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 첫 안식일에 여기에 모두 모여 나와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금년은 을축년 우리의 옛날 노인들의 말씀에 의하면 을축년이고 지난해는 갑자년 그러니까 갑자년은 쥐띠 쥐의 해라 하고 을축년은 소의 해라고 하는데 쥐띠 갑자년이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넘어가고 을축년 첫 안식일 그러니까 서기1985년 1월5일 첫 안식일입니다. 첫 안식일 뭐든지 제일 처음에 일이 잘돼야 그 다음이 잘 풀려 나간다는 말씀은 이미 잘 알고 남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지나가는 과거 1년 그러니까 갑자년 1년 동안에 우리 가정이나 또 내 개인의 신앙 또 국가나 이런 것을 되풀이해서 볼 때에 많은 고비들이 넘어갔습니다. 우리 국가로 본다면 버마 사건에 많은 장관들이 희생이 되었고 또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이 겪었겠지만 그 반면에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5개국 순방이라든지 또 일본 천황이라 하는 그런 분들과 요즘 일본 천황과 마주 앉아서 얘기해본 사람이 없을 겁니다.
우리 한국 사람으로서는 비로소 그런 얘기가 있어가지고 좋은 소리를 다 하고 이렇게 했는데 우리 교회에서도 어떻게 했느냐 면 참 어려운 고비 넘어갔습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웅덩이 물을 다 흐려놓듯이 적은 몇 사람이 들어서서 이 교회를 많이 흐려 놨던 일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무사히 넘어가고 또 그 대신 일부 서울 쪽이나 이런 데서는 부흥이 돼서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쪼록 지나간 한 해에 가정에 무사히 보호해 주셔서 건강으로 보호해 주신데 대해서 하나님 앞에 모두 감사를 드려야 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바로 절반 갈라놓고, 38선을 갈라놓고 북쪽에서 이제 남침을 해올 위험성이 있고 또 저 넓은 대륙에 있어서도 중공이라든지 저 소련이라든지 이런 큰 나라들이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이 큰 나라들이 이 주위에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은 반대로 저희 마음대로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은 우리 적은 나라에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더 큰 힘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잘 생각하여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능력 있는 분이 있다고 해서 또 그 분 한사람이 일을 다 하는 거는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대통령각하께서 아무리 영도력을 가진 그런 분이라고 할지라도 그 분 혼자서는 못합니다. 또 우리나라에 군인들이 강철같이 센 군인들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군인들 그 자체로서는 38선을 막아낼 수도 없고 저 공산주의를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 뒤에 후방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농사를 잘해야 되겠고 기계를 만드는 사람은 기계를 잘 만들어야 되겠고 철공 업들은 철공을 해야 되겠고 모두 마음이 합해가지고서 일을 해야만 이 나라가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우리 교회에서도 이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사람이나 또 전도하러 다니는 전도사 여러분이나 이 분들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양은 양이 양의 새끼를 낳듯이 양이 양을 번식합니다. 여러 우리 믿음의 식구 여러분들이 혼연일치가 되어가지고 한마음 한 뜻으로 이 사업을 밀고 나가지 않으면 도저히 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난한해에는 여러분의 힘이 컸고 여러분들의 노력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사히 넘어갔는데 이제 금년 새해에도 이제 여러분의 힘이 있어야 됩니다. 어느 누구 한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 교회에 같이하셔야 되겠지마는 우리 성도님 여러분이 한 마음과 한 뜻으로써 이 새해를 우리가 이겨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아무쪼록 우리가 힘써서 일해야 되겠는데 오늘은 사람을 낚는 어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에 대해서
(눅 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자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때에 뭐 나야 나쯤 그렇게 안 해도 되겠지 하는 생각은 버려야 돼요. 나란 사람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무리 낮은 계급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리 내가 쓸모없는 사람으로서 취급을 받는다 하더라도 나라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 아니라도 할 사람 있다. 내 아니라도 일할 사람 있고 전도할 사람 있다 또 전도할 사람도 있고 보낼 사람도 있고 하니까 뭐 그렇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아도 생각하지만은 내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적은 일 지극히 적은 일에서부터 우리는 충성을 해야 하나님께서 큰 것을 맡기신다.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적은 것 이것을 우리가 하나님 앞에는 아무리 적은 거래도 영원한 세계를 갖다가 계산해 볼 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적다 하더라도 영원한 세계에 갖다 놓고 계산해 볼 땐 굉장히 큰 것이 될 텐데요 옛날 일본에 요새 신문에 종종 나오는데요. 풍신수길이라는 분 알죠? 이 분이 일본에서 굉장히 참 큰 장군도 되고 큰 지도자도 되신 분이지만은 처음부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제일 말단에 그러니까 높은 사람들 뒤따라 다니면서 신발이나 갖다 보관했다 갖다 주는 것 자기 위에 높은 사람이 같이 갈 때에는 볼일 보러 들어가면 신발부터 보관해 두었다가 내주는 그런 일을 하고 따른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적은 일이지마는 그 사람에게는 굉장히 자기 자신에게는 큰일이다. 생각하고 늘 신발을, 겨울이면 요새같이 추울때면 신발을 (일본 사람은 조리라는 게 있습니다. 발바닥만 붙여 가지고 다기는 조리 그런 신인데 그 신을 가슴에 딱 품었다가 주인 나올 때쯤 돼서 싹 내어놓고 했답니다. 주인이 나와서 가만히 신을 신어보니까 찰 텐데 따뜻하거든 그러니까 주인이 오해를 했죠. 이놈 신발을 내가 들어가 있는 동안에 신고 다녔구나. 아님 네가 깔고 앉았거나 무슨 수가 있었을 텐데 바른 말해라, 할 수 없어서 바른말 안 할 수가 없어요. 그런 것이 아니라 날은 춥고 주인이 들어갔다 나오면 신이 차가울 것 같아서 내가 가슴에 품었다가 내놨는데 잘못됐거든 용서해 주십시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극히 적은 일이지만은 그 충성이 대단하다
그렇게 해가지고 그 사람이 거기서부터 해서 나중에 풍신수길이라는 유명한 큰 장군이 되었고 우리 한국 임진왜란 때 쳐들어왔던 일이 있었다. 우리 한국은 많은 큰 손해를 봤죠. 그러나 일본사람으로 봐서는 굉장한 큰 사람이 됐다 이말이예요. 우리 하늘나라 가기 위해서도 이 세상일에도 문제지만 가장 적은 일에서부터 우리는 충성을 해야 된다. 이 세상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이 세상을 가야 됩니다. 또 여러분이 항상 이 세상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야 됩니다. 떠나서 어디로 가느냐? 이것이 우리의 성서에서 가르치는 말씀 이 세상을 떠나면 베드로의 말씀과 같이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하늘 새땅을 바라보도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적은 일에서부터 충성하는데 적은 일 어디서부터 예수님 말씀
(마 4:17-20)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좋으니라.』고기 잡는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니까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물을 내던지고 예수님을 쫓아와서 지금 하늘나라에 가든지 못가든지 간에 우리 세상으로 봐서도 저 로마 바티칸 베드로성당 아주 세계 사람이 깜짝 놀랄 만큼 큰 건물도 짓고 그 다음에 그 동상을 만들어서 여러 군데에 세워놓고 지금 이 성경책 바라고 성경 보는 사람들이 전부 베드로를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마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예수님 실컷 믿고 하늘에 갔는데 하나님 앞에서 나 모른다 하면 어떻게 돼요? 어떻게 하면 모른다고 한다고 했어요? 사람 앞에서 믿는 사람 행세 안 할려고 하거든 믿는 사람 앞에서는 믿는 사람 행세하고 믿는 사람 없는데 가서는 믿는 사람 행세 안 할려고 해요. 두렵다고 그러니까 모른다는 그런 뜻이겠죠. 우리가 믿는 사람 앞에서 안 믿는 사람 앞에서나 우리가 예수를 안다고 하는 말은 전도한다는 뜻입니다. 우리 예수 믿읍시다. 하늘나라 갑시다. 전도지라도 돌려주고 하는 것은 예수를 안다 하는 뜻이 되지요. 사람 앞에서 나를 안다고 하면 나도 하나님아버지 앞에서 안다고 할 것이고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게 되면 나도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우리가 믿어도 성경의 목적 이루는 것보다도 여러 사람 앞에서 안다고 하는 그런 자세가 되어야 되겠는데 그러는 게 조금 힘들죠.
(마 12: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헤치는 자가 무슨 말입니까? 뭘 헤쳐요? 참 가만히 보면 참 이 말씀이 그냥 슬쩍 넘길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그러니까 헤치는 자라는 것은 우리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방해한다는 뜻도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뭐냐 하면 모으는 사람이 돼야 되겠고 많은 사람 앞에서 내가 예수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돼야 되겠고 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돼야 되겠다는 말씀은 예수님 설교하신 말씀가운데서 여러 말씀가운데서 조금도 잘못됨이 없죠.
(요 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이 세 번이나 베드로에게 물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말씀을 세 번 물었을 때에 세 번째는 베드로가 근심을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대답하는데도 왜 자꾸 그러실까? 그럴 때마다 네가 나를 사랑하면 내양을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하는 대답을 거듭거듭 하십니다.
우리 믿음의 식구 여러분들 주를 사랑하는데 있어서는 제일 중요한 문제가 뭐냐면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즉 전도를 한다는 뜻입니다. 내 자신만 구원받고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 죽어가는 생명을 내 생명과 같이 구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웃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신 그 말씀이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자 그렇다고 할 것 같으면 강단에 서서 설교하는 사람이나 전도지가지고 나가서 전도하는 사람들만 예수를 사랑하고 그 외에 집안에서 그저 일하고 있다가 안식 일 날 예배 보러 오는 사람들은 주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되겠느냐 그럼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생각할 것이냐 아까도 말씀드렸지마는 대통령 혼자서 공산주의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군인들이 공산주의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후방에서 농사짓는 우리나 철공소에서 여러 가지 기계를 만드는 분들이나 농기구를 만드는 분이나 다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그냥 건달로 왔다 갔다 하는 것 보다도 전도하기 위해서는 뭔가 필요한 것을 서로 뒤에서 공급해 주는 것이 그것이 바로 전도하는 것이 되겠지요. 금년에는 어떻게 되든지 간에 작년에 못다한 것 금년에는 더 우리가 힘을 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 하는 그 말씀 과같이 우리 주를 사랑하는 것 같다면 우리 후방에서는 그 전도하는 필요한 쓸 수 있는 종이 한 장이라도 만들어서 공급해주는 것이 바로 전도하는 분이나 뒤에 있는 분이나 저는 같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이게 후방에서 그러면 나는 그냥 십일조만 내고 연금이나 내고 하면 그걸로 끝인가 하겠지마는 그렇다고 해서 자기도 할 수 있는 것을 해야지 안하고 있을 수 없죠. 우리가 공급을 할 때 하더라도 후방에서 농사짓는 사람이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비상소집 걸릴 때에는 농사짓다 호미 다 내던지고 총대 매고 둘러매고 나가듯이 우리가 다 같이 합심해서 일을 해야 된다는 것을 이제는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금년은 어찌되었던지 간에 이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하는 것이 그것이 가장 우리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어떡하든지 금년에는 이 자리가 차고 넘치고 또 이보다 더 큰 장소를 마련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 여러분 힘써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멘
안상홍님 기도
주기도문 묵상기도
1부예배 마침
연결해서 2부예배입니다.
제목은 동일합니다.
오후 설교예배 감사합니다. 오전시간에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살폈는데요 그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 그 말씀의 뜻이 뭐냐 하면 이 성경 상 복음의 바다다 이런 말이 많이 있고 또 요한계시록 18장 보면 선원, 선장 이런 글들이 있습니다. 그러면 선원, 선장이라는 이런 것을 배를 부리는 사람을 선장이라고 하고 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보고 선원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이 세상을 바다라 치고 예수님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배를 타고 다니면서 고기를 잡는다는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낚는 어부 또 예수님께서는 사람 앞에서 나를 아노라고 하면 나도 하나님 앞에서 저를 안다고 하실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는데 또 예수님과 함께 같이 모으지 않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말씀도 하셨습니다. 사실상 성경을 들고 전도지를 들고 복음을 전하는 일은 그렇게 수월한 일은 아닙니다.
수월한 일은 아닌데 여기 낚시질들 해보신 분들 계시는가 모르겠는데 낚시질에 취미 붙여 놓으면 집안 살림이 ~~~ 기분 좋습니다. 그러나 겪은 사람만이 알겠는데 그런데 낚든지 안 낚든지 간에 복음을 전해보면 자기가 알지 못했던 성령의 능력이 솟아나서 말할 수 없는 능력이 가끔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겪어야 되는데 그런 경험 들어 본지 모르겠지만 전도하다 보면 그렇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나가서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것은 결국 내가 배우는 겁니다. 복음 전하는 사람이 아주 많이 배웁니다. 전해본 분들은 경험을 대개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길이 되어 있고, 또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서 큰 고기 낚아 놓으면 더 이상 기쁜 일이 없고 그런데 한편으로 육신에 고통이 많습니다. 영주동에 소위….남편 되는 이, 뒷골 사는 남편 되는 이 하여간 그 추운 겨울에도 밤을 새워요. 밤을 새우면 아랫도리가 얼었는지 뭔지 몰라요. 그래도 고기 낚는 재미에 추운 줄도 모르고 한데서 밤을 세워가면서 하는 그렇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그를 저기 유대교에 있을 때에 부르셨는데 유대교에 열심으로 있었죠. 아마 유대교 가운데에서 최고 열심으로 믿는 사람이었는데 예수 믿는 사람 잡아 다가 옥에 가두고 스데반을 돌로 때려죽이는데 그 편에 서서 잘한다 잘한다 하고 이렇게 해서 죄를 많이 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를 예수님이 불러들이셨죠. 그래서 자기를 그 죽음의 가운데에서 불러 주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자기는 뭐하기로 결심했냐 하면 복음 전하는 일을 결심해가지고 자기 죽도록 죽는 날까지 이 복음을 전하겠다는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행 20:22-24)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복음을 전하는 다니는 사람이 그 정도로까지 될 때 무엇을 깨달았느냐? 예수님이 자기를 억지로 불러주지 아니하였다면 자기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저를 그 죄악 속에서 불러 주신 것을 너무나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더 육신 가지고 생각할 것 없다. 이거 육신 다 버리더라도 없어질 때 까지더라도 주님의 이 맡은 사명을 내가 생명을 다 바쳐가면서라도 나는 이 사업을 끝까지 하겠다 하는 그런 말씀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그런 말만 했느냐 하면은 사람은 말만 하고 실천 옮기지 않는 사람을 간혹 보통 봅니다. 근데 사도바울은 예수 믿기 전에는 악한 짓을 하긴 했지만 또 악한 짓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짓은 안 했습니다. 하나님께 충성한다는 것이 악한 짓을 했어요. 충성한다는 게 자기도 모르게 그만 내가 이렇게 하는 게 하나님께 충성이다. 충성을 한다는 그것을 갖다가 예수님을 믿는 자들 옥에 갖다 넣는 것 그래서 말을 그렇게 해놓고 나중에 사실 그대로 했느냐 안 했느냐 하면은 그렇게 한 것을 우리 고후11장을 보겠습니다.
(고후 11:23-27)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어떻습니까? 그런데 그걸로 또 끝이 아니라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자기말로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이것은 전도인들이 전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그렇게 복음을 전하고 잘못되지 않을까 그런 염려가 있어요,
매 맞고 그런 거는 고사하고 그 외에 일은 고사하고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것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여기 보면 사도바울은 그 죽음의 소굴 속에서 자기를 부르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이왕에 죽었던 내가 이제 주님께서 구해 주셨는데 생명의 길로 건져 주셨는데 내 육신의 이 생명이 아까울 것이 뭐 있겠느냐? 그저 나가서 복음 전하러 돌아다니다가 매도 수없이 맞고 수고도 많이 하고 여러 번 강도의 위험, 강의 위험,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았다 유태인들에게 40에 하나 감하면 몇 대 맞았다고요? 다섯번이면 몇번이예요? 4곱하기5는20, 200번에서 몇 번 빠져요? 40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니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큰가, 세번 태장으로 맞고,
돌로 맞은 거는 돌로 누가 하나 던져서 대가리 맞고 떨어지고 그게 아니예요. 돌로 맞았다는 건 어떻게 맞았는지 아세요? 한 동네가 여러 수십 명이 막 돌 들고 와서 돌로 때렸다는 거예요. 그냥 돌로 누가하나 던져서 맞은 게 아닙니다. 수십 명이 그냥 돌무더기 가져와서 막 집어 던져서 이렇게 돌 무더기가 때렸다는 겁니다. 죽었단 말이예요. 죽은 것을 끌어 다 저 동구 밖에 끌어 다 내놨는데 거기서 하나님이 살려주셨어요. 돌로 맞았다는 게 돌 한번 맞는 게 아니고 그렇듯이 복음 전하는 것을 욕도 많이 먹어야 되죠. 욕도 많이 먹고, 비난도 많이 받고, 그래서 고전9장16절에 보면 전하지 않으면 자기가 화가 미치기 때문에 고전9장16절에 보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고전9장16절에 보고 롬1장14~17절에 보면 모든 사람들 앞에서 천사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됐다. 모든 사람 앞에서 빚진 자가 됐다. 고전4장9~13절에 보면 렘20장7절에 보면 종일 결국 구경거리가 되었다.
(렘 20: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어디 가든지 칭찬받는 것이 아니고 조롱을 받는다 이 말이예요.
(렘 20:8-9) 『대저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강포와 멸망을 부르짖으오니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여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심중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복음 전하지 않으려고 해도 에이 복음을 전하지 않겠다 마음을 먹어도 그만 가슴이 답답해서 속에 불붙는 거 같아서 할 수 없이 나가서 전하고 또 전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그리스도에게 노예가 되는 거죠. 잡힌 바 된 거라고 사도 바울이 예수님에게 잡힌 바 된가라고 또 갈4장16절을 보면
(갈 4:16-22)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저희가 너희를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이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 붙여 너희로 저희를 대하여 열심 내게 하려 함이라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열심이 있음이라』
이 갈라디아서를 보면 꼭 어느 때와 같으냐 하면 우리 지난 작년 봄에 그 반대파를 자주 다니면서 이상한 소리해서 사람들 마음을 흔들었을 때에 그런 경우가 같은 경우입니다. 자꾸 거짓 형제들이 나타나 가지고서 자주 여러 가지로 이단으로 끌고 갈라고 애를 쓰니까 거기서 지금 하다하다 못해서 내가 너희를 위해서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되겠다 해산하는 수고,
참 이거 전도해보면 아직 내가 여자가 아니니깐 해산을 안 해봤는데 어느 정돈지 짐작이 갑니다. 그거 어떻게 짐작이 가느냐? 전도를 해보니깐 전도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이 해산하는 수고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인지를 압니다. 그만큼 전도하는 일이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해산하는 그 어머니가 애기를 낳으면 생전 애기를 낳지 않는다고 해도 애를 키워보면 재미가 좋거든 그래서 고통을 받고도 애기 낳고 또 낳고 그래요. 요즘 산하제한 때문에 그렇지만은 하여튼 그래요. 근데 사도바울이 또 한 가지 문제는 이런 말을 했어요. 물론 복음을 전할 때 핍박을 받고 조롱을 받고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나를 인해서 너를 핍박하고 조롱을 당하면 복이 있다하고 하늘에 상이 큼이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고전 9: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절제라는 것은 술 먹는 사람은 술 안 먹는 것이 절제요. 고기 너무 많이 먹는 사람은 고기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절제요, 나쁜짓 하는 사람은 나쁜 짓 하지 않는 것이 절제입니다. 이기기를 다툰다, 지금 경기장에서 달음질하는 사람이 가다가 마실 것 마시고 먹을 거 먹고 이래서 가면 다른 사람 다 달음박질하고 제일 뒷꼬랑지에서 무얼 하겠어요. 그러니깐 이기기를 다투는 사람마다 달음질을 치는데 뭐든지 절제해야 되지요 승리를 해야 되겠는데 그러나 세상 사람도 달아나고 우리도 달아나고 자꾸 달아납니다. 요새는 아주 경기장 시설이니까요 세상에서도 공부하는 놈들도 어떻게 공부를 열심히 해대는지 보통해서는 따라가지 못해요 또 사업하는 거 연구하는 거 이런 거 보면 참 요샌 물건도 잘 만들어내고 아주 경쟁이 너무 심하니깐 뭐 참 우물쭈물하면 따라가기 힘듭니다.
그러나 세상으로 달아나는 사람들은 무엇을 상을 받느냐면 썩을 상을 받아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매 이 세상에는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우리 여러분들 달음박질하는데 이 세상의 영광을 따라보고 달아나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썩지 아니할 영광을 위해서 달아나고 있습니다.
(고전 9:26-27)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내가 전도를 많이 했는데 다른 사람은 전도를 해서 구원받게 해놓고 자기 자신은 멸망에 들어가면 얼마나 억울 하겠느냐 그런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실컷 전도해놓고 그만 자기는 멸망으로 들어가는 거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싸우기를 달음박질하기를 향방 없이 하는 것이 아니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그렇게 분간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몸을 쳐서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이라 복종하지 않고 자기의 교만한 마음을 먹든지, 엉뚱한 생각을 한다든지, 이렇게 하면은 처음에는 자기가 잘 전도해놓고도 남에게 전파해놓고 자기는 오히려 버림이 될까 두려워한다. 그러니까 내가 전하면서도 자신을 잘 살펴서 내가 혹은 그릇되게 생각을 갖는다든지 우리 교회 그런 사람들 많이 있었죠? 엉뚱한 생각 가지고선 그만 그래가지고 다른 사람 전도해놓고 자기는 버림이 되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되었든지 자신도 구원받고 남도 구원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되겠지요.
(딤후 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하였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그러니까 이제 싸우기를 선한 싸움을 싸웠다니까 선한 싸움이 뭐인가? 이 선한 싸움이라는 것은 복음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서 다른 사람이 날치는 것을 두고 하는 말인데 내가 남을 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싸움은 내가 들고 남을 치는 것이 악한 싸움인데 선한싸움이라니까 남이 나를 치니깐 받아가면서 싸우니까 선한싸움이에요 복음을 위해서 근데 그 선한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까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는데 그것은 나에게뿐만 아니라 주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다 똑같이 주신다.
(눅 23:39-43)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가로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가로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건 어느 때냐 하면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우편에 강도가 하나가 달렸고 좌편에 강도가 하나 달렸습니다. 근데 모두 그 제사장들이나 백성들이 다 와서 조롱을 하고 있을 때에 뛰어내려라 하고 뭐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욕설을 해대고 하니까 그 옆에 달렸던 행악자 그 중에서 강도 하나가 사람들이 많은 그 여러 사람의 조롱하는 거기에 휩쓸려서 조롱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하나는 그와 같은 행동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을 꾸짖고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죄로 당해서 달리지 만은 이 분이 행하는 것은 조금도 잘못된 것이 없다 네가 그런 죄를 짓고 그런 벌을 받으면서도 여전히 더 왜 큰 죄를 지으려 하느냐 꾸짖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라의 임하실 때에 저를 좀 생각해 주십사하고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43절에 내가 진실로 너에게 이르노니 오늘 너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참 어떻든지 강도질하고 행악 질하고 그런 나쁜짓 한 사람이 오늘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순간적이나마 잠시 회개하는 마음 회개하는 마음으로써 자기가 예수님께 간청했죠. 그러니까 이렇게 구원이라는 것이 쉽다면 쉬운 거지만 어렵다면 굉장히 어려운 것입니다.
실컷 또 전도하고 일하다 가도 마음 잘못 먹으면 그만 또 멸망 받고 또 실컷 악한 짓 하다 가도 나중에 회개했을 때에 곧 물론 잘하면서 했을 때에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볼 때 또 어떤 사람이 요걸 지나치게 생각을 해가지고 어떤 서울교회 장로교회 되는 집사 되는 사람이 목사가 맨날 이런 설교하니까 율법 그거 지키나 안지키나 상관없다 회개하면 구원받는다. 이렇게 해놓으니까 그 사람이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돈도 좀 벌고 싶고 이래서 그럼 이제 나 돈 좀 벌고 회개하고 구원받자 해가지고선 골동품 장사 돈 많은 사람 부부 살해사건이 있었죠? 그거 장로교 집사라고 맨날 목사가 그런 소리 하니까 돈 좀 벌어놓고 하나님 앞에 잘못됐다고 빌고 이래서 내가 구원을 받겠다. 하고 이런 생각을 먹고 사람을 죽였어요. 그렇게 해서 그렇게 붙들렸는데 경찰서 붙들려 가가지고선 애타게 부르짖고 잘못했다 울부짖고 결국 사형선고 받았죠. 그런 거는 안 됩니다. 왜 여기서는 구원을 받고 거기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느냐 바로 달리신 예수님이 재판장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어떤 목사가 네 죄 용서해준다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신부가 네 죄 용서해준다 해서 죄가 용서가 되는 것도 안 됩니다. 여기서는 바로 직접적인 예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지마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예수님이 유언을 해 주셨지요. 뭘 남겨주셨습니까? 새언약을 남겨두셨지요. 나는 떠나면 너희와 직접 말할 수도 없으니까 이 걸로서 새언약 영생에 들어가려면 내 언약을 지키고 멸망 들어가려면 지키지 마라 언약을 줬어요, 그것뿐이에요 지금 강도짓 하다가 용서해달라고 해도 암만 울고 매달려봐야 안됩니다. 그건 목사의 말이지 예수님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도를 하되 모든 일에 뭘 하라고 했어요? 절제하라 근데 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은 신약에 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많이 있었는데요. 구약에서 복받은 사람들 …….
-아멘-