 사람이 되는 동시에 마지막 늦은비 성령 받을 표가 되는 것이다.(겔11:19~20참고)
여인의 남은 자손 곧 엘리야의 사명이 나타남으로 섬들이 무서워하며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와서 각기 이웃을 돕는 종교연합운동을 일으켜(사41:2~7)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과 싸우려고 바다 모래위에 설 것이다. (계12:17)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조금도 두려워 할 것이 없음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보호해 주시게 되어 있다. 기록한 바
【사41:8~16】「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하시었으니 구속받은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이 최후의 개선가를 부르게 될 것이다.
기록한 바
【계10:4】「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매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기록하지 말고 인봉(印封)하여두라」하시었다. 문제는 이 일곱 우뢰가 영원히 봉한 대로 있을 것인가? 다시 개봉될 것인가? 오늘날 세상에는 수많은 성경학자들이 있다해도 일곱 우뢰에 대해 뚜렷하게 해석한 교회는 없다. 여러 교파중에 요한계시록 해석을 잘한다고 자부하고 있는 안식일 교회도 말하기를 「봉하였으니 우리가 알 바가 아니다」라고 변명을 하리만큼 이 세상에서는 가장 큰 비밀이 되어 있는 것이 이 일곱 우뢰이다.
참으로 우리의 알 필요가 없는 문제일까? 그러면 왜 우리의 알 필요없는 일곱 우뢰가 발하였을까? 아니면 하나님이 우리와 농담이라도 하셨단 말일까?
아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와 농담도 하시지 않으시고 장애물도 우리앞에 두시지 않으신다. 인봉한 일곱 우뢰는 마지막 때에 나타내야 할 중대한 비밀이 들어있는 것이다.
성경의 기록한 말씀 중에는 뜻이 없는 기록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인봉하라고 하신 뜻은 개봉(開封)할 때가 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성경 말씀 중에는 우뢰라는 기록이 여러곳에 있는 바 요한복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듣지 못한 사람에게는 그 음성이 우뢰소리로 들린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에
【요12:28】「하늘에서 소리가 있어 갈아대 내가 이미 영화롭게 하였고 또 다시 영화롭게 하리라」하신 그 음성이 들릴 때에도 요한은 그 음성을 바로 듣고 요한복음에 기록하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뢰소리로 들렸던 것이다. (요12:29)
계시록에도
【계14:2】「하늘에서 소리가 나니 여러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하였으니「내게 들리는 소리는」하고 구별된 언어로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듣는 사람과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런고로 다른 사람에게는 일곱 우뢰로만 듣게 되었으나 사도 요한은 그 음성을 바로 듣고 기록하려 하였으나 인봉하라는 명령이 있음으로 일곱 우뢰라고 기록한 것 뿐이다.
그러면 일곱 우뢰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일곱 우뢰」라고 하였으니 일곱에 대한 숫자를 먼저 해석하고 다음으로 우뢰라는 문제를 해석해야 할 것이다. 일곱에 대한 숫자는 완전숫자라고 하는것은 누구나 다 인식하는 바이다.
그런고로 일곱을 완전으로 변경시킨다면 일곱 우뢰가 아니라 완전한 우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어디서 완전한 우뢰가 발하였는가? 이는 한 사람이나 두 사람 앞에서 발하신 우뢰가 완전한 우뢰소리가 아니라 이스라엘 총회 앞에서 발표하신 우뢰가 완전한 우뢰라고 할 수 있으니 완전한 우뢰소리가 발표된 때는 시내산 화염중에서 모든 백성에게 우뢰 같은 음성으로 언약의 말씀을 발표하신 것이다.(출19:16~19, 신5:1~5)
그런고로 일곱 우뢰는 완전한 우뢰를 말하는 바 이 우뢰를 발표하실 때에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과 삼차의 칠개 절기를 정하여 주셨는바
【느9:13】「시내산에 강림하시고 하늘로부터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실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주시고」하였다. 그런고로 일곱 우뢰 소리만 들을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계13:9, 3:22) 하셨으니 우뢰에 대한 원칙을 깊이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 일곱 우뢰와 하나님의 율법
시내산에서 우뢰소리가 발표하실 때에도 모세는 그 음성을 분별하여 바로 들었으나 백성들은 우뢰와 번개와 큰 뇌성과 진동하는 소리로 들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두려워 모세에게 이 우뢰소리를 더 듣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이다.(출19:16~19, 20:18~19) 이와 같이 요한계시록 10장 4절에 기록된 일곱 우뢰도 일반에게는 바로 듣지 못하게 되었으나 요한에게는 모세가 들은 완전한 언약의 말씀을 듣고 기록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일곱 우뢰에 대하여 옛 선지자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8:16】「너는 이 증거의 말씀을 싸매고 율법을 인봉(印封)하여 나의 제자중에 맡기라」하시었다.
성경 말씀중에는 짝이 없는 기록은 없다. 기록한 바
【사34:16】「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중에 하나도 빠짐이 없고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나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명하시고 그 신이 모으심이라」하시었다. 그런고로 요한계시록 10장 4절에는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기록하지 말고 인봉(印封)하여 두라」하시었고 이사야 8장 16절에는 「너는 이 증거의 말씀을 싸매고 율법을 인봉(印封)하여 나의 제자중에 맡기라」 (구역성경 사8:16참고)하시었다.
율법도 인봉하라고 하신 동시에 일곱 우뢰도 인봉하라고 하사 짝을 맞추어 연구하게 하신 것이다.
신약성경의 예언서 중에 중대한 문제는 반드시 구약성경에 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구약성경 중에 「봉함하라」는 기록이 다니엘서에서 더러 찾아볼 수 있으나(단8:26, 12:4, 9) 다니엘서의 「봉함하라」는 예언은 안식일 교회에서 해석한 바 대로 그 예언은 이미 성취되었다.
그러나 이사야 8장 16절의 「율법을 인봉하여 나의 제자중에 맡기라」하신 예언은 요한계시록 10장 4절의 인봉한 일곱 우뢰와 함께 해석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니 마지막 선지 엘리야로 말미암아 개봉(開封)하게 하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인봉하라는 율법의 중대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사24;3~6】「땅이 또한 그 거민 아래서 더럽게 되었으니 이는 그들이 율법을 범하며 율례를 어기며 영원한 언약을 파하였음이라」또는
【사33:20~30】「우리의 절기지키는 시온성을 보라 너희 눈이 예루살렘은 안정한 처소됨을 보리니 옮기지 못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원히 빠지지 아니하며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찌라 오직 여호와께서는 거기서 위엄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하였다.
그런고로 시내산에서 완전한 우뢰로 발표하신 율법과 이사야 8장 16절의 인봉하라는 율법과 일곱 우뢰를 봉하라는 문제들을 연결해서 연구하게 되면 확실한 사실이 들어나는 것이다. 혹은 말하기를 이사야 8장 16절에 기록한 율법은 십계명만 가리킨줄 안다. 그러나 율법이자 계명이요 하나님께 속한 계명이자 절기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사야 8장 16절을 기록한 이사야는 이사야 24장 3-6절과 33장 20절도 기록한 것이다. 그리고 율법중에 오늘날까지 나타나지 않고 봉한 대로 있는 것은 삼차의 칠개 절기밖에 없다. 인봉한 일곱 우뢰의 비밀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마지막으로 반복된 것이다. 기록한 바
【말4:1~6】「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총회)를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선지자가 마지막 주의 재림하실 때에 나타낼 예언도 다 절기를 말한 것이다.
(참고 겔36:26,37:24, 습3:18, 렘8:7, 겔11:20)
그리고 모세 율법에는 십계명을 언약이라고 말씀하신 동시에 절기도 또한 언약이라고 하였다.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서 40일을 지내는 동안에 여호와께서 모든 율법을 반포하실 때에 삼차의 칠개 절기를 말씀하시면서 이 절기의 뜻대로 언약을 세우시고 언약의 비석(십계명)을 주신 것이다.(출34:18~28)
【출34:27~28】「여호와 모세에게 가라사대 너는 이 말을 기록하라 내가 이 말의 뜻대로 (삼차의 칠개 절기의 뜻대로) 너와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노라 모세가 음식을 폐하고 40주야를 여호와와 함께 처하니 여호와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판에 기록하시니라」하였으며 신명기에도 「여호와 너희의 지킬 언약을 반포하시니 곧 십계명이라... 그 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명하사 너희에게 규례와 법도를 교훈하여 너희로 건너가 기업으로 얻을 땅에서 행하게 하셨느니라」(신4:13~14, 5:1~3)하시었으며 열왕기하 23장 1~3절, 21~23절을 연구해 보면 유월절을 언약의 말씀대로 지킨다고 하였으며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편지할 때에 기록하기를
【히9:1~7】「첫 언약에도 섬기는 예법과 세상에 있는 성소가 있나니」하였다.
대속죄일에 관한 절기를 첫 언약의 섬기는 예법이라고 하였다. 시내산에서 첫 언약으로 주신 십계명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으로 주신 것인데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한분이신 하나님만 섬기는 구속의 언약인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하는 오묘한 절기가 일곱 우뢰가 개봉(開封)되기 전에는 아무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속의 오묘한 진리와 하나님의 비밀은 더욱 분별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화잇부인도 기록하기를 성소문제를 연구함으로 더욱 밝은 빛을 받게 된다고 하였다.(쟁하 200페이지) 과연 성소문제인 절기 안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비밀의 창고가 되어 있다. 때가 되면「하나님의 오묘함이 반드시 이루리니 이는 그 종 여러 선지자에게 보이신 복음과 같은 것이다.」(계10:7) 일곱 우뢰가 지금까지 성경속에 감추어져 있었으므로 비밀이라고 할 수 있으나 실상은 전에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다 지키고 행하던 것인데 교회가 사단에게 밟힘을 당함으로부터 하나님의 참된 진리가 성경속에 감추어져 때가 차기까지 봉하여 두신 것이다.(계10:4, 사8:16)
이 삼차의 일곱가지 절기는 다 모세 율법의 정한 절기라고 할 수 있으나 실상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신 새언약의 날들과 연결된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섬긴다고 할지라도 절기와 안식일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순간에 다른 신을 섬기게 되는 것이다.
기록한 바 「여호와 거룩히 구별하신 모든 절기에」(스3:5, 사30:29)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인지 사단을 섬기는 일인지 구별할 수 있는 문제는 그 모든 절기로서만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대하13:9)
그런고로 일곱 우뢰는 삼차의 칠개 절기를 가리키는 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새 언약의 유월절 성만찬
(2) 무교절 즉 수난절 금식기도
(3) 초실절 즉 부활절 기념
(4) 오순절 기도와 부흥회
(5) 나팔절 즉 추수절 기도
(6) 대속죄일 특별기도
(7) 장막절 전도대회
이 일곱가지 새 언약의 절기를 지키므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직무를 행하시는 예수님과 교통하게 되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축복을 주시는 것이다.(말4:5~6)
■ 느부갓네살 왕의 꿈
그러나 이 일곱 우뢰를 봉하게 된 것은 느부갓네살왕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잊어버림과 같이 만일 이 꿈을 알아내고 해몽하는 자가 없으면 바벨론에 모든 박사와 다니엘과 그의 동무 세 사람까지라도 다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
그와 같이 이 일곱 우뢰도 교회의 운명이 달린 중요한 진리가 들어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석하지 않으면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 곧 바알신 숭배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하나님의 백성들까지라도 다 영혼의 멸망을 받게 될 것인 바 이는 느부갓네살왕의 꿈이 세상 마지막 운명을 결정한 것 같이 일곱 우뢰도 마지막 교회의 운명을 결정할 중대한 문제가 되므로 왕의 꿈도 잊어 버리게 하신 동시에 일곱 우뢰도 봉하게 하신 것이다.(단2:1~6, 계10:4)
만일에 그 꿈을 잊어 버리지 않았더라면 다니엘이 해몽할 여지없이 바벨론 박사들이 거짓으로 다 해몽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고로 하나님이 왕의 꿈을 잊어 버리게 하사 다니엘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사 그 꿈을 알아내는 사람이라야 해몽이 분명하다는 것을 왕으로 인정하게 하신 것과 같이(단2:9) 일곱 우뢰도 봉하게 된 것은 개봉하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그 속의 깊은 진리를 해석할 때 깨닫는 사람들로 하여금 확실하게 믿게 하시려고 봉하게 하신 것이다.
만일에 이 일곱 우뢰를 봉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모든 거짓 교사들이 거짓 해석으로 하나님의 뜻을 그릇되게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고로 이 일곱 우뢰가 마지막 교회의 운명이 달린 진리가 되기 때문에 봉하게 된 것이다.
■ 엘리야와 일곱 우뢰
그런고로 하나님의 마지막 비밀인 일곱 우뢰가 하나님의 마지막 선지 엘리야로 말미암아 개봉(開封)하게 하셨으니 기록하였으되
【계10:4】「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印封)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하였으며 또는 【구역성경사8:16】「율법을 인봉하여 나의 제자중에 맡기라」하였으며 또는
【계22:10】「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印封)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하였으며 또는
【암3:7】「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하시었으며 또는
【계10:7】「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하시었으며 또는
【말4:5】「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하였으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막9:12】「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하시었다.
이 일곱 우뢰의 비밀은 사도 시대로부터 지켜 내려오던 새 언약의 제도인데 사도 이후 교회가 타락함으로부터 새 언약의 진리가 한가지씩 변하기 시작하였다.
교회는 세상 권세자들 손에 들어갔다. 교황청이나 교회 권세를 잡고 있던 키드(Kidd)박사같은 사람은 초대교회의 진리를 없이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닛산 14일에 유월절 지키는 사람들을 에비온(Ebion)파라고 하며 유대주의화한(Quartodecion)들이라고 부르고 여러 가지 그룹 가운데서 유일의 이단자들로 치부하였다.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는 167년부터 닛산 14일에 유월절 성만찬 예식을 지키는 일은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진리를 사랑하는 교회들은 반대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월절을 지켜 내려 왔으니 이는 생명에 이르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사단은 집권자들을 충동시켜 생명에 이르는 진리를 없이하려고 오랫동안 싸워 내려왔다. 그후 197년에 로마 교황 빅터(victor)는 강제로 유월절을 없이 하려고 하여 완고하게 거절하는 교회를 책벌까지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모든 교회와 교회 감독들은 항의의 폭풍을 일으켰다. 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와 이레네오 같은 분들이 일어나 맹렬히 반대하는 바람에 동서방 교회가 분열되어 로마나라를 중심한 서방교회들은 교황 빅터의 지시대로 행하고 예루살렘을 중심한 동방교회들은 끝까지 진리를 사랑함으로 유월절을 계속 지켜 내려왔다. 그러나 교회가 이미 사단의 손아귀에 들어 갔으니 오래가지는 못하였다.
콘스탄틴 황제는 표면상 교회를 돕는 사람이 되었으나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서는 큰 적이 되어있다. 그는 동서방교회 사이에 갈라져 지켜 내려오던 안식일을 완전히 없이하려고 321년에 일요일 휴업령을 내렸으며 오랫동안 싸워 내려오던 유월절을 완전히 없이하려고 325년 5월 6월에 니케아(Nicaea)공회의에서 폐지령을 내리고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는 종교재판에 처하였던 것이다.(교부들의 신앙125~126)
그러나 진리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박해를 피하여 산중 사막 동굴속으로 피신하였으며 나중에는 험준한 계곡을 찾아 금욕 생활로 나간 사람들이 허다하였다.(교회사 초대편 283페이지) 그후부터 진리는 차차로 없어지고 교회는 1260년의 긴 세월을 암흑세기를 만들고 말았다.(단7:25, 계12:6비교)
그러나 예언의 기간이 거의 차가매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개혁의 길이 열리기 시작하여 안식일 문제까지는 회복되어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마지막 비밀인 일곱 우뢰 즉, 새언약의 유월절 성만찬 예식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절기의 제도가 성경의 예언대로 마지막 선지 엘리야로 말미암아 개봉(開封)되었으니 예언의 말씀은 일점 일획이라도 폐할 수 없고 반드시 다 이루어 지는 것이다.(사14:24~27, 45:23참고)
그러나 마지막 진리를 반대하는 안식일 교회에서는 말하기를 일곱 우뢰는 봉하였으니 우리가 이것을 알아보려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고 한다. 이런 교회들을 위해 이사야가 잘 예언해 놓았다. 기록하였으되
【사29:11】「모든 묵시는 너희에게 봉한 책의 말과 같으니 혹 유식한 자에게 주며 이르기를 그대에게 청하노니 이를 읽으라 하면 말하기를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하였다.
성경지식이 가장 유식하다는 안식일교회가 봉하였으니 우리의 알바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한 말과 똑 같은 말이다. 물론 인봉한 묵시이기 때문에「못하겠노라」하는 것은 정당한 말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칭하는 교회들이 「봉하였으니 못하겠노라」하는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시키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은 이사야의 예언과 같이 지혜로운 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한 자의 총명이 가리워지는 때이니(사29:10~14) 지혜있는 사람은 미련하게 여겨지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식을 배우고 총명한 사람은 무식하게 보이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진리를 배워야 할 때이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마지막 진리를 받아들이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주여 겸손한 마음으로 진리를 갈망하는 영혼들에게 주님의 마지막 진리의 빛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 - 멘
저자 안 상 홍
1973년 10월 초판발행
2005년 05월 재판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