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요 7:14-17)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서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 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요 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 요한복음7장에서 지금 2절, 14절, 37절 이렇게 읽어 보았는데요 여기 대체로 몇 가지 절기가 포함되어 있는가? 잘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언제든지 대표적으로 절기를 말할 때에는 가을 절기 세 절기를 포함해서 초막절이라 합니다. 절기는 대속죄일이 가장 큰 절기지만은 이렇게 대표로 말할 때에는 초막절이라 그럽니다. 초막절하게 되면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이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어째서 초막절을 갔다가 세 가지 절기를 포함해서 대표적으로 말하게 되느냐 하면은 마지막 끝 절기가 칠일동안 하나님께 화제를 드리는 아주 중요한 큰 절기입니다. 그래서 끝날 8일째 되는 날은 대회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여기 큰 날이라 명절 끝날 곧 큰 날이라는 말은 대회라는 그런 뜻으로써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절기를 연구하는데 너무나도 많이 연구했고 잘 알기 때문에 간추려서 말씀드리는데 나팔절 열흘 동안 기도주간을 정해가지고 기도하는 것은 무슨 준비라는 것을 말하지요? 기도주간이지만은 거기에 의미가 있어야 되겠지요. 나팔을 불면 이것이 무슨 나팔인지 알아야 할 텐데, 군대 나가 있는 사람이 나팔도 분별 못하면 괜히 이중일 자꾸 하게 돼요. 기상나팔 부는데 취침나팔로 알고서 자리 펴고 누워 자도 안되겠고 취침나팔 부는데 기상나팔 인줄 알고 일어나 연병장에 쫓아 나가도 안 된다 말입니다. 이 나팔을 분별해야 되겠는데 나팔을 분별치 못하면 어떻게 군대를 예비하리요 라는 말씀은 고전13장에 보면 그게 나와 있지요.
(고전 13:1-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여기에 보면 어릴 때 있었던 옛적 신앙과 마지막 신앙에서 보면 12절에 보면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사도바울은 마지막 때 나오는 장면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3차7개절기 라는 이 절기가 어떤 사람들은 모세율법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폐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폐하기는 폐 했어요. 폐한 것은 어떤 부분이 폐한 거냐 하면 그 모세율법을 따라서 행하는 행사의 법이 폐했어요. 양 잡고, 소 잡고 하는 이것이 전부 다 폐했어요. 그럼 전부가 다 폐하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면 무슨 법이 되냐 하면 무법천지가 되는 것입니다
옛것이 없어지면 새것이 있어야지요. 옛것도 없고 새것도 없고 하면 이것은 무법천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구약에 있던 3차7개절기가 이제 곧 시대를 따라서 부분적으로 예언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즉, 절기 지키는 방법은 십자가로 폐지됐지만 그 예언이 때를 맞추어서 성취하는 부분은 각 시대를 따라 나오는데 다 성경에서 나오고 배운바지마는 예수님 유월절 지키시고 그날 밤에 가서 붙들려서 그 이튿날 유월절 지키고 한 그 이튿날은 무슨 날입니까? 무교절이지요. 날짜는 무슨 날짜지요? 15일 그래서 레위기23장5에 보면 거기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정월 십사일 저녁은 유월절이요 이달 십오일은 무교절이라 그럼 15일에 하는 무교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날로 이미 제정되어 있는 것만은 사실이고 그 다음에 레23:10절부터 보면
(레 23:10-11)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안식일 이튿날이 이게 무슨 안식일 이튿날이에요? 제7일 안식일 이튿날입니다
(레 23:15-16)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처음 익은 열매 바치는 날 예수님은 부활하신 날입니다. 그래서 안식일 이튿날에 처음 익은 열매를 바치는 이 날에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그 날에 그것은 일년 한번 처음 익은 열매 바치는 날 그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이 날에 부활하셨다 이 말입니다. 처음 익은 바치는 그 날로부터 일곱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일곱 안식일 이튿날 7x7=49에서 일곱 안식일 이튿날 하니까 50일째 되는 날입니다. 50일째 새 소재를 드린다는 이 날에 무엇을 예언 성취되었냐 하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다 같이 모여서 기도할 때에 성령이 내리셨다는 것을 사도행전2장에서 배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로 폐했으면 오순절날도 지키지 않아야 되겠고 그런데 오순절에 제자들이 다 같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러면 제자들은 모르고 아직도 절기가 폐했는지도 모르고 과연 유대인의 습관을 따라 오순절에 모였다고 가정합시다. 그럼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그날에 성령을 안 부어 주어야겠죠. 그렇지만 그 모임이 하나님께서 합당하는 뜻 인정한다는 뜻으로 성령을 부어 주셨어요. 십자가로 절기가 폐했다는 것이 아니지요 십자가로 폐했으면 십자가 이후로는 그런 것이 없어야 되겠는데 오순절에 모여 기도하니까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신 것은 “오늘 맛보기로 먹고 그만둬라” 그런 식으로 한 것도 아니고 그 후에는 사도들은 계속 오순절을 기념해 내려왔다는 것은 성경에 있어요.
성경에 있는데도 어디 그런 게 있느냐 반문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눈앞에 갖다 대주어도 그게 오순절 지키라고 모였냐고 모이다 보니 오순절에 그렇게 됐다 말하거든 어쨌든 오순절에 모였거나 지켰거나 마찬가지지요. 같은데 핑계 대는 사람은 그렇게 핑계 댄다고 오순절 지키기 위해서 모인 게 아니고 기도하던 도중에 모이다 보니까 오순절에 모여서 성령 부어줬다. 그러니 억측을 댈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눈앞에다 갖다 대줘도 그것을 시인하지 않습니다. 사도들이 부활하신 그날 첫날에도 그래요. 눅24장 보면 부활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그걸 믿지 못하니까 예수님하고 동행한 사람들이 두 사람이 있는데, 글로바, 누가 둘이서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는데 예수님이 그 두사이에 끼여서 같이 동행했어요. 동행했지만 예수님을 알아볼 수가 없었지요. 벌써 자기네들의 인식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셔서 무덤 속에 잠들고 계신 분인데 여기 우리와 같이 갈리가 만무하다고 이렇게 벌써 정신 상태가 딱 되어 있으면 아무리 곁에 가도 동행해도 예수님을 몰랐어요.
그래서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주니까 그때야 비로소 예수님이신 줄 알았더라. 희미해서 눈이 가려서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망원경을 준다든지 볼 수 있는 안경을 씌워 준다든지 이렇게 해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절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후에 사도당시에는 절기의 뜻이 나타나지 않았어요. 무슨 이제 나팔절이라든지 초막절 이라든지 그 뜻이 나타나지 않았고, 아까 요한복음 7장에서 예수님이 초막절을 지켰다는 것, 그리고 끝날 에는 외치시면서 목마른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외치신 그 흔적만 남았지, 그 후에 사도들이 초막절 지킨 기록은 안 지킨 게 아니라 지키긴 지켰지만 기록이 남질 않았어요. 언제든지 사도행전이라든지 이런데 기록이 남게 되는 것은 그때의 뭐 무슨 변화가 생겼을 때만이 기록에 남습니다. 특별한 기적이 생겼을 때,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에 대한 기사가 남는 것도 성령이 내려서 크게 변동이 됐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기록이 남는 것이지 그런 일이 없으면 암만 사도들이 오순절 지켰다 하더라도 오순절에 모였다 지켰다 이런 말 쓰질 않아요. 그러나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 일 생긴 그 복음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 때의 그 시기가 어느 때라는 것이 나오겠죠. 그런 면으로 통해서 절기를 증거하고 있는데
(행 20: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치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행선하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어라』
그때 행선해서 가야 되는데 어떻게 해서든지 빨리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가서 성도들과 같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해서 될 수 있으면 오순절 안에 가려고 애쓰고 있다 요런 자막에 따라서 무슨 일이 생겼을 때에 말이 나오게 됐지 다 지키는 것을 오순절 자꾸 말할 필요가 없지요. 오순절 해당되는 그 때에 무슨 일이 있었을 때에 그 이유와 겸해서 오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그럼 사도행전은 무슨 뜻이죠? (사도들이 행한 전기) 춘향전하면 춘향이의 행한 역사를 갖다 기록한 거예요. 마찬가지로 사도들이 그 당시 초대교회 때에 행한 역사를 기록한 거예요. 그러니 사도들이 안식일 지켰으면 우리도 안식일 지켜야 되는 것이고 사도들이 오순절 지켰으면 오순절 지켜야 되는 것이 사도행전의 목적입니다. 고전16장을 보면 여기 또 오순절이 나옵니다.
(고전 16:8-9)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리고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에게 편지했지요? 고린도에 편지할 때에 어디에서 편지한 거예요? 고린도에 편지할 때는 에베소에 있었어요. 에베소에서 있으면서 내가 오순절까지는 여기에 있겠다. 왜 지키지도 않는 오순절을 여기에다 썼어요? 그때는 오순절 해마다 성령 부어 주신 하나님의 거룩한 절기로서 해마다 기념했던 것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순절까지는 예수님 부활 증거하니까 부활절, 오순절, 안식일까지는 사도행전에서 명백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초막절 지켰다는 흔적을 잘 안보여요. 그럼 초막절 지켰다는 흔적 잘 안보이고 대속죄일 지켰다는 흔적 잘 안보여요, 그럼 왜 그렇게 되었을까? 절기는 레23장에서 보면 벌써 유월절서부터 초막절 끝날까지 다 지키고 그것을 그 권위를 똑같이 말했어요. 너희는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지고 멸절한다 하는 거 전부다 유월절에도 대속죄일에도 다 그랬어요. 다 똑같이.
(레 23:28-31)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쳐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여기 지금 대속죄일에 지키지 않을 때에는 백성 중에 끊어지고 너희 죄는 너희가 당한다.
(민 9:12-14)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 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사람이 정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져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기에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 죄를 당할 지며 만일 타국인이 너희 중에 우거하여 여호와 앞에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면 유월절 율례대로 그 규례를 따라서 행할지니 우거한 자에게나 본토인에게나 그 율례는 동일할 것이니라.』
여기도 정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고 또 그 자신의 죄를 자기가 담당해야 돼요. 자기가 다 담당하면 자기가 뭐로 자기 죗값을 물겠어요? 돈이 많으니 돈으로 물겠어요? 금이 많으니 금으로 물겠어요? 죄의 값은 사망이라, 사망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결국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말이 유월절에도 그랬고 대속죄일에도 그랬는데 다 똑같이 그랬는데 어느 거는 지켜야 되고 어느 거는 빼놔야 되겠어요? 빼놓을 수가 없는 것이예요. 다 지켜야 되는데 그것이 신약에서 나타나는 그것은 초대교회는 그 시기가 즉 오순절까지 시기가 그때 가서 예언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3차7개 절기는 3부분으로 나눠졌어요. 1차에는 유월절과 무교절 이것은 성부시대 모세 때 큰 성과를 나타낸 것이고, 2차에는 맥추절과 칠칠절(오순절) 요 두 절기가 성자시대, 예수님 오셔서 죽은 자 가운데 처음 익은 열매로 부활하시고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그 성자시대 큰 역할을 했어요. 거기까지는 명백하게 밝힐 수 있어요. 그러나 나팔절하고 대속죄일하고 초막절은 이것은 성령시대 마지막 끝말에서 이루어질 사건이기 되기 때문에 그때 더 자세한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은 그렇다고 그것을 다 증거하게 한 것은 아니예요.
그럼 우리는 지금 어느 때냐면 성령시대입니다. 요7장37절에 예수님께서 외치시면서 절기 끝날은 큰 날이라 예수서서 외쳐서 목마른자들은 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그러고는 그를 믿는 자에게 무얼 준다고 그랬죠? 성령 부어 주신다 그랬는데 성경에 이름같이 그 배에서 무엇이 흘러내린다. 생수가 강같이 흘러내린다. 생수의 강이 흘러내린다. 이 생수의 강이 흘러내린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만이 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 하신 말씀도 전부 구약의 선지자의 예언을 통해가지고 말씀하시지 선지자의 예언이 없는 그런 엉터리 없는 말씀은 하시지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미리 말씀하신 바 있죠? 요5장39절 너희가 성경을 상고하면 그 속에 영생이 있는 것을 너희가 알 것인데 그러나 이 성경이 누구를 위해 증거했다? 내게 대해 증거한 것이다. 이 성경만 보면 잘 읽고 상고하고, 영생이 있는 것만은 사실인데 이 성경이 나를 위해 증거하는 것만은 사실인데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에서 나를 찾아야 된다 그 말이에요. 그냥 성경을 읽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 나를 찾아야 된다. 그런 뜻이 되겠어요. 그럼 예수님에게서 뭐가 나와요? 생수의 강이 흘러내려요. 생수의 강이 흘러내린다는 말이 요한계시록에도 있고, 스가랴서에도 있고 하지만은 어디 저런 돌 바위 산골짝이 거기서 생수가 펑펑 솟아나서 그 물 마시면 사는 줄로 생각을 많이 하죠. 그것을 잘 알아야 돼요.
그러면 생수가 어디서 나오느냐? 예수를 믿으면 성경에 이름같이 나를 믿으면 예수님에게서 생수가 솟아나오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에게서 생수 솟아나온다는 것은 아까 요7장에서 무슨 절기를 두고 말했죠? 초막절. 요7:37절하신 말씀은 근거 없이 그냥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성경을 상고해볼 것 같으면 옛날 스가랴 선지자가 이렇게 말했다 하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슥 13: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그 날에 하는 날이 어느 날일까요? (바로 때를 알아야 되겠죠) 그 날에 하는 이때가 어느 때인가 알아야 되겠죠.
이것은 예수님이 요7장39절 그 말씀은 마지막 때에 나타낼 것을 바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바로 누구를 위해서?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해 열린다. 다윗의 족속들 어디에 있어요? 시온성에 있는 여러분이 바로 다윗의 족속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위의 영원한 왕으로 오셨습니다. 또 마지막 암행시에도 역시 다윗의 이름으로 온다는 것은 에스겔 선지자도 여러 번 기록했죠.
겔34장24절에보면 최후에는 다윗을 보낸다 그랬고요. 겔37장22절에도 다윗이 영원토록 왕이 된다. 끝에 가서는 전부 다윗이, 또 호3장5~6절에도 마지막에는 다윗을 구해야 한다고 했고, 예레미야 선지자도 마지막 야곱의 환란 때에 누구를 만나야 되냐면 여호와를 만나야 되겠고 백성을 위해 세운 다윗을 만나야 된다 하는 것은 성경 여러 군데 증거하고 있고, 단12장1절에 보면 거기는 누가 나타난다고 했죠? 거기선 다윗이라고 하지 않았고 미가엘이 나타난다고 했어요. 미가엘이라고 하는 이름이 누구라고 했지요? 미가엘이라고 하는 이름은 하나님과 같은 자 하나님과 같은 자가 누구입니까? 예수님 아닙니까? 그럼 끝에 가서는 미가엘이 일어나서 도와준다고 그랬고요. 요한계시록19장11절에 보니까 거기는 또 뭐라 그러느냐면 만왕의 왕이 백마를 타고 나타나서 전쟁을 한바탕해야 될 그런 판국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를 종합해서 볼 것 같으면 그 다윗왕은 어디다가 중심으로 하느냐면 언제든지 시온성, 시온성과 다윗왕은 항상 떨어질 수 없는 사실이 되어 있습니다. 죄와 더러움을 씻는다고 할 것 같으면 그 이상 더 보물이 어디 있습니까? 죽는 것은 무엇 때문에 죽어요? 죄를 씻어버리면 죽지 않지요. 더러운 것도 씻어버리면 깨끗해지니까?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해서 열리겠다.
(슥 14:7) 『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이것은 제일 마지막 때 세상 끝에 가서 낮도 없고 밤도 없고 하는 그 중간 지점이죠 그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그럼 그동안 빛이 없었느냐면 빛이 많이 있었죠, 별빛도 있고, 달빛도 있고, 있었지만 그동안 햇빛도 있었고, 그러나 마지막에 비추는 빛은 햇빛입니까? 달빛입니까? 햇빛의 7배 햇빛의 일곱날의 빛과 같다. 그건 어디 있느냐면 이사야 선지자의 기록에 있습니다.
(슥 14:8) 『그 날에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그러면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난다 이랬는데 다 같은 스가랴 14장에서 여기 16절에 봐요. 어떻게 해서 생명수를 마실 수 있는가?
(슥 14: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이 해마다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않는 자에게 뭘 안 내린다? 비를 내리지 않는다. 여기 보면 아까 예수님과 그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르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말씀하신 것이라. 초막절을 지켜야 만이 비를 준다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 비는 성령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슥 14:17) 『천하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아무리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른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초막절을 지키러 오는 자에게만 비를 주시죠. 생수를 받을 수 있지 그것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그것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슥 14:18~19) 『만일 애급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창일함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애급 사람이나 열국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의 받을 벌이 이러하니라.』
이 초막절에 대해 이렇게 많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습 2:1-3)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 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혹시 하면 떨어지는 사람도 있는가보죠? 숨김을 얻어야 하는데 숨김을 얻지 못하면 결국 멸망에 들어가나 보죠. 이때가 바로 어느 때냐? 1장2절에서부터 보게 되면 세상을 진멸할 때예요.
(습 1:2-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지면에서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와 거치게 하는 것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그러니까 최후지요. 옛날 노아홍수 때는 물에 있는 고기까지는 살수 있었죠. 그렇지만 여기는 바다에 있는 고기도 살지 못하고, 얼마나 무서운 날이 되겠습니까? 바로 이때에 어떠한 일이 있겠느냐면 그것이 구원받는 사람이 습3장18절을 보면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은다. 이 대회가 무슨 날이예요? 초막절 끝날을 대회라 했습니다. 대회를 지키는 사람이니까 초막절 처음도 지켰겠지요? 초막절 전체를 표상하는 나팔절 초막절 대속죄일 전부 다 들어가는데,
(습 3:18-20) 『내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를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너의 치욕이 그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로 천하 만민 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언제든지 초막절이라 하는 것은 스바냐서에도 있고, 스가랴서에도 있고, 전부 예언이 되어 있습니다. 생수가 스가랴14장8절에는 [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른다] 그런데 우리 한국에 지금은 공산주의 땅이 되었지만 백두산이 그래요. 백두산 꼭대기는 주의가 한 30리 주위가 되는 큰 못이 있어요. 그것이 옛날 화산 기운으로써 밑에서 솟아오르는 모양인데 지금도 물이 펑펑 솟아올라서 저 북쪽으로 흘러내리고 또 서쪽으로 흘러 내려요. 북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은 두만강,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것은 압록강, 이렇게 해서 흘러내리고 있어요. 그것이 생명수라면 큰 보물이겠죠. 그것은 암만 마셔야 그저 목이나 조금 축이는, 그러면 요한계시록22장을 보세요. 여기도 생수가 풍풍 솟아납니다.
(계 22:1-2)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아까 스가랴14장8절에는 생수가 예루살렘에서 솟아난다 이랬는데 여기는 한걸음 더 가깝게 해서 어디서 솟아난다고 했느냐면 하나님과 어린양 보좌에서 솟아난다 이랬어요. 그 다음엔 계21장22절에 볼 것 같으면 이젠 바로 직접적으로 예수님 몸에서 솟아나더라 이렇게 되었다 말이예요 . 그랬어요. 자꾸 줄어 들어가지요. 처음에는 예루살렘이라고 했다가 그 다음엔 하나님보좌라 했다가 그 다음은 예수님 몸이라 이랬어요.
(계 21: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어린양이 성전입니다. 성전이 따로 있는가 했더니 바로 그 어린양이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14장에 빌립이 뭐라 했습니까? [주여 아버지 좀 보여 주옵소서] 예수님께서[네가 나하고 이렇게 오래 있으면서 날 보지 못했느냐? 날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째서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바로 직접적으로 생수가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이 됐습니까? 예수님 몸에서 자체에서 그래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하고 외치신 것은 성경에 이름같이 성경에는 그의 배에서 생수가 강같이 흐른다고 했지마는 내게로 와서 마시면 얼마든지 우리가 먹을 수 있고 온 천하만국이 먹고도 남고 그 잎사귀는 공동번역에 약재료가 된다고 했어요.
(계22장2절 공동번역) [그 나뭇잎은 만국 백성을 치료하는 약이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의 몸에서 생수가 흘러내리느냐?
(요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가 생수를 사마리아 여자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 몸에서 나오는 영생을 줄 수 있습니다. 그 말씀과 그 예수님 입으로 나오시는 말씀으로 산다고 했으니 그 말씀에서 나오는 생명수를 구했을 것이라 생수를 너에게 주었으리라. 예수님이 누구인줄 알아야 그에게 생수를 얻지 모르면 생수를 얻을 수 없어요. 여러분들도 생수를 지금 마시고 있는데 [예수가 누군지 알았죠?] 이 사마리아 여자도 알았으면 여러분과 같이 생수를 그에게서 받아 먹었을텐데 받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요 4:11-14)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래서 이 물을 어떻게 주게 되느냐 하면
(요 6: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아까는 물을 주면 영생하도록 갈증도 안 나고 아주 그 샘물이 솟아나서 우리 속에서 조화가 되어 가지고 아주 시원하게 생명수가 된다고 했는데 이제는 어떤 말씀을 하느냐면 나는 하늘로써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생명수 마셔도 영생, 떡 먹어도 영생, 좌우간 여러 가지로 변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몸을 말씀하시고 예수님 입에서 나오시는 말씀을 증거하기도 합니다.
(요 6:52-53)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 되시고, 원천이 되셨죠. 예수님에게로 오는 자마다 예수님에게서 흘러내리는 생명수 우리가 날마다 마실 수 있고 생명의 떡과 생명의 잔 우리 하고 약속을 했지요. 우리 사람하고 약속하면 조금 무게가 있는 사람은 어기지 않습니다. 사람도 약속을 어기지 않거든 하물며 영원한 영생이신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들 하고 약속해놓고 어기실 수가 있습니까? 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생을 가졌지요. 영생을 얻을 것이 아니고 현재 영생을 가졌습니다. 산 사람이 되어있지요. 산 사람이 되어야지 아직도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게 되면 곤란하지요.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생명수를 여러분이 마시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기 때문에 우리 속에는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